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은 모욕으로 던져졌지만, 발전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보기엔 절반만 틀렸다.
- 왕세자가 이 건물을 원자력 발전소에 비유한 말이, 그 유명한 '괴물 같은 종기' 발언과 같은 연설에서 나왔다는 건 잘 알려지지 않았다.
- 가장 보수적인 의료 기관이 가장 급진적인 건축가를 고른 이유는 따로 있다.
- 학생 기숙사 하나를 계단식으로 지은 결정이 방 하나의 방향 때문이었다는 건 도면을 보기 전엔 짐작하기 어렵다.
이 글의 순서
Photo by Elisa.rolle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못 감춘 배관
국립극장 남쪽 벽 사진을 처음 봤을 때, 나는 극장보다 먼저 환기구를 봤다. 콘크리트 층 사이로 삐져나온 덕트와 배관 라인이 발전소 터빈실 천장에서 매일 마주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설비를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 방식이 낯설지 않았다. 사진 한 장으로 판단하기엔 이르지만, 적어도 이 건물이 뭔가를 숨기려 하지 않는다는 건 분명해 보였다.
1984년 찰스 왕세자는 영국건축가협회 150주년 기념 연설에서 이 건물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런던 한복판에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아주 영리한 방법이라고, 아무도 항의하지 않게 지었다고. 그 말은 칭찬이 아니었다. 하지만 발전소에서 배관과 설비를 매일 들여다보는 사람 입장에서, 그 비유는 절반만 맞고 절반은 틀렸다.
Photo by Unknown / CC BY-SA 1.0 / Wikimedia Commons왕세자의 말, 어디를 겨눴나
같은 연설에서 왕세자는 내셔널 갤러리 확장 안을 두고 "사랑하는 오랜 친구의 얼굴에 난 괴물 같은 종기"라고 했다. 그 문장이 훨씬 유명해졌지만, 국립극장을 겨눈 발전소 비유가 더 오래 따라다녔다. 지어진 지 10년도 안 된 건물에, 왕세자라는 권위가 실린 조롱이 붙었다. 사진으로 보면, 적어도 그 조롱이 건물의 겉모습만 보고 나온 말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라스던 본인은 이 발언에 대해 공개적으로 크게 대응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대신 그는 이후에도 콘크리트를 감추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발전소라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 다만 그 말을 던진 사람이 그걸 흠으로 여겼을 뿐이다.
Photo by User:Justinc / CC BY-SA 2.0 / Wikimedia Commons콘크리트로 사람 사는 곳을 먼저 실험하다
라스던은 처음부터 건축가로 시작하지 않았다. 건축협회 학교를 나온 뒤 웰스 코츠 밑에서 일하다, 1937년 베르톨트 루베트킨의 텍턴 그룹에 합류했다. 하이포인트 II의 설계에 참여하며 배운 건, 콘크리트를 조각처럼 다루는 법이었다. 그가 독립해 첫 이름을 알린 건 1957년 베스널그린의 킬링 하우스다. 십자 모양 평면의 아파트 타워로, 발코니마다 다른 방향을 보게 배치했다. 노동자 계층을 위한 공영 주택에 그렇게까지 공을 들인 건 당시로선 드문 선택이었다. 지어질 당시엔 실험적이라는 평을 들었고, 이후 관리 부실로 오래 방치됐다가 다시 개보수를 거쳤다. 국립극장과 왕립내과의사회를 짓기 전에, 그는 이미 콘크리트로 사람 사는 곳을 실험하고 있었던 셈이다.
Photo by Bryn Holmes / CC BY-SA 2.0 / Wikimedia Commons지층을 흉내 낸 게 아니다
라스던은 국립극장의 매스를 계단식으로 쌓아 올리며 이걸 지질학적 지층에 비유했다. 콘크리트 판이 수평으로 겹겹이 얹힌 모양은, 실제로 강가 절벽의 퇴적층과 닮았다. 이 노출 콘크리트는 거푸집 널빤지의 결이 그대로 찍히도록 타설됐고, 빗물이 흘러내리는 자리마다 색이 진해졌다.
국립극장이 그렇게 지어진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 템스강변의 낮은 스카이라인과 맞추려는 의도
- 관객이 여러 층에서 강을 내려다보게 하려는 동선
- 무대 뒤 작업 공간을 층별로 분리해 소음과 동선을 가르려는 실용적 이유
이 세 가지가 겹쳐 만들어진 게 지금의 매스다. 지층처럼 보이는 건 우연이 아니라 결과였다.
