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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짓는 건축가?/빛과 재료의 장인

시구르드 레베렌츠, 벽돌을 자르지 않은 사람의 불편한 창

by aclstoryji 2026. 8. 20.

두꺼운 줄눈은 벽돌의 오차를 받아주었고, 성 페트리 교회의 유리는 창틀도 없이 벽 바깥에서 버텼다.

먼저 알아둘 세 가지
  • 시구르드 레베렌츠의 후기 교회에서 두꺼운 줄눈은 서툰 시공의 흔적이 아니라 벽돌을 자르지 않기 위한 설계 수단이었다.
  • 스톡홀름 삼림묘지는 레베렌츠의 단독작이 아니며, 아스플룬드와의 역할은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달라졌다.
  • 성 페트리 교회의 유리는 보통 창처럼 벽 안에 끼워지지 않았고, 외벽 쪽에서 금속 고정구에 붙잡혔다.
건축가 시구르드 레베렌츠Photo by Arkitekt Bernt Nyberg 1927-1978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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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눈이 벽돌보다 먼저 앞으로 나왔다

성 마르코 교회의 벽을 가까이 찍은 사진을 보면 나는 벽돌보다 먼저 몰탈을 본다. 보통 줄눈은 벽돌 사이에서 얌전히 물러나 있어야 하는데, 시구르드 레베렌츠의 벽에서는 회색 몰탈이 가장자리를 밀고 나와 손가락으로 대충 눌러놓은 반죽처럼 남아 있다. 발전소 현장에서 케이블 트레이나 배관 지지대의 간격이 몇 밀리미터만 어긋나도 다시 줄을 띄우고 수평을 재는 내 눈에는, 이 벽이 처음부터 잘못 쌓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오래 보면 이상하게 그 어긋남이 무너지지 않는다.

레베렌츠는 후기 교회 작업에서 벽돌을 현장 치수에 맞춰 잘라내기보다 온전한 단위로 사용하는 원칙을 밀어붙였다. 곡선과 모서리, 개구부가 벽돌의 정수배로 떨어지지 않을 때는 줄눈의 두께와 배열을 조정해 차이를 받아냈다. 벽돌을 자르지 않았다는 말은 단순한 절약이나 재료 숭배가 아니다. 규격품의 고집을 설계와 시공이 함께 떠안았다는 뜻이다.

나는 칼같이 맞아떨어져야 마음의 안정을 찾는 성격이라 이런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도면의 치수와 현장의 결과가 어긋나면 어느 쪽이 틀렸는지부터 찾고 싶어진다. 레베렌츠는 그 틈을 오류로 지우지 않고 줄눈 속에 눌러 담았다. 마치 작은 오차들을 회색 반죽에 절여 벽 전체의 표정으로 바꾼 것 같다.

시구르드 레베렌츠의 대표작 비외르크하겐 성 마르코 교회 (St. Mark's Church, Björkhagen)Photo by Arild Vågen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문을 열었는데 입구가 끝나지 않는다

스톡홀름 비외르크하겐의 성 마르코 교회는 한눈에 중심이 잡히는 건물이 아니다. 목재 현관을 지나 어두운 전실로 들어가고, 다시 방향을 틀어야 예배 공간이 나타난다. 사진과 평면을 번갈아 보면 입구가 사람을 곧장 제단 앞으로 밀어 넣지 않는다는 점이 분명하다. 잠시 멈추고 눈이 어둠에 익을 시간을 요구한다.

실내에서는 벽돌이 벽에서 끝나지 않는다. 바닥으로 내려오고, 천장으로 넘어가며, 낮은 단과 가구 주변까지 이어진다. 재료의 종류가 적어 단순할 것 같지만 몸이 읽어야 할 경계는 오히려 많다. 바닥의 미세한 경사, 두꺼워졌다 얇아지는 줄눈, 낮게 매달린 조명, 벽에 깊이 박힌 작은 개구부가 발걸음을 조금씩 늦춘다.

유지관리의 눈으로 보면 마냥 낭만적이지는 않다.
- 거친 줄눈은 먼지와 손때가 머물 자리를 많이 만든다.
- 바닥까지 이어진 벽돌은 마모와 오염의 흔적을 숨기지 않는다.
- 어두운 실내는 조명 하나가 꺼져도 공간의 균형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레베렌츠는 늙고 닳는 일을 결함처럼 감추려 하지 않았다.

