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곡선 탑이 투우장 중심을 축으로 돌 때, 나는 배관 도면에서 분기점을 찾는 기분이 들었다
- 살모나는 르 코르뷔지에 아틀리에를 거쳐 돌아와 보가타 벽돌을 택했다.
- 토레스 델 파르케의 곡선은 투우장 중심을 축으로 산을 받아 적었다.
- 물이 흐르는 공간은 아름다우면서도 관리의 수고를 의도적으로 남긴 것처럼 보인다.
이 글의 순서

투우장 옆에 세 개의 곡선이 서 있다
토레스 델 파르케 사진을 처음 오래 들여다봤을 때, 나는 탑보다 먼저 계단식 발코니의 그림자를 봤다. 세 채가 투우장 산타마리아의 원형을 축으로 조금씩 비틀리며 올라가고, 발코니가 한 단씩 물러나면서 산 쪽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발전소 계통도에서 한 배관을 따라가다 다른 층의 분기관으로 빠져버린 기분과 비슷했다. 건물 한 채가 접었다 편 종이벌집 같았다.
로헬리오 살모나가 1964년부터 설계해 1970년경 완공한 이 주거 단지다. 보가타 중심, 독립기념공원과 맞닿은 가파른 땅에 294가구를 넣었다. 가장 높은 탑이 37층, 약 117미터. 그는 이곳에 살면서 생을 마쳤다. 사진으로만 봤지만, 곡선이 산을 거부하지 않고 산의 윤곽을 받아 적은 듯한 느낌이 오래 남았다.
Photo by Jose David Parra from Bogota, Colombia / CC BY-SA 2.0 / Wikimedia Commons르 코르뷔지에의 아틀리에를 나와 벽돌을 택하다
파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보가타로 옮긴 그는 1948년 보가타초 사건 이후 다시 파리로 가 르 코르뷔지에 아틀리에에서 거의 십 년을 보냈다. 샹디가르 도면에도 손을 댔다. 그런데 1958년 콜롬비아로 돌아와서는 콘크리트의 보편 언어 대신 보가타의 붉은 벽돌을 골랐다.
지역 점토와 장인의 손맛을 존중했다는 기록이 많다. 벽돌은 그에게 장식이 아니라 지형과 기후를 받아들이는 피부였다. 나는 발전소 현장에서 매일 마주치는 콘크리트 벽면의 이음매를 떠올린다. 그 이음매가 숨기지 않고 드러날 때 건물이 솔직해 보이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다.
배관 하나를 놓치면 계통 전체가 흔들리듯, 벽돌 한 켜를 놓치면 산과의 대화가 끊긴다.
Photo by Ela Mendoza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물이 흐르는 자리, 유지가 어려운 자리
살모나는 물을 자주 끌어들였다. 수로, 거울 같은 수면, 작은 연못. 비르힐리오 바르코 공공도서관(2001년 개관)은 삼각형 땅에 나선 형태로 놓이고, 주변을 물이 감싼다. 사진으로 보면 벽돌과 물이 나란히 빛난다. 그런데 그 물은 관리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발전소에서도 배관 누수 한 방울이 전체 계통을 흔든다. 살모나의 물도 비슷해 보인다. 아름다움을 위해 유지의 수고를 의도적으로 남겨 둔 것처럼. 확인되지 않은 일화들이 떠돌지만, 확실한 건 물이 공간의 리듬을 바꾸는 장치로 쓰였다는 점이다.
- 토레스 델 파르케: 곡선과 계단식 발코니로 산과 공원을 연결
- 카사 데 우에스페데스 일루스트레: 카르타헤나 만의 옛 요새 자리에 일곱 개의 중정
- 국립종합기록보관소: 벽돌 격자창으로 빛과 공기를 조절
- 비르힐리오 바르코 도서관: 나선과 물이 공원을 끌어안음
카르타헤나의 중정에서 시간이 갈라진다
카사 데 우에스페데스 일루스트레(1978–1982)는 산 후안 데 만사니요 요새 자리에 놓였다. 산호석 벽과 벽돌 바닥, 일곱 개의 중정이 이어진다. 사진으로 보면 각각의 중정이 다른 그늘과 다른 식물을 품고 있다. 한 중정에서 다음 중정으로 넘어갈 때 시선이 끊기지 않고 꺾인다.
