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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짓는 건축가?/근대건축의 기초

미스 반 데어 로에 — 오닉스 한 덩이가 천장 높이를 정했다

by aclstoryji 2026. 6. 23.

재료가 도면을 이긴 순간과, 장식을 거부한 사람이 외벽에 붙여 놓은 청동 기둥에 대한 기록.

3초 요약
  •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석공의 아들이었고 건축 학위가 없다. 재료를 다루는 눈은 학교가 아니라 아버지의 공방에서 왔다.
  • 오닉스 한 덩이가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높이를 정했다. 다만 지금 서 있는 그 건물은 1986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 그는 장식을 거부하면서 구조를 표현하려고 하중을 받지 않는 청동 I빔을 외벽에 붙였다.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대표작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Barcelona Pavilion)Photo by Hans Peter Schaefer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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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교를 다닌 적 없는 석공의 아들

미스 반 데어 로에는 건축을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다. 학위가 없다. 그가 처음 재료를 익힌 곳은 독일 아헨에 있던 아버지의 석재 공방이었다. 돌을 자르고 면을 맞추는 일을 옆에서 보며 자랐다.

이후 장식 도안을 그리는 회사를 거쳐 1908년부터 4년간 페터 베렌스의 사무실에서 일했다. 같은 시기 그 사무실에는 발터 그로피우스가 있었고, 르 코르뷔지에도 잠시 머물렀다. 20세기 건축을 나눠 가질 사람들이 한 방에 있었던 셈이다.

본명은 루트비히 미스였다. 1920년대 초 그는 어머니 쪽 성 로에에 네덜란드식 전치사를 붙여 '반 데어 로에'를 만들어 이름 뒤에 달았다. 돌을 만지며 배운 사람이 유리와 철의 대명사가 되기까지, 그는 이름부터 다시 지었다.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대표작 판즈워스 하우스 (Farnsworth House)Photo by Victor Grigas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오닉스 한 덩이가 천장 높이를 정했다

1929년 바르셀로나 만국박람회의 독일관은 전시할 물건이 없는 전시관이었다. 안에는 의자 두 개와 물웅덩이뿐이었다. 대신 재료가 전시물이었다. 트래버틴, 초록 알프스 대리석, 회색 유리, 그리고 십자 단면의 크롬 기둥.

그중 황금빛 오닉스 벽이 있었다. 널리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가 확보한 오닉스는 덩이 하나가 전부였고 거기서 잘라낼 수 있는 판의 크기가 벽의 높이를 정했다. 그리고 그 벽 높이에 맞춰 천장이 내려왔다. 도면이 재료를 부린 것이 아니라 재료가 도면을 이긴 것이다.

현장에서 일해 본 사람은 이 장면을 알아본다. 자재의 규격이 도면을 고치는 일은 지금도 매주 일어난다. 대개는 어쩔 수 없이 타협하고, 그 타협의 흔적이 남는다. 미스는 그 제약을 감추지 않고 건물의 비례로 삼았다. 나는 이 대목이 그의 가장 뛰어난 판단이었다고 본다.

다만 지금 바르셀로나에서 볼 수 있는 그 건물은 1929년의 그것이 아니다. 독일관은 박람회가 끝난 1930년에 해체됐고, 오늘 서 있는 것은 1983년부터 3년에 걸쳐 다시 지은 재건물이다. 사진으로 보면 거대해 보이지만 실제 규모도 그리 크지 않다. 우리가 근대건축의 정점이라 부르며 보고 있는 것은, 사라진 건물의 정교한 복원이다.

그는 장식을 지운 자리에 구조의 초상화를 걸었다.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대표작 시그램 빌딩 (Seagram Building)Photo by Gigi alt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사진으로 완벽하고 살기엔 나쁜 집

1951년 일리노이의 강가에 판즈워스 하우스가 완성됐다. 흰 철골 여덟 개가 바닥판과 지붕판을 들고, 그 사이는 전부 유리다. 방이 없다. 벽이 없으니 문도 거의 없다.

