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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짓는 건축가?/빛과 재료의 장인

의자를 만들던 손, 콘크리트를 두드리다 — 마르셀 브로이어

by aclstoryji 2026. 9. 28.

바우하우스의 강철 의자에서 세인트존스의 콘크리트 종탑까지, 한 사람의 손이 다룬 두 재료 이야기.

먼저 알아둘 세 가지
  • 가구 디자이너가 왜 콘크리트 건물을 지었는지, 그 이유는 의자를 만들 때부터 정해져 있었다.
  • 브로이어의 거친 콘크리트 표면은 세월이 만든 게 아니라 사람이 망치로 두드려 만든 것이다.
  • 세인트존스 수도원의 종탑은 벽도 지붕도 아닌, 그 모양만으로 혼자 서 있는 콘크리트판이다.
여행 계획 — 지도 번호와 같은 순서다

의자에서 시작된 손

1925년, 스물세 살 마르셀 브로이어는 데사우의 바우하우스 목공 공방에서 자전거 핸들을 만지작거리다 질문 하나를 떠올렸다 — 왜 의자는 나무여야 하는가. 그 답이 구부린 강철 파이프에 캔버스 천을 씌운 의자, 뒷날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의 이름을 빌려 "바실리 의자"로 불리는 물건이었다. 다리도 팔걸이도 등받이도 전부 가는 관이 이어지며 만든다 — 목재 의자라면 짜맞춤과 못이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다.

구부린 강철 파이프 하나로 다리와 팔걸이와 등받이를 이은 바실리 의자 (개념 삽화)

 

실내건축을 공부한 사람의 눈으로 보면 이 의자에서 놀라운 건 가벼움이 아니라 사람이 앉는 지점의 계산이다. 등받이 천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각도, 팔걸이 높이가 딱 팔꿈치에서 멎는 지점 — 나무를 깎던 목수의 손이 아니라 사람의 관절을 재던 손이 만든 물건이다. 브로이어는 평생 가구를 먼저 만들고 건물을 나중에 지은 사람이었고, 그 순서는 그의 건축에 그대로 남았다.

3개
유네스코 본부 날개 수
1925
바실리 의자 제작 연도

그로피우스의 그늘, 그리고 자기 집

1937년 브로이어는 스승 발터 그로피우스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에서 함께 가르치고 함께 설계 사무소를 열었다. 매사추세츠의 집 몇 채를 나란히 지었지만 4년 만에 갈라섰다 — 이유는 공개된 적 없다. 혼자가 된 브로이어가 1948년 코네티컷 뉴캐넌에 지은 자기 집은 그래서 더 눈에 띈다. 침실 동과 거실 동을 완전히 나눠 짧은 다리로만 잇는 평면, 훗날 사람들이 "바이뉴클리어(binuclear)" 평면이라 부르게 되는 구성이었다.

자는 곳과 사는 곳을 한 지붕 아래 두되 동선으로는 갈라놓는다 — 이건 재료나 구조 이야기가 아니라 순전히 생활의 관찰이다. 아이가 낮잠 자는 소리와 손님 치르는 소리가 벽 하나 사이에 있으면 결국 둘 다 못 한다는 걸 아는 사람의 평면이다. 사진으로 보면 외벽은 돌과 목재 널판을 거칠게 섞어 놓아 인위적으로 안 보이려 애쓴 티가 난다.

의자의 팔걸이 높이를 재던 손과 종탑의 무게를 재던 손이 같은 손이었다

강철에서 콘크리트로 옮겨간 손

1958년 파리에 완공된 유네스코 본부는 브로이어가 프랑스 건축가 베르나르 제르퓌스, 구조기술자 피에르 루이지 네르비와 함께 만든 건물이다. 위에서 보면 Y자로 갈라지는 3개의 날개가 가늘어진 콘크리트 다리 위에 얹혀 있다 — 건물 한 채가 통째로 다리를 건너듯 땅에서 들려 있는 모양이다. 표면은 거칠다. 하지만 이 거칢은 콘크리트가 원래 그런 살결이라서가 아니다. 거푸집을 뜯어낸 뒤 사람이 직접 작은 망치로 표면을 두드려 골재를 드러낸 것이다 — 부시해머 콘크리트라 부르는, 손이 두 번 들어간 마감이다. 매끈하게 지을 수 있었는데 일부러 거칠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가는 콘크리트 다리 위에 들려 있는 Y자 모양 유네스코 본부 건물 (개념 삽화)

 

1961년 미네소타 세인트존스 수도원 성당에서는 이 손이 극단까지 간다. 본당과 떨어진 자리에 종과 십자가를 매단 사다리꼴 콘크리트 판이 혼자 서 있다 — 벽도 지붕도 아닌, 오직 그 모양으로만 서 있는 콘크리트다. 사진으로 보면 본당 파사드 전체가 이 종탑 판 하나를 위해 뒤로 물러난 것처럼 보인다.