식민지 요새와 선콜럼버스 공간 감각을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고들 한다. 나는 그 중정들을 보며 발전소 터빈실의 동선을 생각했다. 기능이 분명한 통로인데도 빛이 들어오는 각도에 따라 걸음이 달라지는 경험. 살모나는 그 경험을 주택 스케일로 옮겨 놓은 듯하다.
벽돌이 산을 닮아 보일 때
로헬리오 살모나의 건축을 찬양만 하기는 어렵다. 공공 프로젝트 중에는 예산 문제로 미완성인 채 남은 것도 있고, 물이 많은 건물은 시간이 지나며 관리 부담이 커진다. 곡선과 중정이 사진발은 좋지만, 실제 거주자가 느끼는 소음이나 동선의 불편은 기록으로 잘 남지 않았다.
그래도 그가 남긴 것은 분명하다. 보가타의 붉은 벽돌이 산의 윤곽을 받아 적을 수 있다는 사실, 물이 건물을 통과하며 시간을 느리게 만든다는 감각. 나는 사진과 도면을 보며 그 이음매를 계속 따라간다. 배관 하나를 놓치면 계통 전체가 흔들리듯, 벽돌 한 켜를 놓치면 산과의 대화가 끊긴다.
그가 살던 토레스 델 파르케의 발코니에서, 어느 날 오후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불었을까. 그 질문이 남는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로헬리오 살모나가 벽돌을 주로 쓴 이유는 뭔가?
보가타 지역의 점토와 전통 벽돌 공법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르 코르뷔지에 아래에서 배운 보편 언어 대신 지형과 기후에 맞는 재료를 택했다. 벽돌은 그에게 장식이 아니라 산과 도시를 연결하는 피부였다.
토레스 델 파르케는 어디에 있고 언제 지었나?
보가타 중심, 산타마리아 투우장과 독립기념공원 옆에 있다. 1964년 설계를 시작해 1970년경 완공했다. 세 개의 곡선 탑이 투우장 중심을 축으로 배치됐다.
살모나는 르 코르뷔지에와 어떤 관계였나?
1949년경부터 1957년까지 파리 아틀리에에서 일했다. 샹디가르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콜롬비아로 돌아온 뒤에는 스승의 보편주의에서 벗어나 지역 재료와 지형을 중심에 두었다.
비르힐리오 바르코 도서관의 특징은 뭔가?
2001년 개관한 공공도서관으로, 삼각형 땅에 나선 형태로 놓였다. 주변을 물과 공원이 감싸고, 벽돌과 콘크리트가 함께 쓰였다. 시몬 볼리바르 공원과 연결된다.
살모나 건축에서 물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물을 공간의 리듬을 바꾸는 장치로 썼다. 수로와 수면이 빛과 소리를 바꾸고, 걷는 속도를 늦춘다. 다만 유지관리가 까다로운 점도 함께 남겼다.
참고문헌
- Fundación Rogelio Salmona, 공식 프로젝트 아카이브 및 전기 자료, fundacionrogeliosalmona.org
-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The architectural legacy of Rogelio Salmona: an ethical, political, social and poetic manifesto, Tentative List 6600
- Ricardo L. Castro, Rogelio Salmona, Villegas Editores, 1998/2003
- Germán Téllez, Rogelio Salmona: Arquitectura y poética del lugar, Editorial Escala, 1991
- Alvar Aalto Foundation, Alvar Aalto Medal recipients list, 2003 Salmona 수상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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