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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짓는 건축가?/빛과 재료의 장인

구마 겐고는 지는 건축을 짓는다

by aclstoryji 2026. 7. 8.

화려한 기둥으로 시작한 그의 건축은, 그 건물이 장례식장이 된 뒤 완전히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먼저 알아둘 세 가지
  • 그는 못 하나 안 쓰는 전통 이음을 건물 파사드 크기로 키웠다.
  • 거품경제 과시욕의 상징이던 그의 건물은, 지금 장례식장으로 쓰인다.
  • 자하 하디드의 설계가 백지화된 뒤, 그 경기장은 구마 겐고에게 돌아갔다.
구마 겐고의 대표작 M2 빌딩(도쿄) (M2 Building, Tokyo)Photo by Wiiii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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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없이 끼우다

나무 막대 몇 개를 서로 어긋물려 끼우기만 하면 못이나 접착제 없이도 격자가 만들어지는 전통 이음이 있다. 치도리라 불리는 이 방식은 손끝으로 밀면 삐걱대긴 해도 잘 빠지지 않는다. 구마 겐고는 이 장난감 같은 이음을 실제 건물의 파사드 크기로 키웠다.

못을 안 쓴다고 약한 게 아니라는 걸, 그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구마 겐고의 대표작 스톤 뮤지엄(나스) (Stone Museum, Nasu)Photo by Wiiii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거대한 기둥, 그리고 조롱

1991년, 그는 도쿄에 M2 빌딩을 지었다. 거대한 이오니아식 기둥이 건물 정면을 뚫고 솟아 있는 이 건물은 거품경제 말기 일본 건축의 과잉을 상징하는 사례로 두고두고 언급됐다. 평단의 반응은 싸늘했다.

거품이 꺼진 뒤 몇 년간, 도쿄에서 그에게 들어오는 일감은 거의 없었다.

한때 거품경제의 과시욕을 상징하던 건물이, 지금은 죽음을 다루는 가장 조용한 용도로 쓰이고 있는 셈이다.
구마 겐고의 대표작 대나무 담장집(베이징) (Great (Bamboo) Wall House, Beijing)Photo by AsAuSo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지방에서 보낸 시간

일이 끊긴 그 시기에 그는 도쿄를 떠나 지방의 작은 프로젝트들을 맡았다. 그 지역에서만 나는 돌, 그 지역 목수가 다루는 목재, 그 지역에서 오래 써온 기와를 쓸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그는 이 경험을 '지는 건축'이라는 말로 정리했다. 건물이 주변 풍경을 이기려 들지 않고, 그 자리에 순순히 자리를 내주는 태도. 큰 기둥으로 시선을 끌던 사람이 내린 결론치고는 정반대였다.

구마 겐고의 대표작 일본 국립경기장(도쿄) (Japan National Stadium, Tokyo)Photo by Arne Müseler / CC BY-SA 3.0 de / Wikimedia Commons

돌 속으로 빛이 들어오다

나스의 스톤 뮤지엄(2000)은 그 지역에서 나는 아시노 돌을 얇게 켜켜이 쌓아 벽을 만들고, 돌과 돌 사이 틈으로 빛이 새어 들게 했다. 중국 베이징 외곽의 대나무 담장집(2002)은 대나무를 촘촘히 세워 스크린처럼 둘렀다. 이후로도 그의 작업 목록은 재료 이름으로 정리해도 될 정도다. - 돌 — 스톤 뮤지엄 - 대나무 — 대나무 담장집 - 목재 — 네즈 미술관 진입로 - 기와 — 가부키좌 재건축 한 가지 형태를 반복하는 대신, 그 자리에 있던 재료를 반복해서 찾아 썼다.

그 기둥 건물은 지금 장례식장이다

M2 빌딩 얘기로 다시 돌아가자면, 이 건물은 이후 장례 회사에 팔려 지금은 장례식장으로 쓰이고 있다. 한때 거품경제의 과시욕을 상징하던 건물이, 지금은 죽음을 다루는 가장 조용한 용도로 쓰이고 있는 셈이다.

이 반전을 알고 나니 그의 '지는 건축'이라는 말이 다르게 들린다. 자기가 지었던 가장 시끄러운 건물이 가장 조용한 건물이 된 걸 그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나는 좀 궁금하다.

올림픽 경기장에도 나무를 썼다

2015년, 자하 하디드의 화려한 설계안이 예산 문제로 백지화된 뒤, 새 국립경기장 설계는 구마 겐고에게 돌아갔다. 그는 목재와 녹지를 뒤섞은 안을 냈고, 이 경기장은 2019년 완공됐다.

도쿄 신주쿠구, 한때 그에게 일감이 끊겼던 바로 그 도시 한복판에 지금 그 경기장이 서 있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구마 겐고의 '지는 건축'은 무슨 뜻인가?

건물이 주변 풍경을 압도하지 않고 그 자리에 순순히 자리를 내주는 태도를 뜻한다. 도쿄 M2 빌딩 이후 지방에서 보낸 시간에서 다듬어진 개념이다.

새 일본 국립경기장은 왜 구마 겐고가 맡게 됐나?

자하 하디드의 원래 설계안이 예산 문제로 백지화된 뒤, 목재와 녹지를 중심에 둔 그의 안이 채택돼 2019년 완공됐다.

참고문헌

  1. Kengo Kuma, Anti-Object: The Dissolution and Disintegration of Architecture, AA Publications, 2008
  2. Kengo Kuma, Kengo Kuma: A Lab for Materials, Lars Müller Publishers, 2004

글쓴이

실내건축과를 졸업했고, 현재 대한민국의 발전소 관련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공간과 재료를 실무 현장의 눈으로 보며, 발전 설비·플랜트의 기능성과 구조·안전의 관점에서 건축을 읽는다. 또한 여행과 건축 답사를 좋아하지만, 경제적 여건 탓에 자주 떠나지는 못한다. 대신 사진과 도면, 기록을 오래 들여다보고, 직접 가 본 곳에서는 현장에서 느낀 공간 경험을 글에 녹이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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