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드릭 프라이스의 대표작은 대부분 지어지지 않았다. 그가 실제로 지은 런던 동물원 스노든 새장을 직접 걸으며 새가 편해 보이지 않는다고 느꼈는데, 그 새장은 지금 새가 아니라 원숭이가 쓴다. 계속 바뀌는 건축이 안전함을 줄 수 있는지 따져봤다.
그물 아래를 걸으면서 나는 저 안의 새가 편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뒤 새들은 정말 나갔다.
- 세드릭 프라이스의 대표작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대부분 지어지지 않았다.
- 그가 실제로 지은 런던 동물원 새장에는 지금 새가 살지 않는다.
- 그는 자기가 지은 건물을 스무 해쯤 쓰고 철거하자고 먼저 말한 사람이다.
이 글의 순서


새장 안으로 사람이 걸어 들어간다
런던 동물원의 산책로는 어느 지점에서 새장 안으로 들어간다. 그물이 머리 위로 이어지고, 알루미늄 프레임이 하늘을 몇 조각으로 나눈다. 나는 그 아래를 걸으면서 계속 위를 올려다봤는데, 저 안의 새가 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높이는 넉넉했다. 다만 그 안으로 사람이 끊임없이 지나간다. 관람객 동선이 새장을 관통하게 짜여 있어서, 새 입장에서는 자기가 사는 공간 한복판을 낯선 것들이 하루 종일 통과하는 셈이다. 내가 느낀 불편함은 아마 거기였다.
스노든 새장이다. 1965년에 문을 열었고, 세드릭 프라이스가 스노든 경, 구조기술자 프랭크 뉴비와 함께 설계했다. 알루미늄 뼈대에 케이블을 걸어 그물을 팽팽하게 당긴 인장 구조다. 새가 날 수 있을 만큼 높은 공간을 만들자는 게 목표였다.
Photo by heena_mistry / CC BY 2.0 / Wikimedia Commons지금 그 안에는 원숭이가 산다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 새장은 2010년대 후반에 새 전시가 끝났고, 2020년대 초에 원숭이가 사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구조물은 문화재로 지정돼 그대로 남았고, 안에 사는 종만 갈렸다.
예순 해 된 인장 구조를 유지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강선의 장력은 시간이 지나면 풀리고, 알루미늄과 강재가 맞물리는 접합부에는 부식이 온다. 누군가 그동안 계속 조이고 갈아 끼웠다는 뜻이다. 관람객이 보는 건 그물이지만, 그 그물을 붙들고 있는 건 점검 기록이다.
건물은 남고 용도가 갈렸다. 프라이스가 평생 주장한 게 정확히 그거였다는 점이 조금 얄궂다.
레일에 먼지가 끼면 뻑뻑해지고, 뻑뻑해지면 아무도 안 건드린다.

그가 그린 것들은 대개 서지 못했다
펀 팰리스가 그렇다. 연출가 조앤 리틀우드와 함께 1960년대 초부터 밀었던 계획인데, 크레인이 모듈을 들어 올려 공간을 매번 다시 짜는 문화시설이었다. 극장이 필요하면 극장이 되고, 필요 없어지면 치운다. 부지와 예산과 행정에 걸려 끝내 서지 못했다.
포터리즈 싱크벨트도 마찬가지다. 스태퍼드셔의 폐선 철로를 그대로 쓰면서, 강의실을 실은 객차가 선로 위를 옮겨 다니는 대학을 구상했다. 캠퍼스를 한자리에 묶지 않겠다는 발상이었다. 도면과 다이어그램만 남았다.
집을 설계해 달라고 찾아온 부부에게 그가 이혼을 권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확인된 기록은 아니고 여러 번 옮겨 적히며 굳어진 일화에 가깝다. 다만 이 사람이 그런 말을 할 법하다는 데는 다들 동의하는 눈치다. 건물이 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출발점이었으니까.

