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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짓는 건축가?/도시와 논쟁

요른 웃손, 완공된 오페라하우스를 못 본 건축가

by aclstoryji 2026. 6. 28.

웃손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가 완공되고 35년이 지나도록 그 건물을 직접 보지 않았다.

먼저 알아둘 세 가지
  • 요른 웃손의 오페라하우스 당선작은 한때 탈락 더미에 있었다.
  • 그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가 완공되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다.
  • 그 건물 내부는 사실 다른 건축가가 설계했다.
건축가 요른 웃손Photo by edwin11_79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요른 웃손의 고향과 대표작 위치를 표시한 항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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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계획 — 지도 번호와 같은 순서다

떨어진 그림 더미에서 건진 스케치

1957년 1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설계 공모 심사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233개 응모작 중 대부분은 이미 탈락 더미에 쌓여 있었다. 뒤늦게 도착한 심사위원 한 명이 그 더미를 뒤적이다가 스케치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그 심사위원은 에로 사리넨이었다. 그가 꺼낸 스케치는 요른 웃손이라는, 당시 거의 무명이던 덴마크 건축가의 응모작이었다. 사리넨은 이걸 1등으로 밀었고, 결국 웃손이 당선됐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등골이 서늘하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 중 하나가, 하마터면 아무도 못 볼 뻔했다는 뜻이니까.

요른 웃손의 대표작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Sydney Opera House)Photo by Diliff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조선소 집 아들

웃손은 1918년 코펜하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조선 기술자였고, 알보르에서 요트를 설계하는 조선소를 운영했다. 어릴 때부터 선체 도면, 돛의 곡률, 파도를 가르는 뱃머리 같은 것들을 보며 자랐다.

1942년 왕립 덴마크 미술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케이 피스케르와 스텐 아일레르 라스무센 밑에서 배웠다. 그런데 정작 그의 건축을 설명할 때 학교보다 자주 언급되는 건 아버지의 조선소다.

나는 이 지점에서 조금 부럽다. 나는 곡면을 유체가 흐르는 길을 따라 계산해서 얻는다. 웃손은 그 곡면을 아름다움을 위해 그렸다. 같은 곡선이라도 목적이 다르면 다른 감각이 필요하다는 걸, 이 이야기를 읽으며 새삼 느꼈다.

그는 호주를 떠났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요른 웃손의 대표작 바스바드 교회 (Bagsværd Church)Photo by Erik Christensen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오렌지 껍질에서 나온 지붕

웃손의 첫 스케치는 아름다웠지만 지을 수 없었다. 조가비 모양 지붕을 이루는 곡면들이 저마다 다른 곡률이었다. 이걸 그대로 콘크리트로 부으려면 모든 패널을 하나씩 따로 설계하고 따로 거푸집을 짜야했다. 비용도, 공기도 감당이 안 됐다.

오브 아럽이 이끄는 구조팀이 몇 년을 매달렸다. 1961년 무렵, 웃손은 해법을 찾았다. 모든 조가비 곡면을 하나의 구(球)에서 잘라낸 조각으로 통일하면, 곡률이 같아지고 부재를 표준화할 수 있었다. 오렌지 껍질을 벗기다가 이 생각이 떠올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정확한 경위는 확인하지 못했다.

발전소 부품도 이런 식으로 표준화한다. 같은 규격의 곡면을 반복해서 찍어내면, 단가도 낮아지고 품질 관리도 쉬워진다. 웃손이 찾은 건 아름다운 모양이 아니라, 아름다운 모양을 반복 생산 가능하게 만드는 규칙이었다.

요른 웃손의 대표작 쿠웨이트 국회의사당 (Kuwait National Assembly Building)Photo by U.S. Department of State from United States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웃손은 완공된 건물을 한 번도 못 봤다

공사는 1959년 시작됐다. 원래 계획은 4년, 예산은 약 350만 파운드였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는 14년이 걸렸고, 최종 비용은 1억 200만 호주 달러에 달했다.

