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소개2026. 8. 2.by aclstoryji

고전주의라고 부르면 반만 맞고, 근대주의라고 부르면 나머지 반이 틀린 건축가 `요제 플레치니크`

찬양 · 비판 · 의견 · 진실의 네 시선으로 다시 읽는 건축가 에세이

요제 플레치니크 — 고전을 인용하지 않고 도구처럼 쓰면 도시가 달라진다

빈에서 배우고 프라하를 거쳐 류블랴나로 돌아온 건축가, 화강암과 벽돌과 기둥으로 도시 한 채를 다시 썼다.

요제 플레치니크(Jože Plečnik, 1872–1957)는 슬로베니아을(를) 대표하는 고전적 근대주의 건축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요제 플레치니크의 생애와 대표작, 건축 철학을 찬양·비판·의견·진실의 네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3초 요약
  • 요제 플레치니크는 국제 양식을 거부하고 고전 어휘를 도구처럼 써서 류블랴나를 다시 썼다.
  • NUK 도서관과 삼중교는 거친 화강암과 반복 단위로 도시의 질감을 만든 작업이다.
  • 그는 50년 가까이 류블랴나에서 작업했고, 국제 사회의 발견은 사후에 찾아왔다.
요제 플레치니크Photo by AnonymousUnknown author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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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 플레치니크(Jože Plečnik, 1872–1957)는 슬로베니아의 고전적 근대주의 건축가입니다. 빈에서 배우고 프라하를 거쳐 류블랴나로 돌아온 건축가, 화강암과 벽돌과 기둥으로 도시 한 채를 다시 썼다. 석재를 시방서에 기재할 때 가장 먼저 정하는 것은 마감…
여행 계획 — 지도 번호와 같은 순서다

도서관 외벽의 화강암은 왜 매끈하지 않은가

석재를 시방서에 기재할 때 가장 먼저 정하는 것은 마감 방식이다. 연마하면 빛을 반사하고, 버너 처리를 하면 표면이 잔 균열처럼 갈라지며 거칠어진다. 같은 화강암이 마감 방식 하나로 전혀 다른 재료가 된다.

사진으로 보면 류블랴나의 슬로베니아 국립대학도서관 외벽은 거칠다. 연마된 면이 아니다. 화강암 블록이 벽돌 줄기와 번갈아 놓이고, 그 사이 줄눈은 균일하지 않다. 요제 플레치니크가 1941년에 완공한 이 건물은 처음 보면 무겁고, 오래 보면 단단하다.

그는 1872년 류블랴나 인근 셴트비드에서 태어났고 1957년 그 도시에서 세상을 떠났다. 슬로베니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일부였던 시절에 태어나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체제 아래서 작업했다.

National and University Library of Slovenia (NUK), LjubljanaPhoto by Vladimir Yaitskiy from Kyiv, Ukraine / CC BY-SA 2.0 / Wikimedia Commons

오토 바그너의 제자는 어떻게 스승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는가

플레치니크는 1895년 무렵 빈으로 건너가 오토 바그너 밑에서 공부했다. 바그너는 빈 분리파의 중심이었고, 장식을 줄이고 기능에 충실한 방향을 밀고 있었다. 플레치니크는 그 교육을 받으면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바그너가 그의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방향이 다르다고 언급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단선적으로 읽기는 어렵다. 플레치니크는 이후 프라하로 건너가 교육자로 활동했고, 1932년 완공된 프라하 비노흐라디 지구의 성심 교회는 이 시기 대표 작업이다.

1921년 무렵 류블랴나로 돌아와 건축 학교에서 가르치면서 도시 작업을 이어갔다. 프라하 성 정비 작업도 병행했으나 정확한 작업 기간은 자료마다 다르다.

고전을 인용하는 건축가는 많고, 고전을 도구처럼 쓰는 건축가는 드물다.
Triple Bridge (Tromostovje), LjubljanaPhoto by Sumitsurai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요제 플레치니크, 고전을 도구처럼 쓰다

1920년대 아돌프 로스는 장식은 범죄라 했고, 국제 양식은 고전 어휘를 청산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플레치니크는 그 흐름에 합류하지 않았다. 고전을 지키려 한 것도 아니었다.

고전을 인용하는 건축가는 많고, 고전을 도구처럼 쓰는 건축가는 드물다. 그의 기둥은 신전을 참조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붕을 받치거나, 보행로를 구분하거나, 공간의 리듬을 만들기 위해 그 자리에 있다.

그가 류블랴나에서 쓴 고전 어휘들은 이런 방식으로 작동했다.

