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헤더윅, 손이 닿는 높이에서 시작하는 건축
가구를 만들던 사람이 도시로 걸어 들어와, 만져지는 표면과 목적지 없는 계단을 함께 남겼다
토마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 1970–)는 영국을(를) 대표하는 디자인 건축 건축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토마스 헤더윅의 생애와 대표작, 건축 철학을 찬양·비판·의견·진실의 네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Photo by HeatherwickComms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건축 여정_건축가와 함께한 곳

손이 먼저 아는 것들
발전소에서 손이 닿는 곳은 전부 이유가 있다. 밸브 핸드휠 테두리에는 미끄러지지 말라고 홈이 파여 있다. 보행로 바닥은 마름모 무늬가 돋은 체커 플레이트다. 장갑을 낀 손으로도 잡히도록 난간 파이프는 손가락이 한 바퀴 감기는 굵기로 정해진다. 눈으로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닌 표면인데, 손이 닿는 순간 전부 결정되어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토마스 헤더윅이 오래 붙들고 있는 질문이 그 지점에 있다. 그는 20세기 이후의 건물들이 멀리서 보는 실루엣에는 공을 들이면서, 사람이 손을 뻗는 거리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됐다고 말한다. 2023년 낸 책 '휴머나이즈'가 그 주장을 정면으로 담았다. 나는 이 진단에 절반쯤 동의한다. 나머지 절반은 유보한다. 그 이유는 뒤에 쓴다.
Photo by Walter Lim / CC BY 2.0 / Wikimedia Commons가구를 만들던 사람이 도시로 간 길
헤더윅은 1970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맨체스터 폴리테크닉에서 3차원 디자인을, 왕립예술대학에서 가구 디자인을 공부했다. 1994년 런던에 헤더윅 스튜디오를 열었다. 출발점이 건축 설계 사무소가 아니라 제작소에 가까웠다는 게 이후 모든 작업의 성격을 결정했다. 그는 재료를 자르고 구부리고 접어보는 데서 시작한다.
짚어둘 사실이 하나 있다. 헤더윅은 영국 등록 건축사 자격을 가진 건축가가 아니다. 그의 스튜디오는 대형 프로젝트에서 실시설계와 법적 책임을 맡는 협력 건축사무소와 함께 일한다. 이 사실을 근거로 그의 작업을 조각에 가깝다고 보는 비판이 오래 있었다. 반대로 건축 교육의 관성 밖에서 왔기 때문에 저런 형태가 나온다는 평가도 있다. 둘 다 일리가 있다.
발전소 현장에서도 비슷한 구도를 본다. 도면대로 설치하는 사람과, 도면을 그리는 사람의 시선은 다르다. 도면에서는 깔끔한 배관 경로가 실제로는 스패너가 들어가지 않는 자리인 경우가 있다. 만드는 쪽에서 출발하면 그 간극이 먼저 보인다. 헤더윅의 강점은 거기에 있다.
Photo by Matti Blume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6만 개의 막대에 털이 서다
2010년 상하이 엑스포 영국관은 헤더윅의 이름을 국제적으로 알린 건물이다. 통칭 시드 커시드럴. 외피가 벽이 아니라 6만 개 남짓한 투명 아크릴 막대로 되어 있다. 막대 하나의 길이는 약 7.5미터. 각 막대 끝에는 큐 왕립식물원 밀레니엄 종자은행 등과 협력해 확보한 식물 종자가 박혀 있다. 헤더윅은 건물에 털을 심었다.
이 구조의 핵심은 막대가 고정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바람이 불면 6만 개가 각자 미세하게 흔들린다. 건물 전체가 미세하게 떨리는 표면이 된다. 낮에는 막대가 바깥의 빛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광섬유 역할을 하고, 밤에는 내부 조명이 막대를 타고 밖으로 빠져나간다. 하나의 재료가 채광재이자 구조 부재이자 전시물이 된다.
사진으로 보면 내부는 어둡고, 6만 개의 점광원만 사방에서 떠 있다. 만약 그 안에 서게 된다면 먼저 소리가 궁금할 것 같다. 아크릴 막대가 그만큼 밀집해 있으면 바깥 소음이 어떻게 걸러지는지, 발소리가 어디까지 가는지. 발전소 터빈실에서 소리가 공간의 성격을 먼저 알려주던 경험 때문에 그런 순서로 상상하게 된다.
Photo by Epicgenius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원통 다발에서 공기를 꺼내다
2017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워터프런트에 자이츠 현대미술관(자이츠 모카)이 문을 열었다. 1920년대에 지어진 곡물 저장고를 개조한 건물이다. 저장고 내부는 수십 개의 콘크리트 원통이 벌집처럼 붙어 있는 구조였다. 통상적인 개조 방식이라면 원통을 헐고 새 슬래브를 넣는다. 헤더윅 스튜디오는 반대로 갔다.
원통 다발을 그대로 두고, 그 가운데를 곡선으로 도려냈다. 잘려나간 자리가 아트리움이 됐다. 도려낸 단면은 갈아서 콘크리트 골재가 드러나게 마감했다. 원통의 곡면이 잘린 각도에 따라 다른 타원으로 나타난다. 새로 만든 형태가 아니라 이미 있던 덩어리에서 공기를 꺼낸 셈이다.
이 방식이 실무자에게 어려운 지점은 뻔하다. 1920년대 콘크리트의 실제 강도와 철근 배근 상태는 도면만으로 알 수 없다. 어디까지 잘라도 남은 부분이 버티는지를 실측과 해석으로 확인해야 한다. 형태의 대담함보다 그 검증 과정이 더 길었을 것이다. 추측이지만, 현장 경험상 그렇다.
