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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짓는 건축가?/현대건축

에두아르두 소투 드 모라는 채석장 암벽을 골대 뒤에 그대로 남겼다

by aclstoryji 2026. 10. 9.

조각을 하다 건축으로 온 포르투 건축가를 찬양, 비판, 의견, 진실의 순서로 읽고, 땅과 재료를 먼저 다룬 방식을 실내건축의 눈으로 따라간다.

먼저 알아둘 세 가지
  • 채석장 암벽을 지우지 않고 경기장의 한 면으로 쓴 건축가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가 왜 단순하다는 평을 받는지.
  • 브라가 경기장, 몰레두 주택, 카자 다스 이스토리아스에서 땅과 재료를 먼저 다룬 방식을 하나씩 짚어 본다.
  • 설비 점검의 눈으로 암반 절개면과 비탈의 옹벽을 어떻게 읽을 수 있는지 확인해 볼 만하다.
에두아르두 소투 드 모라의 고향과 대표작 위치를 표시한 항해지도
건축 여정 — 고향과 대표작이 자리한 곳
여행 계획 — 지도 번호와 같은 순서다

조각을 하려던 사람이 건축으로 옮겨 왔다

에두아르두 소투 드 모라는 1952년 7월 25일 포르투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조각을 공부했고, 이후 포르투 대학 미술대학 건축과로 옮겨 1980년에 졸업했다고 정리된다. 돌을 깎던 손이 선과 면으로 옮겨 온 셈이다.

졸업 전인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알바루 시자의 사무실에서 일했고, 1980년에 자기 사무실을 열었다. 첫 일감인 포르투 카자 다스 아르테스는 1981년부터 1991년까지 십 년에 걸쳐 지어졌다. 이 글은 찬양, 비판, 의견, 진실의 순서로 그를 읽는다. 모두 사진과 기록으로 확인한 범위 안에서다.

30,286
브라가 경기장 좌석 수
180㎡
몰레두 주택 면적
2011
프리츠커상 수상 해

1. 찬양 — 채석장 암벽을 지우지 않고 골대 뒤에 남겼다

브라가 시립 경기장은 2003년 12월 30일 문을 열었고 2004년 유럽축구선수권 경기장으로 쓰였다. 좌석은 30,286석이다. 부지는 도시 북쪽 몬트 두 카스트루 채석장인데, 평지에 짓지 않고 암반을 깎아 경기장을 앉혔다. 한쪽 골대 뒤는 채석장 암벽을 그대로 남겼다.

한쪽 골대 뒤로 채석장 암벽이 솟은 브라가 경기장 (개념 삽화)
브라가 시립 경기장 — 사진을 참고해 그린 개념 삽화(실측도 아님)

발전소 설비를 다루는 눈으로 보면 절개한 암반은 우선 배수와 낙석을 점검할 대상이다. 그 벽을 지우지 않고 경기장의 한 면으로 삼았다는 건 점검 항목을 풍경으로 바꿔 놓았다는 뜻이다. 낯설고, 그래서 재밌다.

몰레두 주택도 순서가 같다. 1991년부터 1998년까지 포르투갈 북부 해안 카미냐의 비탈에 지은 180제곱미터 집으로, 침실 셋에 욕실 둘이다. 원래 땅은 높이 1.5미터쯤 되는 돌 옹벽이 층층이 받치던 농지였고, 그는 단 수는 줄이고 폭은 넓힌 계단식 대지로 비탈부터 고친 다음에 집을 앉혔다. 건물은 튀지 않는데 결정은 분명하다. 군더더기 없이 정리하는 이 방식이 내 취향이다.

바다를 향해 유리 면을 연 몰레두 주택과 계단식으로 정리한 비탈 (개념 삽화)
몰레두 주택 — 사진을 참고해 그린 개념 삽화(실측도 아님)
집을 짓는 일보다 집이 앉을 땅을 만드는 일이 컸다는 이야기다.

2. 비판 — 단순함의 값은 사진에 남지 않는다

단순해 보이는 건물일수록 뒤에서 치른 비용이 사진에 안 남는다. 몰레두 주택은 비탈을 고치는 땅 작업이 건물 공사보다 비용이 더 들었다고 전해진다. 집을 짓는 일보다 집이 앉을 땅을 만드는 일이 컸다는 이야기다.

관리도 같은 문제다. 경기장 암벽, 몰레두의 돌 옹벽, 붉은 콘크리트 면을 십 년 뒤 누가 어떻게 손보는지는 기록에서 확인하지 못했다. 고요함이 칭찬받는 만큼 유지비 이야기가 빠지는 게 아쉽다.