Photo by Matt Biddulph / CC BY-SA 2.0 / Wikimedia Commons의사들의 집, 그리고 방 하나의 방향
왕립내과의사회는 영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기관 중 하나로 꼽힌다. 1964년 그들이 새 본부 건축가로 고른 사람이 라스던이었다는 사실은, 지금 봐도 이상하다. 라스던은 흰 타일 벽과 노출 콘크리트를 함께 썼다. 리젠트 공원의 정원과 마주한 곡선 벽에, 회의실은 위로 매달린 상자처럼 얹었다. 결과물은 지금 영국에서 가장 높은 등급인 1등급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복도 폭과 회의실의 높이는 격식보다 채광을 우선한 흔적이 남아 있다. 의사들이 실제로 이 대비를 어떻게 느꼈는지는, 남아 있는 기록만으로는 알기 어렵다.
이스트앵글리아대학교의 학생 기숙사는 지구라트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라스던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방을 늘어놓는 대신, 건물 전체를 계단식으로 쌓아 각 방이 남쪽과 정원을 향하게 했다. 위층으로 갈수록 건물이 뒤로 물러나, 아래층 지붕이 위층의 테라스가 된다. 발전소 현장에서 나는 배관 하나의 방향이 유지보수 동선 전체를 좌우하는 걸 여러 번 봤다. 방 하나의 방향을 위해 건물 전체의 구조를 계단식으로 바꾼 결정은, 그 규모의 무모함이 나에게는 낯설지 않다.
이스트앵글리아대의 지구라트는 완공 이후에도 계속 손이 갔다. 일부 동은 방수 문제로 개보수를 거쳤고, 학교 측이 철거를 검토했다가 반대에 부딪혀 남긴 동도 있다고 전해진다. 계단식 매스가 만드는 그림자와 시야 문제는 준공 당시부터 지적됐다. 아름다움을 위해 치른 값이었다.
발전소라는 말이 남긴 것
라스던은 1977년 왕립건축가협회 로열 골드 메달을 받았다. 프리츠커상 같은 국제 상은 아니지만, 영국 건축계 안에서는 가장 무거운 인정이다. 그해 심사평은 그의 건물들이 "풍경처럼 세워졌다"고 적었다. 지층을 흉내 낸 극장, 정원과 마주 앉은 협회 건물, 계단처럼 쌓은 기숙사. 셋 다 같은 말로 설명된다.
국립극장은 1994년 2등급 특급 문화재로 지정됐다. 왕세자의 조롱이 있고 10년 뒤였다. 발전소라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 다만 그 말을 던진 사람이 그걸 흠으로 여겼을 뿐이다.
런던 한복판에 원자력 발전소를 지을 수 있는 시대가 다시 올까?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 발전 설비 하나를 도심에 앉히려면 지금도 부지 선정에만 몇 년이 걸린다. 그런데 라스던은 그 반발을 이미 한 번 겪었고, 결국 문화재가 됐다. 다만 라스던이 지은 건 발전소가 아니라, 발전소처럼 정직한 건물이었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데니스 라스던이 프리츠커상을 받았나?
아니다. 그는 1977년 영국왕립건축가협회의 로열 골드 메달을 받았다. 국제 상은 아니지만 영국 건축계 안에서는 가장 무거운 인정으로 꼽힌다.
찰스 왕세자의 '괴물 같은 종기' 발언은 국립극장을 두고 한 말인가?
아니다. 그 표현은 내셔널 갤러리 확장안을 겨눴다. 같은 연설에서 국립극장은 원자력 발전소에 비유됐다.
참고문헌
- William J. R. Curtis, Denys Lasdun: Architecture, City, Landscape, Phaidon, 1994
- Historic England, Royal National Theatre List Entry (Grade II* 등재 기록)
- Historic England, Royal College of Physicians List Entry (Grade I 등재 기록)
- HRH The Prince of Wales, RIBA 150주년 기념 연설, 1984년 5월 30일
- Royal Institute of British Architects, Royal Gold Medal 1977 수상자 기록: Denys Lasdun
'집 짓는 건축가? > 도시와 논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다니엘 리베스킨트, 그라운드 제로에서 이기고 밀려난 사람 (0) | 2026.08.27 |
|---|---|
| 필립 존슨, 유리집의 투명함으로 가릴 수 없는 것 (1) | 2026.08.19 |
| 로버트 벤투리, 노인 아파트에 가짜 안테나를 세우다 (2) | 2026.07.05 |
| 알도 로시, 없어지려고 지은 극장 (3) | 2026.07.05 |
| 안토니 가우디 — 가우디를 태우지 않은 택시들 (0) | 2026.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