Photo by ClemRutter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계단이 목적지를 잃었을 때
2019년 뉴욕 허드슨 야드에 베슬이 개장했다. 벌집 모양으로 얽힌 계단 구조물이다. 154개의 계단참이 서로를 잇고, 총 계단 수는 2,500개가량이며 높이는 16층 규모다. 아래가 좁고 위가 넓게 벌어지는 형태여서, 오를수록 시야가 열리고 발밑이 비어 보인다. 그런데 이 계단은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이 전부다.
개장 이후 여러 건의 사망 사고가 이어졌고 2021년 폐쇄됐다. 2024년 층고 전체를 덮는 강철 메시 안전 장벽을 설치한 뒤 다시 열었다. 발전소에서 안전난간 상부 난간대는 바닥면에서 90센티미터 이상으로 두도록 산업안전보건기준 규칙에 정해져 있다. 사람이 올라가는 구조물에서 난간 높이는 미학의 영역이 아니라 최저 기준의 영역이다.
런던의 가든 브리지도 함께 놓고 보게 된다. 템스강 위에 나무가 심긴 보행 다리를 놓겠다는 계획이었고, 5천만 파운드가 넘는 비용이 쓰인 뒤 2017년 취소됐다. 상당액이 공적 자금이었다. 형태가 먼저 확정되고 운영과 검증이 뒤따르는 순서에서 무엇이 무너지는지를 이 두 사례가 보여준다.
결론: 토마스 헤더윅이 손에 남긴 질문
런던도 상하이도 케이프타운도, 나에게는 아직 사진 속 도시다. 그래서 판단을 조심하게 되지만, 자료를 오래 들여다볼수록 토마스 헤더윅에 대한 평가가 한쪽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시드 커시드럴에서 그는 재료 하나로 구조와 빛과 내용을 동시에 해결했다. 자이츠 모카에서는 낡은 산업 구조물의 물성을 살려 두고 그 안에서 공간을 꺼냈다. 이 두 작업은 만드는 감각이 없으면 나오지 않는다.
동시에 베슬과 가든 브리지는 형태가 검증보다 앞서갈 때 무엇이 남는지를 남겼다. 그가 말한 대로 건물은 손이 닿는 거리에서 더 많은 말을 해야 한다. 다만 사람이 발을 딛는 순간부터는 다른 언어가 필요하다. 난간 높이, 동선의 끝, 10년 뒤의 유지관리 같은 언어다.
글머리에서 절반만 동의한다고 썼던 이유가 여기 있다. 나는 그의 진단에는 동의한다. 다만 손이 닿는 높이를 살리는 일과 발이 닿는 높이를 지키는 일은 같은 작업이 아니다. 언젠가 베슬의 계단을 오르게 된다면, 아마 형태보다 난간 쪽을 먼저 볼 것 같다. 그게 이 일을 하며 몸에 붙은 순서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토마스 헤더윅은 건축가인가 디자이너인가?
헤더윅은 영국 등록 건축사 자격을 가진 건축가가 아니라 디자이너로 훈련받았다. 맨체스터 폴리테크닉에서 3차원 디자인을, 왕립예술대학에서 가구 디자인을 공부한 뒤 1994년 헤더윅 스튜디오를 열었다. 대형 건축 프로젝트에서는 실시설계와 법적 책임을 맡는 협력 건축사무소와 함께 일한다.
시드 커시드럴은 어떤 구조로 만들어졌나?
2010년 상하이 엑스포 영국관으로, 외피가 6만 개 남짓한 투명 아크릴 막대로 이루어져 있다. 막대 하나의 길이는 약 7.5미터이며 끝에 식물 종자가 박혀 있다. 막대가 고정되지 않아 바람에 흔들리고, 낮에는 빛을 안으로 끌어들이고 밤에는 내부 조명을 밖으로 내보내는 역할을 동시에 한다.
자이츠 모카는 원래 어떤 건물이었나?
케이프타운 워터프런트에 있는 1920년대 곡물 저장고를 개조한 현대미술관이다. 내부의 콘크리트 저장 원통들을 헐지 않고, 그 다발 가운데를 곡선으로 도려내 아트리움을 만들었다. 잘린 단면을 갈아 마감해 콘크리트 골재가 드러나도록 처리한 것이 특징이다.
뉴욕 베슬이 폐쇄됐다가 다시 연 이유는 무엇인가?
2019년 개장 이후 여러 건의 사망 사고가 이어지면서 2021년 폐쇄됐다. 2024년 층고 전체를 덮는 강철 메시 안전 장벽을 설치한 뒤 재개장했다. 개방감을 위해 난간 높이를 낮게 유지한 초기 설계가 안전 기준 측면에서 논란이 됐다.
가든 브리지 프로젝트는 왜 무산됐나?
템스강 위에 식재가 있는 보행 다리를 놓는 계획이었으나 2017년 취소됐다. 취소 시점까지 5천만 파운드가 넘는 비용이 이미 지출됐고 상당액이 공적 자금이었다. 사업 타당성과 공공 자금 집행 절차를 둘러싼 비판이 이어졌다.
참고문헌
- Heatherwick, Thomas, Thomas Heatherwick: Making, Thames & Hudson, 2012
- Heatherwick, Thomas with Rowe, Maisie, Humanise: A Maker's Guide to Building Our World, Viking, 2023
- Moore, Rowan, The Guardian 건축 비평, 가든 브리지 관련 보도, 2017 전후
- Architectural Review, Zeitz MOCAA 특집,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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