본당과 떨어져 홀로 서서 종과 십자가를 매단 사다리꼴 콘크리트 종탑 (개념 삽화) / 세인트존스 수도원 종탑

차갑다는 말과 견고하다는 말 사이

사진으로만 보면 세인트존스의 종탑 판은 무섭다는 인상부터 준다. 창이 거의 없는 콘크리트 덩어리라는 말을 들으면 더 그렇다. 실제로 브로이어의 후기 건물, 특히 1970년대 뉴욕 브롱크스 발달장애인 센터는 알루미늄 판에 좁은 틈 창만 남겨 준공 당시부터 "감옥 같다"는 말을 들었다. 사람이 살고 일하는 건물에 이렇게까지 표정을 지워도 되는가 — 이 질문은 지금도 브루탈리즘을 볼 때 따라붙는다.

그런데 프랑스 알프스의 스키 리조트 플레인에서 브로이어가 한 일을 보면 답이 조금 달라진다. 그는 콘크리트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지 않고 널빤지 거푸집 자국을 그대로 남겨, 건물이 회색 바위산 사이에서 인공물처럼 튀지 않게 만들었다. 차가움이 아니라 산의 재료로 산 옆에 서겠다는 계산이었던 셈이다. 겨울에 그 표면을 손으로 짚어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여전히 불편한 재료지만, 적어도 이 거칠음에는 이유가 있다.

가구를 만들던 손이 남긴 것

브로이어는 1981년 뉴욕에서 죽을 때까지 자신을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로 소개했다. 둘 중 하나를 앞세운 적이 없다. 오늘 일기 끝에 이 이름을 적어 둔다면, 아마 이런 문장일 것이다 — 의자의 팔걸이 높이를 재던 손과 종탑의 무게를 재던 손이 같은 손이었다고.

매디슨가에 그가 지은 옛 휘트니 미술관 건물은 위층으로 갈수록 조금씩 밖으로 더 내밀며 쌓인다 — 아래층 손님보다 위층 손님에게 하늘을 더 내주겠다는 계산처럼 보인다. 의자 등받이의 각도를 재던 사람다운 배려다. 크고 차가운 재료를 다뤘지만, 지금도 그의 건물 난간을 짚어보면 팔꿈치가 먼저 멎는 높이가 손에 와닿는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바실리 의자는 왜 그런 이름이 붙었나?

브로이어 자신이 붙인 이름이 아니다. 원래 이름은 모델 B3였고, 나중에 제작사가 이 의자를 아꼈던 동료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의 이름을 따 붙였다.

브로이어 건축의 거친 콘크리트 표면은 자연스럽게 생긴 것인가?

아니다. 거푸집을 뗀 뒤 사람이 직접 망치로 두드려 골재를 드러낸 인공 마감이다. 부시해머 콘크리트라 부른다.

브로이어의 건축은 왜 차갑다는 평가를 받나?

창을 최소화하고 표면을 다듬지 않은 후기작 때문이다. 다만 플레인처럼 재료를 주변 환경에 맞춘 사례도 있어 평가가 갈린다.

참고문헌

  1. Isabelle Hyman, Marcel Breuer, Architect: The Career and the Buildings, Harry N. Abrams, 2001
  2. Robert F. Gatje, Marcel Breuer: A Memoir, Monacelli Press, 2000
  3. Marcel Breuer, Sun and Shadow: The Philosophy of an Architect, Dodd, Mead & Company, 1955

글쓴이

실내건축과를 졸업했고, 현재 대한민국의 발전소 관련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공간과 재료를 실무 현장의 눈으로 보며, 발전 설비·플랜트의 기능성과 구조·안전의 관점에서 건축을 읽는다. 또한 여행과 건축 답사를 좋아하지만, 경제적 여건 탓에 자주 떠나지는 못한다. 대신 사진과 도면, 기록을 오래 들여다보고, 직접 가 본 곳에서는 현장에서 느낀 공간 경험을 글에 녹이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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