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실이 어떻게 힘을 견디는지, 그는 평생 그 질문을 놓지 않았다.
- 그는 계산보다 거미줄과 비눗방울을 먼저 들여다봤다.
- 완공 사진 속 뮌헨 지붕과 지금의 지붕은 같은 지붕이 아니다.
- 그는 프리츠커상 수상 발표 하루 전에 세상을 떠났다.
가는 줄이 버티는 이유
이슬이 맺힌 거미줄을 본 적이 있다면, 그 줄이 얼마나 가늘면서 얼마나 팽팽한지도 봤을 것이다. 바람이 불어도 찢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흔들리며 힘을 흘려보낸다.
프라이 오토는 이런 자연의 인장 구조를 오래 관찰한 사람이다. 거미줄, 새의 두개골, 비눗방울 막. 그는 이런 것들이 스스로 찾아내는 형태를 연구했고, 그 형태를 건물 크기로 키우는 방법을 평생 다뤘다.
가는 것이 두꺼운 것보다 더 잘 버틸 수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직관에 어긋난다.
Photo by Immanuel Giel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포로수용소에서 연구소까지
1945년, 스무 살의 그는 독일 공군 전투기 조종사였다가 프랑스군 포로가 됐다. 수용소에는 자재가 거의 없었다. 철도 침목과 텐트 천과 남은 목재로 막사를 짓는 일이 그에게 맡겨졌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베를린공과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1954년 박사 논문 「매달린 지붕」을 냈다. 1964년에는 슈투트가르트대학에 경량구조연구소를 세웠다. 포로수용소의 막사에서 대학의 연구소까지, 그가 다룬 재료의 양은 계속 줄어드는 방향이었다.
가벼운 구조를 짓는 일과, 그 가벼움을 반세기 동안 지키는 일은 전혀 다른 종류의 노동이다.
모형이 계산보다 먼저였다
그의 방법은 계산기가 아니라 모형에서 시작됐다. 비눗방울 막이 스스로 찾는 최소 표면으로 인장막의 형태를 얻었고, 매달린 사슬을 뒤집어 압축 구조의 형태를 얻었다. 사슬이 중력만으로 그리는 곡선은, 뒤집으면 가장 안정적으로 힘을 흘려보내는 아치가 된다.
어릴 때 어머니가 마당 빨랫줄에 젖은 이불을 널면, 바람이 불 때마다 이불이 부풀었다 가라앉았다 했다. 팽팽하게 당겨진 줄과 천이 바람의 힘을 흘려보내는 걸, 나는 그 이불에서 처음 봤다. 그게 오토의 연구와 같은 원리라는 걸 안 건 한참 뒤였다.
계산은 모형이 찾아낸 답을 확인하는 역할에 그쳤다.
Photo by Kamahele / CC BY-SA 3.0 de / Wikimedia Commons뮌헨, 완공 사진과 지금 사이
1972년 뮌헨 올림픽을 위해 그는 건축가 귄터 베니쉬, 구조기술자 외르크 슐라이히와 함께 경기장 지붕을 만들었다. 강철 케이블이 그물처럼 얽혀 주 경기장과 수영장, 체육관 위를 하나로 덮었다. 케이블 사이에 낀 아크릴 패널로 빛이 그대로 들어왔고, 이 지붕은 올림픽의 상징이 됐다.
완공 당시 사진에 찍힌 지붕과, 지금 그 자리에 있는 지붕은 같은 지붕이 아니다. 아크릴 패널은 자외선에 삭아 수십 년에 걸쳐 여러 차례 교체됐다. 케이블 장력도 주기적으로 재조정해야 했다.
가벼운 구조를 짓는 일과, 그 가벼움을 반세기 동안 지키는 일은 전혀 다른 종류의 노동이다.
그리고 아직 서 있는 것도 있다
1975년 만하임에 지어진 다목적홀은 목재를 격자로 짠 곡면 지붕이다. 형태는 매달린 사슬 모형을 뒤집어 찾았다.
- 격자를 평평하게 짜서 헐겁게 조인다 - 크레인으로 밀어 올려 곡면을 만든다 - 원하는 형태가 나오면 그 자리에서 고정한다
완공 이후 몇 차례 철거 논의가 있었다. 2010년대 초 대대적인 보수를 거쳐 지금도 쓰이고 있다.
발표되지 못한 수상 소감
프라이 오토는 건축을 영원히 서 있을 기념물로만 여기지 않았다. 그가 설계한 여러 파빌리온은 애초에 박람회가 끝나면 철거될 것을 전제로 지어졌다.
2015년 3월 10일, 프리츠커상 위원회는 그해 수상자로 프라이 오토를 발표했다. 그는 발표 하루 전인 3월 9일, 독일 바름브론의 자택에서 여든아홉 살로 세상을 떠났다. 수상 소감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거미줄은 지금도 아침이면 이슬을 매달고 팽팽하게 버틴다. 계산 없이도.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프라이 오토는 왜 가벼운 구조를 연구했나?
1945년 포로수용소에서 최소한의 자재로 막사를 지어야 했던 경험이 평생의 관심으로 이어졌다.
뮌헨 올림픽 지붕은 지금도 완공 당시 그대로인가?
아니다. 아크릴 패널과 케이블 장력을 수십 년에 걸쳐 계속 손봐야 했다.
만하임 다목적홀은 지금도 남아 있나?
있다. 철거 논의를 몇 차례 넘기고 2010년대 초 대대적으로 보수됐다.
참고문헌
- Frei Otto, 『Das hängende Dach: Gestalt und Struktur』, Bauwelt Verlag, 1954
- Winfried Nerdinger 편, 『Frei Otto: Complete Works – Lightweight Construction, Natural Design』, Birkhäuser, 2005
- Georg Vrachliotis 외 편, 『Frei Otto: Thinking by Modeling』, Spector Books, 2017
-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2015 Laureate Frei Otto」 공식 발표 자료, Hyatt Foundation,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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