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트의 지붕은 깨진 도자기 조각으로 덮여 있고, 그 밑은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 있다.
- 발크리슈나 도시는 르 코르뷔지에와 루이스 칸, 두 사람 밑에서 일했다.
- 그가 지은 자기 사무소는 건물 절반이 땅속에 파묻혀 있다.
- 8만 명이 살 단지를 설계하면서, 그는 집을 다 짓지 않았다.
이 글의 순서
나무 냄새가 먼저 배운 감각
발크리슈나 도시는 어릴 때부터 나무 냄새를 맡으며 자랐다고 한다. 집안은 가구를 만들어 파는 일을 했다. 대패질한 목재 표면, 접합부가 딱 맞아떨어지는 감각 같은 것들이 건축을 배우기 훨씬 전부터 몸에 있었다는 뜻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조금 부러웠다. 나는 도면과 규격으로 재료를 배웠다. 그는 반대편에서, 손으로 먼저 재료를 안 뒤에 도면을 배운 사람이다.
그의 성을 한글로 옮기면 '도시'다. 우리말 '도시(都市)'와 소리가 똑같아서, 이 글에서는 편의상 계속 '발크리슈나 도시'라고 풀네임으로 쓴다. 성이 그 사람 직업과 이렇게 자주 헷갈리는 경우도 드물다.
Photo by Vvinzoda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르 코르뷔지에의 파리, 그리고 아마다바드로
발크리슈나 도시는 1927년 인도 푸네에서 태어났다. 뭄바이의 JJ건축대학에서 공부했지만 정규 과정을 다 마치기 전에 유럽으로 떠났다고 전해진다. 1951년, 스물네 살의 그는 파리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아틀리에 문을 두드렸다.
코르뷔지에 밑에서 그는 약 4년을 일했다. 1954년 무렵, 코르뷔지에는 자신이 아마다바드에 짓고 있던 건물들 — 밀 오너스 협회 건물, 빌라 쇼단, 사라바이 저택 — 의 현장 감독으로 그를 인도에 보냈다.
이 파견이 인생을 바꿨다. 그는 파리로 돌아가지 않고 아마다바드에 자기 사무소를 차렸다. 1950년대 중반의 일이다.
발크리슈나 도시가 제공한 건 완성된 집이 아니라 뼈대였다.
Photo by Nitinku5021a at English Wikipedia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발크리슈나 도시가 칸에게서 배운 것
1962년부터 발크리슈나 도시는 루이스 칸이 설계한 인도경영대학원 아마다바드(IIM 아마다바드) 프로젝트의 현지 협력 건축가로 일했다. 공사는 10년 넘게 이어졌다.
코르뷔지에가 조형과 리듬의 건축가였다면, 칸은 빛과 육중한 벽돌 매스의 건축가였다. 두 스승 밑에서 일한 경험은 그를 어느 한쪽의 제자로만 남겨두지 않았다. 그는 인도의 기후와 생활 방식에 맞는 자기 언어를 따로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1962년 그는 아마다바드에 건축대학을 세웠다. 이 학교는 훗날 CEPT(환경계획기술센터)로 이름을 바꾸고, 2005년 대학교 지위를 얻었다. 인도 건축 교육에 남긴 흔적이 그의 건물만큼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가트, 땅속으로 들어간 작업실
1980년에 완공한 상가트는 그의 사무소다. 이름은 구자라트어로 '함께 나아간다'는 뜻에 가깝다고 한다. 건물 상당 부분이 땅 밑으로 파고 들어가 있다.
지붕은 둥글게 볼트를 그리고, 표면은 깨진 흰 도자기 조각으로 덮여 있다. 이 조각들이 햇빛을 반사해 실내 온도를 낮추고, 지붕을 타고 흐르는 빗물은 계단식 정원을 거쳐 작은 못으로 모인다. 실제로 얼마나 시원한지는 가서 만져봐야 알겠지만.
발전소에서 열을 다루는 방식과 겹치는 지점이 여기 있다. 열을 막는 게 아니라 흘려보내는 경로를 설계하는 것. 냉각탑이 열을 공기 중으로 내보내듯, 상가트의 지붕은 열을 반사해 내보내고 빗물은 순환시킨다. 다만 상가트는 기계 없이, 형태와 재료만으로 그 일을 한다.
