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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짓는 건축가?/근대건축의 기초

김중업의 처마는 담장 안에 있다

by aclstoryji 2026. 9. 9.

출퇴근길에 그 담장 앞을 지나면서도, 나는 그가 만든 지붕 곡선을 본 적이 없다.

먼저 알아둘 세 가지
  • 주한 프랑스대사관의 지붕 곡선은 담장에 가려 길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 처마를 콘크리트로 옮긴 그 건물에서 덕수궁까지는 걸어서 20분이 안 걸린다.
  • 같은 건축가가 8년 뒤에 지은 건물에는 처마가 없다. 31층 유리 상자였다.
건축가 김중업.  출처:  나무위키 / 김중업
여행 계획 — 지도 번호와 같은 순서다

담장 안에 있어서, 나는 그 지붕을 못 봤다

충정로에서 서대문 쪽으로 걷다 보면 왼쪽으로 담장이 길게 이어지는 구간이 있다. 출퇴근길에 자주 지난다. 그 담장 안에 김중업이 지은 건물이 있다는 걸 안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알고 난 뒤 일부러 고개를 돌려봤는데도, 지붕 끝선이 나뭇가지 사이로 잠깐 걸렸다가 말았다.

주한 프랑스대사관이다. 1962년에 완공됐다. 사무동과 관저, 두 채가 경사진 땅에 나뉘어 앉아 있다. 콘크리트 지붕이 처마처럼 들려 올라가 있고 끝으로 갈수록 얇아지는데, 그 선을 제대로 보려면 결국 사진을 찾아봐야 했다. 담장 밖 인도에서는 안 보인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 (1962년 완공, 서울 서대문구).  출처:  스탠다드에이

덕수궁까지 걸어서 20분인데

여기서부터 나는 계속 걸린다. 이 건물의 미덕으로 가장 많이 꼽히는 게 한국적인 조형을 현대 건축의 재료로 옮겼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대사관에서 덕수궁까지는 1.5km 남짓, 걸어서 20분이 안 걸린다. 진짜 처마가 거기 있다. 나무로 짠 것이, 원래 크기로.

콘크리트로 처마를 흉내 낸 건물이, 진짜 처마에서 20분 거리에 있다.
- 그 지붕 곡선을 볼 수 있는 사람: 대사관에 볼일이 있는 사람
- 담장 밖 인도에서 보이는 것: 나뭇가지와 지붕 끝 일부
- 걸어서 20분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것: 중화전 처마 전체

한국적이라는 게 누구를 향한 말이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프랑스 외교관과 손님에게 한국을 한 장면으로 설명하려는 것이었다면 성공했을 수 있다. 다만 그건 이 길을 매일 지나는 사람들을 향한 건축은 아니었다.

콘크리트로 처마를 흉내 낸 건물이, 진짜 처마에서 20분 거리에 있다.

파리에서 3년, 돌아와서 만든 처마

김중업은 1952년 베네치아에서 열린 국제예술가대회에 한국 대표로 갔다. 거기서 르 코르뷔지에를 만났고, 파리의 아틀리에에서 3년 남짓 일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이었다.

그가 거기서 배운 건 필로티와 노출 콘크리트, 그리고 콘크리트를 굳은 재료가 아니라 주무를 수 있는 재료로 보는 태도였다. 귀국한 뒤 그는 그 문법으로 처마를 만들었다. 나무가 하던 일을 콘크리트에 시킨 셈이다.

들린 처마는 구조로 보면 캔틸레버다. 한쪽만 붙들고 나머지는 허공에 내민다. 발전소에서 그런 구조물을 점검할 때 나는 늘 끝단 처짐과 뿌리 쪽 균열부터 본다. 하중이 걸리는 자리와 갈라지는 자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1962년에 그걸 콘크리트로, 그것도 끝으로 갈수록 얇아지게 뽑아냈다는 건 시공 쪽에서 보면 만만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얇게 뽑은 지붕은 사진에서는 좋지만, 그 아래는 사람이 매일 일하는 사무실이다. 1962년 건물이면 지금 기준의 단열은 없다고 봐야 한다. 여름에 그 콘크리트 판이 데워지면 아래층이 어떻게 되는지, 겨울에 처마 안쪽으로 결로가 맺히는지는 도면에 안 나온다. 이 건물이 여러 번 손을 탄 데는 그런 이유도 섞여 있었을 것이다.

