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건축가로 도면에 서명할 자격이 없었던 그는,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에야 그 자격을 받았다.
- 스카르파는 평생 법적으로 '건축가'라고 서명할 자격이 없었다.
- 그는 베네치아의 홍수를 막지 않고 그 물을 위한 마당을 설계했다.
- 그의 마지막은 평생 확인하던 단차 하나를 놓친 계단에서였다.
Photo by Attributed to Michelino da Besozzo (more probably) or to Stefano da Verona (old attribution)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이음새를 감추지 않는 손
손끝으로 벽과 바닥이 만나는 자리를 짚어 본 적이 있다면 안다. 대개는 매끈하게 이어지거나, 걸레받이 하나로 대충 가려져 있다. 카를로 스카르파는 그 자리를 가리지 않았다. 오히려 한 단 내려 앉히거나 홈을 파서, 두 재료가 서로 닿지 않고 그림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만나게 했다.
이걸 도면으로 옮기려면 시공사와 몇 번을 싸워야 했을지, 나는 상상만 해도 피곤해진다.
Photo by Didier Descouens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건축가라고 서명할 수 없었던 사람
스카르파는 1906년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벨레 아르티 아카데미아에서 공부했다. 이탈리아의 건축사 자격은 폴리테크니코 졸업장이 있어야 나왔고, 그는 그 졸업장이 없었다. 평생 동안 법적으로는 '건축가'라는 직함으로 도면에 서명할 수 없었다.
베네치아 IUAV 대학이 명예 학위를 준 건 1978년, 그가 세상을 떠난 바로 그해였다.
재료끼리 서로 흉내 내지 않게 할 것.
Photo by seier+seier / CC BY 2.0 / Wikimedia Commons베네치아의 유리, 물에 잠기는 마당
1932년부터 1947년까지 그는 무라노의 베니니 유리공방에서 예술감독으로 일했다. 여기서 익힌 건 도면이 아니라 손이었다 — 유리가 식는 속도, 색이 겹치는 순서, 깨지기 직전의 두께.
이후 그가 손댄 재료 목록은 짧지 않다. - 청동과 황동 손잡이, 경첩 - 이스트리아산 석회석과 콘크리트 - 유리와 물 재료끼리 서로 흉내 내지 않게 할 것.
베네치아의 케리니 스탐팔리아 재단(1963) 개조에서는 물을 막지 않았다. 아쿠아 알타(밀물 범람)가 들어오는 뒷마당을 아예 그 물을 위한 정원으로 설계했다. 막을 수 없으면, 받아들이는 쪽을 택한 셈이다.
카스텔베키오, 역사를 들추다
베로나의 카스텔베키오 박물관(1958~1964) 개조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중세 성채, 나폴레옹 시대의 병영, 파시스트 정권의 보수까지 여러 겹의 역사가 쌓인 건물이었다. 스카르파는 그 층위를 지우지 않고 오히려 단면을 잘라 보여주는 쪽을 택했다. 벽돌이 드러난 자리와 새로 친 회벽 사이에는 늘 좁은 틈이 남았다. 이 성의 상징이던 칸그란데 델라 스칼라 기마상은 전시실 한복판, 캔틸레버로 띄운 콘크리트 받침 위에 놓였다. 사진으로 보면 말과 기수가 허공에 떠 있는 것 같다. 성벽 두께만큼 육중한 건물 안에서, 정작 가장 무거워 보여야 할 그 조각이 가장 가벼워 보이도록 만든 셈이다.
브리온 가족묘지
1968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매달린 산 비토 달티볼레의 브리온 가족묘지는 그의 가장 개인적인 작업으로 꼽힌다. 콘크리트 수로, 연못, 계단식 정원이 얽혀 있고, 어느 모서리 하나 같은 디테일이 반복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정도의 디테일 밀도를 좋아하지 않는다. 물이 고이는 자리마다 이끼가 끼고 줄눈이 갈라지는 걸 감당해야 하는 관리자 입장에서 보면, 이건 아름다움이기 전에 매일의 숙제다. 그럼에도 그 자리에 서면 다르게 느껴질 거라는 걸, 사진만으로 짐작할 수 있다.
센다이의 계단
카를로 스카르파는 1978년 11월, 일본 센다이를 방문하던 중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그 부상으로 세상을 떠났다. 평생 이음새와 단차 하나하나를 손끝으로 확인하던 사람의 마지막이, 확인하지 못한 계단 하나였다는 사실이 오래 남는다.
그는 자신이 설계한 브리온 가족묘지 한쪽 구석에, 아마포에 싸인 채 서 있는 자세로 묻혔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카를로 스카르파는 왜 평생 '건축가'로 서명하지 못했나?
이탈리아의 건축사 자격은 폴리테크니코 졸업장이 있어야 나왔는데, 벨레 아르티 아카데미아 출신인 그에게는 그 자격이 없었다. 1978년 세상을 떠난 해에야 명예 학위를 받았다.
브리온 가족묘지는 지금도 가볼 수 있나?
그렇다. 이탈리아 산 비토 달티볼레에 있으며, 스카르파 자신도 이곳 한쪽에 묻혔다.
참고문헌
- Richard Murphy, Carlo Scarpa and Castelvecchio, Butterworth Architecture, 1990
- Sergio Los, Carlo Scarpa, Taschen, 1994
'집 짓는 건축가? > 빛과 재료의 장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시구르드 레베렌츠, 벽돌을 자르지 않은 사람의 불편한 창 (0) | 2026.08.20 |
|---|---|
| 루이스 바라간은 벽으로 빛에 색을 입혔다 (4) | 2026.07.09 |
| 구마 겐고는 지는 건축을 짓는다 (0) | 2026.07.08 |
| 시게루 반은 종이로 지붕을 지었다 (3) | 2026.07.04 |
| 피터 줌터는 통나무를 불태워 예배당을 지었다 (0) | 2026.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