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치퍼필드, 지우지 않기로 한 표면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새것으로 보이게 할지, 그 결정을 감추지 않은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 1953–)는 영국을(를) 대표하는 미니멀리즘 건축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생애와 대표작, 건축 철학을 찬양·비판·의견·진실의 네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Photo by Baltasarsietesoles / CC BY 4.0 / Wikimedia Commons건축 여정_건축가와 함께한 곳

새로 갈아 끼운 볼트만 색이 다르다
발전소에서 설비를 보수하면 새로 들어간 자리가 티가 난다. 볼트 하나만 갈아도 그 자리만 광택이 다르다. 도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바래는데, 새 도료는 그 바랜 색을 따라가지 못한다. 보수 이력이 표면에 남는다는 뜻이다. 현장에서는 의견이 갈린다. 전체를 다시 칠해 균질하게 만들자는 쪽과, 갈아 끼운 자리가 보이는 편이 낫다는 쪽. 나는 후자에 가깝다. 언제 무엇을 손댔는지 표면이 기억하고 있으면 다음 사람이 판단할 근거가 남는다. 데이비드 치퍼필드라는 이름을 오래 들여다보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의 건물은 조용하다는 말로 자주 요약된다. 그 요약은 절반만 맞다. 조용한 것과 말을 아끼는 것은 다르다. 그의 작업에서 반복해서 확인되는 건 침묵이 아니라 결정이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울지, 어디까지 새것으로 보이게 할지. 그 결정을 표면에 그대로 올려둔다.
Photo by Philip Pikart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덜어내는 법을 배우는 데 걸린 시간
치퍼필드는 1953년 런던에서 태어나 잉글랜드 남서부 데번의 농장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킹스턴 예술학교를 거쳐 런던 건축협회(AA)에서 공부했다. 더글러스 스티븐, 리처드 로저스, 노먼 포스터의 사무소를 차례로 지나며 실무를 익혔고, 1985년 런던에 자기 이름의 사무소를 열었다. 초기 일감은 영국이 아니라 일본에서 많이 나왔다. 이세이 미야케 매장을 비롯한 작업들이 그 시기에 있었다.
1998년 베를린에 사무소를 냈고 이후 상하이, 밀라노,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거점을 넓혔다. 2011년 RIBA 로열 골드 메달, 2023년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40년 가까이 같은 방향으로 걸어온 이력이다.
비판도 함께 있었다. 안전한 선택이라는 말, 차갑다는 말, 결국 부유한 발주처의 언어라는 말. 나는 이 지적들이 전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절제는 유행이 아니라 태도에 가깝고, 태도는 40년쯤 유지되면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고 본다.
Photo by Chatchamp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총탄 자국을 지우지 않기로 한 결정
베를린 박물관섬의 신박물관은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슈틸러가 설계해 1843년부터 1855년 사이에 지어진 건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 폭격으로 크게 파괴됐고, 동베를린 시기 내내 폐허 상태로 방치됐다. 치퍼필드는 1997년 설계 경기에 당선됐고, 보존 전문 건축가 줄리언 해럽과 함께 작업해 2009년 재개관에 도달했다.
방식이 논쟁의 핵심이었다. 파손된 부분을 원래대로 복제하지 않았다. 총탄 자국이 남고, 프레스코가 떨어져 나간 자리는 여백으로 남았다. 사라진 부분은 새 재료로 채우되 새것으로 읽히게 두었다. 중앙 계단실이 그 태도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옛 계단은 없어졌고, 새 계단은 장식 없는 프리캐스트 콘크리트로 옛 자리에 섰다. 새 계단은 옛 계단의 자리에 서 있되, 옛 계단인 척하지 않는다. 대역이 아니라 대답이다.
베를린 시민 일부는 원형 그대로의 복원을 요구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 반발도 이해가 간다. 다만 실무 쪽에서 보면 이 작업의 난도는 형태가 아니라 검증에 있었을 것이다. 60년 넘게 비바람에 노출된 조적 벽체의 잔존 강도를 확인하고, 어디까지 남기고 어디부터 보강할지를 구간마다 판단해야 한다. 남긴다는 결정은 낭만이 아니라 계산의 결과다. 이 건물은 2011년 미스 반 데어 로에 상을 받았다.
Photo by Mike Kirby / CC BY-SA 2.0 / Wikimedia Commons안료를 섞은 콘크리트, 마감이 곧 몸이다
2011년 영국 웨이크필드의 칼더강가에 헵워스 웨이크필드가 문을 열었다. 여러 개의 사다리꼴 덩어리가 서로 기대듯 붙어 있는 형태다. 외장재가 따로 없다. 안료를 섞은 현장 타설 콘크리트가 구조이자 마감이다.
이 방식이 현장에서 무엇을 요구하는지는 겪어본 사람이면 안다. 현장 타설 노출 콘크리트는 되돌릴 수 없다. 배합, 타설 속도, 다짐, 거푸집 이음매의 정밀도가 그대로 얼굴이 된다. 한 번 타설을 끊으면 이어치기 자국이 남고, 배합수 양이 조금만 달라져도 색이 어긋난다. 안료까지 섞였으면 편차 관리는 더 까다로워진다.