3. 의견 — 애쓴 흔적을 지우는 데 가장 애쓴 사람

2011년 프리츠커 심사위원단은 그의 건축이 애쓴 흔적 없이 고요하고 단순해 보인다고 평했다. 나는 반대로 읽는다. 채석장 암반을 깎고 농지 비탈을 다시 짜는 일은 애쓴 흔적 그 자체다. 그는 그 흔적을 지우는 데 가장 많이 애쓴 사람이다.

시자의 사무실에서 5년을 일하고 독립한 이력도 그 방식과 이어진다고 읽힌다. 영향 관계를 단정할 자료는 없으니 이건 내 해석으로만 둔다. 수상 무렵까지 그의 작업은 60건이 넘었고, 대부분 포르투갈에 있지만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영국, 스위스에도 있다.

4. 진실 — 화강암 건축가라는 인상은 절반만 맞다

확인되는 것과 전해지는 것을 나눠 두면 이렇다.
- 2011년 프리츠커상은 포르투갈 건축가로는 시자에 이은 두 번째다.
- 브라가 경기장의 지붕 덮인 관중석 두 동은 강철 케이블로 이어지고, 이 케이블이 잉카의 현수교에서 착안했다는 설명은 전해지는 이야기다. 단정할 근거는 찾지 못했다.
- 대표작이 화강암 건물만은 아니다.

카스카이스의 파울라 헤구 미술관 카자 다스 이스토리아스는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이어진 작업이다. 붉게 물든 콘크리트와 피라미드 모양의 탑이 눈에 띄고, 공원에 있던 큰 나무들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였다고 소개된다. 같은 태도를 재료만 바꿔 이어 간 것인지는 사진만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공원의 나무 뒤로 두 개의 피라미드 모양 탑이 솟은 카자 다스 이스토리아스 (개념 삽화)
카자 다스 이스토리아스 — 사진을 참고해 그린 개념 삽화(실측도 아님)

1989년부터 1997년까지 이어진 아마르스의 산타 마리아 두 보우루 수도원 개조는 오래된 수도원을 국영 숙박 시설로 바꾼 작업으로 소개된다. 실내 마감과 동선이 어떻게 풀렸는지는 확인한 자료가 부족해 여기서는 다루지 않는다.

결론 — 문턱을 없애면 경계는 유리 한 장만 남는다

실내건축의 눈으로 몰레두 주택 자료에서 가장 오래 들여다본 건 바닥재다. 바닥은 실내외 모두 나무 널이고, 바다 쪽은 유리 미닫이가 면 전체를 연다. 산 쪽은 거칠게 쌓은 화강암 블록 벽과 암반 노두가 뒤를 받친다. 안과 밖에 같은 재료를 깔면 문턱이 사라지고, 방과 테라스의 경계는 유리 한 장만 남는다.

찬양할 점과 비판할 점은 한곳에서 나온다. 그는 건물보다 땅과 재료를 먼저 다뤘고, 그 값은 사진 밖에 남았다. 에두아르두 소투 드 모라는 땅을 먼저 고치는 사람이고, 브라가에서 그 땅은 골대 뒤에 선 채석장 암벽이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소투 드 모라는 어느 나라 건축가인가

포르투갈 포르투 출신이다. 1952년에 태어나 포르투 대학 건축과를 1980년에 졸업했고 2011년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브라가 시립 경기장은 어디에 어떻게 지었나

포르투갈 브라가 북쪽 몬트 두 카스트루 채석장의 암반을 깎아 지었다. 2003년 12월 30일 개장했고 좌석은 30,286석이다.

몰레두 주택은 어떤 집인가

1991년부터 1998년까지 포르투갈 카미냐의 해안 비탈에 지은 180제곱미터 주택이다. 건물보다 비탈의 대지 정리에 비용이 더 들었다고 전해진다.

소투 드 모라는 누구 밑에서 일했나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알바루 시자의 사무실에서 일했고, 1980년에 독립했다.

카자 다스 이스토리아스는 어떤 건물인가

포르투갈 카스카이스의 파울라 헤구 미술관이다. 2009년에 열었고 붉은 콘크리트와 피라미드 모양 탑이 특징이다.

참고문헌

  1. Wikipedia, Eduardo Souto de Moura, 웹페이지
  2. Encyclopaedia Britannica, Eduardo Souto de Moura, 웹페이지
  3. ArchDaily, 2011 Pritzker Prize: Eduardo Souto de Moura
  4. Dezeen, Key projects by Eduardo Souto de Moura, 2011-03-29
  5. Wikipedia, Estádio Municipal de Braga, 웹페이지
  6. WikiArquitectura, House in Moledo, 웹페이지
  7. Wikipedia, Casa das Histórias Paula Rego, 웹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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