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임스, 구조의 빈칸에 생활의 온도를 놓다
강재와 유리로 세운 질서 안에 색, 사물, 움직임을 들여놓으며 공동 작업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한 디자이너를 읽는다.
레이 임스(Ray Eames, 1912–1988)는 미국을(를) 대표하는 미드센추리 건축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레이 임스의 생애와 대표작, 건축 철학을 찬양·비판·의견·진실의 네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Photo by GSAPPstudent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건축 여정_건축가와 함께한 곳
유리창 안쪽에 남은 손의 순서
사진을 확대해 보면 임스 하우스의 창은 풍경만 비추지 않는다. 유리 앞에 놓인 화분의 잎, 낮게 처진 직물, 책등의 색, 작은 조각의 그림자가 한 칸씩 겹친다. 레이 임스를 생각할 때 내 눈은 건물의 윤곽보다 그 겹침에 오래 머문다. 강재와 유리로 만든 집이 차갑게 끝나지 않도록, 누군가 사물의 간격을 손바닥만큼씩 조정한 흔적이다.
나는 아직 이 집에 가 보지 못했다. 태평양 건너 건축 한 채를 보기 위해 여비를 선뜻 만들기 어려운 형편이라 사진과 도면 사이를 자주 왕복한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화면에 잘 잡힌 장면을 실제 거주의 편안함으로 착각하지 않으려 한다. 그럼에도 사진 속 생활실을 보고 있으면 묻게 된다. 저 많은 물건은 구조를 가린 것일까, 아니면 비로소 구조가 살아야 할 이유를 보여 준 것일까.
Photo by Gunnar Klack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화가였던 레이 카이저가 가져온 눈
레이 임스는 191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베르니스 알렉산드라 카이저로 태어났다. 뉴욕에서 한스 호프만에게 회화를 배웠고, 1937년 미국추상미술가협회의 창립 회원으로 첫 전시에 참여했다. 1940년 크랜브룩 미술아카데미로 옮긴 뒤 찰스 임스를 만났으며, 두 사람은 1941년 결혼해 로스앤젤레스로 향했다. 출발점부터 레이는 건축가의 조수가 아니라 형태와 색, 공간의 긴장을 훈련한 화가였다.
그녀가 1940년대에 디자인한 Arts & Architecture 표지를 보면 사각형과 선, 색면이 화면 안에서 서로 밀고 당긴다. 훗날 임스 하우스의 입면을 그대로 예고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평면 위에서 요소들의 무게를 조정하던 감각이 가구, 전시, 영화, 실내의 배치로 확장되었다고 읽을 근거는 충분하다. 레이에게 색은 구조 위에 바르는 화장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물들이 충돌하지 않게 거리를 정하는 얇은 칸막이에 가까웠다.
Photo by Allan Ferguson / CC BY 2.0 / Wikimedia Commons레이 임스와 공동 저작이라는 어려운 이름
임스 오피스의 작업을 찰스는 구조와 기술, 레이는 색과 장식으로 나누어 설명하면 이해는 쉽다. 그러나 사실에는 맞지 않는다. 두 사람의 구상은 반복 제작과 수정 속에서 뒤섞였고, 직원과 기술자, 제조업체도 그 과정에 참여했다. 공식 자료 역시 성별에 따라 개별 공로를 깔끔하게 분할하려는 해석을 경계한다. 레이를 복원한다는 이유로 모든 아름다운 색을 그녀에게 돌리는 일도 또 다른 단순화가 된다.
그렇다고 ‘둘은 하나였다’는 말만 되풀이하면 당시의 불균형까지 지워진다. 대중 앞에서 설명하고 이름을 대표하는 역할은 주로 찰스에게 집중되었고, 레이의 회화·그래픽 작업과 기록 관리가 별도의 성취로 읽히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공동 작업은 이름을 없애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의 판단이 어디에서 만났는지 추적하는 일이어야 한다. 발전소 현장에서도 설비 하나가 정상 운전하기까지 설계자, 시공자, 운전원, 점검자의 기록이 따로 남는다. 서명이 지워지면 책임뿐 아니라 배운 과정도 사라진다.
