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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짓는 건축가?/빛과 재료의 장인

루이스 바라간은 벽으로 빛에 색을 입혔다

by aclstoryji 2026. 7. 9.

그가 평생 지킨 사생활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도면과 서재가 스위스로 넘어가며 다른 방식으로 끝났다.

먼저 알아둘 세 가지
  • 바라간의 벽은 빛을 막지 않고 색으로 물들였다.
  • 그의 도면과 서재는 지금 멕시코가 아니라 스위스에 있다.
  • 말 목장 하나를 짓는 데도 그는 담장 색부터 골랐다.
루이스 바라간의 대표작 카사 루이스 바라간(바라간 자택) (Casa Luis Barragán)Photo by Thomas Ledl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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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이 빛을 물들이다

어떤 벽은 그 앞에 서면 얼굴에 색이 옮는다. 진한 분홍이나 자주색 벽에 오후 햇살이 닿으면, 그 빛이 반사돼 마당 바닥과 지나가는 사람의 옷에까지 옅은 색을 입힌다. 루이스 바라간은 벽을 막는 물건이 아니라 빛을 물들이는 도구로 썼다.

페인트 색상표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일이다.

루이스 바라간의 대표작 쿠아드라 산 크리스토발 (Cuadra San Cristóbal)Photo by Tomjc.55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말과 침묵

바라간은 1902년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태어나 자유공과대학에서 토목공학을 공부했다. 건축을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다. 1920년대 유럽을 여행하며 정원 작가 페르디낭 바크의 글에 빠졌고, 파리에서는 르 코르뷔지에의 강연을 들었다. 1936년 멕시코시티로 옮긴 뒤, 그는 국제양식과 멕시코 고유의 수도원·아시엔다 건축을 자기 방식으로 섞기 시작했다. 그가 즐겨 쓴 표현이 '정서적 건축'이었다 — 건물이 기능을 채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보는 사람의 감정을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말을 무척 좋아했다.

멕시코의 정서를 가장 멕시코답게 지은 사람의 기록이, 정작 멕시코 밖에서 관리되고 있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진다.
루이스 바라간의 대표작 카사 힐라르디 (Casa Gilardi)Photo by Ulises00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쿠아드라 산 크리스토발

1968년 완공된 쿠아드라 산 크리스토발은 말 목장이자 분수 정원이다. 여기서 그의 어휘가 가장 압축된 형태로 드러난다. - 분홍과 보라 담장 - 벽을 타고 얇게 흘러내리는 물 - 말이 물을 마시는 긴 수조 '엘 베베데로' - 담장 사이로 잘린 하늘

말이 그 수조에 다가가 고개를 숙이는 사진은 그의 작업 중 가장 많이 복제된 이미지 중 하나다. 사진으로 보면 배경의 분홍 벽과 말의 갈색 털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나란히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루이스 바라간의 대표작 위성탑(토레스 데 사텔리테) (Torres de Satélite)Photo by ProtoplasmaKid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카사 힐라르디의 노란 복도

1976년, 그가 일흔이 넘어 맡은 몇 안 되는 개인 주택 중 하나가 카사 힐라르디다. 복도를 노란 창으로 막아, 그 앞을 걷는 사람의 몸에 온통 노란빛이 쏟아지게 만들었다. 복도 끝에는 실내 수영장이 있고, 기둥 하나가 물 한가운데 그대로 서 있다.

구조 계산으로 보면 그 기둥의 위치는 뻔뻔하다. 수영장 한복판에 기둥을 세우는 건 웬만하면 피할 선택이다. 그런데 사진 속 그 기둥은 방해물이 아니라 그 공간의 중심처럼 보인다. 나라면 절대 이렇게 도면을 못 그렸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서재는 스위스에 있다

바라간은 평생 사생활을 지켰다. 그런데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도면과 서재, 사진 자료 대부분이 스위스로 넘어가 그쪽 재단이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여러 차례 보도됐다. 지금 그의 아카이브에 접근하려면 그 재단의 허가를 거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 부분에서는 나도 좀 화가 난다. 멕시코의 정서를 가장 멕시코답게 지은 사람의 기록이, 정작 멕시코 밖에서 관리되고 있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진다. 보존이 잘 되고 있다면 그게 최악은 아니지만, 뭔가 어긋나 있다는 느낌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가 지킨 침묵

1980년 바라간은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라틴아메리카 건축가로는 처음이었다. 상을 받은 뒤에도 그는 새 작업을 거의 맡지 않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이 지은 집에서 혼자 보냈다.

1988년 그가 세상을 떠난 멕시코시티의 그 집은,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루이스 바라간은 왜 벽에 강한 색을 썼나?

그는 벽을 단순한 경계가 아니라 빛을 반사하고 물들이는 장치로 봤다. 진한 색 벽에 햇빛이 닿으면 그 빛이 주변 공간까지 물들인다.

바라간의 자료(도면·서재)는 지금 어디 있나?

스위스의 한 재단이 관리하고 있다고 여러 차례 보도됐다. 접근하려면 그쪽의 허가를 거쳐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참고문헌

  1. Emilio Ambasz, The Architecture of Luis Barragán, Museum of Modern Art, 1976
  2. Federica Zanco (ed.), Luis Barragán: The Quiet Revolution, Skira, 2001

글쓴이

실내건축과를 졸업했고, 현재 대한민국의 발전소 관련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공간과 재료를 실무 현장의 눈으로 보며, 발전 설비·플랜트의 기능성과 구조·안전의 관점에서 건축을 읽는다. 또한 여행과 건축 답사를 좋아하지만, 경제적 여건 탓에 자주 떠나지는 못한다. 대신 사진과 도면, 기록을 오래 들여다보고, 직접 가 본 곳에서는 현장에서 느낀 공간 경험을 글에 녹이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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