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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짓는 건축가?/사회와 지역

왕슈, 부서진 기와로 박물관 외벽을 쌓다

by aclstoryji 2026. 7. 3.

닝보박물관 외벽은 철거된 마을 수십 곳에서 나온 기와와 벽돌로 쌓아 올렸다.

먼저 알아둘 세 가지
  • 닝보박물관 외벽은 새 벽돌이 아니라 철거된 마을에서 나온 기와로 쌓았다.
  • 왕슈는 프리츠커상을 받기 전 거의 10년 동안 설계 일을 하지 않았다.
  • 그의 사무소 이름에는 '아마추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데, 이유가 있다.
건축가 왕슈Photo by LucaFazPhoto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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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 조각이 만든 벽

발전 설비 도면을 볼 때 가장 먼저 보는 자리는 이음매다. 배관과 배관이 만나는 용접선이 삐뚤면, 그 라인 전체를 다시 뜯어야 할 수도 있다. 그런 눈으로 닝보박물관 외벽 사진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반사적으로 결함 목록을 세고 있었다. 기와 색이 제각각이고, 벽돌 크기가 층마다 다르고, 줄눈이 아예 없는 자리도 있었다.

그런데 그건 결함이 아니라 설계였다. 왕슈는 그 어긋남을 하나하나 골라서 쌓았다.

이 기법에는 이름이 있다. 와판장(瓦爿墙), 깨지거나 남은 기와 조각으로 쌓는 벽이다. 저장성 농촌에서 오래전부터 써 오던 방법이라고 한다. 왕슈는 이걸 지역 장인들에게 다시 배워서, 미술관이라는 훨씬 큰 건물에 그대로 옮겨 붙였다. 여러 시대에 구워진 기와가 뒤섞여 있는 벽은, 말하자면 다른 시대의 지문들이 한자리에 찍힌 셈이다.

왕슈의 대표작 닝보박물관 (Ningbo Museum)Photo by Siyuwj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박물관 자리에 있던 마을들

그 기와들이 어디서 왔는지가 중요하다. 2000년대 초 닝보 인근에서는 오래된 마을들이 빠르게 철거되고 있었다. 논과 낮은 집들이 있던 자리에 신도시가 올라갔고, 그 과정에서 나온 기와와 벽돌, 도자기 파편은 대부분 그냥 버려졌다.

왕슈는 철거 현장을 돌며 그것들을 모았다고 한다. 수십 개 마을에서 나온 자재라고 알려져 있는데, 정확히 몇 곳인지 밝힌 공식 집계는 찾지 못했다. 2008년 문을 연 닝보박물관(공식 명칭, 흔히 닝보역사박물관으로도 불린다)은 그렇게 모은 재료로 외벽 대부분을 덮었다.

당시 모아진 재료는 대략 이런 것들이었다고 전해진다. - 시대가 다른 점토 기와 - 크기가 제각각인 붉은 벽돌 - 깨진 도자기 사발 조각 - 표면이 마모된 돌 조각 박물관이 정작 그 마을들을 밀어낸 도시화의 결과물이라는 점은 아이러니다. 사라진 마을의 조각으로, 그 마을을 밀어낸 자리 옆에 기념비를 세운 셈이니까.

그런데 그건 결함이 아니라 설계였다.
왕슈의 대표작 중국미술학원 샹산캠퍼스 (China Academy of Art Xiangshan Campus)Photo by Joseph Gong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왕슈가 건축을 그만두었던 10년

왕슈는 1963년 신장 우루무치에서 태어났다. 난징공과대학(현 둥난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1988년 석사를 마쳤다. 그런데 그 뒤로 거의 10년 가까이 이렇다 할 설계 프로젝트 없이 지냈다고 알려져 있다.

그 시기에 그는 사무실 대신 공사장에 있었다. 장인들 곁에서 기와 쌓는 법, 나무 다루는 법을 손으로 배웠다고 한다. 1997년에야 아내 루원위와 함께 '아마추어 건축 스튜디오'라는 이름의 사무소를 열었다. 아마추어라는 이름을 스스로 붙인 게 흥미롭다. 전문가주의에 대한 반발이었다는 해석이 많다.

두 사람은 공동 설계자다. 그런데 언론에 실리는 사진과 인터뷰는 거의 왕슈 한 사람에게 쏠린다. 이건 이 건축가의 문제라기보다 부부 스튜디오를 다루는 언론의 오래된 습관에 가깝다.

