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장식 세공으로 출발해 20세기 도시의 형태를 바꾼 사람, 그리고 그가 남긴 그림자와 누수와 논쟁에 대한 기록.
- 르 코르뷔지에는 시계를 꾸미는 장식 세공으로 출발해, 평생 장식을 지우는 쪽으로 걸었다.
- 그가 가장 뛰어났던 지점은 형태가 아니라 그림자였다. 열을 들어오기 전에 막는 계산을 건물의 얼굴로 만들었다.
- 반면 빌라 사보아는 비가 샜고 파리를 헐자던 도시안은 우리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안에 살아남았다.
이 글의 순서
Photo by SVT bild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시계에 무늬를 올리던 손
그가 열세 살에 배운 첫 기술은 시계를 꾸미는 장식 세공이었다. 라쇼드퐁의 미술학교는 시계 산업에 필요한 조각공과 에나멜공을 길러 냈고, 그도 거기서 출발했다. 스위스 쥐라 산맥의 이 도시는 겨울이 길고, 도시 전체가 시계 공장의 리듬으로 돌아갔다.
훗날 집을 '살기 위한 기계'라고 부른 사람의 첫 직업이 기계를 꾸미는 일이었다는 사실은, 지금 봐도 조금 이상하다. 미술학교의 스승 샤를 레플라트니에가 그를 건축 쪽으로 밀었다. 스물다섯에 부모를 위한 집을 지었고, 서른셋이던 1920년 잡지 『레스프리 누보』에서 처음 필명을 썼다.
본명은 샤를에두아르 잔레, 필명은 외가 쪽 성에서 따온 르 코르뷔지에였다. 1930년에는 프랑스 국적을 얻었다. 이름을 바꾸는 사람은 대개 이전 이름의 무엇인가를 버리려 한다. 그가 버리려던 것은 아마 무늬였을 것이다.
집이 기계라면, 그 기계는 왜 비가 샜을까?
1931년 파리 근교 푸아시에 빌라 사보아가 완공됐다. 그가 정리한 다섯 가지 원칙이 한 채 안에 다 들어간 집이다.
- 필로티 : 건물을 기둥으로 들어 올려 1층을 비운다
- 옥상정원 : 빼앗은 땅을 지붕에서 돌려준다
- 자유로운 평면 : 기둥이 하중을 받으니 벽은 어디든 설 수 있다
- 가로로 긴 창 : 창이 벽을 가로질러 빛을 고르게 편다
- 자유로운 파사드 : 외벽이 구조에서 풀려나 표정만 맡는다
그런데 이 집은 완공 직후부터 물이 샜다. 사보아 부인은 지붕과 천창의 누수를 여러 차례 항의하는 편지를 보냈고, 분쟁은 전쟁 직전까지 이어졌다. 도면에서 가장 얇게 그려지는 층이 현장에서는 가장 두꺼운 문제가 된다. 평지붕과 배수는 어디서 지어도 제일 먼저 터지는 자리다. 나는 이걸 개인의 실수라기보다, 그가 고른 형태가 치른 값에 가깝다고 본다.
그렇다고 이 집의 값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한때 철거 위기까지 갔던 빌라 사보아는 1965년 프랑스 역사기념물로 지정됐다. 결함이 있는 채로 살아남은 집이다.
거친 콘크리트는 재료의 본성이 아니라, 그 시대가 감당할 수 있었던 정직함의 얼굴이었다.
거친 콘크리트는 철학이었을까, 형편이었을까?
1952년 마르세유에 위니테 다비타시옹이 문을 열었다. 337세대가 한 덩어리에 들어가고, 중간층에는 상점가가, 옥상에는 유치원과 러닝트랙이 올라간 건물이다. 도시를 한 채에 넣어 보겠다는 시도였다.
이 건물의 얼굴은 베통 브뤼, 거푸집 자국이 그대로 남은 노출 콘크리트다. 흔히 재료의 본성을 존중한 결과라고들 하는데, 사실에 더 가까운 설명은 다르다. 전후 프랑스는 자재도 숙련공도 부족했고, 매끄럽게 나오지 않은 면이 그대로 나왔다. 그는 그걸 갈아내고 덮는 대신 남겨두기로 했다. 거친 콘크리트는 재료의 본성이 아니라, 그 시대가 감당할 수 있었던 정직함의 얼굴이었다.
