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시가 가장 유명한 건물로 남긴 '테아트로 델 몬도'는 애초에 해체될 목적으로 지어졌다.
- 알도 로시의 가장 유명한 건물은 원래 철거하려고 지은 것이었다.
- 그는 큰 사고를 겪은 뒤 공동묘지를 설계했다.
- 그가 이론화한 '영구성'과 실제로 사랑받은 그의 건물은 서로 반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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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Unknown authorUnknown author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물 위에 띄운 극장은 철거하려고 지었다
1979년, 알도 로시는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위해 나무로 극장 하나를 지었다. 8각형 탑처럼 생긴 이 극장은 바지선에 실려 물 위에 떠 있었다. 처음부터 오래 남길 생각이 없었다.
비엔날레가 끝나자 이 극장, '테아트로 델 몬도'는 두브로브니크까지 예인됐다가 결국 해체됐다. 그런데 이 임시 건물 사진은 지금도 알도 로시의 대표작으로 가장 많이 인용된다.
나는 이 모순이 재미있다. 로시는 도시가 영구적인 것들 — 기념비, 오래 살아남는 건물 유형 — 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 이론가였다. 정작 그의 가장 유명한 건물은, 애초에 없어지려고 지어진 건물이었다.
Photo by Massimocosti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카사벨라 편집장에서 이론가로
로시는 1931년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밀라노 공과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1959년 졸업했다.
1960년대, 그는 건축 잡지 '카사벨라-콘티누이타'의 편집에 참여했다. 그리고 1966년, '도시의 건축'이라는 책을 냈다. 도시를 기능이 아니라 유형(타이폴로지)으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 광장은 광장의 형태를 반복하고, 기념비는 시대가 바뀌어도 자리를 지킨다는 것이다.
이 책은 신합리주의라는 흐름을 만들었다. 로시는 그 흐름의 중심에 있었다.
정작 그의 가장 유명한 건물은, 애초에 없어지려고 지어진 건물이었다.
Photo by Fpittui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알도 로시, 죽음을 겪고 나서 그린 공동묘지
1971년 무렵, 로시는 심한 교통사고를 겪었다고 전해진다. 정확한 시점과 경위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다. 오랜 회복 기간을 거쳤고, 이 경험이 이후 그의 작업에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많다. 같은 시기, 그는 모데나의 산 카탈도 공동묘지 설계 공모에 당선됐다.
이 공동묘지의 납골당 건물은 벽 없이 창틀만 격자로 뚫려 있다. 사진으로 보면 마치 불에 타 골조만 남은 아파트 같다. 중앙에는 원뿔 모양 구조물이 서 있는데, 완공 이후로도 이 부분은 오랫동안 미완성 상태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 건물 앞에 서면 어떤 느낌일지, 나는 사진만으로 짐작할 뿐이다. 다만 발전 설비 현장에서도 골조만 남은 채 방치된 구조물을 본 적이 있다. 목적이 다 달랐는데도 그 침묵은 비슷했다.
Photo by Ilenia centis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기둥만 남은 것 같은 아파트
1973년 완공한 갈라라테제 주거단지에서, 로시가 맡은 동은 1층 전체를 필로티로 비웠다. 기둥 간격이 넓고 장식이 전혀 없어서, 마치 기둥만 남기고 나머지는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보인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로시는 이 반복되는 기둥과 회랑이 이탈리아 전통 도시의 아케이드를 그대로 잇는다고 봤다. 장식을 걷어내고 형태의 뼈대만 남기는 방식, 그게 그가 말한 '유형'이다.
Photo by Hirho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이탈리아인 최초로 받은 상
1990년, 로시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았다. 이탈리아 국적자로는 처음이었다. 그 무렵 그는 이탈리아를 넘어 일본에서도 작업했다 — 후쿠오카에 지은 호텔 일 팔라초가 그 예다.
사진으로 보면, 붉은 벽돌로 마감한 이 호텔 로비에 로시 특유의 단순한 기둥과 아치가 반복된다. 밀라노에서 쓰던 어휘를 그대로 후쿠오카까지 가져간 셈이다.
극장은 없어졌고, 사진은 남았다
로시는 1997년 9월, 교통사고 끝에 세상을 떠났다. 예순여섯이었다.
테아트로 델 몬도는 지금 세상에 없다. 남은 건 도면과 몇 장의 사진뿐이다. 영구적인 것을 평생 이론화한 사람이 가장 사랑받은 건, 결국 사라진 건물이었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알도 로시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 건축가다. 1931년 태어나 1997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테아트로 델 몬도는 지금도 남아 있나?
아니다. 1979년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위해 지은 임시 목조 극장으로, 행사가 끝난 뒤 두브로브니크 전시를 거쳐 해체됐다. 지금은 도면과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산 카탈도 공동묘지는 왜 유명한가?
벽 없이 창틀 격자만 남은 납골당 건물 때문이다. 마치 골조만 남은 건물처럼 보이는 이 디자인은 알도 로시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도시의 건축'은 어떤 책인가?
1966년 알도 로시가 쓴 이론서다. 도시를 기능이 아니라 반복되는 형태의 유형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해 신합리주의 건축 운동의 기반이 됐다.
참고문헌
- Aldo Rossi, L'architettura della città, Marsilio, 1966
- Aldo Rossi, A Scientific Autobiography, MIT Press, 1981
-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1990 Citation: Aldo Rossi, The Hyatt Foundation,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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