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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짓는 건축가?/구조와 재료

블라디미르 슈호프는 곧은 철봉으로 굽은 탑을 세웠다

by aclstoryji 2026. 7. 18.

탑의 일부가 무너지자, 그는 완성하지 못하면 처형될 처지에 놓였다.

먼저 알아둘 세 가지
  • 슈호프는 곧은 철봉만으로 굽은 탑을 세웠다.
  • 탑의 일부가 무너지자 그는 완성하지 못하면 처형될 처지에 놓였다.
  • 그가 특허 낸 원유 분해 공정은 훗날 세계 정유 산업의 기본이 됐다.
블라디미르 슈호프의 대표작 슈호프 탑(샤볼롭카 라디오 탑) (Shukhov Tower, Moscow)Photo by Lite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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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구니를 짜던 손

대나무나 등나무로 바구니를 짜본 적이 있다면 안다. 곧은 가닥들을 비스듬히 엇갈려 엮으면, 가운데가 볼록하게 부풀어 오르는 통 모양이 저절로 생긴다. 가닥 하나하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곧다. 그런데 여러 개가 서로 다른 각도로 겹쳐지면, 전체는 허리가 잘록한 곡면이 된다. 블라디미르 슈호프는 이 원리를 강철로 옮겼다.

곧은 철봉만으로 굽은 탑을 세운다는 발상, 처음 들으면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 서 있다.

블라디미르 슈호프의 대표작 굼 백화점 지붕 (GUM Department Store roof, Moscow)Photo by Dmitry Ivanov.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필라델피아에서 만난 사람

1876년, 모스크바 황실기술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스물세 살의 슈호프는 미국 필라델피아 만국박람회 시찰단에 끼어 대서양을 건넜다. 그곳에서 사업가 알렉산드르 바리를 만났다. 몇 년 뒤 러시아로 돌아온 슈호프는 바리가 세운 엔지니어링 회사에 들어가 수석 엔지니어가 됐다.

이 회사에서 그는 한 가지 형태에만 매달리지 않았다. 송유관, 정유 설비, 유조선 탱크, 다리, 지붕, 그리고 탑까지 — 그의 이름이 붙은 특허는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가장 가벼운 탑을 지으려던 사람이, 가장 무거운 형벌 앞에 섰다.
블라디미르 슈호프의 대표작 폴리비노 쌍곡면 급수탑 (Shukhov Hyperboloid Water Tower, Polibino)Photo by Arssenev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곧은 철봉이 만드는 굽은 탑

1896년 니즈니노브고로드 박람회에 그가 세운 급수탑은 세계 최초의 쌍곡면(hyperboloid) 철골 구조물이었다. 원리는 이렇다. 곧은 철봉들을 수직이 아니라 비스듬히 기울여 격자로 엮으면, 봉 하나하나는 여전히 직선인데 전체 표면은 매끄러운 곡면을 그린다.

이 구조가 갖는 이점은 단순한 미관이 아니었다. - 곧은 부재만 쓰니 가공이 쉽고 값도 싸다 - 격자 자체가 삼각형 뼈대를 이뤄 강성이 높다 - 같은 높이를 재래식 탑보다 적은 강철로 세울 수 있다 그 급수탑은 지금도 리페츠크주의 한 사유지로 옮겨져 남아 있다.

블라디미르 슈호프의 대표작 아지고리 등대 (Adziogol Lighthouse)Photo by Unknown authorUnknown author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슈호프가 마주한 집행유예

1919년, 소비에트 정부는 모스크바 샤볼롭카에 방송용 철탑을 세우라고 슈호프에게 지시했다. 원래 설계는 350미터, 아홉 단짜리 탑이었다. 내전으로 강철이 바닥나자 그는 설계를 여섯 단, 160미터로 줄였다. 63빌딩(249미터)의 3분의 2 정도 높이다. 가장 적은 재료로 가장 높이 세운다는 그의 원칙이, 이번엔 선택이 아니라 강요였다.

1921년, 탑을 끌어올리던 4단이 케이블 결함으로 무너져 내렸다. 아래 단들이 부서졌다. 슈호프는 태업 혐의로 집행유예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
탑을 완성하지 못하면 형이 집행되는 조건이었다. 가장 가벼운 탑을 지으려던 사람이, 가장 무거운 형벌 앞에 섰다.

그는 무너진 부분을 다시 세웠다. 1922년, 탑은 완공됐고 지금도 모스크바 하늘에 서 있다.

기름과 유리 지붕

탑만 그의 일이 아니었다.

1891년 그는 원유를 고온·고압에서 분해해 더 많은 경질유를 뽑아내는 열분해 공정으로 특허를 받았다. 이 방식은 훗날 세계 정유 산업의 기본 공정 중 하나가 됐다.

1878년에는 바쿠 유전에서 정제소까지 이어지는 러시아 최초의 송유관 건설에도 참여했다.

발전 설비 도면을 넘기다 보면 배관 경로를 손보는 문제가 얼마나 사소해 보이면서도 골치 아픈지 알게 된다.

슈호프의 송유관도 처음엔 그저 파이프 하나 놓는 일처럼 보였을 텐데, 그게 이후 러시아 석유 산업 전체의 표준이 됐다.

1893년에는 모스크바 굼(GUM) 백화점의 유리-철골 아치 지붕도 그의 손을 거쳤다. 탑을 짓던 손이 지붕도 짓고, 파이프도 놓고, 정유 공정도 설계했다.

지금도 냉각탑에 남은 각도

슈호프의 쌍곡면 원리는 그의 탑에서 멈추지 않았다.

1918년 네덜란드의 한 발전소에 처음 철근콘크리트로 옮겨진 뒤, 이 형태는 오늘날까지 전 세계 화력·원자력 발전소 냉각탑의 표준 형태로 남아 있다. 발전소 부지에 설 때마다 올려다보는 그 매끈한 허리 곡선이, 사실은 곧은 부재들의 조합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노출된 강철 격자가 100년 넘게 비바람을 맞았으니, 지금 샤볼롭카 탑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부식과 매일 씨름하고 있을 것이다.

1939년, 슈호프는 모스크바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운 샤볼롭카의 탑은 지금도 160미터 높이로, 원래 계획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그 모습 그대로 서 있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슈호프의 쌍곡면 구조는 원리가 무엇인가?

곧은 철봉들을 비스듬히 격자로 엮으면 부재 하나하나는 직선인데 전체 표면은 곡면을 이룬다는 원리다. 같은 높이를 훨씬 적은 강철로 세울 수 있다.

샤볼롭카 탑은 왜 원래 계획보다 낮게 지어졌나?

내전으로 강철이 부족해지자 원래 350미터, 아홉 단 설계를 여섯 단, 160미터로 줄였다.

참고문헌

  1. Rainer Graefe (ed.), Vladimir G. Šuchov 1853–1939: Die Kunst der sparsamen Konstruktion, Deutsche Verlags-Anstalt, 1990
  2. V. G. Shukhov, 원유 열분해 공정 러시아 특허, 1891

글쓴이

실내건축과를 졸업했고, 현재 대한민국의 발전소 관련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공간과 재료를 실무 현장의 눈으로 보며, 발전 설비·플랜트의 기능성과 구조·안전의 관점에서 건축을 읽는다. 또한 여행과 건축 답사를 좋아하지만, 경제적 여건 탓에 자주 떠나지는 못한다. 대신 사진과 도면, 기록을 오래 들여다보고, 직접 가 본 곳에서는 현장에서 느낀 공간 경험을 글에 녹이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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