Photo by Jim Roberts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임스 하우스, 조립된 외피와 자라난 생활
Case Study House #8의 최초안인 Bridge House는 1945년 찰스 임스와 에로 사리넨이 설계했다. 그러나 전후 자재 수급이 늦어지는 동안 찰스와 레이는 대지의 초지와 유칼립투스 나무를 오래 지켜보았고, 이미 주문한 규격 부재에 강재 보 하나를 더해 배치를 다시 구성했다. 1949년 완성된 주거동과 작업동은 초지를 가로지르는 대신 경사지 가장자리로 물러났다. 집을 세우기 위해 장소를 비운 것이 아니라, 장소를 남기기 위해 집의 자세를 바꾼 셈이다.
검은 강재 멀리언의 격자는 부하가 다른 회로를 나누는 배전반처럼 각 칸에 투명·반투명 유리와 불투명 패널을 받아낸다. 외벽에는 시멘트와 섬유질을 결합한 Cemesto 패널이 사용되었고, 일부 창에는 공업용 Truscon 창호가 끼워졌다. 실내의 반투명 Plyon 유리섬유 차양처럼 규격품을 그대로 쓰지 않고 필요한 성능과 빛에 맞춰 변형한 부분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재료의 값비쌈이 아니다. 접합부와 칸의 비례가 값싼 공업 부재를 하나의 조용한 질서로 묶는다.
그러나 이 집을 색색의 입면만으로 기억하면 절반을 놓친다. 높은 생활실과 침실, 작업 공간, 중정은 서로 다른 높이와 밝기를 갖는다. 사람은 넓은 유리 앞에 서기도 하고, 낮은 의자에 앉아 책과 물건 사이에 몸을 묻기도 한다. 구조는 단단하지만 생활 방식은 고정하지 않는다. 레이의 감각은 바로 그 여백에서 읽힌다.
사진에 담긴 완성, 시간에 드러나는 이음새
산업용 부재로 지은 집이라고 해서 관리까지 자동으로 단순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플랜트 현장 눈으로 얇은 강재 프레임과 넓은 유리면을 보면 수밀, 배수, 도장, 접합부 열화부터 생각하게 된다. 실제 Eames House Conservation Management Plan도 지붕 배수와 방수 상태, 건물 외피, 강재 프레임과 콘크리트 요소의 주기적 점검을 요구한다. 아름다운 격자는 동시에 수많은 이음새의 목록이다. 빛이 들어오는 자리마다 물이 들어오지 않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 점은 임스의 미드센추리 디자인을 비판적으로 보게 한다. 규격화와 대량생산은 더 나은 생활을 널리 공급하려는 약속이었지만, 임스 오피스가 구상한 건축 가운데 실제 완공된 것은 많지 않았다. Herman Miller Showroom은 가변형 전시 장치와 커다란 유리 입면을 실현했고, 1954년 Max and Esther De Pree House는 미시간의 추운 기후와 지역 목수의 기술을 받아들였다. 하나의 공업식 공법을 어디에나 복제하기보다 조건에 따라 해법을 바꾼 점은 높이 살 만하다.
반면 Case Study House #9인 Entenza House의 귀속은 신중해야 한다. 여러 후대 자료가 찰스와 레이, 에로 사리넨을 함께 언급하지만 미국 국가사적지 등록 문서는 설계자를 찰스 임스와 에로 사리넨으로 기록한다. 임스 오피스라는 공동 환경 안에서 레이가 어떤 세부 판단에 참여했는지는 더 연구할 문제다. 이름을 되찾는 일은 근거가 없는 공로까지 덧붙이는 일이 아니다. 모르는 부분을 남겨 두는 것도 정확성이다.