사진 속에서 프레임이 사라질수록 관리자의 점검 항목은 사라지지 않고 벽 바깥으로 이동한다.
시구르드 레베렌츠의 대표작 삼림묘지 부활의 예배당 (Chapel of Resurrection, Woodland Cemetery)Photo by Unknown / CC BY-SA 2.5 / Wikimedia Commons

시구르드 레베렌츠는 묘지에서 길부터 그렸다

그의 이름을 후기 벽돌 교회만으로 기억하면 긴 앞부분이 잘려나간다. 레베렌츠는 구나르 아스플룬드와 함께 스톡홀름 남부묘지 국제 설계공모에 당선되었고, 훗날 삼림묘지라 불린 이 장소의 조경과 진입 공간을 오랫동안 다듬었다. 두 사람이 모든 부분을 똑같이 나누어 설계한 것은 아니다. 아스플룬드는 삼림 예배당과 후기 화장장에 중심적으로 관여했고, 레베렌츠는 풍경과 길, 부활의 예배당, 진입부와 명상의 언덕에 자신의 몫을 남겼다.

1925년에 완공된 부활의 예배당은 후기 교회와 생김새가 전혀 다르다. 가느다란 고전주의 기둥이 전면에 서 있고, 장례 행렬의 진입과 퇴장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조직된다. 죽은 이를 데리고 들어온 사람이 같은 문으로 일상에 되돌아가지 않게 한 것이다. 건물의 정면보다 사람의 움직임이 의식을 완성한다.

발전소에서도 작업자는 설비만 보지 않는다. 어느 문으로 들어가고, 비상시에 어디로 빠지며, 무거운 부품을 어떤 경로로 반출할지를 함께 본다. 레베렌츠가 묘지에서 다룬 길은 생산 설비의 동선과 목적은 다르지만, 몸의 순서를 먼저 설계한다는 점에서는 낯설지 않다. 슬픔에도 동선이 있다.

시구르드 레베렌츠의 대표작 스톡홀름 삼림묘지 (The Woodland Cemetery)Photo by Wdzinc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건축을 떠나 창문을 만들던 시간이 있었다

레베렌츠의 경력에는 건축가가 건물을 거의 짓지 않고 문과 창의 부속을 만들던 시기가 끼어 있다. 그는 한동안 설계 실무에서 물러나 공장을 운영하며 창호와 건축 철물을 개발했다. 이 대목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특이한 이력이라서가 아니다. 말년의 교회에서 문짝, 경첩, 손잡이, 유리 고정 방식이 건물 전체만큼 집요하게 다뤄진 까닭을 짐작하게 하기 때문이다.

보통 창은 벽의 구멍을 반듯하게 정리한다. 프레임이 거친 단면을 덮고, 물을 막고, 유리를 고정하며, 실내와 외부의 접점을 하나의 제품처럼 마감한다. 레베렌츠는 창호를 누구보다 잘 알았던 사람인데도 후기에는 그 익숙한 정리를 거꾸로 벗겨냈다. 기술을 몰라서 거칠어진 것이 아니라, 너무 잘 알아서 어디까지 없앨 수 있는지 시험한 쪽에 가깝다.

이런 태도는 부럽다. 나는 현장에서 덮개가 빠진 단자함이나 노출된 접합부를 보면 먼저 보호 조치와 점검 주기를 떠올린다. 레베렌츠는 접합부를 감추는 대신, 접합이라는 사건 자체가 벽에 남도록 했다. 건물이 완성된 뒤에도 시공 중인 얼굴을 조금 간직하게 한 것이다.

유리를 왜 벽 바깥에 매달았을까?

클리판의 성 페트리 교회에서는 창이 창답게 보이지 않는다. 실내에서 보면 벽돌 개구부 안쪽에 깊은 턱과 프레임이 없고, 유리는 벽 바깥쪽에서 금속 고정구에 눌린다. 그래서 내부에는 유리의 두께보다 뚫린 구멍과 벽체의 깊이가 먼저 드러난다. 창이라기보다 어두운 벽에 외부의 밝기를 얇게 붙여놓은 것 같다.

사진으로는 대담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발전소 현장에서 실링과 체결부를 점검하는 버릇으로 보면 마음 한구석이 편하지 않다. 비, 바람, 온도 변화에 노출되는 유리 가장자리와 금속 고정부를 왜 굳이 밖으로 내보냈을까. 실제 성능 결함을 단정할 근거는 없지만, 일반적인 창호가 제공하는 보호와 교체의 논리를 일부러 비껴간 디테일임은 분명하다.

나는 이 창을 무조건 찬양하지 못한다. 건축가가 의도한 원시적인 벽의 감각은 이해하지만, 누군가는 사다리를 놓고 외부 고정구와 실링 상태를 살펴야 한다. 사진 속에서 프레임이 사라질수록 관리자의 점검 항목은 사라지지 않고 벽 바깥으로 이동한다. 아름다움이 없어지지 않은 책임을 다른 면으로 넘겨놓은 셈이다.

