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의 위령비, 불꽃, 원폭 돔은 정확히 일직선에 놓여 있다.
-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의 세 지점은 우연히 일직선에 놓인 게 아니다.
- 탕게 겐조는 메타볼리즘 운동을 만들지 않았지만, 그 운동의 뿌리로 꼽힌다.
- 그가 그린 도쿄만 위의 도시는 끝내 지어지지 않았다.
이 글의 순서
Photo by Netherlands Architecture Institute (NAI) / CC BY-SA 2.0 / Wikimedia Commons
위령비, 불꽃, 돔이 일직선으로 놓인 이유
사진으로 보면,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의 위령비 아치 너머로 '평화의 불꽃'이 보이고, 그 너머로 다시 원폭 돔이 겹쳐 보인다. 세 지점이 정확히 일직선이다. 우연이 아니다.
탕게 겐조는 1949년 이 공원 설계 공모에 당선됐을 때, 이 축을 의도적으로 그었다. 참배객이 위령비 앞에 서면, 시선이 자연스럽게 폐허가 된 돔까지 이어지도록.
그는 학창 시절을 히로시마에서 보냈다고 알려져 있다. 원폭이 떨어지기 전의 그 도시를 실제로 걸어본 사람이, 그 도시가 사라진 자리에 기념관을 설계한 셈이다.
도쿄대 연구실에서 길러낸 제자들
탕게 겐조는 도쿄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1938년 졸업했다. 이후 마에카와 쿠니오의 사무소에서 일했다. 마에카와는 르 코르뷔지에 밑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건축가였다.
탕게는 다시 도쿄대로 돌아가 대학원을 마치고 교수가 됐다. 그의 연구실을 거쳐 간 학생 중에는 훗날 메타볼리즘 운동을 만든 건축가들이 있다 — 구로카와 기쇼, 마키 후미히코 같은 이름이다.
정작 탕게 본인은 메타볼리즘 창립 선언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를 그 운동의 스승이자 정신적 뿌리로 꼽는 사람이 많다.
짓지 못한 도면이 실제로 지어진 건물보다 더 오래 회자되는 경우가 있다.
Photo by Rs1421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탕게 겐조, 케이블 하나로 지붕 전체를 붙들다
1964년 도쿄올림픽을 위해 지은 요요기 국립경기장은, 지붕 전체를 두 개의 기둥과 거대한 케이블 몇 가닥으로 걸어 놓은 구조다. 중간에 기둥이 없어서, 관중석 어디서도 시야를 가리는 게 없다.
구조 설계는 쓰보이 요시카쓰가 맡았다. 케이블에 인장력만 걸리도록 지붕 곡면을 정밀하게 계산했다. 텐트 천을 팽팽하게 당겨 세운 것과 원리가 비슷하다.
발전 설비에서도 케이블 트레이나 현수 배관을 설계할 때 인장과 처짐을 계산한다. 다만 우리는 그걸 감추려고 하고, 요요기 경기장은 그걸 지붕의 형태 자체로 드러냈다. 같은 계산을, 정반대의 태도로 쓴 셈이다.
Photo by Daderot / CC0 / Wikimedia Commons도쿄만을 가로지르는 도시, 짓지는 못했다
1960년, 탕게는 '도쿄계획 1960'이라는 안을 발표했다. 도쿄만을 가로질러 축을 하나 긋고, 그 축을 따라 주거와 업무 시설을 계속 증축할 수 있는 도시를 제안했다. 세포가 분열하듯 도시가 자라난다는 발상이었다.
이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안은 이후 수십 년간 여러 건축가들의 도시 계획에 영향을 줬다고 평가된다. 짓지 못한 도면이 실제로 지어진 건물보다 더 오래 회자되는 경우가 있다.
쌍둥이 탑 청사와 엇갈린 평가
1991년 완공한 도쿄도청사는 신주쿠에 있는 쌍둥이 타워다. 고딕 성당의 첨탑을 연상시키는 뾰족한 상부 구조 때문에, 완공 당시부터 컴퓨터 회로기판 같다는 조롱도 받았다. 공사비가 과도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1987년, 탕게 겐조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았다. 일본인 건축가로는 처음이었다. 히로시마의 기념관에서 도쿄의 마천루까지, 그의 경력은 한 나라가 폐허에서 다시 스카이라인을 세우는 과정과 거의 겹친다.
돔과 불꽃 사이, 지금도 이어지는 선
탕게 겐조는 2005년 3월, 도쿄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흔한 살이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의 그 축은 지금도 그대로다. 위령비 앞에 서면, 여전히 불꽃 너머로 돔이 보인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탕게 겐조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일본 건축가다. 1913년 태어났고 2005년 도쿄에서 세상을 떠났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의 축선은 무슨 의미인가?
위령비와 평화의 불꽃, 원폭 돔이 정확히 일직선에 놓이도록 탕게 겐조가 설계했다. 참배객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폐허가 된 돔까지 이어지도록 만든 장치다.
탕게 겐조는 메타볼리즘 운동의 창립 멤버인가?
아니다. 창립 선언에는 이름을 올리지 않았지만, 도쿄대 연구실에서 구로카와 기쇼, 마키 후미히코 등 메타볼리즘을 만든 건축가들을 길러냈다.
요요기 국립경기장의 지붕 구조는 어떤 방식인가?
두 개의 기둥과 케이블 몇 가닥으로 지붕 전체를 걸어 놓은 현수 구조다. 중간 기둥이 없어 관중석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 구조 설계는 쓰보이 요시카쓰가 맡았다.
참고문헌
-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1987 Citation: Kenzo Tange, The Hyatt Foundation, 1987
- Kenzo Tange, Yasuhiro Ishimoto, Walter Gropius, Katsura: Tradition and Creation in Japanese Architecture, Yale University Press, 1960
- Kenzo Tange, A Plan for Tokyo 1960: Toward a Structural Reorganization
- 일본 문화청, 요요기 국립경기장 중요문화재 지정 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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