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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짓는 건축가?/도시와 논쟁

필립 존슨, 유리집의 투명함으로 가릴 수 없는 것

by aclstoryji 2026. 8. 19.

32×56피트의 집에서 분홍 화강석 왕관까지, 취향을 바꾸는 재능과 지워지지 않는 정치적 책임을 함께 본다.

먼저 알아둘 세 가지
  • 글라스 하우스는 유리 건물 하나가 아니라 맞은편 브릭 하우스와 함께 읽어야 생활의 구조가 보인다.
  • 시그램 빌딩을 필립 존슨의 단독작으로 적는 순간, 유명세가 설계 귀속을 삼켜버린다.
  • AT&T 빌딩의 왕관과 크리스털 대성당의 유리막은 사진보다 1층 동선과 열·눈부심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꺼낸다.
건축가 필립 존슨Photo by B. Pietro Filardo,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필립 존슨의 고향과 대표작 위치를 표시한 항해지도
건축 여정 — 고향과 대표작이 자리한 곳
여행 계획 — 지도 번호와 같은 순서다

유리보다 먼저, 벽돌 원통이 보였다

글라스 하우스 사진을 확대하면 나는 유리보다 먼저 지붕을 뚫고 올라간 벽돌 원통을 본다. 발전소 건물에서 배관 관통부 하나가 방수와 방화 구획을 동시에 흔드는 장면을 여러 번 본 탓인지, 매끈한 면보다 끊김과 관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필립 존슨의 집에서 그 원통은 욕실을 감추고 벽난로를 품으며, 거의 아무것도 없는 평면에 무게를 박아 넣는다. 유리로 만든 상자 한가운데 꽂힌 오래된 굴뚝같다.

1949년에 완성된 이 집은 약 56 ×32피트의 단층 직사각형이며, 맞은편 브릭 하우스와 한 쌍으로 구상되었다. 아직 뉴캐넌에 가보지 못했기에 사진과 평면을 오래 들여다본다. 그러다 보면 투명한 집이 혼자 모든 생활을 감당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자꾸 걸린다. 유리 접시 옆에 창 없는 벽돌 찬장을 따로 놓은 셈이다.

이 집을 현장 점검표처럼 읽으면 아름다움과 불편이 함께 보인다.
- 유리는 풍경을 끌어들이지만 열, 눈부심, 사생활도 함께 데려온다.
- 벽돌 원통은 설비와 프라이버시를 한 곳에 모아 평면의 중심을 잡는다.
- 낮은 가구는 벽 대신 동선을 나누지만 생활의 흔적까지 지워주지는 않는다.

필립 존슨의 대표작 글라스 하우스 (The Glass House)Photo by Designer : Richard Morris Hunt (1827–1895) maker : Eugène Stanislas Oudinot (1827–1889) / CC0 / Wikimedia Commons

건축가가 되기 전에 그는 취향을 배급했다

필립 존슨은 건물을 짓기 전에 건축을 고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1932년 뉴욕현대미술관 건축부의 초대 책임자가 되었고, 헨리-러셀 히치콕과 함께 근대건축 전시를 조직하며 국제주의 양식을 미국의 대중과 제도 안에 강하게 밀어 넣었다. 프리츠커상 공식 약력도 그가 첫 건물을 설계하기 전까지 의뢰인, 비평가, 저자, 역사가, 미술관 책임자였다고 적는다. 도면보다 먼저 전시실의 벽과 작품 목록을 다룬 셈이다.

나는 이 이력이 조금 부럽고, 조금 불편하다. 좋은 건축을 알아보는 눈은 귀하지만, 무엇을 좋은 것으로 보이게 할지 결정하는 자리는 더 큰 권력이다. 필립 존슨은 설계자이면서 동시에 무대 감독이었고, 자신이 사랑한 건축가와 양식을 전면에 세울 줄 알았다. 그의 영향력은 건물의 구조 계산서보다 전시 제목과 인맥에서 먼저 커졌다.

유리벽은 풍경을 숨김없이 보여주지만, 건축가의 이력까지 투명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필립 존슨의 대표작 시그램 빌딩 (Seagram Building)Photo by Gigi alt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필립 존슨의 이름은 시그램 빌딩 어디까지인가?

