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곡포물면이 왜 굽은 틀 없이 지어지는지, 그리고 그 지붕에 배로 다가가는 일이 왜 나에게 부러운지에 대해.
- 곡면 지붕인데, 그 틀은 처음부터 곧은 판자였다.
- 운하를 오가는 나무배가 콘크리트 꽃 지붕 아래에 사람을 내려놓는다.
- 그는 설계비 대신 공사비를 받는 쪽을 택했다.
이 글의 순서
Photo by Dge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곡면인데, 왜 곧은 판자로 틀을 짰을까?
콘크리트 지붕이 말안장처럼 휘어 있으면, 그 틀도 당연히 휘어 있었을 거라 짐작하게 된다. 나는 이 사진을 처음 봤을 때 그렇게 생각했다.
틀렸다.
칸델라가 즐겨 쓴 형태, 쌍곡포물면은 곡면이면서도 완전히 곧은 직선들만으로 채워진다. 두 방향으로 뻗은 직선 다발이 그 위를 지나간다. 목수는 곧은 판자를 격자로 짜기만 하면 됐다. 곡선 거푸집을 깎는 데 필요한 숙련과 시간이 통째로 사라졌다.
1951년 멕시코국립자치대학교에 그가 지은 우주선 관측 파빌리온의 지붕 두께는 1.5센티미터 안팎이었다. 방사선 물리학자들이 요구한 조건, 최대한 얇을 것을 그는 이 기하학으로 충족시켰다.
현장에서 이 논리는 낯설지 않다. 발전 설비 배관을 받치는 가대도 곡면 대신 직선 부재의 반복으로 복잡한 하중을 감당하게 짜는 경우가 많다. 복잡해 보이는 결과를 단순한 부재로 만드는 태도가 닮았다.
Photo by GAED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국경 두 개를 넘은 뒤에야 그는 다시 설계를 했다
1935년 마드리드에서 건축을 마쳤을 때 그는 스물다섯이었다. 이듬해 내전이 터졌고, 그는 공화파 군인으로 삼 년을 보냈다.
1939년, 프랑코 진영이 이겼다. 그는 프랑스로 국경을 넘었고 거기서 다시, 이번엔 난민 캠프의 담장을 마주했다. 같은 해 멕시코 대통령 라사로 카르데나스가 공화파 난민을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그는 대서양을 한 번 더 건넜다.
멕시코시티에 도착한 뒤에도 몇 해는 건설 현장의 막노동으로 지나갔다. 그가 다시 자기 이름으로 도면을 그리기까지, 국경 두 개와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지붕 자체보다, 그 지붕에 배로 다가간다는 사실이 나는 더 부럽다.
카누가 닿는 자리에 콘크리트 꽃이 폈다
멕시코시티 남쪽 소치밀코는 아스텍 시대부터 이어진 운하 마을이다. 알록달록 칠한 나무배, 트라히네라가 좁은 물길을 오가며 사람과 화물을 실어 나른다. 1987년 유네스코는 이 운하 지대를 멕시코시티 역사지구와 함께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1958년, 그 물길 하나가 닿는 자리에 로스 만안티알레스 식당이 섰다. 쌍곡포물면 셸 여덟 장이 꽃잎처럼 겹쳐 지붕을 이룬다. 배를 타고 다가가면 콘크리트 지붕이 물 위로 낮게 내려앉은 것처럼 보인다고들 한다.
사진으로만 봤다. 몇 해 전 도서관 서가에서 이 지붕 사진을 우연히 넘겨 봤는데, 그 자리에서 십 분 넘게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언젠가 저 운하에 배를 띄우고 싶다는 생각을 아직 접지 못했다. 다만 항공권과 숙박비를 계산하면 그 언젠가는 매번 뒤로 밀린다.
지붕 자체보다, 그 지붕에 배로 다가간다는 사실이 나는 더 부럽다.
Photo by Jesuitjasonsj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설계비 대신 공사비를 받은 사람
1950년 그는 동생 안토니오와 건설회사 쿠비에르타스 알라를 세웠다. 이름은 '날개 지붕'이라는 뜻이었다.
이 결정으로 그는 건축주에게 설계비만 청구하는 사람에서, 공사 전체의 값을 받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할 수 있는 일도 달라졌다.
