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관들이 안전율을 증명하라고 하자, 그는 모형을 무너질 때까지 눌러 보였다.
- 이슬러는 지붕의 모양을 계산이 아니라 얼어붙은 빨래에서 읽었다.
- 그의 대표작은 성당이 아니라 자동차 정비소와 화훼 매장이다.
- 감독관 앞에서 그는 서류 대신 부서진 모형 조각을 내밀었다.
Photo by Хрюша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얼어붙은 빨래
겨울 아침, 마당에 널어둔 빨래가 그대로 얼어붙어 있는 걸 본 적이 있다면 안다. 천은 부드러움을 잃고, 그 순간 붙잡고 있던 모양을 통째로 굳혀 버린다. 손끝으로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은데, 두드려 보면 의외로 단단하다. 스위스 부르크도르프의 겨울, 하인츠 이슬러는 이 흔한 현상에서 지붕의 모양을 읽었다. 정원에 널어둔 젖은 천에 밤새 물을 더 부어 두면, 아침에는 그 천이 스스로 찾은 곡면 그대로 얼어 있었다.
계산이 아니라 얼음이 먼저였다. 그는 그 모양을 그대로 콘크리트로 옮겼다.
Photo by Хрюша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정비소, 휴게소, 화훼 매장
이슬러의 이름이 걸린 건물을 나열하면 의외로 소박하다. 자동차 정비소, 고속도로 휴게소, 화훼 매장. 성당도 미술관도 아니다. 예산이 넉넉지 않은 실용 건물에 그는 자신의 실험을 밀어 넣었다.
1969년 제네바에 지어진 시클리(Sicli) 지붕은 그중 가장 널리 알려졌다. 말안장처럼 자유롭게 휜 곡면이 기둥 몇 개로만 지지된다. 사진으로 보면 지붕이라기보다 천을 그대로 굳혀 놓은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고속도로 A1의 다이팅엔 쥐트(Deitingen Süd) 휴게소는 버섯 모양의 캐노피를 얹었다. 시속 백 킬로미터로 지나치는 운전자에게는 그저 지붕일 뿐이다. 그 아래 서 있는 사람만이 얇은 곡면 하나가 넓은 면적을 덮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계산이 아니라 얼음이 먼저였다.
Photo by Хрюша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감독관 앞의 이슬러
이슬러의 셸은 두께가 90밀리미터 안팎까지 얇아진다. 스팬에 비하면 계란 껍질에 가깝다. 그는 이 얇음을 종이 위 계산만으로 주장하지 않고, 축소 모형을 실제로 무너질 때까지 눌러 안전율을 실측했다.
형태를 찾는 방법도 하나가 아니었다. - 조각적으로 직접 빚은 자유형 돔 - 매달린 천 모형을 뒤집어 얻은 셸 - 압축공기로 부풀린 막을 거푸집 삼은 셸 - 팽팽히 당긴 천에 석고나 얼음을 입혀 굳힌 셸
스위스 구조 감독당국은 계산서로 증명되지 않는 이 얇은 형태를 믿지 않았다. 철근을 더 넣으라는 요구가 반복됐다. 이슬러는 서류 대신 부서진 모형 조각을 감독관 앞에 내놓았다. 문득 발전 설비 정기점검 서류를 정리하다 들었던 생각이 겹친다. 우리는 대개 숫자로 안전을 증명하라고 배우지, 실제로 무너뜨려 보고 증명하라고는 잘 배우지 않는다. 감독관은 서류를 믿었고, 이슬러는 부서진 조각을 믿었다.
부르크도르프의 정원
이슬러는 ETH 취리히에서 피에르 라르디 밑에 셸의 좌굴을 공부했고, 1954년 부르크도르프에 자신의 사무소를 열었다. 이후 수십 년, 그의 정원은 크고 작은 모형으로 채워졌다. 눈 덮인 정원에 놓인 그 모형들 사진은 그를 다룬 책마다 빠지지 않는다. 화훼 매장의 유리와 콘크리트가 만나는 이음새를 사진으로 들여다보면, 곡면 유리 온실에서 흔한 결로 문제가 겹쳐 떠오른다. 곡면이 아름다울수록 물이 흐르는 길과 김이 서리는 자리는 더 까다로워진다. 그 디테일까지 풀어야 비로소 지어지는 지붕이었다. 정원은 실험실이었고, 겨울은 그의 재료 시험 기간이었다.
가우디와 이슬러 사이
안토니 가우디도 사슬과 추를 매달아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기둥과 볼트 형태를 구했다. 인장을 압축으로 뒤집는 원리는 같다. 가우디는 그 결과를 성당의 상징으로 세웠고, 이슬러는 정비소 지붕의 경제성으로 썼다.
이슬러는 스스로를 예술가로 포장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형태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형태가 왜 서 있을 수 있는가였다. 아름다움은 그 질문을 정직하게 따라간 결과로 따라왔을 뿐이다. 그뿐이었다.
겨울이 지나간 자리
이슬러의 셸은 미술관에 걸린 도면이 아니라 지금도 쓰이는 건물로 남아 있다. 화훼 매장은 여전히 식물을 팔고, 휴게소는 여전히 차를 세운다.
2009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시클리의 얇은 콘크리트 지붕은 같은 자리에서 비를 막아내고 있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이슬러의 지붕이 왜 그렇게 얇을 수 있었나?
형태 자체가 하중을 압축력으로만 받도록 잡혀 있어서다. 그는 그 얇음을 축소 모형을 무너질 때까지 눌러보며 확인했다.
시클리 지붕은 지금도 남아 있나?
그렇다. 1969년 제네바에 지어진 이 지붕은 지금도 산업 시설로 쓰이고 있다.
참고문헌
- John Chilton, Heinz Isler, Thomas Telford Publishing, 2000
- Heinz Isler, "New Shapes for Shells", IASS Bulletin, 1961
- David P. Billington, The Art of Structural Design: A Swiss Legacy, Princeton University Art Museum, 2003
'집 짓는 건축가? > 구조와 재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벅민스터 풀러는 축구공에서 돔을 봤다 (1) | 2026.07.19 |
|---|---|
| 가는 줄이 버티는 이유 — 프라이 오토 (0) | 2026.07.18 |
| 블라디미르 슈호프는 곧은 철봉으로 굽은 탑을 세웠다 (0) | 2026.07.18 |
| 곧은 판자가 만든 곡면 — 펠릭스 칸델라 (1) | 2026.07.17 |
| 철 없이 배를 띄운 사람 — 피에르 루이지 네르비 (1) | 2026.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