1966년, 웃손은 사퇴했다. 새로 들어선 뉴사우스웨일스 주정부가 공사비 지급을 미루고 설계 결정권을 자꾸 가져가려 하면서 갈등이 쌓였다. 그는 호주를 떠났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1973년 완공식에도, 그 뒤로도, 그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실제로 본 적이 없다.

이 사실이 나는 계속 마음에 걸린다. 자기 이름과 가장 강하게 묶인 건물을, 사진으로만 본 채 세상을 떠난 사람이 있다는 것.

요른 웃손의 대표작 칸 리스 (Can Lis)Photo by drz image / CC BY-SA 2.0 / Wikimedia Commons

내부는 사실 다른 사람이 설계했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내부를 걸어본 사람들은 대개 그것도 웃손의 설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콘서트홀과 오페라극장 내부는 웃손이 물러난 뒤 피터 홀이 이끈 팀이 새로 설계했다.

웃손이 직접 설계해 완성까지 본 실내 공간은 건물 안에 딱 한 곳, '웃손 룸'뿐이다. 1999년 그가 자문으로 다시 참여하면서 2004년에야 만들어졌다. 그가 직접 비례와 마감을 확인할 수 있었던 실내는 이 방이 유일하다.

2003년 프리츠커상을 받았을 때, 심사위원단은 이 건물을 20세기의 위대한 상징적 건물 중 하나로 꼽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완성해서 본 건 코펜하겐 근교 바스바드 교회였다 — 밋밋한 상자 같은 외벽 안에, 구름을 닮은 콘크리트 천장이 물결친다.

그가 마지막으로 산 곳

웃손은 1970년대 초 스페인 마요르카섬에 '칸 리스'라는 집을 지어 살았다. 지역 사암을 그대로 잘라 쓴 집이다. 사진으로 보면, 창을 통해 지중해가 보이도록 벽 두께와 창틀 깊이를 조절한 흔적이 보인다.

웃손은 2008년 11월, 덴마크에서 아흔 살로 세상을 떠났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그해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끝내 가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요른 웃손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

덴마크 국적의 건축가다. 1918년 코펜하겐에서 태어났고 2008년 세상을 떠났다.

요른 웃손은 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완공을 보지 못했나?

1966년, 뉴사우스웨일스 주정부와 공사비·설계 결정권을 둘러싼 갈등 끝에 사퇴하고 호주를 떠났다. 1973년 완공 이후에도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내부도 요른 웃손이 설계했나?

아니다. 콘서트홀과 오페라극장 내부는 그가 물러난 뒤 피터 홀이 이끈 팀이 새로 설계했다. 그가 직접 설계해 완성까지 본 실내 공간은 '웃손 룸' 한 곳뿐이다.

요른 웃손의 다른 대표작은 무엇인가?

코펜하겐 근교의 바스바드 교회, 쿠웨이트 국회의사당, 스페인 마요르카섬에 지은 자택 '칸 리스' 등이 있다.

참고문헌

  1.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2003 Citation: Jørn Utzon, The Hyatt Foundation, 2003
  2. Richard Weston, Utzon: Inspiration, Vision, Architecture, Edition Bløndal, 2002
  3. Sydney Opera House, UNESCO World Heritage List 공식 등재 문서, 2007
  4. Sydney Opera House Trust, 「Utzon Design Principles」 문서(2002년, 웃손 자문 복귀 후 작성)
  5. Ove Arup & Partners,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구조 설계 관련 기술 문헌(Ove Arup 사후 정리본 포함)

글쓴이

실내건축과를 졸업했고, 현재 대한민국의 발전소 관련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공간과 재료를 실무 현장의 눈으로 보며, 발전 설비·플랜트의 기능성과 구조·안전의 관점에서 건축을 읽는다. 또한 여행과 건축 답사를 좋아하지만, 경제적 여건 탓에 자주 떠나지는 못한다. 대신 사진과 도면, 기록을 오래 들여다보고, 직접 가 본 곳에서는 현장에서 느낀 공간 경험을 글에 녹이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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