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부순 격납고와 비둘기가 뒤덮은 버스터미널, 그리고 그 사이에 남은 계산에 대해.
- 철이 없던 전시에, 그는 시멘트만으로 배를 띄워 강도를 증명했다.
- 그가 지은 격납고 걸작은 전쟁으로 대부분 사라졌다.
- 가장 정교한 지붕 중 하나가 훗날 비둘기 소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글의 순서
철이 없던 시절, 그는 시멘트로 배를 띄웠다
1943년 이탈리아는 전쟁 중이라 철강이 부족했다. 네르비는 오래전부터 실험하던 방법, 가는 철망을 여러 겹 겹치고 그 사이에 시멘트 모르타르를 채우는 방식을 정식으로 다듬었다. 그는 이 재료를 페로시멘토라 불렀다.
그리고 그것을 물로 증명했다. 1945년 완성된 모터보트 '이레네'는 두께 3센티미터 안팎의 얇은 껍질로, 철판 없이도 강도를 견디며 물 위에 떴다.
나는 이 일화를 좋아한다. 새로운 재료를 논문으로 주장하지 않고 물에 띄워 보인 것이다. 현장에서 통하는 증명은 대개 이런 식이다.
Photo by Pmk58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그가 지은 격납고는 전쟁이 부쉈다
1935년부터 그는 이탈리아 공군을 위해 오르비에토와 오르베텔로에 격납고를 지었다. 사선으로 교차하는 콘크리트 리브가 그물처럼 짜여 지붕을 이루는 구조였다. 철근을 격자로 세운 이 지붕은 당시 가장 넓은 무기둥 공간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 격납고 대부분은 오래 서 있지 못했다. 1944년, 후퇴하던 독일군이 연합군에 넘기지 않으려 여러 채를 직접 파괴했다. 그의 초기 걸작들은 지금 사진과 도면으로만 남아 있다.
아무리 정확한 계산도 폭탄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사실을, 그는 자기 손으로 지은 건물이 무너지는 것으로 배웠을 것이다.
구조가 아름다운 것과 그 구조를 오래 깨끗하게 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Photo by Albertomos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지붕의 물결은 하중이 흐르는 방향이었다
1948년 토리노 박람회장의 지붕은 물결처럼 굽이친다.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판을 공장에서 미리 만들어 현장에서 조립했고, 판과 판이 만나는 굴곡이 그대로 힘을 받는 방향이 됐다.
1957년 로마의 소경기장 지붕은 다이아몬드 모양의 리브 36개가 받친다. 사진으로만 봐도 이 지붕은 뼈대를 그대로 드러낸 인상을 준다. 리브는 장식이 아니라 지붕 하중이 기둥으로 모여드는 길을 그린 것이다. 부재는 공장에서 미리 만들어 옮긴 뒤 현장에서는 조립만 했고, 로마 올림픽 개막에 맞춰 짧은 기간에 공사를 끝냈다.
형태가 구조를 설명하는 건물은 많지 않다. 이 지붕은 보는 사람이 계산을 몰라도 힘이 어디로 가는지 짐작하게 만든다.
Photo by Beyond My Ken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피렐리 타워의 사선은 누구의 것인가?
1960년 완공된 밀라노의 피렐리 타워는 평면이 마름모에 가깝게 좁아지는 고층건물이다. 설계는 건축가 조 폰티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건물의 구조는 네르비가 맡았다.
양 끝이 뾰족하게 좁아지는 형태는 폰티의 스케치에서 시작됐다고 전해지지만, 그 형태가 실제로 서 있을 수 있도록 하중을 재분배한 것은 네르비의 계산이었다. 얇은 벽식 구조로 층고를 확보하면서도 좁아지는 평면을 견디게 만드는 일은 미학과 구조가 동시에 풀려야 가능했다.
이 건물 앞에서 '폰티의 건물'이라고만 부르면 절반만 말하는 셈이다.