건축주 에디스 파른스워스는 의사였고, 주말에 쉴 집을 원했다. 그런데 완성된 집에는 옷장이 없었고 가림막은 커튼뿐이었다. 여름이면 사방의 유리가 온실처럼 열을 모았다. 공사비 초과를 두고 두 사람은 소송까지 갔다.

그리고 이 집은 물에 잠긴다. 폭스강 범람원이라 바닥을 지면에서 1.6미터쯤 띄워지었는데도 여러 차례 침수됐고, 1996년에는 물이 바닥 위로 1.5미터 넘게 차올랐다. 나는 이 대목에서 늘 같은 생각을 한다. 부지 조건은 설계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높이를 올릴 수는 있어도 물이 어디까지 오는지를 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집은 사진으로 여전히 완벽하다. 두 문장을 함께 써야 이 집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된다. 사진으로 완벽하고, 살기엔 나빴다.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대표작 베를린 신 국립미술관 (Neue Nationalgalerie)Photo by Evgenii Salganik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외벽에 붙인 청동 기둥

1958년 뉴욕 파크 애비뉴에 시그램 빌딩이 섰다. 청동과 청동빛 유리로 마감한 이 건물은 지금도 20세기 오피스 건축의 기준으로 불린다.

이 건물의 외벽에는 위아래로 길게 뻗은 청동 I빔이 촘촘히 붙어 있다. 구조를 그대로 드러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I빔은 하중을 받지 않는다. 뉴욕의 방화 규정이 철골을 콘크리트로 감싸도록 요구했고, 그러자 건물의 진짜 구조는 눈에 보이지 않게 됐다. 미스는 감춰진 구조를 밖에서 보이게 하려고 구조가 아닌 부재를 덧붙였다.

속임수라고 부르면 지나치다. 그는 장식을 지운 자리에 구조의 초상화를 걸었다. 장식을 거부한 사람이 표현을 위해 부재를 덧댔다는 사실은, 그의 건축이 순수한 논리가 아니라 선택이었음을 보여준다. 나에게는 이 모순이 그의 완벽한 비례보다 흥미롭다.

그는 입주자들이 블라인드를 아무렇게나 내려 외벽이 어지러워지는 것도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세 위치에만 멈추는 블라인드를 지정했다고 전해진다. 완전히 열거나, 절반이거나, 완전히 닫거나.

그가 비워 둔 땅이 제도가 되었을 때

시그램 빌딩은 대로에서 뒤로 물러나 앞에 넓은 광장을 남겼다. 비싼 땅을 비워 시민에게 돌려준 결정이었고, 당시로서는 관대한 제스처였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1961년 뉴욕은 조닝을 개정하면서 공개 광장을 내놓는 건물에 더 높은 용적을 허용했다. 시그램의 광장이 규칙이 된 것이다. 그 뒤 맨해튼에는 아무도 앉지 않는 바람 부는 광장이 수십 개 생겼다. 한 사람의 좋은 판단이 제도가 되면, 맥락이 빠진 채 복제된다.

그의 이력에는 다른 그늘도 있다. 1930년부터 3년간 바우하우스 교장을 맡았고 나치의 압박 속에서 학교를 닫았다. 그러면서도 1930년대 중반까지 독일에 남아 새 정권의 공모전에 참가했고, 1934년에는 체제를 지지하는 문화계 인사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정치적 신념으로 그랬는지 일감이 필요해서였는지는 지금도 해석이 갈린다. 1938년 그는 미국으로 떠났다.

유리 상자 아래에 남은 돌

미스 반 데어 로에는 1886년 아헨에서 태어나 1969년 시카고에서 여든셋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작품인 베를린의 신 국립미술관은 1968년에 완성됐다. 거대한 강철 지붕을 유압잭으로 들어 올려 기둥에 앉히는 공사 장면이 사진으로 남아 있다.

