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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짓는 건축가?/현대건축

프랭크 게리, 완공 후 건물 표면을 갈아내다

by aclstoryji 2026. 6. 25.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은 완공 몇 년 뒤 표면 일부를 무광으로 다시 갈아내야 했다.

먼저 알아둘 세 가지
  •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콘서트홀 하나는 완공 후에 표면을 다시 갈아내야 했다.
  • 그의 원래 성은 게리가 아니었다.
  • 그는 자기 집을 철망과 함석으로 감싸 이웃들의 항의를 받았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Photo by Eric Richardson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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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은 완공 후에 표면을 갈아냈다

2003년 문을 연 로스앤젤레스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은 스테인리스 스틸 판으로 마감한 곡면 건물이다. 그런데 완공 몇 년 뒤, 이 건물 표면 일부를 다시 갈아내는 작업을 해야 했다.

반사가 문제였다. 오목하게 휜 부분이 햇빛을 한 지점으로 모아, 인근 도로와 건물에 눈부신 빛과 열을 쏘아 보냈다. 보도 온도가 실제로 올라갔다는 측정 결과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2005년, 문제가 된 패널 표면을 무광으로 갈아냈다.

발전 설비에서도 반사판이나 금속 마감재를 다룰 때 이 문제를 조심한다. 곡면 금속은 태양광을 렌즈처럼 모을 수 있어서, 반사 각도를 미리 계산하지 않으면 의도치 않은 곳에 열을 집중시킨다. 프랭크 게리의 팀도 이 계산을 완공 후에야 다시 했던 셈이다.

프랭크 게리의 대표작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Guggenheim Museum Bilbao)Photo by Basotxerri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프랭크 게리는 원래 성이 골드버그였다

프랭크 게리는 1929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프랭크 오언 골드버그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1947년 가족과 함께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1954년, 그는 성을 게리로 바꿨다. 당시 부인의 권유였다고 알려져 있다. 유대계라는 이유로 겪을 수 있는 불이익을 피하려는 선택이었다는 해석이 많다.

같은 해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졸업했다. 이후 하버드에서 도시계획을 더 공부했지만, 학위를 마치지는 않았다.

프랭크 게리의 팀도 이 계산을 완공 후에야 다시 했던 셈이다.
프랭크 게리의 대표작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Walt Disney Concert Hall)Photo by Carol M. Highsmith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프랭크 게리, 자기 집을 철망으로 감쌌다

1978년, 그는 산타모니카의 평범한 분홍색 목조 주택 한 채를 샀다. 사진으로 보면, 그 집을 물결형 함석판과 체인링크 펜스, 마감하지 않은 합판으로 둘러쌌다. 원래 집의 벽 일부는 일부러 그대로 노출시켰다.

이웃들은 이 집을 싫어했다고 전해진다. 공사가 끝난 게 아니라 중단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집은 건축계에서는 그의 초기 대표작으로 남았다. 값싼 산업 자재를 고급 재료처럼 다루는 그의 접근 방식이 여기서 처음 뚜렷하게 드러났다.

프랭크 게리의 대표작 게리 레지던스 (Gehry Residence)Photo by IK's World Trip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빌바오 구겐하임, 도시 하나를 바꿨다는 건물

1997년 완공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티타늄 패널로 덮인 곡면 건물이다. 조선업이 쇠퇴하던 스페인 북부의 항구도시 빌바오는, 이 미술관 하나로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현상에는 '빌바오 효과'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건물 하나가 도시 경제를 바꿀 수 있다는 이 이야기는 이후 여러 도시가 무리하게 따라 하려 한 선례가 되기도 했다. 상징적인 건물만 지으면 된다는 식의 단순화된 기대는, 정작 빌바오 자체의 산업 전환 노력을 가리는 면도 있다.

프랭크 게리의 대표작 댄싱 하우스 (Dancing House)Photo by Hans Peter Schaefer, http://www.reserv-a-rt.de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아흔이 넘어서도 그는 여전히 설계한다

1989년, 프랭크 게리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았다. 이후에도 프라하의 댄싱 하우스, 파리의 루이뷔통 재단 미술관 같은 작업을 계속 냈다.

1929년생인 그는 지금도 자기 이름을 건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20세기에 태어나 21세기 스카이라인에 여전히 자기 건물을 더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완공은 끝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 사람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의 갈아낸 표면은 지금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처음 계산이 틀렸다는 증거가, 건물에 영구히 남은 셈이다.

프랭크 게리는 그 실수를 감추지 않았다. 표면을 무광으로 바꾸는 걸로 대응했을 뿐, 건물을 다시 짓지는 않았다. 완공된 건물도 계속 손볼 수 있다는 걸, 그는 이 사건으로 증명한 셈이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프랭크 게리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캐나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건축가다. 1929년 토론토에서 태어났고 1947년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프랭크 게리의 원래 이름은?

프랭크 오언 골드버그였다. 1954년 성을 게리로 바꿨는데, 당시 부인의 권유였다고 알려져 있다.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은 왜 표면을 다시 갈아냈나?

오목한 스테인리스 스틸 패널이 햇빛을 한 지점으로 모아 눈부심과 열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2005년, 문제가 된 부분을 무광 표면으로 다시 갈아냈다.

빌바오 효과란 무엇인가?

1997년 완공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하나로 스페인 항구도시 빌바오의 관광 경제가 살아났다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참고문헌

  1.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1989 Citation: Frank Gehry, The Hyatt Foundation, 1989
  2. Paul Goldberger, Building Art: The Life and Work of Frank Gehry, Knopf, 2015
  3. Guggenheim Bilbao Museoa, 미술관 연혁 및 지역경제 영향 관련 공식 발표 자료
  4.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반사 문제·표면 개보수 관련 다수 매체 보도(2005년)
  5. Sydney Pollack, Sketches of Frank Gehry (다큐멘터리, 2005)

글쓴이

실내건축과를 졸업했고, 현재 대한민국의 발전소 관련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공간과 재료를 실무 현장의 눈으로 보며, 발전 설비·플랜트의 기능성과 구조·안전의 관점에서 건축을 읽는다. 또한 여행과 건축 답사를 좋아하지만, 경제적 여건 탓에 자주 떠나지는 못한다. 대신 사진과 도면, 기록을 오래 들여다보고, 직접 가 본 곳에서는 현장에서 느낀 공간 경험을 글에 녹이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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