한 세대의 폭은 3.66미터다. 좁다. 대신 복층으로 층고를 벌고 건물을 앞뒤로 관통시켜 양쪽에서 빛을 받게 했다. 좁은 폭을 높이와 길이로 갚은 평면이다. 지금도 이 건물 3층에는 호텔이 영업 중이라, 마음먹으면 그 폭 안에서 하룻밤을 자 볼 수 있다.
Photo by Abbé Tournier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에어컨이 싸지기 전에, 그는 그림자를 설계했다
20세기 초 건축은 유리를 넓히는 쪽으로 갔다. 그런데 유리는 빛만 들이지 않는다. 열도 함께 들어온다. 1930년대 알제와 바르셀로나를 위한 계획안을 그리면서 그는 브리즈 솔레이, 곧 햇빛을 잘라내는 차양을 다루기 시작했다.
차양 자체를 그가 발명한 것은 아니다. 그늘을 만드는 장치는 훨씬 오래됐다. 그가 한 일은 덧붙이는 부속이던 것을 정면을 이루는 뼈대로 올린 것이다. 1930년대 말 리우데자네이루 교육보건부 청사에서 대규모로 실현됐는데, 설계는 루시우 코스타와 오스카르 니에메예르를 비롯한 브라질 팀이 맡았고 그는 자문으로 참여했다.
이 대목에서 나는 그가 가장 건축가답다고 생각한다. 열은 들어온 뒤에 없애면 비싸고, 들어오기 전에 막으면 싸다. 현장에서 냉방 용량을 한 단계 올리려면 전기와 배관과 유지비가 통째로 따라붙는다. 기계가 흔해지기 전에 그는 그 계산을 건물의 얼굴로 만들었다. 물론 대가는 있다. 구조에서 튀어나온 콘크리트 부재는 열이 새는 길이 되고 높은 곳의 차양은 청소와 보수가 성가시다. 그걸 알고도 나는 이 선택이 옳았다고 본다. 볕을 먼저 막는 쪽이 거의 언제나 싸다.
1955년 완공된 롱샹의 노트르담 뒤 오에서 같은 태도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언덕 위에는 물이 없다. 그래서 지붕이 빗물을 모아 콘크리트 홈통으로 아래 저수조에 떨어뜨린다. 사진으로만 봤지만 이 건물에서 가장 눈에 남는 건 지붕이 벽에 얹혀 있지 않다는 점이다. 지붕은 작은 받침 위에 앉아 있고, 벽과 지붕 사이에 손가락 두어 개가 들어갈 만한 틈이 남는다. 그 틈을 따라 빛이 선처럼 들어온다. 언젠가 그 앞에 선다면 나는 두꺼운 벽보다 그 얇은 선을 먼저 볼 것 같다. 2011년 이 언덕에 렌초 피아노가 설계한 수녀원이 들어섰고, 그 개입을 두고 논쟁이 있었다.
Photo by duncid / CC BY-SA 2.0 / Wikimedia Commons르 코르뷔지에는 왜 파리를 헐자고 했을까?
1925년 그는 플랑 부아쟁을 발표했다. 파리 중심부의 오래된 구역을 헐고 십자 평면의 고층 건물 열여덟 동을 세우자는 안이었다.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논리는 20세기 후반 전 세계의 대규모 주거단지 안에 그대로 살아남았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 단지의 조상이 여기에 있다.
그의 정치적 행적에는 어두운 부분이 있다. 1940년대 초 그는 비시 정부에서 일감을 얻으려 상당 기간 로비했고, 사적인 편지에는 반유대적 표현이 남아 있다. 2015년 프랑스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책이 여러 권 나오며 논쟁이 크게 불붙었고, 그를 파시스트로 규정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반박도 함께 나왔다. 논쟁은 정리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같은 해 언저리에 다른 일도 있었다. 2016년 유네스코는 7개국에 흩어진 그의 건축 17건을 하나의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한 사람의 유산과 한 사람의 혐의가 같은 시기에 나란히 놓였다.