반듯함을 버리고도 벽은 서 있었다

시구르드 레베렌츠의 건축은 한 가지 모습으로 묶이지 않는다. 삼림묘지에서는 길과 언덕으로 장례의 순서를 만들었고, 부활의 예배당에서는 고전주의의 기둥을 세웠으며, 말년의 두 교회에서는 벽돌과 몰탈, 철과 유리를 거의 가공하지 않은 얼굴로 맞붙였다. 그의 변화는 유행을 따라 외피를 바꾼 것이라기보다, 건축을 이루는 최소 단위로 점점 더 가까이 내려간 과정처럼 보인다.

나는 그의 벽돌을 보며 정확성에 대한 내 습관을 조금 의심한다. 모든 것이 반듯해야 안전한 것은 맞지만, 반듯해 보인다고 모두 제대로 작동하는 것도 아니다. 레베렌츠의 두꺼운 줄눈은 오차를 숨기지 않고 받아냈고, 잘리지 않은 벽돌은 시공자의 판단을 벽 표면에 남겼다. 다만 그 자유가 창의 외부 고정처럼 관리와 성능의 부담을 낳는 순간에는 계속 질문해야 한다.

그는 완벽하게 맞춘 벽을 만들지 않았다. 대신 맞지 않는 것들이 어떻게 함께 버틸지를 끝까지 지켜봤다. 성 페트리 교회의 유리 한 장은 오늘도 벽 바깥에서 금속 클립에 눌린 채 비를 맞는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시구르드 레베렌츠는 왜 벽돌을 자르지 않았나?

후기 교회에서 그는 벽돌을 가공된 표면재가 아니라 크기와 무게를 가진 기본 단위로 다뤘다. 치수가 맞지 않는 부분은 벽돌을 절단하기보다 줄눈의 두께와 배열을 조정해 해결했다.

성 마르코 교회와 성 페트리 교회는 무엇이 다른가?

두 교회 모두 거친 벽돌과 어두운 빛을 사용하지만 공간의 조직은 다르다. 성 마르코 교회는 여러 동과 중정, 굴절된 진입이 두드러지고, 성 페트리 교회는 중심에서 비껴난 기둥과 십자형 철골, 외부에 고정한 유리가 강한 인상을 만든다.

성 페트리 교회의 창은 정말 창틀이 없는가?

일반적인 프레임을 벽체 개구부에 끼우는 방식과 다르다. 유리를 외벽 쪽에 대고 금속 고정구로 붙잡아 실내에서는 벽의 거친 개구부와 두께가 그대로 보이게 했다.

삼림묘지는 시구르드 레베렌츠의 단독 작품인가?

아니다. 삼림묘지는 레베렌츠와 구나르 아스플룬드가 공동으로 공모에 당선된 장기 프로젝트다. 이후 건물과 조경의 역할이 나뉘었으며 부활의 예배당과 주요 진입 경관 일부는 레베렌츠가 맡았다.

시구르드 레베렌츠는 왜 말년에 다시 주목받았나?

성 마르코 교회와 성 페트리 교회에서 표준적인 근대건축의 매끈한 마감을 거부하고 재료와 접합을 직접 드러냈기 때문이다. 벽돌, 몰탈, 철골, 유리의 거친 관계는 후대 건축가들에게 강한 영향을 주었다.

참고문헌

  1. Kieran Long, Johan Örn, Mikael Andersson 편, Sigurd Lewerentz: Architect of Death and Life, Park Books·ArkDes, 2021
  2. Janne Ahlin, Sigurd Lewerentz, Architect 1885–1975, Park Books, 2014
  3. Karin Björkquist, Sébastien Corbari 편, Sigurd Lewerentz, Pure Aesthetics: St Mark's Church, Park Books, 2021
  4. Caroline Constant, The Woodland Cemetery: Toward a Spiritual Landscape, Byggförlaget, 1994
  5. Ingrid Campo-Ruiz, Construction as a Prototype: The Novel Approach by Sigurd Lewerentz to Using Building Materials, Especially in Walls and Windows, Construction History 30, 2015
  6. ArkDes, Sigurd Lewerentz: Architect of Death and Life, 전시 및 소장 자료, 2021–2022

글쓴이

실내건축과를 졸업했고, 현재 대한민국의 발전소 관련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공간과 재료를 실무 현장의 눈으로 보며, 발전 설비·플랜트의 기능성과 구조·안전의 관점에서 건축을 읽는다. 또한 여행과 건축 답사를 좋아하지만, 경제적 여건 탓에 자주 떠나지는 못한다. 대신 사진과 도면, 기록을 오래 들여다보고, 직접 가 본 곳에서는 현장에서 느낀 공간 경험을 글에 녹이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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