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크리슈나 도시: 인도의 흙과 빛으로 다시 쓴 모더니즘
르 코르뷔지에와 루이스 칸을 거쳐, 발크리슈나 도시는 인도라는 토양 위에 자신의 모더니즘을 다시 세웠다.
발크리슈나 도시(B. V. Doshi, 1927–2023)는 인도을(를) 대표하는 근대주의 건축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발크리슈나 도시의 생애와 대표작, 건축 철학을 찬양·비판·의견·진실의 네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Photo by Nitinku5021a at English Wikipedia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인도 모더니즘의 토양에서 태어나다
발크리슈나 도시(Balkrishna Vithaldas Doshi)는 1927년 인도 푸네에서 태어나 2023년 아흐메다바드에서 세상을 떠난 건축가다. 식민 통치가 끝나기 전 어린 시절을 보냈고, 독립 인도가 자기 정체성을 새로 쌓아 올리던 시기에 건축가로 자랐다. 뭄바이의 J. J. 건축학교에서 수학한 뒤 1951년 파리로 건너가 르 코르뷔지에의 아틀리에에서 약 4년간 일했다. 인도로 돌아온 다음에는 찬디가르와 아흐메다바드 프로젝트의 실무를 감독했고, 1960년대에는 루이스 칸과 함께 인도경영연구소 아흐메다바드(IIM Ahmedabad)의 건립 과정에 참여했다.
발전소 도면 한 장을 받아 들면 가장 먼저 보는 것은 누가 어떤 의도로 이 시스템을 설계했는가다. 도시의 이력 또한 한 줄로 요약하면 단순하지만, 그가 누구와 일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20세기 건축의 두 거장이 흙처럼 그의 안에 섞여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는 두 스승의 언어를 그대로 옮기지 않고, 인도의 기후와 사회 조건 안에서 그 어휘를 다시 풀어내는 길을 택했다.
Photo by Vaishal Dalal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상가트 — 자신의 작업장에서 시작된 언어
1980년 아흐메다바드에 완공된 상가트(Sangath)는 도시의 건축 사무소이자 자신을 위해 지은 작은 마을 같은 건물이다. 산스크리트어로 "함께 움직이다"라는 뜻을 가진 이 이름처럼, 건물은 여러 개의 둥근 볼트 지붕과 정원, 외부 계단이 서로 이어지며 하나의 흐름을 만든다. 표면에는 깨진 도자기 타일 모자이크가 깔려 햇빛을 반사하고, 지붕 아래 공간은 흙으로 둘러싸여 한낮의 열기를 한 발 늦게 받아들인다.
발전 설비의 외장재를 고를 때는 단열, 내후성, 점검 동선이 한 묶음으로 따라온다. 상가트의 볼트 지붕도 비슷한 시각으로 읽을 수 있다. 둥근 단면은 폭우와 강한 햇빛에 유리하고, 흰 모자이크는 표면 온도를 낮추는 일종의 수동적 단열재 역할을 한다. 도시는 인도의 더운 기후를 기계 설비로 누르려 하지 않고, 형태와 재료의 선택만으로 상당 부분을 풀어내려 했다.
동시에 상가트는 "직접 와서 걸어 봐야 이해되는" 건물이기도 하다. 평면도만 보면 군데군데 흩어진 형태가 어수선해 보이지만, 현장에서는 그 어수선함이 그늘과 통로와 작은 광장으로 자연스럽게 풀린다. 사진보다 발이 먼저 그 공간을 알아본다는 점에서, 그의 건축은 여행자에게 후한 편이다.
아라냐 저소득층 주거 — 건축가는 어디까지 정해야 하는가
1989년 인도 인도르에 세워진 아라냐 저소득층 주거(Aranya Low Cost Housing)는 약 6만여 명을 수용하도록 계획된 대규모 주거 단지다. 도시는 이 프로젝트에서 완성된 집을 한 채씩 일률적으로 공급하는 대신, 도로와 인프라, 공용 마당, 그리고 작은 단위의 기초 골조만 먼저 정해 두고 나머지를 거주민의 손에 넘기는 방식을 택했다. 1995년에는 아가 칸 건축상을 받으며 국제적인 사례로 자주 인용되었다.
발전소 부지에서 우리는 늘 "어떻게 운영되고 어떻게 유지되는가"를 먼저 본다. 마감이 아무리 깔끔해도 운전과 정비의 동선이 막혀 있으면 그 설비는 오래 가지 못한다. 아라냐의 설계도 같은 질문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도시는 거주민이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자기 집을 늘리고 고치고 빌려 줄 수 있도록, 건축가의 손이 닿아야 할 곳과 거주자가 직접 채워야 할 곳을 처음부터 나누어 두었다.
다만 모든 사례가 이상대로 흘러간 것은 아니다. 후속 연구에서는 단지 일부에 의도와 다른 계층이 유입되거나, 공용 공간의 사용 방식이 초기 구상과 어긋난 경우가 보고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건축가가 모든 것을 정하지 않는 설계"라는 발상 자체는, 한 사람의 마스터플랜이 사회의 결을 늘 이기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인 결과로 읽을 수 있다.
IIM 방갈로르와 암다바드 니 구파 — 캠퍼스와 동굴, 두 개의 풍경
인도경영연구소 방갈로르(IIM Bangalore)는 1977년에 설계가 시작되어 여러 단계에 걸쳐 1990년대까지 확장된 캠퍼스다. 도시는 인도 전통 사원 도시의 구조에서 단서를 얻어, 좁고 그늘진 회랑과 갑작스레 열리는 안마당, 식재된 정원을 길게 엮어 냈다. 화강석과 콘크리트가 묵직하게 깔리지만, 그 사이로 빛과 식물이 끝없이 끼어든다.