왕슈의 대표작 닝보 텅터우관 (Ningbo Tengtou Pavilion)Photo by Kimon Berlin / CC BY-SA 2.0 / Wikimedia Commons

산수화를 캠퍼스로 옮기다

중국미술학원 샹산캠퍼스는 2004년과 2007년, 두 단계로 나눠 완공됐다. 항저우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 산을 등지고 앉은 캠퍼스다.

왕슈는 이 캠퍼스를 설계하면서 중국 산수화의 구도를 참고했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건물이 산을 압도하지 않고, 산 사이에 끼어 앉는 배치. 길은 똑바로 뻗지 않고 휘어진다. 지붕선도 하나로 통일되지 않는다.

이 캠퍼스에도 재활용 자재가 대량으로 들어갔다. 흔히 인용되는 숫자로는 약 700만 장에 이르는 기와와 벽돌이라는데, 정확한 집계 자료를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다만 그 정도 규모로 옛 마을의 자재를 끌어다 썼다는 사실은 여러 매체에서 반복해서 언급된다.

프리츠커상 이후

2012년, 왕슈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았다. 중국 국적자로는 처음이었다. 심사위원단은 그의 작업이 지역에 깊이 뿌리내리면서도 보편적이라고 평가했다.

수상 이후 비판도 따라왔다. 샹산캠퍼스는 개관 초기부터 방수 문제와 동선 혼란을 지적받았다는 보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 복도가 어둡고 계단 위치가 헷갈린다는 후기도 종종 보인다. 아름다운 사진과 그 안에서 4년을 보내는 일은 다른 이야기라는 뜻이다.

발전 설비 현장에서는 도면이 아무리 근사해도 배관 경로가 유지보수 인력의 동선을 막으면 다시 그린다. 사진으로는 흠잡을 데 없어 보이는 건물도, 그 안에서 매일 걷는 사람의 불편은 따로 계산해야 한다는 걸 이 캠퍼스에 대한 후기들을 읽으며 다시 생각했다.

다시, 그 벽 앞에서

이 벽 앞에 실제로 서 본 적은 없다. 사진과 도면으로만 봤다. 언젠가 간다면 가장 먼저 만져보고 싶은 자리는 기와와 기와 사이, 줄눈이 없는 그 이음매다.

철거된 마을의 기와가 몇 장이나 그 벽에 남아 있는지 정확히 센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다만 닝보박물관 외벽에는, 지금도 다른 시대에 구워진 기와들이 나란히 붙어 있다.

쉬어가는 퀴즈

왕슈가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은 해는?

  • 가. 2010년
  • 나. 2012년
  • 다. 2016년
정답 확인

정답: 나. 2012년, 중국 국적자로는 처음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왕슈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중국 국적의 건축가다. 1963년 신장 우루무치에서 태어났고, 지금은 항저우의 중국미술학원 건축예술학원장을 맡고 있다.

왕슈가 프리츠커상을 받은 해는 언제인가?

2012년이다. 중국 국적자가 이 상을 받은 건 그가 처음이었다.

왕슈의 사무소 이름은 왜 '아마추어'인가?

1997년 아내 루원위와 함께 연 사무소 이름을 '아마추어 건축 스튜디오'로 지었다. 전문가주의에 거리를 두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닝보박물관 외벽에 쓰인 재료는 어디서 왔나?

저장성 일대에서 철거된 옛 마을들의 기와와 벽돌, 도자기 파편이다. 수십 개 마을에서 모은 자재로 알려져 있다.

중국미술학원 샹산캠퍼스는 어디에 있나?

항저우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 2004년과 2007년, 두 단계에 걸쳐 완공됐다.

참고문헌

  1.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2012 Jury Citation: Wang Shu, The Hyatt Foundation, 2012
  2. Wang Shu, Wang Shu: Imagining the House, Lars Müller Publishers, 2012
  3. 왕슈, 중국미술학원 건축예술학원장 재임(2003~) 관련 학교 측 소개 페이지

글쓴이

실내건축과를 졸업했고, 현재 대한민국의 발전소 관련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공간과 재료를 실무 현장의 눈으로 보며, 발전 설비·플랜트의 기능성과 구조·안전의 관점에서 건축을 읽는다. 또한 여행과 건축 답사를 좋아하지만, 경제적 여건 탓에 자주 떠나지는 못한다. 대신 사진과 도면, 기록을 오래 들여다보고, 직접 가 본 곳에서는 현장에서 느낀 공간 경험을 글에 녹이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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