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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짓는 건축가?/현대건축

이토 도요는 경성에서 태어났다

by aclstoryji 2026. 7. 7.

이토 도요는 1941년 지금의 서울에서 태어나 네 살 때 일본으로 돌아갔다.

먼저 알아둘 세 가지
  • 이토 도요는 지금의 서울에서 태어났다.
  • 그가 초기에 가장 아꼈던 집은 지금 남아 있지 않다.
  • 그가 설계한 건물은 2011년 대지진에서 크게 흔들렸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건축가 이토 도요Photo by Walaiporn Nakapan (Toutou) at th.wikipedia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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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도요는 경성에서 태어났다

이토 도요는 1941년, 지금의 서울에서 태어났다. 당시 이름은 경성이었다. 일제강점기, 아버지의 일 때문에 그곳에 살았다.

1945년, 그의 가족은 일본으로 돌아갔다. 나가노현 시모스와, 아버지의 고향이었다. 이토 도요는 그때 네 살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알고 조금 멈칫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건축가의 출생지가 서울이라는 게, 어색하면서도 이상하게 가깝게 느껴졌다.

이토 도요의 대표작 센다이 미디어테크 (Sendai Mediatheque)Photo by scarletgreen from Japan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우르반 로봇이라는 사무소 이름

도쿄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1965년 졸업했다. 이후 4년간 기쿠타케 기요노리의 사무소에서 일했다. 메타볼리즘 운동의 중심에 있던 건축가였다.

1971년, 이토 도요는 독립해 자기 사무소를 열었다. 이름은 '우르반 로봇'이었다. 1979년에야 지금 이름인 '이토 도요 건축설계사무소'로 바꿨다.

슬픔을 가두려고 지은 집이, 결국 그 슬픔의 무게 때문에 사라졌다.

이토 도요가 누이를 위해 지은 집은 이제 없다

1976년, 이토 도요는 도쿄 나카노에 창문 없는 집을 지었다. 이름은 '화이트 유'. 남편을 잃은 누이와 그 아이들을 위한 집이었다. 안뜰을 둘러싼 U자 모양 벽이 바깥세상을 가렸다.

이 집은 그가 초기에 가장 아낀 작업으로 꼽힌다. 그런데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20년 넘게 그 안에 살던 가족이 결국 철거를 요청했다고 전해진다.

슬픔을 가두려고 지은 집이, 결국 그 슬픔의 무게 때문에 사라졌다. 건축이 감정을 담는 그릇이 될 수는 있어도, 평생 그 감정을 대신 짊어질 수는 없다는 뜻 같다.

이토 도요의 대표작 타이중 국립오페라하우스 (Taichung Metropolitan Opera House)Photo by Nico Kaiser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해초처럼 흔들리는 기둥

2001년 완공한 센다이 미디어테크는 이토 도요의 대표작이다. 사진으로 보면, 기둥이 격자로 반듯하게 서 있지 않다. 가늘고 구불구불한 철제 관 다발이, 물속 해초처럼 얽혀 층과 층을 잇는다. 이토 도요 스스로도 이 구조를 해초에 비유했다.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이 이 건물을 덮쳤다. 센다이는 진앙에서 가까웠다. 그런데 이 건물은 일부 천장재 손상 외에 구조적으로 크게 무너지지 않았다.

발전 설비에서 지진 하중을 계산할 때, 우리는 보통 기둥을 더 굵고 곧게 만드는 쪽으로 안전율을 높인다. 이토 도요는 반대로 갔다 — 기둥을 가늘고 유연하게, 여러 갈래로 나눠 흔들림을 분산시켰다. 결과적으로 그 선택이 실제 지진에서 증명된 셈이다.

이토 도요의 대표작 모두의 집 (Home-for-All)Photo by Zarate123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11년 걸린 동굴, 그리고 재난 이후의 작은 집

대만 타이중 국립오페라하우스는 2005년 설계 공모에 당선됐지만, 완공은 2016년이었다. 콘크리트를 곡면으로 이어 붙여 벽과 천장, 바닥의 경계를 지운 이 건물은 짓는 데만 11년이 걸렸다. 곡면 거푸집을 매번 다르게 짜야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같은 시기 그는 전혀 다른 규모의 일도 하고 있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이토 도요는 다른 건축가들과 함께 재해 지역에 '모두의 집'이라는 작은 공동체 공간을 짓기 시작했다. 이 활동은 2012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일본관에서 소개돼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한쪽은 11년짜리 초대형 프로젝트, 다른 쪽은 며칠이면 짓는 작은 목조 오두막이다. 나는 이 둘을 같은 사람이 같은 시기에 했다는 게 신기하다.

경성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2013년, 이토 도요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았다. 심사위원단은 그의 건물이 '개념적이면서 동시에 경험적'이라고 평가했다.

그가 태어난 경성, 지금의 서울을 이토 도요 본인이 실제로 기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가 그곳을 떠난 건 네 살 때였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이토 도요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일본 건축가다. 1941년 지금의 서울(당시 경성)에서 태어났고, 네 살 때 가족과 함께 일본 나가노현으로 돌아갔다.

센다이 미디어테크는 왜 유명한가?

격자 기둥 대신, 해초처럼 얽힌 가느다란 철제 관 다발로 층을 지지하는 구조 때문이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도 구조적으로 크게 손상되지 않았다.

화이트 유는 지금도 남아 있나?

아니다. 1976년 도쿄 나카노에 지은 이 집은 이토 도요 초기의 대표작이지만, 이후 철거돼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모두의 집'은 무슨 프로젝트인가?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이토 도요가 다른 건축가들과 함께 재해 지역에 지은 작은 공동체 공간이다. 2012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일본관 전시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참고문헌

  1.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2013 Citation: Toyo Ito, The Hyatt Foundation, 2013
  2. Toyo Ito, Toyo Ito: Forces of Nature, Princeton Architectural Press, 2012
  3. 센다이시(仙台市), 센다이 미디어테크 동일본대지진 피해 조사 보고
  4. 2012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일본관 '모두의 집' 전시, 황금사자상 수상 기록

글쓴이

실내건축과를 졸업했고, 현재 대한민국의 발전소 관련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공간과 재료를 실무 현장의 눈으로 보며, 발전 설비·플랜트의 기능성과 구조·안전의 관점에서 건축을 읽는다. 또한 여행과 건축 답사를 좋아하지만, 경제적 여건 탓에 자주 떠나지는 못한다. 대신 사진과 도면, 기록을 오래 들여다보고, 직접 가 본 곳에서는 현장에서 느낀 공간 경험을 글에 녹이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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