- 설계 변경을 건축주 승인 없이 즉시 반영할 수 있었다 - 거푸집 목수의 숙련도를 회사 안에서 직접 관리했다 - 실험이 실패했을 때의 손실도 스스로 감당했다
이 자유가 얇은 셸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동시에 이 구조는 위험하기도 하다. 설계자가 자기 시공의 안전을 자기가 판정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의 셸 다수가 지금까지 큰 사고 없이 서 있다는 사실이 그 판단력을 증명하지만, 그 판단을 검증할 제3의 눈은 처음부터 없었다.
올림픽의 지붕은 지금 초록으로 덮여 있을 것이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을 위해 스포츠 궁전이 지어졌다. 지붕은 구리판을 씌운 거대한 돔이다. 건축가 안토니오 페이리, 엔리케 카스타녜다와 공동 설계로 기록되며, 칸델라는 구조 형태를 다듬는 역할로 참여했다. 지붕은 삼각형 철골 뼈대를 반복해 짜는 라멜라 구조를 따르는데, 이 반복이 큰 스팬을 가능하게 했다.
완공 당시 사진 속 지붕은 붉은 구리빛이다. 구리는 공기에 오래 노출되면 녹청이라는 초록빛 막을 입는다. 지금 사진을 찾아보면 지붕은 이미 짙은 초록에 가까울 것이다.
반세기 동안 색이 변하는 지붕이라는 사실을, 완공식 사진만 보고는 알 수 없다.
시카고의 강의실에서 그는 멕시코를 이야기했다
1971년 그는 미국으로 옮겨 시카고 일리노이대학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스페인에서 태어나 멕시코에서 지은 사람이, 마지막 이십육 년은 또 다른 나라에서 보낸 것이다.
1997년 12월,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에서 여든일곱 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처음 곧은 판자로 곡면을 만든 지 반세기가 지난 뒤였다.
지금도 소치밀코의 운하를 오가는 트라히네라는 그 콘크리트 꽃 지붕 아래에 사람을 내려놓는다. 나는 아직 그 배를 타보지 못했다.
로스 만안티알레스 식당의 지붕은 쌍곡포물면 셸 몇 장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 가. 8장
- 나. 4장
- 다. 12장
정답 확인
정답: 가. 꽃잎처럼 겹친 여덟 장의 셸이 하나의 지붕을 이룬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쌍곡포물면은 왜 곧은 판자로 거푸집을 만들 수 있나?
곡면이지만 두 방향의 직선 다발로 이루어진 룰드 서페이스라서, 곧은 목재를 격자로 짜면 그 위에 곡면이 그대로 생긴다. 곡선 거푸집보다 시간과 숙련 목수가 덜 든다.
로스 만안티알레스 식당은 어디에 있나?
멕시코시티 남쪽 소치밀코 운하 지대에 있다. 1958년 완공됐고 쌍곡포물면 셸 여덟 장이 꽃잎처럼 겹쳐 지붕을 이룬다. 이 일대는 198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펠릭스 칸델라는 왜 멕시코에서 활동했나?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파로 싸우다 1939년 프랑스로 피신했고, 멕시코 대통령 라사로 카르데나스가 받아들인 공화파 난민 물결을 따라 대서양을 건너 멕시코시티에 정착했다.
쿠비에르타스 알라는 무엇인가?
1950년 칸델라가 동생 안토니오와 세운 건설회사다. 설계비 대신 공사비를 받는 구조로 바뀌면서, 그는 건축주 승인 없이 설계를 바로 현장에 반영할 수 있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스포츠 궁전은 칸델라의 작품인가?
건축가 안토니오 페이리, 엔리케 카스타녜다와 공동 설계로 기록되며 칸델라는 구조 형태를 다듬는 역할로 참여했다. 구리로 덮인 돔 지붕이 특징이다.
참고문헌
- Maria E. Moreyra Garlock·David P. Billington, 『Félix Candela: Engineer, Builder, Structural Artist』, Yale University Press, 2008
- Félix Candela, 『En Defensa del Formalismo y Otros Escritos』, Xarait Ediciones, 1985
-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Historic Centre of Mexico City and Xochimilco」(등재번호 412), 1987
- Instituto de Ingeniería, UNAM, 「Pabellón de Rayos Cósmicos 보존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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