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짓는 건축가?2026. 7. 21.by aclstoryji

잘 지었다면, 굳이 가릴 것이 없다는 건축가 "피에르 코에닉"

찬양 · 비판 · 의견 · 진실의 네 시선으로 다시 읽는 건축가 에세이

피에르 코에닉, 강철을 숨기지 않은 사람

발전소 파이프랙 앞에서 강철의 정직함을 배운 내가, 케이스 스터디 하우스를 지은 피에르 코에닉을 다시 읽는다.

피에르 코에닉(Pierre Koenig, 1925–2004)는 미국을(를) 대표하는 케이스 스터디 건축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피에르 코에닉의 생애와 대표작, 건축 철학을 찬양·비판·의견·진실의 네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Stahl HousePhoto by Ovs at English Wikipedia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건축 여정_건축가와 함께한 곳

피에르 코에닉(Pierre Koenig, 1925–2004)는 미국의 케이스 스터디 건축가입니다. 발전소 파이프랙 앞에서 강철의 정직함을 배운 내가, 케이스 스터디 하우스를 지은 피에르 코에닉을 다시 읽는다. 발전소 안을 걷다 보면 강철이 가장 정직한 재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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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은 거짓말을 못 한다

발전소 안을 걷다 보면 강철이 가장 정직한 재료라는 생각이 든다. 파이프랙의 H형강은 도장이 벗겨진 자리에서 녹을 드러내고, 용접 비드는 누가 언제 손을 댔는지 그대로 기록한다. 감출 데가 없다. 피에르 코에닉의 집을 사진으로 처음 봤을 때 내가 먼저 알아본 것도 그 정직함이었다. 이 사람은 뼈대를 벽 뒤로 밀어 넣지 않았다.

율리우스 슐만이 1960년에 찍은 스탈 하우스 사진이 있다. 유리로 된 거실 모퉁이가 로스앤젤레스의 밤 위로 떠 있고, 두 여자가 그 안에 앉아 있다. 발밑에는 도시의 불빛. 건축을 조금이라도 들춰 본 사람이면 한 번은 마주치는 장면이다. 다만 나는 이 사진이 유명해서가 아니라, 그 얇은 강재 기둥이 어떻게 저 무게를 받고 있는지가 궁금해서 오래 들여다봤다.

코에닉은 192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200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활동의 거의 전부가 남부 캘리포니아였고, 평생 강철과 유리라는 두 재료를 놓지 않았다. 건축가를 소개할 때 흔히 붙는 말들을 나는 여기서 아끼려 한다. 그의 집들은 그런 수식 없이도 구조로 먼저 말을 건다.

Bailey HousePhoto by Ilpo's Sojourn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학생이 용접해 세운 첫 집

코에닉이 처음 강철 집을 지은 것은 1950년,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건축을 배우던 학생 시절이었다. 남의 이론을 옮긴 게 아니라 자기 손으로 강재를 짜 올린 실물이었다. 스물다섯 살이 공장 부재로 집 한 채를 세웠다는 사실은, 도면과 시공 사이의 거리를 아는 사람에게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선언처럼 읽힌다.

이 첫 집이 잡지에 실리면서 그는 케이스 스터디 하우스 프로그램 안으로 들어간다. 존 엔텐자가 이끌던 잡지 아츠 앤드 아키텍처가 전후 미국의 살 만한 주택을 실험하던 기획이었다. 찰스와 레이 임스가 8번 집을, 코에닉이 21번과 22번을 맡았다. 앞서 임스 부부를 다루며 정리한 기준으로 보면, 이 프로그램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질문을 물었다. 공장에서 온 부품으로 어떻게 사람이 살 집을 지을 것인가.

코에닉의 답은 임스와 달랐다. 임스가 강재 골조 안에 생활을 빽빽이 채웠다면, 코에닉은 골조 자체를 최대한 얇게, 최대한 적게 남기려 했다. 뼈대를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필요 없는 것을 다 걷어내면 남는 게 결국 강철 몇 개와 유리라는 계산이었다.

Koenig House #2Photo by julius Shulman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케이스 스터디 21번, 물을 두른 집

1958년에 완공된 베일리 하우스, 곧 케이스 스터디 21번은 코에닉의 집 중에서 가장 정갈하다. 얕은 물이 집을 감싸고, 지붕 위로도 물이 흐르게 해 여름의 열을 식히도록 했다. 에어컨의 힘을 빌리기 전에, 물과 바람과 그늘로 온도를 다스리려는 설계다. 발전소에서 냉각을 다뤄 본 눈에는 이 물의 쓰임이 낭만이 아니라 계산으로 보인다.

평면은 단순하다. 강재 기둥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고, 그 사이를 유리와 가벼운 패널이 메운다. 필요한 벽만 남기고 나머지는 투명하게 비운다. 사진으로 보면 집이 물 위에 얇게 떠 있는 것 같은데, 이 가벼움은 장식이 아니라 부재를 덜어낸 결과다.

다만 실무자의 걱정도 함께 든다. 강재를 밖에 드러낸 집은 아름답지만, 현장에서 강철을 관리해 본 사람은 안다. 드러난 강철은 계속 손이 간다. 방청 도장은 벗겨지고, 접합부는 물길을 따라 늙는다. 이 집이 오래 정갈함을 유지했다면, 그것은 설계만의 공이 아니라 누군가 꾸준히 손을 댄 결과일 것이다.

Gantert HousePhoto by Gerlach office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스탈 하우스, 도시를 향해 내민 거실

케이스 스터디 22번, 스탈 하우스는 1959년에 설계해 이듬해 완공했다. 언덕 끝의 좁은 땅에 L자로 앉히고, 거실을 절벽 바깥으로 캔틸레버로 내밀었다. 받쳐 주는 땅 없이 강재 보만으로 허공을 붙잡는 구조다. 다이빙대가 물 위로 몸을 내밀듯, 거실이 도시 쪽으로 나가 있다.

