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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짓는 건축가?/빛과 재료의 장인

카를로 스카르파는 이음새를 숨기지 않았다

by aclstoryji 2026. 7. 9.

평생 건축가로 도면에 서명할 자격이 없었던 그는,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에야 그 자격을 받았다.

먼저 알아둘 세 가지
  • 스카르파는 평생 법적으로 '건축가'라고 서명할 자격이 없었다.
  • 그는 베네치아의 홍수를 막지 않고 그 물을 위한 마당을 설계했다.
  • 그의 마지막은 평생 확인하던 단차 하나를 놓친 계단에서였다.
카를로 스카르파의 대표작 카스텔베키오 박물관(베로나) (Castelvecchio Museum, Verona)Photo by Attributed to Michelino da Besozzo (more probably) or to Stefano da Verona (old attribution)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카를로 스카르파의 고향과 대표작 위치를 표시한 항해지도
건축 여정 — 고향과 대표작이 자리한 곳
여행 계획 — 지도 번호와 같은 순서다

이음새를 감추지 않는 손

손끝으로 벽과 바닥이 만나는 자리를 짚어 본 적이 있다면 안다. 대개는 매끈하게 이어지거나, 걸레받이 하나로 대충 가려져 있다. 카를로 스카르파는 그 자리를 가리지 않았다. 오히려 한 단 내려 앉히거나 홈을 파서, 두 재료가 서로 닿지 않고 그림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만나게 했다.

이걸 도면으로 옮기려면 시공사와 몇 번을 싸워야 했을지, 나는 상상만 해도 피곤해진다.

카를로 스카르파의 대표작 케리니 스탐팔리아 재단(베네치아) (Querini Stampalia Foundation, Venice)Photo by Didier Descouens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건축가라고 서명할 수 없었던 사람

스카르파는 1906년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벨레 아르티 아카데미아에서 공부했다. 이탈리아의 건축사 자격은 폴리테크니코 졸업장이 있어야 나왔고, 그는 그 졸업장이 없었다. 평생 동안 법적으로는 '건축가'라는 직함으로 도면에 서명할 수 없었다.

베네치아 IUAV 대학이 명예 학위를 준 건 1978년, 그가 세상을 떠난 바로 그해였다.

재료끼리 서로 흉내 내지 않게 할 것.
카를로 스카르파의 대표작 카노바 석고미술관(포사뇨) (Gipsoteca Canoviana, Possagno)Photo by seier+seier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베네치아의 유리, 물에 잠기는 마당

1932년부터 1947년까지 그는 무라노의 베니니 유리공방에서 예술감독으로 일했다. 여기서 익힌 건 도면이 아니라 손이었다 — 유리가 식는 속도, 색이 겹치는 순서, 깨지기 직전의 두께.

이후 그가 손댄 재료 목록은 짧지 않다. - 청동과 황동 손잡이, 경첩 - 이스트리아산 석회석과 콘크리트 - 유리와 물 재료끼리 서로 흉내 내지 않게 할 것.

베네치아의 케리니 스탐팔리아 재단(1963) 개조에서는 물을 막지 않았다. 아쿠아 알타(밀물 범람)가 들어오는 뒷마당을 아예 그 물을 위한 정원으로 설계했다. 막을 수 없으면, 받아들이는 쪽을 택한 셈이다.

카스텔베키오, 역사를 들추다

베로나의 카스텔베키오 박물관(1958~1964) 개조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중세 성채, 나폴레옹 시대의 병영, 파시스트 정권의 보수까지 여러 겹의 역사가 쌓인 건물이었다. 스카르파는 그 층위를 지우지 않고 오히려 단면을 잘라 보여주는 쪽을 택했다. 벽돌이 드러난 자리와 새로 친 회벽 사이에는 늘 좁은 틈이 남았다. 이 성의 상징이던 칸그란데 델라 스칼라 기마상은 전시실 한복판, 캔틸레버로 띄운 콘크리트 받침 위에 놓였다. 사진으로 보면 말과 기수가 허공에 떠 있는 것 같다. 성벽 두께만큼 육중한 건물 안에서, 정작 가장 무거워 보여야 할 그 조각이 가장 가벼워 보이도록 만든 셈이다.

브리온 가족묘지

1968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매달린 산 비토 달티볼레의 브리온 가족묘지는 그의 가장 개인적인 작업으로 꼽힌다. 콘크리트 수로, 연못, 계단식 정원이 얽혀 있고, 어느 모서리 하나 같은 디테일이 반복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정도의 디테일 밀도를 좋아하지 않는다. 물이 고이는 자리마다 이끼가 끼고 줄눈이 갈라지는 걸 감당해야 하는 관리자 입장에서 보면, 이건 아름다움이기 전에 매일의 숙제다. 그럼에도 그 자리에 서면 다르게 느껴질 거라는 걸, 사진만으로 짐작할 수 있다.

센다이의 계단

카를로 스카르파는 1978년 11월, 일본 센다이를 방문하던 중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그 부상으로 세상을 떠났다. 평생 이음새와 단차 하나하나를 손끝으로 확인하던 사람의 마지막이, 확인하지 못한 계단 하나였다는 사실이 오래 남는다.

그는 자신이 설계한 브리온 가족묘지 한쪽 구석에, 아마포에 싸인 채 서 있는 자세로 묻혔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카를로 스카르파는 왜 평생 '건축가'로 서명하지 못했나?

이탈리아의 건축사 자격은 폴리테크니코 졸업장이 있어야 나왔는데, 벨레 아르티 아카데미아 출신인 그에게는 그 자격이 없었다. 1978년 세상을 떠난 해에야 명예 학위를 받았다.

브리온 가족묘지는 지금도 가볼 수 있나?

그렇다. 이탈리아 산 비토 달티볼레에 있으며, 스카르파 자신도 이곳 한쪽에 묻혔다.

참고문헌

  1. Richard Murphy, Carlo Scarpa and Castelvecchio, Butterworth Architecture, 1990
  2. Sergio Los, Carlo Scarpa, Taschen, 1994

글쓴이

실내건축과를 졸업했고, 현재 대한민국의 발전소 관련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공간과 재료를 실무 현장의 눈으로 보며, 발전 설비·플랜트의 기능성과 구조·안전의 관점에서 건축을 읽는다. 또한 여행과 건축 답사를 좋아하지만, 경제적 여건 탓에 자주 떠나지는 못한다. 대신 사진과 도면, 기록을 오래 들여다보고, 직접 가 본 곳에서는 현장에서 느낀 공간 경험을 글에 녹이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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