337세대를 그린 사람이 자기 몫으로 남긴 방
1952년, 마르세유에 337세대를 완성한 해에 그는 지중해 연안 로크브륀카프마르탱에 자기 오두막을 지었다. 카바농이라 불리는 이 통나무 방은 한 변이 3.66미터인 정사각형, 넓이로 치면 13 제곱미터 남짓이다. 위니테 한 세대의 폭과 정확히 같다. 지금은 가이드 투어로만 들어갈 수 있다.
1965년 8월 27일, 그는 그 오두막 아래 바다에서 수영하다 세상을 떠났다. 도시를 갈아엎자고 말했던 사람의 마지막 자리가 13 제곱미터였다는 사실은 오래 걸린다.
무늬를 올리던 손이 무늬를 지웠다. 그가 세운 다섯 원칙과 그림자에 대한 계산은 지금도 유효하고, 그가 남긴 누수와 거친 면과 도시안은 지금도 논쟁거리다. 완결된 답을 남긴 사람은 아니었다. 1925년 그가 파리에 제안했던 필로티 아래 빈 공간은, 백 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 아파트 단지 1층에 그대로 남아 있다.
르 코르뷔지에가 지중해 연안에 지은 자기 오두막 '카바농'의 넓이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
- 가. 약 13제곱미터
- 나. 약 45제곱미터
- 다. 약 90제곱미터
정답 확인
정답: 가. 한 변 3.66미터의 정사각형이라 13.4제곱미터쯤 된다. 위니테 한 세대의 폭과 같은 치수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르 코르뷔지에의 근대건축 5원칙은 무엇인가?
필로티, 옥상정원, 자유로운 평면, 가로로 긴 창, 자유로운 파사드 다섯 가지다. 철근콘크리트 기둥이 하중을 받으면 벽이 구조에서 풀려난다는 점이 다섯 원칙 전체의 전제다. 빌라 사보아가 이 원칙을 한 채 안에 모두 담은 대표 사례다.
브리즈 솔레이는 무엇이고 왜 중요한가?
건물 정면에 붙여 햇빛을 잘라내는 차양 장치다. 차양 자체는 훨씬 오래된 방법이지만, 르 코르뷔지에는 그것을 덧붙이는 부속이 아니라 정면을 이루는 구성 요소로 끌어올렸다. 냉방 설비가 흔해지기 전에 열을 들어오기 전에 막는 방식이라, 오늘날 패시브 설계 관점에서 다시 읽힌다.
빌라 사보아는 지금도 들어가 볼 수 있나?
파리 근교 푸아시에 있고 일반에 유료로 공개된다. 파리에서 RER A선 푸아시역까지 간 뒤 버스로 접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휴관일과 관람 시간은 계절마다 바뀌니 방문 전에 확인하는 편이 좋다.
마르세유 위니테 다비타시옹에서 하룻밤 묵을 수 있나?
묵을 수 있다. 건물 3층에 호텔이 운영되고 있어 일반 여행자도 예약할 수 있다. 한 세대 폭이 3.66미터인 원래 평면 감각을 몸으로 확인해 보고 싶다면 사진보다 훨씬 나은 방법이다.
르 코르뷔지에를 둘러싼 정치 논란은 무엇인가?
1940년대 초 비시 정부에서 일감을 얻으려 활동한 이력과 사적 편지에 남은 반유대적 표현이 문제로 지적된다. 2015년 프랑스에서 관련 저작이 잇따라 나오며 논쟁이 커졌다. 다만 그를 파시스트로 규정하는 것은 과하다는 반론도 함께 제기됐고 논쟁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참고문헌
- Le Corbusier, 『Vers une architecture』, Éditions Crès, 1923
- Le Corbusier, 『Le Modulor』, Éditions de l'Architecture d'Aujourd'hui, 1950
- William J. R. Curtis, 『Le Corbusier: Ideas and Forms』, Phaidon, 1986 (개정판 2015)
- Nicholas Fox Weber, 『Le Corbusier: A Life』, Alfred A. Knopf, 2008
- Xavier de Jarcy, 『Le Corbusier, un fascisme français』, Albin Michel, 2015
-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The Architectural Work of Le Corbusier, an Outstanding Contribution to the Modern Movement」(등재번호 1321), 2016
- Fondation Le Corbusier(파리), 도면·서한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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