10년 뒤도 생각하게 된다. 노출 콘크리트는 빗물이 흐른 경로를 그대로 기록한다. 창 하부와 개구부 모서리에 물끊기 홈을 어떻게 넣었느냐가 몇 해 뒤 얼굴을 결정한다. 강가라 습기도 상시로 붙는다. 치퍼필드는 그 부담을 재료 하나에 몰아넣는 쪽을 택했다. 덜어낸다는 것이 편해진다는 뜻은 아니다.
용산에 놓인 각진 덩어리
2017년 서울 용산에 아모레퍼시픽 본사가 완공됐다. 정육면체에 가까운 덩어리이고, 지상 20층 남짓 규모다. 특징은 그 덩어리에서 잘려나간 자리에 있다. 세 곳이 크게 비워져 중정 정원이 됐다. 저층부에는 미술관과 도서관, 강당 같은 개방 시설이 들어가 있다. 사옥의 아래쪽 몇 개 층을 회사 바깥 사람에게 내준 구성이다.
외피는 알루미늄 수직 루버가 촘촘히 서서 만든다. 차양이자 외장이다. 여기서 발전소 쪽 습관이 작동한다. 외피가 두 가지 역할을 겸하면 청소와 점검 동선이 반드시 문제가 된다. 루버 사이에 먼지와 새 배설물이 쌓이고, 곤돌라나 BMU가 어디까지 접근할 수 있는지가 유지비를 좌우한다. 이 건물이 그 부분을 어떻게 풀었는지는 확인 필요다.
그의 작업 중 나에게 가장 가까운 건물이 서울에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린다. 베를린도 웨이크필드도 사진 속 도시인데, 이 하나만 기차로 닿는 거리에 있다. 사진으로 보면 비워진 자리로 하늘이 그대로 들어온다. 만약 그 아래를 걷게 된다면, 형태보다 그늘의 온도를 먼저 재보게 될 것 같다.
결론: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고른 속도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1953년 런던에서 태어나 1985년 자기 사무소를 열었고, 2023년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베를린 신박물관에서는 남기는 쪽을 택했고, 헵워스 웨이크필드에서는 재료 하나에 구조와 마감을 함께 얹었고, 서울 아모레퍼시픽에서는 덩어리를 비워 사람이 들어올 자리를 냈다.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덜어내되 결정을 감추지 않는다.
프리츠커상 수상 당시 그는 상금을 스페인 갈리시아에서 운영해온 비영리 재단 활동에 쓰겠다고 밝혔다. 지역의 계획과 환경을 다루는 일이다. 건물 하나보다 훨씬 느리고, 완공 사진이 남지 않는 일이다.
결국 처음 이야기로 돌아온다. 다시 칠할 것인가, 갈아 끼운 자국을 남길 것인가. 발전소에서 이 논쟁은 대개 예산과 검사 일정에 밀려 조용히 끝난다. 치퍼필드는 그 판단을 건물 표면에 남겨두는 쪽을 택한 사람이다. 남기는 결정은 누가, 언제, 무엇을 근거로 하는가. 도장 색이 어긋난 볼트를 볼 때마다 이 물음이 다시 올라온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베를린 신박물관을 복원한 방식은 무엇인가?
파손된 부분을 원래 모습대로 복제하지 않고, 전쟁으로 생긴 총탄 자국과 프레스코가 떨어져 나간 여백을 그대로 남겼다. 사라진 부분은 새 재료로 채우되 새것으로 읽히게 처리했다. 보존 전문 건축가 줄리언 해럽과 협업해 2009년 재개관했다.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언제 프리츠커상을 받았나?
2023년에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그에 앞서 2011년에는 RIBA 로열 골드 메달을 받았고, 베를린 신박물관으로 2011년 미스 반 데어 로에 상을 수상했다.
서울 아모레퍼시픽 본사는 누가 설계했나?
데이비드 치퍼필드 아키텍츠가 설계해 2017년 서울 용산에 완공됐다. 정육면체에 가까운 덩어리에서 세 곳을 크게 비워 중정 정원을 만든 구성이 특징이다. 저층부에는 미술관과 도서관, 강당 같은 개방 시설이 들어가 있다.
헵워스 웨이크필드가 콘크리트 노출 마감을 쓴 이유는 무엇인가?
안료를 섞은 현장 타설 콘크리트를 구조이자 마감으로 삼아 별도 외장재를 두지 않았다. 재료를 하나로 줄이면 형태가 단순해지지만, 배합과 타설 정밀도가 그대로 건물 외관이 되기 때문에 시공 난도는 오히려 높아진다.
데이비드 치퍼필드 건축의 특징은 어떻게 요약할 수 있나?
장식을 줄이고 재료 수를 최소화하는 절제된 방식이 특징이다. 다만 단순히 조용한 건축이라기보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새것으로 보이게 할지를 정하고 그 결정을 표면에 드러내는 태도에 가깝다. 역사 건축물 재생 작업에서 이 태도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참고문헌
- Chipperfield, David, Theoretical Practice, Artemis, 1994
- El Croquis 150, David Chipperfield 2006–2010, El Croquis Editorial, 2010
-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2023 Laureate 발표 자료, The Hyatt Foundation, 2023
- Chipperfield, David; Harrap, Julian, Neues Museum Berlin, Verlag der Buchhandlung Walther König,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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