고쳐 쓸 수 있다는 말과 실제로 고치는 일
프라이스가 말한 가변은 쓰는 사람이 필요에 따라 바꾸는 것이고, 그 범위를 미리 다 정해두지 않는 게 핵심이었다. 말은 좋은데, 막상 뭘 바꾸려고 하면 걸리는 게 많다.
- 누가 바꾸나: 관리자인가, 그날 그 공간을 쓰는 사람인가
- 언제 바꾸나: 매일인가, 몇 년에 한 번인가
- 비용은 누가 대나: 크레인과 인력은 공짜가 아니다
실내건축을 배울 때 가변형 파티션을 넣은 도면을 여러 번 봤다. 접었다 폈다 하면 공간이 두 배로 쓰인다는 계산이었다. 몇 년 뒤에 가보면 대개 처음 놓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레일에 먼지가 끼면 뻑뻑해지고, 뻑뻑해지면 아무도 안 건드린다.
사용자의 요구에 맞춰 계속 변하는 건물이 그 안에 있는 사람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을까. 나는 아직 확신이 안 선다. 바꿀 수 있다는 것과 실제로 바꾸게 되는 것 사이는 꽤 멀다.
스무 해 쓰고 없애자고 한 건물
그가 실제로 지은 것 중에 인터액션 센터가 있다. 1977년 런던 켄티시 타운에 문을 연 커뮤니티 시설로, 철골 틀에 필요한 것을 끼웠다 뺐다 할 수 있게 만들었다.
특이한 건 그가 이 건물의 수명을 처음부터 짧게 잡았다는 점이다. 스무 해쯤 쓰고 없애자고 했다. 실제로 2003년에 철거됐고, 그는 그 철거를 반대하지 않았다.
건축가가 자기 건물을 없애자고 먼저 말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프라이스는 그해에 죽었다. 그가 남긴 도면과 메모, 편지 다발은 몬트리올의 캐나다건축센터로 넘어가 정리됐다.
그날의 의문은 아직 그대로다
지어지지 않은 계획이 아무것도 안 남긴 건 아니다. 펀 팰리스의 발상은 퐁피두 센터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설비를 겉으로 드러내고 바닥을 최대한 비워 두는 방식이 그렇다.
다시 새장으로 돌아가면, 나는 그 그물 아래에서 새가 아니라 구조를 보고 있었다. 케이블이 어디서 당기고 어디서 받는지, 그물이 처지는 자리가 어디인지. 직업병이다.
그날 품은 의문은 지금도 그대로다. 계속 바뀔 수 있게 만든 공간이 그 안에 사는 쪽에게도 좋은 곳인지. 새장은 새를 위해 지어졌는데 결국 새가 나갔고 원숭이가 들어왔다. 프라이스라면 그게 실패가 아니라 설계대로라고 했을 것 같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세드릭 프라이스가 실제로 지은 건물이 있나?
많지는 않다. 런던 동물원 스노든 새장과 켄티시 타운의 인터액션 센터가 대표적이고, 널리 알려진 펀 팰리스와 포터리즈 싱크벨트는 도면으로만 남았다.
스노든 새장은 지금도 새장인가?
아니다. 2010년대 후반에 새 전시가 끝났고 2020년대 초에 원숭이가 사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구조물 자체는 문화재로 지정돼 남아 있다.
펀 팰리스는 왜 지어지지 않았나?
부지와 예산, 행정 절차에 걸려 무산됐다. 다만 설비를 드러내고 바닥을 비우는 발상은 퐁피두 센터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참고문헌
- Stanley Mathews, From Agit-Prop to Free Space: The Architecture of Cedric Price, Black Dog Publishing, 2007
- Cedric Price, Cedric Price: The Square Book, Wiley-Academy, 2003
- Canadian Centre for Architecture, Cedric Price Fonds 아카이브 자료
- ZSL London Zoo 공식 자료, 스노든 새장 연혁 및 재개장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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