그는 재료가 도면을 이기는 순간을 비례로 바꿀 줄 알았고, 사진으로 완벽하지만 살기 어려운 집을 지었으며, 장식을 거부한 채 표현을 위해 부재를 덧붙였다. 그가 남긴 것은 정직한 구조가 아니라 정직해 보이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구조다. 그 차이를 아는 것이 그를 제대로 읽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돌을 자르던 공방에서 시작한 사람이 평생 붙들었던 것은 결국 면과 이음새였다. 1968년 완성된 베를린 신 국립미술관, 그의 마지막 작품에서 거대한 강철 지붕은 유압 잭에 들려 올라가 여덟 개 기둥 위에 정확히 내려앉았다.

쉬어가는 퀴즈

시그램 빌딩 외벽에 촘촘히 붙어 있는 청동 I빔의 역할은 무엇일까?

  • 가. 구조를 지지하지 않는 표현용 부재
  • 나. 건물 하중을 받는 주기둥
  • 다. 창문을 여닫기 위한 장치
정답 확인

정답: 가. 방화 규정 때문에 철골을 콘크리트로 감싸야 했고, 감춰진 구조를 밖에서 보이게 하려고 덧붙인 것이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은 원래 건물인가?

아니다. 1929년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었다가 박람회가 끝난 1930년에 해체됐다. 지금 바르셀로나에 있는 것은 1983년부터 3년에 걸쳐 원래 위치에 다시 지은 재건물이다.

미스 반 데어 로에는 건축 교육을 받았나?

정규 건축 학위가 없다. 아헨에서 석공이었던 아버지의 작업장에서 재료를 익혔고, 장식 도안 일을 거쳐 1908년부터 페터 베렌스의 사무실에서 실무를 배웠다. 같은 시기 그 사무실에 발터 그로피우스가 있었다.

판즈워스 하우스는 왜 문제가 됐나?

벽이 없어 사생활이 없고 옷장 같은 기본 수납이 부족했으며 여름에는 유리가 열을 모았다. 폭스강 범람원에 있어 바닥을 1.6미터쯤 띄웠는데도 여러 차례 침수됐고 1996년에는 물이 바닥 위로 1.5미터 넘게 찼다. 건축주 에디스 파른스워스와 미스는 공사비를 두고 소송까지 갔다.

시그램 빌딩 외벽의 I빔은 구조인가?

아니다. 하중을 받지 않는 표현용 부재다. 뉴욕 방화 규정이 철골을 콘크리트로 감싸도록 요구해 진짜 구조가 보이지 않게 되자, 감춰진 구조를 밖에서 드러내려고 청동 I빔을 붙였다.

시그램 빌딩 앞 광장이 도시에 어떤 영향을 줬나?

대로에서 물러나 광장을 내준 방식이 1961년 뉴욕 조닝 개정에 반영돼, 공개 공지를 제공하면 더 높은 용적을 허용하는 제도가 됐다. 그 결과 맨해튼에 형식만 남고 사람이 머물지 않는 광장이 여럿 생겼다.

참고문헌

  1. Franz Schulze · Edward Windhorst, 『Mies van der Rohe: A Critical Biography, New and Revised Editi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2
  2. Phyllis Lambert, 『Building Seagram』, Yale University Press, 2013
  3. Alice T. Friedman, 『Women and the Making of the Modern House』, Harry N. Abrams, 1998
  4. Detlef Mertins, 『Mies』, Phaidon, 2014
  5. Fundació Mies van der Rohe(바르셀로나), 「German Pavilion 재건 기록」

글쓴이

실내건축과를 졸업했고, 현재 대한민국의 발전소 관련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공간과 재료를 실무 현장의 눈으로 보며, 발전 설비·플랜트의 기능성과 구조·안전의 관점에서 건축을 읽는다. 또한 여행과 건축 답사를 좋아하지만, 경제적 여건 탓에 자주 떠나지는 못한다. 대신 사진과 도면, 기록을 오래 들여다보고, 직접 가 본 곳에서는 현장에서 느낀 공간 경험을 글에 녹이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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