- 기둥: 류블랴나 시장 회랑에서 강변 지붕을 받치는 구조로 - 피라미드 첨탑: 삼중교 난간 기둥 위에 반복 단위로 - 거친 화강암: 도서관 입면에서 질감과 무게를 동시에 - 오벨리스크: 공원 장식이 아니라 시선을 모으는 수직 요소로

Church of the Most Sacred Heart of Our Lord, PraguePhoto by User:AncientToaster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세 개의 다리를 하나로 묶으면 강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류블랴나 구시가지를 가로지르는 류블랴니차 강에는 원래 단일 교량이 있었다. 플레치니크는 1931-1932년 그 양 옆에 두 개의 보행자 다리를 추가해 부채꼴 모양의 삼중교를 완성했다. 세 다리가 한 지점에서 만나면서 강 위에 옥외 광장 같은 자리가 생겼다.

만약 그 다리 위에 선다면, 나는 먼저 난간 기둥 위 피라미드 첨탑을 확인할 것이다. 높이가 손 한 뼘 남짓으로 작지만, 교량 전체에서 같은 비율로 반복된다. 같은 단위가 반복될 때 어느 지점부터 리듬이 생기는지를 나는 실무에서 배웠다.

강 건너는 기능이고, 멈추는 것은 선택이다. 삼중교는 건너는 사람보다 멈추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이는 다리로 알려져 있다.

Žale Cemetery, LjubljanaPhoto by Seauton, 16 September 2021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류블랴나는 이 건축가를 왜 50년 가까이 혼자 두었는가

플레치니크는 1957년까지 류블랴나에서 작업했지만, 국제 건축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의 일이다. 1980년대 파리에서 열린 전시가 서유럽에 그의 작업을 처음 소개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유를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슬로베니아는 유고슬라비아의 일부였고 류블랴나는 국제 건축 담론의 중심에 있지 않았다. 그의 깊은 가톨릭 신앙은 전후 사회주의 체제와 어긋났다. 국제 양식을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당시 기준으로는 고립을 뜻했다.

그는 자전거로 류블랴나를 돌아다니며 현장을 확인했고, 작은 집에서 살며 작업을 계속했다. 그 집은 지금 박물관이다. 소박함이 고집인지 무관심인지는 나는 모른다.

결론: 요제 플레치니크가 류블랴나에 남긴 미완의 문법

요제 플레치니크는 1872년 류블랴나 근교에서 태어나 빈에서 배우고 프라하를 거쳐 류블랴나로 돌아왔다. 국립대학도서관, 삼중교, 시장 회랑, 장례 묘지까지, 도시 안의 크고 작은 개입들이 그의 작업으로 채워졌다. 195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도시를 떠나지 않았다.

그의 어휘는 양식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어떤 사조 안에도 편하게 들어가지 않는다. 고전주의라고 부르면 반만 맞고, 근대주의라고 부르면 나머지 반이 틀린다.

나는 재료를 선택할 때 시방서의 빈칸을 채우듯 고른다. 기능이 먼저이고 감각은 나중이다. 플레치니크는 그 순서를 달리했다. 화강암 표면 하나에서 도시 전체를 생각하는 손이 있었다는 것을, 그 결과를 보고 나서야 믿게 된다.

쉬어가는 퀴즈

플레치니크가 류블랴나 삼중교를 완성한 연도는

  • 가. 1921년
  • 나. 1932년
  • 다. 1941년
정답 확인

정답: 나. 기존 단일 교량에 두 개의 보행자 다리를 추가해 삼중교를 완성한 것은 1931-1932년이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요제 플레치니크는 어떤 건축가인가?

1872년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근교에서 태어나 1957년 세상을 떠난 건축가다. 빈에서 오토 바그너 밑에 공부하고 프라하를 거쳐 류블랴나로 돌아와 도시 전반을 설계했다.

류블랴나에서 플레치니크의 작업을 볼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삼중교, 슬로베니아 국립대학도서관(NUK), 류블랴나 중앙 시장 회랑, 잘레 묘지가 대표적이다. 그가 살던 집은 지금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플레치니크는 왜 국제 양식을 따르지 않았는가?

고전 어휘를 장식으로 쓰는 것도, 그것을 청산하는 것도 그의 방식이 아니었다. 그는 기둥과 석재, 피라미드 같은 요소를 도구처럼 다루며 장소와 기능에 맞게 썼다.

슬로베니아 국립대학도서관(NUK)은 언제 완공됐는가?

1941년 완공됐다. 류블랴나에 있으며 플레치니크의 대표 건물 중 하나다. 외벽은 거친 화강암과 벽돌이 번갈아 쓰인 것이 특징이다.

플레치니크가 프라하에서 남긴 작업은 무엇인가?

비노흐라디 지구의 성심 교회(1932년 완공)가 대표적이다. 프라하 성 정비 작업에도 참여했으나 정확한 기간과 범위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다.

참고문헌

  1. Damjan Prelovšek, Jože Plečnik 1872-1957: Architectura Perennis, Yale University Press, 1997
  2. Peter Krečič, Plečnik: The Complete Works, Academy Editions, 1993
  3. François Burkhardt and Cvetka Pozar (eds.), Jože Plečnik Architect 1872-1957 (exhibition catalog), 1986
  4. 플레치니크 류블랴나 도시 설계 전체 도면집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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