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츠 이슬러, 처진 천에서 콘크리트의 균형을 꺼내다
젖은 막을 매달고 얼리고 뒤집으며, 형태를 그리기보다 힘이 스스로 드러내는 곡선을 기다린 스위스 구조 엔지니어의 셸을 따라간다.
하인츠 이슬러(Heinz Isler, 1926–2009)는 스위스을(를) 대표하는 셸 구조 건축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하인츠 이슬러의 생애와 대표작, 건축 철학을 찬양·비판·의견·진실의 네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Photo by Хрюша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건축 여정_건축가와 함께한 곳

얼어붙은 방진포가 만든 질문
겨울 새벽 발전소 옥외 작업 구역을 돌다 보면, 전날 내린 비를 머금은 방진포가 난간 사이에서 축 늘어진 채 얼어 있는 날이 있다. 낮에는 힘없이 펄럭이던 천이 밤새 하나의 단단한 곡면이 되어, 손가락으로 건드리면 얇고 맑은 소리를 낸다. 그 장면을 볼 때마다 나는 재료가 형태를 만드는 것인지, 힘이 형태를 골라내는 것인지 잠시 헷갈린다. 하인츠 이슬러의 셸을 처음 오래 들여다본 순간에도 같은 질문이 돌아왔다. 이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사진 속 그의 콘크리트 지붕은 내 눈에 얼어붙은 천의 기억을 크게 확대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다. 1926년 스위스 졸리콘에서 태어난 하인츠 이슬러는 ETH 취리히에서 토목공학을 공부하고 1950년 졸업한 뒤, 피에르 라르디 아래에서 모형 실험을 다뤘으며 1954년 부르크도르프에 자신의 사무실을 열었다. 그는 건축가라기보다 구조 엔지니어였고, 지붕을 먼저 그린 사람이 아니라 하중이 지나갈 만한 표면을 실험으로 찾아낸 사람이었다.
Photo by MHM55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하인츠 이슬러는 도대체 무엇을 생각했나
이슬러는 1959년 마드리드에서 열린 셸 구조 관련 국제회의에서 ‘New Shapes for Shells’를 발표하며 세 가지 형태 탐색법을 제시했다. 자유롭게 만든 언덕 형태, 압력을 받아 부풀어 오른 막, 그리고 매달린 천을 굳힌 뒤 뒤집는 방식이다. 특히 처진 천은 자중 아래에서 인장으로 균형을 잡고, 그것을 거꾸로 세우면 압축 중심의 곡면을 얻을 수 있다. 콘크리트가 압축에는 강하고 인장에는 약하다는 오래된 사실을, 그는 계산표의 문장보다 먼저 눈앞의 물체로 보여 주었다.
그렇다고 젖은 천을 얼린 뒤 그대로 확대해 시공한 것은 아니다. 모형은 출발점이었다. 형태를 계측하고, 하중 조건을 검토하고, 축척의 차이를 보정하고, 실제 배근과 시공 순서를 정밀하게 맞춰야 비로소 건물이 된다. 발전 설비 현장에서 작은 지지대 위치 하나가 배관 응력과 점검 동선을 함께 바꾸는 것을 보아 온 내게 이 지점은 중요하다. 자연스러워 보이는 곡선일수록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오차를 덜 허용한다.
주흐빌과 레허스빌, 지붕이 네 점에 기대는 방식
1962년 주흐빌의 Wyss Garden Centre는 약 25미터 정방형 평면과 650제곱미터가량의 공간을, 두 방향으로 휘어진 약 7센티미터 두께의 철근콘크리트 셸로 덮는다. 지붕은 네 지점에서 지지되고 네 면의 수직 유리벽은 무거운 지붕과 가벼운 외피 사이를 갈라 놓는다. 사진으로 보면 셸의 가장자리가 땅에서 들리며 출입구와 시선을 열어 준다. 사람은 낮은 처마를 지나 중앙의 높은 부분으로 이동하고, 식물과 상품은 기둥이 빽빽하지 않은 바닥 위에서 자리를 바꿀 수 있다. 구조가 동선의 장애물을 줄인 셈이다.