시그램 빌딩을 필립 존슨의 단독 대표작처럼 적으면 사실이 흐려진다. 공식 자료의 설계 귀속은 미스 반 데어 로에를 중심으로 필립 존슨이 함께하며, Kahn & Jacobs가 협력한 형태다. 존슨은 내부 공간에도 깊이 관여했지만, 검은 유리와 청동빛 수직선으로 솟은 탑의 핵심 저자를 미스에서 떼어낼 수는 없다. 유명한 건물일수록 이름표를 더 정확히 달아야 한다.

외벽의 반복되는 청동 부재는 구조체처럼 보이지만 커튼월의 표정을 만드는 비구조적 요소다. 발전소 현장에서는 지지대가 실제 하중을 받는지, 단지 덮개와 외관을 정리하는지부터 구분한다. 시그램 빌딩도 그 차이를 알고 볼 때 더 흥미롭다. 구조를 정직하게 드러내는 듯하면서, 사실은 구조의 이미지를 아주 정교하게 연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더 오래 보는 곳은 탑보다 앞마당이다. 건물을 대지 경계까지 밀어붙이지 않고 도시 안에 빈 바닥을 내준 선택은 사람들이 서고, 기다리고, 방향을 바꾸게 했다. 건축은 높이로 기억되지만 사용자는 대개 발바닥으로 먼저 판단한다. 시그램 빌딩의 품위는 꼭대기가 아니라 현관 앞 몇 걸음에서 시작된다.

필립 존슨의 대표작 AT&T 빌딩(현 550 매디슨 애비뉴) (AT&T Building (550 Madison Avenue))Photo by roryrory / CC BY-SA 2.0 / Wikimedia Commons

왕관과 유리벽은 사진 밖에서 다른 표정을 지었다

1984년 완공된 AT&T 빌딩, 지금의 550 매디슨 애비뉴는 필립 존슨과 존 버지의 공동 설계다. 분홍빛 화강석 몸체와 잘린 페디먼트 형태의 꼭대기는 멀리서 한 번 보면 잊기 어렵다. 나는 그 왕관이 싫지는 않다. 다만 건물의 별명은 꼭대기가 만들고, 출입의 불편은 언제나 1층이 떠안는다는 사실을 현장에서는 자주 본다.

후대의 소유주와 리노베이션 자료조차 기존 저층부를 요새처럼 닫히고 거리와 잘 만나지 못한 부분으로 설명했다. 멀리서는 유쾌한 기호였지만 보행자 가까이에서는 무겁고 폐쇄적이었던 것이다. 이후 개조는 외관의 상징을 보존하면서 로비와 공공 정원을 다시 열어 도시와의 접점을 넓혔다. 사진발과 보행성은 같은 항목이 아니다.

크리스털 대성당은 반대 방향에서 비슷한 교훈을 준다. 1980년 완공된 유리와 철골의 거대한 예배당은 10,660장의 반사 유리로 둘러싸였고, 원래의 개방감은 강렬했지만 열과 눈부심, 음향과 환경 쾌적성은 이후 개조에서 다시 다뤄져야 했다. 빛을 많이 들이는 일은 창을 크게 그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발전 설비의 냉각과 환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지지 않듯, 건축의 성능도 사진 뒤에서 계속 일한다.

필립 존슨의 대표작 크리스털 대성당(현 크라이스트 대성당) (Crystal Cathedral)Photo by Farragutful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그의 가장 어두운 선택을 ‘실수’라고만 부를 수 없다

1930년대의 필립 존슨은 나치 독일과 파시즘을 멀리서 구경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반유대주의 성향의 찰스 코글린이 발행한 매체에 글을 썼고, 독일의 집회와 전쟁 초기 폴란드를 취재하며 나치 체제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훗날 그는 그 선택을 자신의 가장 어리석은 일로 규정했고 속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정은 필요하지만, 인정했다고 해서 행위의 무게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대목을 ‘젊은 시절의 정치적 오판’ 한 줄로 접고 싶지 않다. 동시에 그의 건축을 전부 폐기하면 그가 미국 건축 제도와 취향에 끼친 실제 영향도 보이지 않게 된다. 뉘른베르크 집회의 장관에 매혹된 경험과 훗날 건축에서 보여준 무대적 감각을 곧바로 원인과 결과로 묶는 것도 위험하다. 다만 거대한 장면과 강한 인물에 끌렸던 그의 성향이 정치와 건축에서 각각 어떤 선택을 낳았는지는 끝까지 함께 읽어야 한다.

