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하우스를 세운 발터 그로피우스는 정작 건축 학위를 마치지 못했다.
- 바우하우스를 세운 발터 그로피우스는 건축 학위가 없다.
- 그는 1차대전 참호에 파묻혔다가 살아남았다.
- 그가 설계한 공장 하나는 지금도 실제로 가동 중이다.
이 글의 순서
Photo by Louis Held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바우하우스를 만든 사람은 건축 학위가 없다
발터 그로피우스는 뮌헨과 베를린의 공과대학에서 건축을 배웠다. 그런데 학위를 마치지 못하고 중퇴했다.
20세기 건축 교육의 틀을 다시 짠 사람이, 정작 자기 교육은 끝까지 마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는 흥미롭다. 학위가 없어도 되는지, 아니면 학위로는 못 배우는 게 따로 있는지, 이 질문에 그로피우스 본인이 평생 답한 셈이다.
Photo by Traveler100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베렌스의 사무소, 그리고 파묻힌 참호
1907년, 그로피우스는 페터 베렌스의 사무소에 들어갔다. 비슷한 시기 그 사무소를 거쳐 간 사람 중에는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와 르 코르뷔지에도 있었다. 20세기 건축을 나눠 가질 세 사람이, 한동안 같은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었던 셈이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그로피우스는 기병 장교로 참전했다. 전투 중 폭발로 참호가 무너져 한동안 파묻혔다가 구조됐다고 전해진다.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이 경험이 그의 건축관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직접 증언한 기록은 찾지 못했다. 다만 전쟁이 끝난 1919년, 그는 바우하우스를 세웠다. 폐허 위에서 다시 짓는 일을 택한 셈이다.
학위가 없어도 되는지, 아니면 학위로는 못 배우는 게 따로 있는지, 이 질문에 그로피우스 본인이 평생 답한 셈이다.
Photo by Lorkan / CC BY 2.0 / Wikimedia Commons그로피우스, 기둥 없는 모서리를 처음 만들다
1911년, 그로피우스는 동료 아돌프 마이어와 함께 파구스 공장을 설계했다. 신발 골 제작 공장이었다. 사진으로 보면, 이 건물의 모서리에는 기둥이 없다. 유리벽 두 면이 그냥 맞닿는다.
당시 건물은 벽이 하중을 받았다. 모서리에 기둥이나 두꺼운 벽체가 있는 게 상식이었다. 그로피우스는 철골 구조로 하중을 안쪽 기둥이 다 받게 하고, 바깥 벽은 순전히 유리로만 채웠다.
발전 설비에서도 하중을 받는 부재와 그냥 막아주는 부재를 구분한다. 배관을 지지하는 행거와, 그냥 바람을 막는 패널은 다른 부재다. 그로피우스가 파구스 공장에서 한 일이 정확히 그거였다 — 구조와 외피를 분리해서, 외피를 유리로 가볍게 만들 수 있었다.
바우하우스, 바이마르에서 데사우로
1919년, 그로피우스는 바이마르에서 두 학교를 합쳐 바우하우스를 세웠다. 그림과 조각 같은 순수예술과, 목공·금속공예 같은 수공예를 한 학교 안에 묶었다. 학생들은 이론 수업과 함께 실제 작업장에서 손으로 만드는 법부터 배웠다.
1925년, 지역 정부가 지원을 끊으면서 학교는 데사우로 옮겨야 했다. 그로피우스는 새 교사를 직접 설계했다. 작업장 동은 유리 커튼월로 덮여, 지금도 근대건축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실린다.
1928년, 그는 학교장 자리에서 내려왔다. 한네스 마이어를 거쳐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마지막 교장이 됐고, 1933년 나치가 학교를 폐쇄했다.
Photo by Kidfly182 / CC BY 4.0 / Wikimedia Commons미국에서 지은 집과, 미국에서 받은 비판
1937년, 그로피우스는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학교 건축과 학장이 됐다. 이후 아이엠 페이, 필립 존슨 같은 건축가들이 그의 강의를 들었다.
매사추세츠 링컨에 지은 자기 집(1938)은 그가 유럽에서 가져온 원칙 — 평지붕, 유리, 철제 난간 — 을 뉴잉글랜드 지역의 목재 외장, 돌담과 섞어놓은 집이다. 지금은 국가사적지로 지정돼 박물관으로 쓰인다.
1963년 완공한 뉴욕 팬암 빌딩(지금의 메트라이프 빌딩)은 평가가 갈린다.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바로 위, 파크 애비뉴 축을 가로막는 자리에 거대한 매스로 올라간 이 건물은 완공 당시부터 도시 경관을 해친다는 비판을 받았다.
학위 없이 시작해서, 학과장으로 끝났다
그로피우스는 1969년 7월, 보스턴에서 세상을 떠났다. 여든여섯이었다. 뮌헨에서 중퇴했던 그 학생은, 그사이 학교 하나를 세우고 또 하나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다시 짰다.
1911년 그가 설계한 파구스 공장은 201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신발 골을 만드는 공장으로 가동 중이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발터 그로피우스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귀화한 건축가다. 1883년 베를린에서 태어났고 1969년 보스턴에서 세상을 떠났다.
바우하우스는 언제, 어디서 세워졌나?
1919년 독일 바이마르에서 세워졌다. 1925년 데사우로 옮겼고, 1933년 나치에 의해 폐쇄됐다.
발터 그로피우스는 건축 학위가 있나?
없다. 뮌헨과 베를린의 공과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지만 학위를 마치지 못하고 중퇴했다.
파구스 공장은 왜 유명한가?
모서리에 기둥 없이 유리벽 두 면이 그대로 맞닿는 초기 근대건축의 대표작이기 때문이다. 201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고, 지금도 신발 골 공장으로 가동 중이다.
발터 그로피우스는 미국에서 무슨 일을 했나?
1937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학교 건축과 학장을 지냈다. 아이엠 페이, 필립 존슨 등을 가르쳤고, 뉴욕 팬암 빌딩(현 메트라이프 빌딩) 설계에도 참여했다.
참고문헌
- Walter Gropius, The New Architecture and the Bauhaus, Faber & Faber, 1935
- Reginald Isaacs, Walter Gropius: An Illustrated Biography of the Creator of the Bauhaus, Bulfinch Press, 1991
- UNESCO World Heritage List, Fagus Factory in Alfeld, 공식 등재 문서, 2011
- Historic New England, 그로피우스 하우스 박물관 관람 안내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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