1965년 레허스빌의 Former Kilcher SA Factory에서도 25미터 안팎의 정방형 셸과 자유로운 가장자리가 나타난다. 만약 그 가장자리 가까이 손을 댈 수 있다면, 나는 먼저 차가운 콘크리트의 밀도와 얇게 보이는 단면 사이의 간극을 느끼고 싶다. 멀리서는 천처럼 보이지만 손끝에는 골재와 거푸집의 흔적, 오래된 빗물 자국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순간 전해질 감정은 감탄보다는 긴장에 가까울 것 같다. 얇다는 말은 재료가 약하다는 뜻이 아니라, 힘이 지나갈 길을 틀리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이팅겐과 시클리, 곡면이 기능을 넘어설 때
1968년 완공된 Deitingen Süd Motorway Service Station의 두 삼각형 셸은 각각 약 26미터와 31.6미터 규모로 펼쳐지고, 가장 높은 곳은 약 11.5미터에 이른다. 벽이 없는 주유 공간 위에서 셸은 세 지점을 향해 내려앉고 가장자리는 날개 끝처럼 얇아진다. 차는 짧게 들어와 머물다 빠져나가고, 지붕은 비와 눈을 막으면서도 시야와 배기가스의 흐름을 완전히 가두지 않는다. 도로 시설이라는 평범한 기능에 비해 형태는 지나치게 아름답다고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과잉처럼 보이는 곡선이 구조 그 자체다.
제네바의 Pavillon Sicli는 1969년에 착공해 1970년 완공된 비대칭 이중 셸로, 약 33×54미터의 영역을 일곱 지점에서 받친다. 원래 소화기 회사의 사무·업무 공간이었던 건물은 현재 전시와 건축문화 행사를 담는 장소로 쓰인다. 사진에서 한쪽으로 솟구친 지붕을 보면, 힘이 균등하게 정리된다는 말이 반드시 좌우대칭을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보인다. 이슬러의 셸은 하중을 밀어내는 방패라기보다, 비가 지형의 낮은 곳을 찾아 흐르듯 힘이 갈 수 있는 길을 표면에 새긴 얇은 지형에 가깝다.
얇은 셸을 칭찬하기 전에 점검할 것
이슬러의 작업을 ‘적은 콘크리트로 큰 공간을 덮은 자연친화적 구조’라는 문장만으로 칭찬하면 중요한 절반이 빠진다. 자유곡면은 거푸집 제작과 형상 관리가 까다롭고, 얇은 단면은 배근 위치와 피복 두께, 균열과 누수, 가장자리 배수의 작은 실패를 오래 숨겨 주지 않는다. 설비를 나중에 증설하거나 천장에 새로운 하중을 매달 때도 평범한 보·슬래브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형태가 효율적이라는 사실과 유지관리가 쉽다는 말은 같은 뜻이 아니다.
다이팅겐의 셸이 1999년 철거 위기를 맞았다는 사실도 아름다운 구조가 자동으로 보존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준다. 용도가 바뀌고 운영자가 달라지면 구조적 가치와 경제성은 다시 협상된다. 발전소에서도 설계 당시 훌륭했던 설비가 수십 년 뒤 부품 수급과 점검성 때문에 다른 평가를 받는다. 이슬러를 찬양하려면 그 곡면의 사진뿐 아니라, 물이 어디로 빠지는지, 균열을 어디서 관찰하는지, 표면 보수를 어떤 색과 두께로 남길지까지 함께 보아야 한다.