제주대학교 구 본관 (1970년 완공, 현재 철거됨).  출처:  건축사뉴스

8년 뒤 그는 31층 유리 상자를 세웠다

1970년, 김중업은 종로에 삼일빌딩을 올렸다. 31층. 당시 한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고, 검은 철골과 유리 커튼월로 된 반듯한 상자였다. 처마는 없다. 뉴욕 시그램 빌딩의 문법을 청계천 옆에 그대로 세웠다는 말을 자주 듣는 건물이다. 지금은 주변에 더 높은 건물이 들어차서, 청계천 쪽에서 걸어와도 한눈에 알아보기 어렵다.

프랑스대사관과 8년 차이다. 같은 사람이다.

나는 이 둘을 나란히 놓고 나서야 김중업이 조금 이해됐다. 그에게 한국적인 것은 평생 밀고 간 신념이라기보다, 그 프로젝트에서 꺼낸 하나의 답안이었을지도 모른다. 대사관에서는 그 답이 필요했고, 30층짜리 사무실에서는 필요하지 않았다. 이건 내 해석이고, 그가 직접 그렇게 말한 기록을 나는 아직 못 봤다.

올림픽 세계평화의 문 (1988년 완공, 서울 송파구).  출처:  www.ksponco.or.kr

쫓겨났고, 철거됐다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 이후 김중업은 정부의 도시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상 떠밀리듯 나라를 떠났다. 파리와 미국을 오가며 지내다 1979년에 돌아왔다.

제주대학교 본관은 1970년에 완공됐다. 곡면과 램프가 뱃머리처럼 뻗어 나온 건물이었다. 1995년에 철거됐다.

담장에 가려 길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건물은 남았고, 제주 벌판에서 멀리서도 보이던 건물은 사라졌다.

담장 없이 만질 수 있는 김중업

담장 없이 볼 수 있는 김중업도 있다. 안양에 있는 김중업건축박물관은 원래 그가 1959년에 설계한 제약회사 공장이었다. 공장이 문을 닫은 뒤 시가 사들여 박물관으로 고쳤다. 대사관 지붕을 보려면 초청장이 필요한데, 그 공장 기둥은 표를 끊고 들어가 그냥 만질 수 있다.

프랑스대사관 청사는 2010년대 후반부터 대규모 공사를 거쳤다. 1980년대 이후 증축으로 원래 조형이 상당 부분 가려져 있었고, 그것을 다시 드러내는 작업이 포함됐다고 알려져 있다.

60년 넘은 노출 콘크리트는 탄산화가 진행된다. 표면부터 알칼리성이 떨어지고, 그 깊이가 철근까지 닿으면 부식이 시작된다. 발전소에서 오래된 콘크리트 구조물을 볼 때 내가 먼저 확인하는 건 균열 폭과 백화 자국이다. 그 얇은 지붕 끝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는 사진으로 알 수 없다.

나는 아직 그 건물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담장 밖에서 지나다니기만 했다. 그런데도 이 글을 쓰는 내내 걸린 건, 김중업이 만든 그 곡선을 정작 그 앞을 매일 지나는 사람들이 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대사관은 원래 담장이 있어야 하는 건물이다. 그걸 알면서도, 다음 출근길에 나는 또 그쪽으로 고개를 돌릴 것 같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김중업은 르 코르뷔지에 밑에서 얼마나 일했나?

1952년 베네치아 국제예술가대회에서 르 코르뷔지에를 만난 뒤, 파리 아틀리에에서 3년 남짓 일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이었다.

주한 프랑스대사관은 지금도 1962년 모습 그대로인가?

아니다. 1980년대 이후 증축으로 원래 조형이 상당 부분 가려졌고, 2010년대 후반부터 대규모 공사를 거쳤다. 다만 담장에 가려 길에서 확인하기는 어렵다.

김중업의 제주대학교 본관은 왜 지금 없나?

1970년에 완공됐지만 1995년에 철거됐다. 곡면과 램프가 뱃머리처럼 뻗어 나온 건물이었다.

참고문헌

  1. 국립현대미술관, 「김중업 다이얼로그」 전시 및 도록, 2018
  2. 안양시 김중업건축박물관, 상설전시 및 아카이브 자료
  3. 주한 프랑스대사관 공식 자료, 청사 건축 및 리노베이션 소개
  4. 제주대학교 옛 본관 철거 관련 1995년 국내 언론 보도

글쓴이

실내건축과를 졸업했고, 현재 대한민국의 발전소 관련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공간과 재료를 실무 현장의 눈으로 보며, 발전 설비·플랜트의 기능성과 구조·안전의 관점에서 건축을 읽는다. 또한 여행과 건축 답사를 좋아하지만, 경제적 여건 탓에 자주 떠나지는 못한다. 대신 사진과 도면, 기록을 오래 들여다보고, 직접 가 본 곳에서는 현장에서 느낀 공간 경험을 글에 녹이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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