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기둥으로 시작한 그의 건축은, 그 건물이 장례식장이 된 뒤 완전히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 그는 못 하나 안 쓰는 전통 이음을 건물 파사드 크기로 키웠다.
- 거품경제 과시욕의 상징이던 그의 건물은, 지금 장례식장으로 쓰인다.
- 자하 하디드의 설계가 백지화된 뒤, 그 경기장은 구마 겐고에게 돌아갔다.
Photo by Wiiii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못 없이 끼우다
나무 막대 몇 개를 서로 어긋물려 끼우기만 하면 못이나 접착제 없이도 격자가 만들어지는 전통 이음이 있다. 치도리라 불리는 이 방식은 손끝으로 밀면 삐걱대긴 해도 잘 빠지지 않는다. 구마 겐고는 이 장난감 같은 이음을 실제 건물의 파사드 크기로 키웠다.
못을 안 쓴다고 약한 게 아니라는 걸, 그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Photo by Wiiii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거대한 기둥, 그리고 조롱
1991년, 그는 도쿄에 M2 빌딩을 지었다. 거대한 이오니아식 기둥이 건물 정면을 뚫고 솟아 있는 이 건물은 거품경제 말기 일본 건축의 과잉을 상징하는 사례로 두고두고 언급됐다. 평단의 반응은 싸늘했다.
거품이 꺼진 뒤 몇 년간, 도쿄에서 그에게 들어오는 일감은 거의 없었다.
한때 거품경제의 과시욕을 상징하던 건물이, 지금은 죽음을 다루는 가장 조용한 용도로 쓰이고 있는 셈이다.
Photo by AsAuSo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지방에서 보낸 시간
일이 끊긴 그 시기에 그는 도쿄를 떠나 지방의 작은 프로젝트들을 맡았다. 그 지역에서만 나는 돌, 그 지역 목수가 다루는 목재, 그 지역에서 오래 써온 기와를 쓸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그는 이 경험을 '지는 건축'이라는 말로 정리했다. 건물이 주변 풍경을 이기려 들지 않고, 그 자리에 순순히 자리를 내주는 태도. 큰 기둥으로 시선을 끌던 사람이 내린 결론치고는 정반대였다.
Photo by Arne Müseler / CC BY-SA 3.0 de / Wikimedia Commons돌 속으로 빛이 들어오다
나스의 스톤 뮤지엄(2000)은 그 지역에서 나는 아시노 돌을 얇게 켜켜이 쌓아 벽을 만들고, 돌과 돌 사이 틈으로 빛이 새어 들게 했다. 중국 베이징 외곽의 대나무 담장집(2002)은 대나무를 촘촘히 세워 스크린처럼 둘렀다. 이후로도 그의 작업 목록은 재료 이름으로 정리해도 될 정도다. - 돌 — 스톤 뮤지엄 - 대나무 — 대나무 담장집 - 목재 — 네즈 미술관 진입로 - 기와 — 가부키좌 재건축 한 가지 형태를 반복하는 대신, 그 자리에 있던 재료를 반복해서 찾아 썼다.
그 기둥 건물은 지금 장례식장이다
M2 빌딩 얘기로 다시 돌아가자면, 이 건물은 이후 장례 회사에 팔려 지금은 장례식장으로 쓰이고 있다. 한때 거품경제의 과시욕을 상징하던 건물이, 지금은 죽음을 다루는 가장 조용한 용도로 쓰이고 있는 셈이다.
이 반전을 알고 나니 그의 '지는 건축'이라는 말이 다르게 들린다. 자기가 지었던 가장 시끄러운 건물이 가장 조용한 건물이 된 걸 그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나는 좀 궁금하다.
올림픽 경기장에도 나무를 썼다
2015년, 자하 하디드의 화려한 설계안이 예산 문제로 백지화된 뒤, 새 국립경기장 설계는 구마 겐고에게 돌아갔다. 그는 목재와 녹지를 뒤섞은 안을 냈고, 이 경기장은 2019년 완공됐다.
도쿄 신주쿠구, 한때 그에게 일감이 끊겼던 바로 그 도시 한복판에 지금 그 경기장이 서 있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구마 겐고의 '지는 건축'은 무슨 뜻인가?
건물이 주변 풍경을 압도하지 않고 그 자리에 순순히 자리를 내주는 태도를 뜻한다. 도쿄 M2 빌딩 이후 지방에서 보낸 시간에서 다듬어진 개념이다.
새 일본 국립경기장은 왜 구마 겐고가 맡게 됐나?
자하 하디드의 원래 설계안이 예산 문제로 백지화된 뒤, 목재와 녹지를 중심에 둔 그의 안이 채택돼 2019년 완공됐다.
참고문헌
- Kengo Kuma, Anti-Object: The Dissolution and Disintegration of Architecture, AA Publications, 2008
- Kengo Kuma, Kengo Kuma: A Lab for Materials, Lars Müller Publishers, 2004
'집 짓는 건축가? > 빛과 재료의 장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시구르드 레베렌츠, 벽돌을 자르지 않은 사람의 불편한 창 (0) | 2026.08.20 |
|---|---|
| 카를로 스카르파는 이음새를 숨기지 않았다 (0) | 2026.07.09 |
| 루이스 바라간은 벽으로 빛에 색을 입혔다 (4) | 2026.07.09 |
| 시게루 반은 종이로 지붕을 지었다 (3) | 2026.07.04 |
| 피터 줌터는 통나무를 불태워 예배당을 지었다 (0) | 2026.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