결론 — 하인츠 이슬러에게 천 한 장을 건네며
스위스를 여행한다면 나는 취리히에서 졸리콘을 먼저 보고, 기차로 졸로투른 권역으로 이동해 주흐빌의 Wyss Garden Centre와 레허스빌의 옛 Kilcher 공장, 다이팅겐 남측 휴게소를 한 묶음으로 보고 싶다. 세 곳은 비교적 가까워 이슬러의 초기 셸과 자유곡면이 실제 상업·산업 시설에 놓인 방식을 이어서 읽기 좋다. 제네바의 Pavillon Sicli는 거리가 멀어 별도의 하루를 잡는 편이 현실적이다. 영업 시설과 사유 공간은 내부 관람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외부에서 지지점과 처마선, 빗물의 흔적을 오래 보는 여행이면 충분하다.
하인츠 이슬러를 만날 수 있다면 나는 화려한 질문보다 작업대 위에 천 한 장을 놓고 묻고 싶다. ‘당신은 이 천이 처지는 순간, 완성된 지붕을 본 것인가. 아니면 아직 모르는 힘을 기다린 것인가.’ 아마 그는 둘 중 하나만 고르지 않을 것 같다. 내가 그의 셸에서 배운 것은 형태를 강요하는 기술이 아니라, 재료와 하중이 보내는 작은 신호를 오래 관찰하는 태도다. 다음에 현장에서 처진 방진포를 보게 되면 나는 그것을 바로 펴기 전에 잠깐 멈출 것이다. 그 곡선이 무엇을 견디고 있는지 먼저 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하인츠 이슬러는 건축가인가 구조 엔지니어인가?
하인츠 이슬러는 스위스의 토목·구조 엔지니어이다. 다만 형태 탐색부터 시공 과정까지 깊이 관여해 그의 셸 구조는 건축 작품으로도 평가되며, 구조와 건축의 저자성을 함께 생각하게 만든다.
하인츠 이슬러의 셸 구조는 어떻게 형태를 찾았나?
자유롭게 만든 언덕, 부풀린 막, 매달린 천을 뒤집는 물리 모형을 활용했다. 모형에서 얻은 곡면을 계측하고 구조 검토와 시공 조건에 맞게 조정했으므로, 단순히 천 모양을 확대해 콘크리트로 만든 방식은 아니다.
다이팅겐 남측 휴게소 셸의 특징은 무엇인가?
1968년 완공된 두 개의 삼각형 철근콘크리트 셸이 주유 공간을 덮는다. 벽 없이 세 지점으로 내려가는 곡면과 얇게 좁아지는 가장자리가 구조, 차량 동선, 개방감을 동시에 만든다.
하인츠 이슬러 대표작을 스위스에서 어떻게 여행할 수 있나?
취리히와 졸리콘을 시작으로 졸로투른 권역의 주흐빌, 레허스빌, 다이팅겐을 묶는 동선이 효율적이다. 제네바의 Pavillon Sicli는 거리가 있어 별도 일정으로 두고, 영업·사유 시설은 외부 관찰을 기본으로 잡는 편이 안전하다.
얇은 콘크리트 셸은 유지관리가 쉬운가?
재료 효율이 높다고 해서 유지관리가 자동으로 쉬운 것은 아니다. 균열, 누수, 피복과 철근 부식, 가장자리 배수, 후속 설비 하중을 세심하게 점검해야 하며 자유곡면의 보수는 형상과 마감의 연속성까지 고려해야 한다.
참고문헌
- John Chilton, Heinz Isler: The Engineer’s Contribution to Contemporary Architecture, Thomas Telford, 2000
- Ekkehard Ramm·Eberhard Schunck 편, Heinz Isler. Schalen, Karl Krämer Verlag, 1986
- John Chilton·Chu-Chun Chuang, Rooted in Nature: Aesthetics, Geometry and Structure in the Shells of Heinz Isler, Nexus Network Journal 19, 2017
- Giulia Boller·Philippe Block·Joseph Schwartz, Heinz Isler’s Physical Form Finding of the HIB Tennis Shells, Structures, 2024
- Matthias Beckh 외, Candela, Isler, Müther: Positions on Shell Construction, Birkhäuser, 2021
- Heinz Isler, New Shapes for Shells, International Colloquium on Construction Processes of Shell Structures, Madrid, 19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