가장 유명한 지붕이 가장 더러운 지붕이 됐다
1963년 뉴욕 조지워싱턴 다리 옆에 버스터미널이 문을 열었다. 지붕은 콘크리트 판을 접어 만든 날개 모양으로, 채광창과 환기구 역할을 겸했다. 완공 당시 이 지붕은 구조 엔지니어링의 성취로 소개됐다.
그런데 이 건물은 이후 다른 이유로 더 유명해졌다. 접힌 지붕의 틈새가 비둘기가 깃들기 좋은 자리가 됐고, 관리가 소홀해지면서 뉴욕에서 가장 지저분한 시설 중 하나로 자주 꼽혔다.
나는 발전소 현장에서 이런 자리를 여럿 봤다. 설계가 아무리 정교해도 유지관리 계획이 따라붙지 않으면 그 정교함은 오래가지 못한다. 구조가 아름다운 것과 그 구조를 오래 깨끗하게 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여든일곱 해, 계산으로 지킨 형태
네르비는 1891년 이탈리아 손드리오에서 태어나 1979년 로마에서 여든일곱 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생 스스로를 건축가가 아니라 엔지니어라고 불렀다.
그의 건물 대부분은 건축가와 함께 만들어졌다. 형태를 정한 것은 종종 다른 사람이었고, 그 형태가 무너지지 않게 만든 것은 언제나 그였다. 이 역할 구분이 그의 이름을 절반만 알려지게 했을 수도 있다.
격납고는 전쟁에 무너졌고 버스터미널은 비둘기에 뒤덮였다. 그럼에도 얇은 철망과 시멘트로 배를 띄웠던 사람의 계산은 지금도 여러 지붕 아래에서 하중을 받아내고 있다.
네르비가 1945년 페로시멘토의 강도를 증명하려고 만든 것은?
- 가. 모터보트
- 나. 다리 모형
- 다. 의자
정답 확인
정답: 가. '이레네'라는 이름의 모터보트를 만들어 얇은 두께로도 물에 뜨는 것을 보였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페로시멘토는 무엇인가?
가는 철망을 여러 겹 겹치고 그 사이에 시멘트 모르타르를 채우는 방식이다. 네르비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철강이 부족하던 1940년대에 이 기법을 다듬었고, 1945년 이 재료로 만든 모터보트로 강도를 직접 증명했다.
네르비가 지은 격납고는 지금도 남아 있나?
대부분 남아 있지 않다. 1930년대 후반 이탈리아 공군을 위해 지은 오르비에토·오르베텔로 격납고는 1944년 후퇴하던 독일군에 의해 여러 채가 파괴됐다.
피렐리 타워는 누가 설계했나?
건축가 조 폰티가 형태를 주도했고 네르비가 구조를 맡았다. 좁아지는 평면이 실제로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네르비의 하중 재분배 계산 덕분이다.
조지워싱턴 다리 버스터미널은 왜 유명한가?
접힌 콘크리트 판으로 만든 지붕이 완공 당시 구조 엔지니어링의 성취로 소개됐다. 다만 이후 관리가 소홀해지며 비둘기가 모이는 지저분한 시설이라는 평판도 함께 얻었다.
네르비는 스스로를 건축가라고 불렀나?
아니다. 그는 평생 자신을 엔지니어라고 불렀다. 형태를 정하는 역할은 종종 함께 작업한 건축가가 맡았고, 그는 그 형태가 무너지지 않게 만드는 계산을 담당했다.
참고문헌
- Pier Luigi Nervi, 『Structures』, F. W. Dodge Corporation, 1956
- Gabriele Neri 편, 『Pier Luigi Nervi: Architecture as Challenge』, Silvana Editoriale, 2010
- Roberto Gargiani·Bianca Lauria, 『Pier Luigi Nervi: dagli Anni Trenta al Nervi Center 1935–1981』, EPFL Press/Routledge, 2012
- Archivio Pier Luigi Nervi, CSAC – Università di Par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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