8만 명을 위한 뼈대만, 그리고 걷게 만드는 캠퍼스
1989년 인도르에 지은 아란야 저소득층 주택은 그의 대표작 중에서도 가장 논쟁적이다. 계획 인구는 약 8만 명, 소득 수준이 다른 가구들이 한 단지 안에 섞여 살도록 설계했다.
발크리슈나 도시가 제공한 건 완성된 집이 아니라 뼈대였다. - 화장실과 부엌 배관이 들어간 코어 유닛 - 마당을 공유하는 클러스터 배치 - 입주자가 스스로 증축할 수 있는 여백 입주자들은 그 위에 자기 방식대로 집을 채웠다. 이 방식은 1995년 아가 칸 건축상을 받았다.
완공 후 수십 년이 지나며 원래 계획을 벗어난 증축도 많았다는 평가가 있다. 통제되지 않은 밀도 증가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다만 이건 실패라기보다, 애초에 주민의 손에 결정권을 넘긴 설계가 감수해야 했던 결과에 가깝다.
비슷한 시기 그는 방갈로르에 인도경영대학원(IIM 방갈로르) 캠퍼스를 설계하고 있었다. 1977년부터 여러 단계에 걸쳐 지어진 이 캠퍼스는 파테푸르 시크리의 계단식 안뜰을 참고했다고 알려져 있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지붕 덮인 통로로 길게 이어, 학생과 교수가 걸으며 우연히 마주치도록 만들었다.
이 설계 철학에는 나도 조금 회의적인 데가 있었다. 발전소 현장에서는 동선이 길어지면 곧 비효율이다. 하지만 캠퍼스는 공장이 아니다. 일부러 돌아가게 만들어 마주침을 늘리는 방식이, 배우는 공간에서는 오히려 맞는 답일 수 있다는 걸 이 캠퍼스를 알게 되며 생각을 고쳤다.
그가 세상을 떠난 자리
발크리슈나 도시는 2023년 1월, 아마다바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흔다섯이었다. 2018년 프리츠커상을 받으며 인도 국적 건축가로는 처음으로 이 상을 받았고, 2022년에는 영국왕립건축가협회(RIBA) 로열 골드 메달도 받았다. 이 메달은 한때 스승 르 코르뷔지에도 받은 상이다.
이 마지막 사실이 나는 계속 마음에 남는다. 파리의 젊은 조수로 시작해, 스승과 같은 이름의 메달을 받는 자리까지 간 것. 그 사이에 인도의 기후와 재료,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관찰하며 자기 언어를 만든 60여 년이 있었다.
상가트의 깨진 도자기 지붕은 지금도 아마다바드의 햇빛을 반사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그 앞에 서 보지 못했다.
발크리슈나 도시가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은 해는?
- 가. 2012년
- 나. 2018년
- 다. 2020년
정답 확인
정답: 나. 2018년, 인도 국적자로는 처음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상가트는 어떤 건물인가?
발크리슈나 도시 자신의 건축 사무소다. 1980년 아마다바드에 완공했고, 건물 상당 부분이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 있으며 지붕은 깨진 도자기 조각으로 덮여 있다.
아란야 저소득층 주택은 무엇인가?
1989년 인도르에 지은 주거단지다. 약 8만 명을 계획 인구로 삼았고, 입주자가 스스로 증축할 수 있도록 기본 뼈대만 제공했다. 1995년 아가 칸 건축상을 받았다.
발크리슈나 도시는 르 코르뷔지에, 루이스 칸과 어떤 관계였나?
파리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아틀리에에서 일했고, 이후 코르뷔지에의 아마다바드 프로젝트 현장 감독을 맡았다. 1962년부터는 루이스 칸이 설계한 IIM 아마다바드 프로젝트의 현지 협력 건축가로 일했다.
참고문헌
-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2018 Citation: Balkrishna Doshi, The Hyatt Foundation, 2018
- William J.R. Curtis, Balkrishna Doshi: An Architecture for India, Rizzoli, 1988
- Vastushilpa Foundation 웹사이트, 상가트(Sangath) 프로젝트 설명 페이지
- The Aga Khan Award for Architecture, 1995년 수상작 목록 중 아란야 저소득층 주택(Aranya Low-Cost Housing) 항목
- RIBA, 2022년 로열 골드 메달 수상자 발표문(Balkrishna Do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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