슐만의 사진이 담은 것이 바로 이 모퉁이다. 삼면이 유리인 거실이 밤의 로스앤젤레스 위에 걸려 있다. 나는 이 집 앞에 서 본 적이 없다. 만약 그 앞에 선다면, 사진이 지운 것들이 먼저 눈에 들어올 것 같다. 좁은 진입로, 뜨겁게 달아오른 서향 유리, 관리의 손길이 닿은 접합부. 실제로 거실 삼면이 유리라면 오후의 열기는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사진은 그 열기를 담지 않는다.

그래도 구조만 놓고 보면 이 캔틸레버는 정직하다. 강철이 어디서 힘을 받고 어디로 그 힘을 흘려보내는지가 눈에 그려진다. 나는 이런 집을 지어 본 적도, 살아 본 적도 없다. 그 문장을 쓰는 동안, 부러움이라 이름 붙이기 애매한 감정이 잠깐 지나갔다.

공장에서 온 부품과 지키지 못한 약속

케이스 스터디 프로그램의 원래 뜻은 대량생산이었다. 공장 부재로 값싸고 좋은 집을 여러 채 찍어내, 전후의 주택난을 풀자는 것. 코에닉은 이 믿음을 오래 지킨 편이다. 1964년부터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오래 가르치며, 공장 제작과 기후를 고려한 설계를 꾸준히 이야기했다.

그러나 약속은 절반만 지켜졌다. 21번과 22번은 언덕 위의 아이콘이 되었고, 사진으로 소비되었으며, 지금은 쉽게 살 수 없는 집이 되었다. 살 만한 대중의 집을 노린 실험이 결국 부유한 취향의 상징으로 남은 것은 이 프로그램 전체의 아이러니다. 코에닉 한 사람의 잘못은 아니다. 설계가 아무리 값싼 부품을 겨눠도, 땅값과 시선까지 통제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이 집들이 지금까지 유효한 이유는, 형태가 아니라 방법에 있다. 강철을 숨기지 않는다는 태도, 필요 없는 것을 덜어낸다는 원칙, 기계 냉방 이전에 물과 바람을 먼저 쓰겠다는 순서. 이런 것들은 취향이 아니라 기술의 언어라서, 유행이 지나도 낡지 않는다.

결론: 코에닉이 남긴 것은 뼈대를 드러내는 용기다

피에르 코에닉을 정리하며 내게 남는 것은 두 재료의 이름이 아니다. 감출 것을 감추지 않겠다는 태도다. 강철은 벗겨지면 녹을 보이고, 캔틸레버는 계산이 틀리면 처진다. 그 정직함을 밖에 내놓으려면, 설계가 옳다는 확신과 그것을 검증받겠다는 용기가 동시에 있어야 한다. 발전소에서 드러난 강재를 매일 마주하는 나는, 그 용기가 얼마나 부담스러운 것인지 조금 안다.

그의 집들이 대중의 집이 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남긴 물음은 여전히 살아 있다. 우리는 왜 자꾸 뼈대를 벽 뒤로 숨기려 하는가.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드러낼 것인가. 코에닉의 답은 명료했다. 잘 지었다면, 굳이 가릴 것이 없다. 나는 그 문장 앞에서 한동안 조용해진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피에르 코에닉은 어떤 건축가인가?

192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2004년에 세상을 떠난 미국 건축가다. 강철과 유리를 쓴 주택으로 유명하며, 케이스 스터디 하우스 프로그램의 21번과 22번 집을 설계했다.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오래 가르쳤다.

스탈 하우스는 어디에 있고 왜 유명한가?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힐스 언덕에 있는 케이스 스터디 22번 집이다. 거실을 절벽 밖으로 내민 캔틸레버 구조와, 율리우스 슐만이 1960년에 찍은 야경 사진으로 널리 알려졌다. 20세기 주택 사진 중 가장 많이 인용되는 장면으로 꼽힌다.

케이스 스터디 하우스 프로그램이 무엇인가?

잡지 아츠 앤드 아키텍처가 전후 미국에서 살 만한 현대 주택을 실험한 기획이다. 여러 건축가에게 실제로 지을 수 있는 집을 의뢰했고, 임스 부부와 코에닉 같은 이들이 참여했다. 대량생산 주택을 겨냥했지만 상당수가 뒤에 고가의 아이콘이 되었다.

코에닉의 케이스 스터디 21번과 22번은 무엇이 다른가?

21번 베일리 하우스는 물을 둘러 냉방을 돕는 정갈한 평지형 집이고, 22번 스탈 하우스는 언덕 끝에서 거실을 허공으로 내민 집이다. 둘 다 강철 골조를 얇게 드러내는 원칙은 같지만, 땅과 물을 다루는 방식이 다르다.

강철을 드러낸 코에닉 집은 유지관리가 어렵지 않은가?

드러난 강철은 방청 도장과 접합부 관리가 계속 필요하다. 겉으로 얇고 가벼워 보이는 집일수록 실제로는 꾸준한 손질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오래된 코에닉 집이 상태를 유지했다면 설계뿐 아니라 지속적인 보수의 몫이 크다.

참고문헌

  1. James Steele, David Jenkins, Pierre Koenig, Phaidon, 1998
  2. Elizabeth A. T. Smith, Case Study Houses, Taschen, 2002
  3. Esther McCoy, Case Study Houses 1945-1962, Hennessey & Ingalls, 1977
  4. Neil Jackson, Pierre Koenig: A View from the Archive, Getty Research Institute, 2019
  5. Julius Shulman, Modernism Rediscovered, Taschen,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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