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벽돌공들은 지붕 밑에 거푸집도 비계도 없이, 강선 한 줄만 보고 벽돌을 올렸다.
- 디에스테의 벽돌공들은 지붕 밑에 아무 틀도 두지 않고 벽돌을 쌓았다.
-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을 건축가라 부르지 않았다.
- 얇은 벽돌 지붕은 수십 년 뒤 정직하게 대가를 요구하기도 한다.
Photo by Nicolas Barriola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벽돌을 공중에 쌓다
벽돌을 쌓아 본 적이 있다면 안다. 한 장을 올리고, 수평을 보고, 다음 장을 올린다. 그 아래에는 늘 뭔가가 받쳐 준다 — 아래 벽돌, 아니면 적어도 거푸집이나 비계. 에라디오 디에스테의 벽돌공들은 그 받침 없이 벽돌을 쌓았다. 지붕이 곡선을 그리며 허공으로 휘어 올라가는 동안, 그 아래에는 아무 틀도 없었다.
얇은 강선 하나로 그은 안내선. 그게 전부였다.
Photo by Mx. Granger / CC0 / Wikimedia Commons가난한 나라의 구조공학
디에스테는 1917년 우루과이 아르티가스에서 태어나 몬테비데오의 국립대학에서 토목공학을 공부하고 1943년 졸업했다. 1955년에는 에우헤니오 몬타녜스와 함께 자신의 회사 디에스테 이 몬타녜스를 차렸다.
우루과이는 콘크리트도 강철도 대부분 수입해야 하는 나라였다. 벽돌은 흙과 손만 있으면 그 자리에서 구웠다. 디에스테가 평생 매달린 재료가 벽돌이었던 건 취향이 아니라 계산이었다.
얇아서 위태로운 게 아니라, 얇은 만큼 돌보지 않으면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아틀란티다의 성당
1960년 완공된 노동자 그리스도 성당은 그의 이름을 건축사에 새긴 건물이다. 벽은 곧게 서지 않는다. 물결치듯 휘어지며 스스로 두께 없이도 서 있을 힘을 얻는다. 지붕은 그 물결의 연장선에서 다시 다른 방향으로 휜다.
디에스테는 이런 구조를 두고 '저항하는 미덕'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재료가 정직하게 힘을 받는 형태를 찾는 일 자체가 윤리적인 선택이라는 뜻이었다. 이 개념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이 사람 편이 됐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계속 그랬다는 걸 인정해야겠다.
창고와 버스 터미널
성당 하나로 그를 기억하면 절반만 아는 셈이다. 그의 작업 목록 대부분은 훨씬 소박하다. - 살토의 버스 터미널(1973) - 카넬로네스의 마사로 곡물 창고(1977) - 주유소 캐노피 몇 곳 성당에 들인 정성과 곡물 창고에 들인 정성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
몇 십 년 뒤, 누수
여기서 정직해야겠다. 얇은 벽돌 셸은 철근을 줄눈 속에 심어 힘을 보강하는데, 그 철근이 물을 만나면 녹슨다. 시공 초기엔 감탄을 자아내던 지붕이 수십 년 뒤엔 줄눈을 타고 스며든 빗물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사례가 실제로 보고된다.
발전 설비 배관을 점검하다 보면 철근이나 강재가 콘크리트·모르타르 속에서 녹스는 문제를 자주 마주친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속에서 부피가 팽창하며 균열을 밀어내는 그 과정이, 디에스테의 벽돌 지붕에서도 똑같이 벌어졌을 것이다. 문득 예전 현장에서 봤던 배관 보온재 밑 부식 자국이 떠올랐다 — 상관없는 기억인데 자꾸 겹쳐 보였다.
그렇다고 그의 원칙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얇아서 위태로운 게 아니라, 얇은 만큼 돌보지 않으면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그 차이를 그의 잘못으로 돌리긴 어렵다.
그는 왜 스스로를 기술자라 불렀나?
디에스테는 죽을 때까지 자신을 건축가라 부르지 않았다. 기술자, 혹은 벽돌공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했다. 겸손이 아니라 정확한 자기 규정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2000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아틀란티다의 노동자 그리스도 성당은 지금까지 같은 교구의 미사를 받아내고 있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디에스테의 벽돌 셸은 왜 거푸집이 필요 없었나?
벽돌을 강선으로 이은 안내선을 따라 직접 쌓아 올려, 마르기 전 모르타르의 초기 접착력과 곡면 자체의 자립성으로 지지했기 때문이다.
노동자 그리스도 성당은 지금도 쓰이고 있나?
그렇다. 1960년 완공된 이 성당은 지금도 아틀란티다 지역 교구의 미사 장소로 쓰인다.
참고문헌
- Stanford Anderson (ed.), Eladio Dieste: Innovation in Structural Art, Princeton Architectural Press, 2004
- Remo Pedreschi, The Engineer's Contribution to Contemporary Architecture: Eladio Dieste, Thomas Telford, 2000
- Eladio Dieste, 강연 원고 '저항하는 미덕' 관련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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