결론: 레이 임스를 제자리에 기록하는 일
레이 임스가 남긴 것은 예쁜 색의 목록이 아니다. 회화에서 익힌 관계의 감각을 건축, 가구, 그래픽, 영화와 전시 사이로 옮기고, 공업 제품과 손때 묻은 물건이 한 공간에서 견딜 수 있도록 조율한 태도다. 임스 하우스는 그 태도가 가장 오래 생활한 장소다. 강재 프레임은 배경으로 물러나고, 그 앞에서 책과 직물과 식물이 계절에 따라 자리를 바꾼다.
나는 이 집을 좋아하면서도 조금 망설인다. 정교하게 배열된 생활이 과연 누구에게나 가능한지, 대량생산의 꿈이 왜 결국 희소한 건축 아이콘으로 남았는지 묻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레이의 작업은 한 가지를 분명하게 남긴다. 좋은 공간은 형태가 완성되는 순간 끝나지 않는다. 사람이 들어와 고치고 쌓고 돌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제 수명을 시작한다.
언젠가 그 집 앞에 설 수 있다면 화려한 색면보다 먼저 이음새를 보고 싶다. 강재와 패널이 만나는 좁은 틈, 문을 오래 여닫아 닳은 손잡이, 물건을 옮긴 뒤 바닥에 남은 색 차이. 그리고 돌아와 내 현장의 기록을 다시 펼쳐 볼 것이다. 우리는 함께 만든 것에 누구의 이름을 남기고, 누구의 손을 너무 쉽게 지워 왔는가.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레이 임스는 건축가였나?
레이 임스는 건축사 자격을 가진 건축가라기보다 회화를 공부한 미국의 예술가이자 디자이너였다. 그러나 찰스 임스와 함께 Eames House의 최종안을 재구성하고 임스 오피스의 건축·가구·전시·영화 작업에 참여했으므로 건축사에서 제외할 수 없는 인물이다.
레이 임스와 찰스 임스의 역할은 어떻게 달랐나?
찰스는 기술과 구조, 레이는 색과 장식만 담당했다는 구분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두 사람과 임스 오피스 구성원들은 모형 제작과 시험, 수정을 함께 반복했으며 프로젝트별 개인 기여를 완전히 분리하기 어려운 공동 작업 체계를 만들었다.
Eames House는 누가 설계했나?
1945년 최초의 Bridge House 계획은 찰스 임스와 에로 사리넨이 설계했다. 자재 도착이 늦어진 뒤 기존 초지를 보존하도록 부재를 다시 배치한 1949년 완공안은 찰스와 레이 임스의 공동 재설계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임스 하우스에는 어떤 건축 재료가 사용되었나?
임스 하우스는 규격 강재 프레임에 투명·반투명 유리, Truscon 창호, Cemesto 불투명 패널 등을 조합한 건물이다. 공업용 부재를 사용했지만 색과 투과도, 패널 비례를 세심하게 조절해 주거와 작업에 맞는 외피를 만들었다.
레이 임스의 대표 건축물을 찾을 때 주의할 점은 무엇인가?
Eames House, Herman Miller Showroom, Max and Esther De Pree House는 찰스와 레이 또는 임스 오피스의 공동 작업이라는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 Entenza House는 자료에 따라 표기가 다르며 미국 국가사적지 등록 문서는 공식 설계자를 찰스 임스와 에로 사리넨으로 기록하므로 레이의 단독 작품으로 소개하면 안 된다.
참고문헌
- Pat Kirkham, Charles and Ray Eames: Designers of the Twentieth Century, MIT Press, 1995
- John Neuhart, Marilyn Neuhart, Ray Eames, Eames Design: The Work of the Office of Charles and Ray Eames, Harry N. Abrams, 1989
- Donald Albrecht, The Work of Charles and Ray Eames: A Legacy of Invention, Harry N. Abrams·Library of Congress, 1997
- Getty Conservation Institute, Eames House Conservation Management Plan, J. Paul Getty Trust, 2019
- Library of Congress, The Work of Charles and Ray Eames: A Legacy of Invention—Biography, Library of Congress, 1999
- Eames Office, Charles & Ray Biography 및 Complete Works: Architecture, Eames Office, 2026 접속
- National Park Service, 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 Registration Form: Case Study House #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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