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짓는 건축가?2026. 6. 24.by aclstoryji

건물은 이론의 각주처럼 읽히고, 그의 이론은 설계 도면의 주석처럼 작동 시킨 건축가 "렘 콜하스"

찬양 · 비판 · 의견 · 진실의 네 시선으로 다시 읽는 건축가 에세이

렘 콜하스 — 먼저 쓰고, 나중에 지었다

저널리스트였던 그는 도시를 언어로 먼저 해부했고, 그 해부도 위에 실제 건물을 세웠다.

렘 콜하스Photo by Roberto Santorini / CC BY-SA 2.0 / Wikimedia Commons

관찰이 설계보다 앞섰던 시절

렘 콜하스는 1944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태어났다. 건축 교육을 받기 이전, 그는 네덜란드 시사 주간지 하흐서 포스트(Haagse Post)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했다. 도시를 취재하고 서사를 구성하는 훈련이 설계 교육보다 먼저였다는 사실은 이후 그의 작업 방식 곳곳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1960년대 후반 런던 건축연합학교(AA School of Architecture)에 입학한 그는 건축을 물성과 공법보다 담론과 해석의 도구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졸업 후 미국 뉴욕의 IAUS(도시건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체류하며 맨해튼의 도시 조직을 집중적으로 연구했고, 1975년 파트너들과 함께 OMA(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를 설립했다.

1978년 출간된 '광란의 뉴욕(Delirious New York)'은 그를 건축가로 자리매김하기 이전에 이론가로 먼저 알린 책이다. 그는 이 책을 맨해튼에 대한 '소급 선언문(retroactive manifesto)'이라 불렀다. 도시가 이미 스스로 만들어낸 것을 언어로 포착한다는 이 방법론은 이후 그가 건물을 구상하는 방식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CCTV HeadquartersPhoto by BriYYZ from Toronto, Canada / CC BY-SA 2.0 / Wikimedia Commons

'큰 것'의 논리 — 이론이 통제를 내려놓을 때

1995년 브루스 마우(Bruce Mau)와 공동 작업한 'S,M,L,XL'은 판형과 분량 자체가 선언이었다. 거기서 콜하스는 'Bigness(거대성)'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건물이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외피, 구조, 기능이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시작하며, 전통적인 건축 비평의 기준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발전 설비나 플랜트처럼 대규모 구조물을 다루는 현장에서는 이 논리가 낯설지 않다. 단일 건물이 아닌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구조에서는 각 부분이 서로 분리된 논리를 따르며, 어느 한 영역을 최적화하면 다른 영역에서 제약이 생긴다. 콜하스의 Bigness 개념은 이런 거대 구조물을 건축 언어로 번역하려는 시도였다. 다만 그 이론이 장기 운영과 유지보수의 복잡성을 얼마나 다루는지는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채로 남는다.

'제네릭 시티(Generic City)'라는 개념에서 그는 반대 방향으로 걷는다. 역사와 정체성을 잃어버린 도시가 오히려 자유롭다는 시각은 도발적이었지만, 그것을 긍정한 것인지 경고한 것인지 그는 끝내 선을 긋지 않았다. 이 전략적 모호함은 그의 이론이 상반된 방향으로 인용되는 이유 중 하나다.

Seattle Central LibraryPhoto by DVD R W.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실체로서의 건물 — 구조가 이론을 검증할 때

베이징 CCTV 본사(China Central Television Headquarters)는 2012년경 완공됐다. 두 탑이 사다리꼴을 이루며 상단과 하단에서 맞닿는 루프 구조는 약 75미터에 달하는 공중 캔틸레버를 포함한다. 구조 엔지니어링의 관점에서 이 건물은 비정형 하중 경로와 풍하중·지진하중을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복잡한 계산의 산물이다. 구조 설계는 아루프(Arup)가 담당했으며, 도면이 확정되기까지 수년의 구조 해석이 병행됐다. 형태가 이론에서 출발했더라도 실현은 공학이 맡았다.

2004년 완공된 시애틀 공공도서관(Seattle Central Library)은 다른 방식으로 이 이론을 검증한다. 기능별로 분리된 층을 나선형으로 배치하고 공개 공간과 업무 공간을 명확히 구분한 이 건물은 콜하스의 프로그램 분리 개념이 실용적으로 작동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실내 계획의 관점에서 보면, 열람실·회의실·어린이 공간이 각각의 레이어로 겹치지 않게 조직된 방식은 기능과 동선이 동시에 읽히는 배치였다.

2005년 포르투갈 포르투에 완공된 카사 다 무지카(Casa da Música)에 대해서는 초기 안이 단독 주택 설계에서 출발했다는 설명이 자주 인용된다. 원래의 소규모 프로그램을 콘서트홀 규모로 전환하면서도 초기 형태의 흔적이 남았다는 것이다. 이 방식을 세련된 재활용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결과물 자체는 완공 이후 포르투의 문화 인프라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Casa da MúsicaPhoto by John Samuel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이론가의 자리 — 건축가와 지식인 사이

2000년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단은 그의 이론적 기여와 실현된 건물 양쪽을 함께 평가했다. 같은 시기 그는 OMA의 연구·전략 부문으로 AMO를 설립했다. AMO는 건축을 넘어 미디어, 패션, 도시 정책 등 다양한 영역에서 공간과 이미지를 다루는 싱크탱크로 기능해 왔다.

이후 콜하스의 발언과 활동은 건축 담론을 넘어 문화 비평과 도시 정치의 영역으로 넓어졌다. 그것이 건축가 역할의 정당한 확장인지, 설계 작업과의 거리두기인지를 두고 평가는 나뉜다. 그는 OMA를 통해 설계를 이어가고 있지만, 동시에 그의 이름은 특정 건물보다 특정 관점이나 태도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는 경우가 잦아졌다.

렘 콜하스를 온전히 읽으려면 건물과 텍스트를 분리하지 않아야 한다. 그의 건물은 이론의 각주처럼 읽히고, 그의 이론은 설계 도면의 주석처럼 작동한다. 두 층위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그의 작업이 이해된다는 점에서, 그는 20세기 후반 건축이 단순히 물질을 다루는 기술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Kunsthal RotterdamPhoto by Wikifrits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참고문헌

  1. Rem Koolhaas, Delirious New York: A Retroactive Manifesto for Manhattan, Oxford University Press, 1978
  2. Rem Koolhaas and Bruce Mau, S,M,L,XL, The Monacelli Press, 1995
  3. Pritzker Architecture Prize, Jury Citation: Rem Koolhaas (2000 Laureate), Hyatt Foundation, 2000
  4. El Croquis Editorial, OMA / Rem Koolhaas, El Croquis No. 53+79, 1992–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