유리는 고백을 대신하지 못한다

필립 존슨의 경력은 한 방향으로 흐르는 배관이 아니라, 시대마다 회로를 갈아 끼운 거대한 변전반에 가깝다. 그는 국제주의 양식을 전시로 확산했고, 미스와 함께 시그램 빌딩의 세련된 질서를 만들었으며, 뒤에는 AT&T 빌딩의 왕관과 크리스털 대성당의 거대한 유리막으로 방향을 틀었다. 일관성보다 감지력과 전환 능력이 그의 재능이었다. 그 빠른 전환은 때로 기민했고, 때로 가벼웠다.

유리벽은 풍경을 숨김없이 보여주지만, 건축가의 이력까지 투명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나는 필립 존슨을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싫어한다고 밀어내기도 쉽지 않다. 그의 건축은 분명히 사람의 눈과 도시의 기억을 움직였고, 그의 정치적 선택은 분명히 비판받아야 한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글라스 하우스의 유리벽보다, 그 맞은편 창 없는 브릭 하우스를 한 번 더 본다.

쉬어가는 퀴즈

필립 존슨의 글라스 하우스 평면 크기로 본문에서 제시한 수치는 무엇인가?

  • 가. 약 40×40피트
  • 나. 약 56×32피트
  • 다. 약 80×20피트
정답 확인

정답: 나. 글라스 하우스는 약 56 ×32피트의 단층 직사각형으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필립 존슨의 글라스 하우스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판스워스 하우스는 무엇이 다른가?

두 집 모두 유리와 철골로 열린 공간을 만들었지만, 글라스 하우스는 지면에 낮게 붙고 벽돌 원통이 지붕을 뚫고 올라간다. 판스워스 하우스는 홍수에 대응해 바닥판을 들어 올렸고 서비스 코어가 공간을 조직한다.

시그램 빌딩은 필립 존슨의 단독 설계인가?

아니다. 시그램 빌딩의 중심 설계자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이며 필립 존슨이 함께 참여했고 Kahn & Jacobs가 협력했다. 존슨은 내부 설계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단독작으로 소개하면 귀속이 왜곡된다.

필립 존슨이 포스트모던 건축가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초기에는 국제주의 양식을 확산하고 유리와 철골의 엄격한 기하학을 따랐지만, 후기에 역사적 장식과 기호를 적극적으로 끌어왔다. AT&T 빌딩의 잘린 페디먼트 형태 왕관이 그 변화를 가장 널리 알린 사례다.

필립 존슨의 나치 동조 전력은 사실인가?

사실이다. 그는 1930년대 파시즘과 나치 독일을 지지하는 활동과 글쓰기에 관여했고, 훗날 이를 자신의 가장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정했다. 후회의 발언과 별개로 당시의 적극성을 축소해서는 안 된다.

크리스털 대성당은 지금도 원래 모습 그대로인가?

외부의 유리와 철골 골격은 대체로 보존됐지만 내부는 가톨릭 전례에 맞게 크게 개조되었다. 2019년 크라이스트 대성당으로 봉헌되면서 차양, 환기, 음향, 조명과 예배 동선이 새로 조정되었다.

참고문헌

  1. Mark Lamster, The Man in the Glass House: Philip Johnson, Architect of the Modern Century, Little, Brown and Company, 2018
  2. Franz Schulze, Philip Johnson: Life and Work, Alfred A. Knopf, 1994
  3. The Museum of Modern Art Archives, Philip Johnson Papers in The Museum of Modern Art Archives, MoMA, 공식 아카이브 자료(접속 2026)
  4. The Glass House, The Glass House, National Trust for Historic Preservation, 공식 웹 자료(접속 2026)
  5.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Philip Johnson 1979 Laureate, The Hyatt Foundation, 1979
  6. Christ Cathedral, Campus Architecture: Christ Cathedral, Diocese of Orange, 공식 웹 자료(접속 2026)

글쓴이

실내건축과를 졸업했고, 현재 대한민국의 발전소 관련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공간과 재료를 실무 현장의 눈으로 보며, 발전 설비·플랜트의 기능성과 구조·안전의 관점에서 건축을 읽는다. 또한 여행과 건축 답사를 좋아하지만, 경제적 여건 탓에 자주 떠나지는 못한다. 대신 사진과 도면, 기록을 오래 들여다보고, 직접 가 본 곳에서는 현장에서 느낀 공간 경험을 글에 녹이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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