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집 짓는 건축가?/도시와 논쟁

알도 로시, 없어지려고 지은 극장

by aclstoryji 2026. 7. 5.

로시가 가장 유명한 건물로 남긴 '테아트로 델 몬도'는 애초에 해체될 목적으로 지어졌다.

먼저 알아둘 세 가지
  • 알도 로시의 가장 유명한 건물은 원래 철거하려고 지은 것이었다.
  • 그는 큰 사고를 겪은 뒤 공동묘지를 설계했다.
  • 그가 이론화한 '영구성'과 실제로 사랑받은 그의 건물은 서로 반대였다.
건축가 알도 로시Photo by Unknown authorUnknown author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알도 로시의 고향과 대표작 위치를 표시한 항해지도
건축 여정 — 고향과 대표작이 자리한 곳
여행 계획 — 지도 번호와 같은 순서다

물 위에 띄운 극장은 철거하려고 지었다

1979년, 알도 로시는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위해 나무로 극장 하나를 지었다. 8각형 탑처럼 생긴 이 극장은 바지선에 실려 물 위에 떠 있었다. 처음부터 오래 남길 생각이 없었다.

비엔날레가 끝나자 이 극장, '테아트로 델 몬도'는 두브로브니크까지 예인됐다가 결국 해체됐다. 그런데 이 임시 건물 사진은 지금도 알도 로시의 대표작으로 가장 많이 인용된다.

나는 이 모순이 재미있다. 로시는 도시가 영구적인 것들 — 기념비, 오래 살아남는 건물 유형 — 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 이론가였다. 정작 그의 가장 유명한 건물은, 애초에 없어지려고 지어진 건물이었다.

알도 로시의 대표작 산 카탈도 공동묘지 (Cimitero di San Cataldo)Photo by Massimocosti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카사벨라 편집장에서 이론가로

로시는 1931년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밀라노 공과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1959년 졸업했다.

1960년대, 그는 건축 잡지 '카사벨라-콘티누이타'의 편집에 참여했다. 그리고 1966년, '도시의 건축'이라는 책을 냈다. 도시를 기능이 아니라 유형(타이폴로지)으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 광장은 광장의 형태를 반복하고, 기념비는 시대가 바뀌어도 자리를 지킨다는 것이다.

이 책은 신합리주의라는 흐름을 만들었다. 로시는 그 흐름의 중심에 있었다.

정작 그의 가장 유명한 건물은, 애초에 없어지려고 지어진 건물이었다.
알도 로시의 대표작 테아트로 델 몬도 (Teatro del Mondo)Photo by Fpittui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알도 로시, 죽음을 겪고 나서 그린 공동묘지

1971년 무렵, 로시는 심한 교통사고를 겪었다고 전해진다. 정확한 시점과 경위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다. 오랜 회복 기간을 거쳤고, 이 경험이 이후 그의 작업에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많다. 같은 시기, 그는 모데나의 산 카탈도 공동묘지 설계 공모에 당선됐다.

이 공동묘지의 납골당 건물은 벽 없이 창틀만 격자로 뚫려 있다. 사진으로 보면 마치 불에 타 골조만 남은 아파트 같다. 중앙에는 원뿔 모양 구조물이 서 있는데, 완공 이후로도 이 부분은 오랫동안 미완성 상태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 건물 앞에 서면 어떤 느낌일지, 나는 사진만으로 짐작할 뿐이다. 다만 발전 설비 현장에서도 골조만 남은 채 방치된 구조물을 본 적이 있다. 목적이 다 달랐는데도 그 침묵은 비슷했다.

알도 로시의 대표작 갈라라테제 주거단지 (Gallaratese Housing)Photo by Ilenia centis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기둥만 남은 것 같은 아파트

1973년 완공한 갈라라테제 주거단지에서, 로시가 맡은 동은 1층 전체를 필로티로 비웠다. 기둥 간격이 넓고 장식이 전혀 없어서, 마치 기둥만 남기고 나머지는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보인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로시는 이 반복되는 기둥과 회랑이 이탈리아 전통 도시의 아케이드를 그대로 잇는다고 봤다. 장식을 걷어내고 형태의 뼈대만 남기는 방식, 그게 그가 말한 '유형'이다.

알도 로시의 대표작 호텔 일 팔라초 (Hotel Il Palazzo)Photo by Hirho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이탈리아인 최초로 받은 상

1990년, 로시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았다. 이탈리아 국적자로는 처음이었다. 그 무렵 그는 이탈리아를 넘어 일본에서도 작업했다 — 후쿠오카에 지은 호텔 일 팔라초가 그 예다.

사진으로 보면, 붉은 벽돌로 마감한 이 호텔 로비에 로시 특유의 단순한 기둥과 아치가 반복된다. 밀라노에서 쓰던 어휘를 그대로 후쿠오카까지 가져간 셈이다.

극장은 없어졌고, 사진은 남았다

로시는 1997년 9월, 교통사고 끝에 세상을 떠났다. 예순여섯이었다.

테아트로 델 몬도는 지금 세상에 없다. 남은 건 도면과 몇 장의 사진뿐이다. 영구적인 것을 평생 이론화한 사람이 가장 사랑받은 건, 결국 사라진 건물이었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알도 로시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 건축가다. 1931년 태어나 1997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테아트로 델 몬도는 지금도 남아 있나?

아니다. 1979년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위해 지은 임시 목조 극장으로, 행사가 끝난 뒤 두브로브니크 전시를 거쳐 해체됐다. 지금은 도면과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산 카탈도 공동묘지는 왜 유명한가?

벽 없이 창틀 격자만 남은 납골당 건물 때문이다. 마치 골조만 남은 건물처럼 보이는 이 디자인은 알도 로시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도시의 건축'은 어떤 책인가?

1966년 알도 로시가 쓴 이론서다. 도시를 기능이 아니라 반복되는 형태의 유형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해 신합리주의 건축 운동의 기반이 됐다.

참고문헌

  1. Aldo Rossi, L'architettura della città, Marsilio, 1966
  2. Aldo Rossi, A Scientific Autobiography, MIT Press, 1981
  3.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1990 Citation: Aldo Rossi, The Hyatt Foundation, 1990

글쓴이

실내건축과를 졸업했고, 현재 대한민국의 발전소 관련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공간과 재료를 실무 현장의 눈으로 보며, 발전 설비·플랜트의 기능성과 구조·안전의 관점에서 건축을 읽는다. 또한 여행과 건축 답사를 좋아하지만, 경제적 여건 탓에 자주 떠나지는 못한다. 대신 사진과 도면, 기록을 오래 들여다보고, 직접 가 본 곳에서는 현장에서 느낀 공간 경험을 글에 녹이기를 즐긴다.

사실 오류나 출처 문제를 발견하시면 문의 페이지로 알려 주세요. 확인한 뒤 고치고, 수정한 날짜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