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하우스의 강철 의자에서 세인트존스의 콘크리트 종탑까지, 한 사람의 손이 다룬 두 재료 이야기.
- 가구 디자이너가 왜 콘크리트 건물을 지었는지, 그 이유는 의자를 만들 때부터 정해져 있었다.
- 브로이어의 거친 콘크리트 표면은 세월이 만든 게 아니라 사람이 망치로 두드려 만든 것이다.
- 세인트존스 수도원의 종탑은 벽도 지붕도 아닌, 그 모양만으로 혼자 서 있는 콘크리트판이다.

의자에서 시작된 손
1925년, 스물세 살 마르셀 브로이어는 데사우의 바우하우스 목공 공방에서 자전거 핸들을 만지작거리다 질문 하나를 떠올렸다 — 왜 의자는 나무여야 하는가. 그 답이 구부린 강철 파이프에 캔버스 천을 씌운 의자, 뒷날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의 이름을 빌려 "바실리 의자"로 불리는 물건이었다. 다리도 팔걸이도 등받이도 전부 가는 관이 이어지며 만든다 — 목재 의자라면 짜맞춤과 못이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다.

실내건축을 공부한 사람의 눈으로 보면 이 의자에서 놀라운 건 가벼움이 아니라 사람이 앉는 지점의 계산이다. 등받이 천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각도, 팔걸이 높이가 딱 팔꿈치에서 멎는 지점 — 나무를 깎던 목수의 손이 아니라 사람의 관절을 재던 손이 만든 물건이다. 브로이어는 평생 가구를 먼저 만들고 건물을 나중에 지은 사람이었고, 그 순서는 그의 건축에 그대로 남았다.
그로피우스의 그늘, 그리고 자기 집
1937년 브로이어는 스승 발터 그로피우스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에서 함께 가르치고 함께 설계 사무소를 열었다. 매사추세츠의 집 몇 채를 나란히 지었지만 4년 만에 갈라섰다 — 이유는 공개된 적 없다. 혼자가 된 브로이어가 1948년 코네티컷 뉴캐넌에 지은 자기 집은 그래서 더 눈에 띈다. 침실 동과 거실 동을 완전히 나눠 짧은 다리로만 잇는 평면, 훗날 사람들이 "바이뉴클리어(binuclear)" 평면이라 부르게 되는 구성이었다.
자는 곳과 사는 곳을 한 지붕 아래 두되 동선으로는 갈라놓는다 — 이건 재료나 구조 이야기가 아니라 순전히 생활의 관찰이다. 아이가 낮잠 자는 소리와 손님 치르는 소리가 벽 하나 사이에 있으면 결국 둘 다 못 한다는 걸 아는 사람의 평면이다. 사진으로 보면 외벽은 돌과 목재 널판을 거칠게 섞어 놓아 인위적으로 안 보이려 애쓴 티가 난다.
의자의 팔걸이 높이를 재던 손과 종탑의 무게를 재던 손이 같은 손이었다
강철에서 콘크리트로 옮겨간 손
1958년 파리에 완공된 유네스코 본부는 브로이어가 프랑스 건축가 베르나르 제르퓌스, 구조기술자 피에르 루이지 네르비와 함께 만든 건물이다. 위에서 보면 Y자로 갈라지는 3개의 날개가 가늘어진 콘크리트 다리 위에 얹혀 있다 — 건물 한 채가 통째로 다리를 건너듯 땅에서 들려 있는 모양이다. 표면은 거칠다. 하지만 이 거칢은 콘크리트가 원래 그런 살결이라서가 아니다. 거푸집을 뜯어낸 뒤 사람이 직접 작은 망치로 표면을 두드려 골재를 드러낸 것이다 — 부시해머 콘크리트라 부르는, 손이 두 번 들어간 마감이다. 매끈하게 지을 수 있었는데 일부러 거칠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1961년 미네소타 세인트존스 수도원 성당에서는 이 손이 극단까지 간다. 본당과 떨어진 자리에 종과 십자가를 매단 사다리꼴 콘크리트 판이 혼자 서 있다 — 벽도 지붕도 아닌, 오직 그 모양으로만 서 있는 콘크리트다. 사진으로 보면 본당 파사드 전체가 이 종탑 판 하나를 위해 뒤로 물러난 것처럼 보인다.

차갑다는 말과 견고하다는 말 사이
사진으로만 보면 세인트존스의 종탑 판은 무섭다는 인상부터 준다. 창이 거의 없는 콘크리트 덩어리라는 말을 들으면 더 그렇다. 실제로 브로이어의 후기 건물, 특히 1970년대 뉴욕 브롱크스 발달장애인 센터는 알루미늄 판에 좁은 틈 창만 남겨 준공 당시부터 "감옥 같다"는 말을 들었다. 사람이 살고 일하는 건물에 이렇게까지 표정을 지워도 되는가 — 이 질문은 지금도 브루탈리즘을 볼 때 따라붙는다.
그런데 프랑스 알프스의 스키 리조트 플레인에서 브로이어가 한 일을 보면 답이 조금 달라진다. 그는 콘크리트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지 않고 널빤지 거푸집 자국을 그대로 남겨, 건물이 회색 바위산 사이에서 인공물처럼 튀지 않게 만들었다. 차가움이 아니라 산의 재료로 산 옆에 서겠다는 계산이었던 셈이다. 겨울에 그 표면을 손으로 짚어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여전히 불편한 재료지만, 적어도 이 거칠음에는 이유가 있다.
가구를 만들던 손이 남긴 것
브로이어는 1981년 뉴욕에서 죽을 때까지 자신을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로 소개했다. 둘 중 하나를 앞세운 적이 없다. 오늘 일기 끝에 이 이름을 적어 둔다면, 아마 이런 문장일 것이다 — 의자의 팔걸이 높이를 재던 손과 종탑의 무게를 재던 손이 같은 손이었다고.
매디슨가에 그가 지은 옛 휘트니 미술관 건물은 위층으로 갈수록 조금씩 밖으로 더 내밀며 쌓인다 — 아래층 손님보다 위층 손님에게 하늘을 더 내주겠다는 계산처럼 보인다. 의자 등받이의 각도를 재던 사람다운 배려다. 크고 차가운 재료를 다뤘지만, 지금도 그의 건물 난간을 짚어보면 팔꿈치가 먼저 멎는 높이가 손에 와닿는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바실리 의자는 왜 그런 이름이 붙었나?
브로이어 자신이 붙인 이름이 아니다. 원래 이름은 모델 B3였고, 나중에 제작사가 이 의자를 아꼈던 동료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의 이름을 따 붙였다.
브로이어 건축의 거친 콘크리트 표면은 자연스럽게 생긴 것인가?
아니다. 거푸집을 뗀 뒤 사람이 직접 망치로 두드려 골재를 드러낸 인공 마감이다. 부시해머 콘크리트라 부른다.
브로이어의 건축은 왜 차갑다는 평가를 받나?
창을 최소화하고 표면을 다듬지 않은 후기작 때문이다. 다만 플레인처럼 재료를 주변 환경에 맞춘 사례도 있어 평가가 갈린다.
참고문헌
- Isabelle Hyman, Marcel Breuer, Architect: The Career and the Buildings, Harry N. Abrams, 2001
- Robert F. Gatje, Marcel Breuer: A Memoir, Monacelli Press, 2000
- Marcel Breuer, Sun and Shadow: The Philosophy of an Architect, Dodd, Mead & Company,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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