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짓는 건축가?2026. 6. 23.by aclstoryji

개인 건축가의 작품 목록을 넘어 하나의 설계 철학이자 브랜드가 된 건축가 "자하 하디드"

찬양 · 비판 · 의견 · 진실의 네 시선으로 다시 읽는 건축가 에세이

자하 하디드 — 곡선이 직선을 이겼을 때 남는 것

중력을 비틀고 직각을 지웠지만, 그 공간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여전히 물어야 할 질문이다.

Vitra Fire StationPhoto by Andreas Schwarzkopf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건설되지 않은 20년

자하 하디드는 1950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태어났다. 베이루트 아메리칸 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한 뒤 1972년 런던 건축연합학교(AA School)에 입학해 렘 쿨하스와 엘리아 젱겔리스의 가르침을 받았다. 1977년 졸업 후 OMA(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에서 일하다 1979년 독립 사무소를 열었다.

이후 거의 20년 동안 그의 이름은 수상 소식과 함께 등장했지만 완공된 건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1983년 홍콩 더 피크(The Peak) 현상설계 당선, 1994년 카디프 오페라하우스 당선 모두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 그가 완공한 최초의 주요 건물은 1993년 독일 바일암라인의 비트라 소방서(Vitra Fire Station)였다. 날카롭게 교차하는 사선과 팽팽한 콘크리트 면들로 이루어진 소규모 구조물이었지만, 이후 그의 건축 어휘를 압축적으로 예고했다.

이 시기를 두고 '종이 건축가'라는 말이 따라다녔다. 당시 발주처와 건설업계가 그의 도면을 시공 불가로 판단한 탓인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오늘날에도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그 시절 수백 장의 드로잉이 디지털 설계 도구의 발전과 함께 비로소 실체를 얻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MAXXI: National Museum of 21st Century ArtsPhoto by Commonurbock23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중력과 협상하는 곡선 — 미학이 아닌 공학의 산물

발전 설비나 플랜트 현장에서 형태는 기능과 구조에 종속된다. 하중 경로, 열응력, 진동 하중, 유지보수 동선 — 이 조건들이 공간의 윤곽을 먼저 결정한다. 자하 하디드의 건축은 그 반대편에서 시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유동적 곡선이 단순한 미학적 선언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절반만 맞다.

2010년 완공된 로마의 MAXXI 국립 21세기 미술관과 2012년 바쿠의 헤이다르 알리예프 센터는 파라메트릭 소프트웨어와 구조 엔지니어링의 정밀한 협업 없이는 불가능한 건물이었다. 외피를 구성하는 각 패널의 형상이 모두 달라 제작과 조립 공정이 일반 직선 구조물과는 차원이 달랐다. 외관의 자유로움 뒤에는 엔지니어들과의 긴밀한 협상이 있었다.

그 비용은 시공 단계에서 그치지 않는다. 곡면 지붕과 비정형 내벽은 하자 발생 시 보수가 복잡하고, 기계·설비 계통의 접근성도 직각 구조물에 비해 불리하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위해 완공된 런던 아쿠아틱스 센터는 올림픽 이후 운영 비용 문제로 논의된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형태가 공학을 밀어붙인 자리에 아름다움이 생겼지만, 그 부담의 일부는 이후 운용자의 몫으로 남겨졌다.

Heydar Aliyev CenterPhoto by Fanti Salms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외피와 내부 사이 — 공간은 어떻게 쓰이는가

실내건축에서 중요한 것은 벽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동선, 빛의 방향, 가구와 설비가 놓이는 방식, 사람의 이동 리듬 — 이것들이 공간의 실질을 이룬다. 자하의 건축을 외부에서 보는 경험과 그 안에서 실제로 생활하는 경험은 서로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경우가 있다.

MAXXI 미술관의 내부는 비스듬히 교차하는 갤러리 통로와 사선으로 만나는 벽면으로 구성된다. 이 구성이 전시 공간에 독특한 긴장감을 만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큐레이터와 설치 작가들에게는 제약으로 작용한다는 평가도 있다. 직각이 없는 공간에서 작품을 배치하고 조명을 계획하는 것은 표준적인 화이트큐브 갤러리와는 전혀 다른 접근을 요구한다.

이 간극을 두고 그의 건축이 '보는 건축'인지 '쓰는 건축'인지를 묻는 시각이 있다. 어느 쪽이 더 옳다고 단정하기 어렵지만, 이 긴장은 자하 건축 비평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핵심 논점이다. 건물이 경험되는 두 층위 — 먼발치에서의 인상과 안에서의 일상 —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것은, 찬사와 별개로 솔직하게 적어두어야 할 사실이다.

London Aquatics CentrePhoto by EG Focus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최초의 자리 — 그가 치른 것과 남긴 것

2004년 자하 하디드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했다. 여성으로서 최초였고, 아랍권 출신으로서도 최초였다. 심사위원단은 그의 건축이 형태와 공간에 관한 기존 관념을 해체하고 새로운 건축 어휘를 창출했다고 밝혔다. 수상 자체는 논란 없이 받아들여졌지만, 그가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의 경로는 단선적이지 않았다.

이라크 출신 여성이 영국 건축계에서 주류 발주를 얻는 과정은 작품의 완성도와 별개로 추가적인 저항을 수반했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자신의 성별과 출신이 특정 프로젝트에서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발언한 바 있다. 당선 이후에도 실현되지 않은 프로젝트들의 이력은 그 발언을 단순한 피해의식으로 읽기 어렵게 만든다.

2016년 3월 그는 폐렴 합병증으로 미국 마이애미에서 사망했다. 향년 65세였다.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ZHA)는 파트너 패트릭 슈마허의 주도 아래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이름은 이제 개인 건축가의 작품 목록을 넘어 하나의 설계 철학이자 브랜드로 기능한다. 그것이 유산인지 가림막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른 질문이다.

참고문헌

  1. Patrik Schumacher, The Autopoiesis of Architecture, Vol. I: A New Framework for Architecture, Wiley, 2011
  2. El Croquis Editorial, Zaha Hadid 1996–2001, El Croquis No. 103, 2001
  3. Pritzker Architecture Prize, Jury Citation: Zaha Hadid (2004 Laureate), Hyatt Foundation, 2004
  4. Aaron Betsky, Zaha Hadid: The Complete Buildings and Projects, Thames and Hudson,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