1995년 같은 도시 아흐메다바드에 완공된 암다바드 니 구파(Amdavad ni Gufa)는 화가 M. F. 후사인과 함께 만든 지하 갤러리다. 곡면 셸 구조의 지붕이 땅에서 솟아오른 듯한 형태로 놓이고, 내부는 동굴처럼 곡선이 연속된다. 캠퍼스의 묵직한 도시 조직과는 정반대의 어휘지만, "땅과 기후를 먼저 보고 형태를 정한다"는 같은 태도에서 자라난 결과물이다.
두 건물을 같은 여행 일정에 묶어 보면, 한 사람의 건축가 안에 도시 계획가의 머리와 조각가의 손이 함께 있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은 채, 그는 인도의 도시와 인도의 흙을 동시에 다루었다.
건축가의 사회적 책무와 한계
도시는 2018년 인도인으로는 처음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았다. 심사위원회는 그가 평생에 걸쳐 저소득층 주거, 공공 교육 시설, 도시 계획에 헌신해 온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인도 정부로부터도 1976년의 파드마 슈리를 시작으로 이후 파드마 비부샨까지 받았다. 화려한 단발 작품보다는 70년에 가까운 활동의 누적이 그를 거장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한편으로 "사회적 건축"이라는 한 마디가 그의 모든 프로젝트를 설명하지는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 평론에서는 그의 캠퍼스 건축이 시간이 흐르며 유지·보수에서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 그리고 인도 도시화의 빠른 속도 앞에서 저층 고밀도 모델이 가진 한계가 드러났다는 점이 거론된다. 어느 거장이든 그가 답하지 못한 질문이 더 많은 법이며, 도시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그는 건축을 "최종 완성품"이 아니라 "시간이 함께 쓰는 글"로 보았다. 발전 설비를 설계할 때 우리가 운영 30년 뒤를 떠올리듯, 도시는 자기 건물의 30년, 50년 뒤 모습을 함께 그리려 했다. 그 시야의 길이가 그의 작업을 지탱한 척추다.
결론 — 발크리슈나 도시가 남긴 질문
발크리슈나 도시의 건축은 한 줄로 요약하기 쉽지 않다. 르 코르뷔지에에게서 평면의 논리를, 루이스 칸에게서 빛과 재료의 무게를 가져왔지만, 그는 그것을 인도의 거리와 마당과 기후 위에 다시 풀어냈다. 그의 대표작인 상가트, 아라냐 저소득층 주거, IIM 방갈로르, 암다바드 니 구파는 같은 사람의 손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의심스러울 만큼 어휘가 다양하지만, "장소와 사람을 먼저 본다"는 태도에서는 한 번도 어긋나지 않는다.
그는 우리에게 두 가지 질문을 남겼다. 하나는 "건축은 누구의 삶을 위해 그려지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건축가는 어디까지 결정하고 어디서부터 손을 떼야 하는가"이다. 발전소든 미술관이든 주거든, 결국 같은 질문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그의 작업이 조용히 일러 준다. 발크리슈나 도시의 유산은 그래서 인도 모더니즘이라는 한 챕터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의 도면 위에서 다시 마주치는 물음으로 남는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발크리슈나 도시는 누구인가?
인도의 모더니즘 건축가다. 1927년 푸네에서 태어나 2023년 아흐메다바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르 코르뷔지에와 루이스 칸의 작업에 참여한 뒤, 인도의 풍토와 사회 조건에 맞춘 자신만의 건축 언어를 60년 넘게 발전시켰다.
발크리슈나 도시와 르 코르뷔지에, 루이스 칸의 인연은 무엇인가?
1951년부터 약 4년간 파리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아틀리에 직원으로 일했고, 이후 인도로 돌아와 찬디가르와 아흐메다바드 프로젝트의 현장을 감독했다. 1960년대에는 인도경영연구소 아흐메다바드(IIM Ahmedabad)의 설계 과정에서 루이스 칸과 협업했다.
발크리슈나 도시의 대표작은 무엇인가?
자신의 작업장이자 사무소인 상가트(Sangath, 1980), 인도르의 아라냐 저소득층 주거(1989), IIM 방갈로르 캠퍼스(1977년 착수, 단계적 완공), 아흐메다바드의 암다바드 니 구파(1995)가 자주 꼽힌다. 모두 인도 안에 위치하며 사무소, 저소득층 주거, 캠퍼스, 미술관이라는 서로 다른 용도를 다룬다.
발크리슈나 도시는 어떤 상을 받았는가?
2018년 인도인으로는 처음으로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했다. 이에 앞서 1995년에는 아라냐 프로젝트로 아가 칸 건축상을 받았다. 인도 정부로부터도 1976년 파드마 슈리를 시작으로 이후 파드마 비부샨까지 수여받았다.
발크리슈나 도시 건축의 핵심 철학은 무엇인가?
기후, 재료, 사회적 조건을 먼저 읽고 형태를 결정하는 태도가 그의 작업을 관통한다. 특히 건축가가 모든 디테일을 통제하는 대신 거주자가 시간을 두고 채우는 여지를 남기는 방식은 아라냐 저소득층 주거 단지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건축을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사용자가 함께 쓰는 글로 보았다.
참고문헌
- Vitra Design Museum (ed.), Balkrishna Doshi: Architecture for the People, Vitra Design Museum, 2019
- William J. R. Curtis, Modern Architecture Since 1900 (3rd ed.), Phaidon, 1996
- William J. R. Curtis, Balkrishna Doshi: An Architecture for India, Rizzoli, 1988
-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Jury Citation: Balkrishna Doshi, 2018
- Aga Khan Trust for Culture, Aranya Community Housing — Award Documentation,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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