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노이트라, 유리벽에 사람의 하루를 조율하다
근대주의의 가느다란 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끝내 붙잡으려 한 것은 형태보다 몸의 안녕과 집 안에서 흘러가는 하루였다는 사실에 닿는다.
리하르트 노이트라(Richard Neutra, 1892–1970)는 오스트리아·미국을(를) 대표하는 근대주의 건축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리하르트 노이트라의 생애와 대표작, 건축 철학을 찬양·비판·의견·진실의 네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건축 여정_건축가와 함께한 곳

창 한 장이 밀어 넣는 오후의 열
여름 오후 발전소 건물의 서향 복도를 걷다 보면, 창을 통과한 빛이 에폭시 바닥 위에 길고 납작한 사각형을 밀어 놓는 시간이 있다. 유리 가까이 다가가면 팔뚝에 닿는 공기의 온도가 한 걸음 전과 다르고, 알루미늄 창틀은 손끝에 미지근한 열을 남긴다. 빛은 무게가 없지만 냉방부하표에서는 숫자로 눌러앉는다. 리하르트 노이트라의 주택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그 사실부터 떠올린다. 저 얇은 유리벽 안에 그는 정말 무엇을 담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아직 로스앤젤레스의 던디 드라이브에도, 팜스프링스의 비스타 치노에도 서 보지 못했다. 항공료와 숙박비를 계산하다가 지도를 닫은 적이 더 많다. 그래서 사진과 도면 앞에서 함부로 바람의 온도나 방 안의 냄새를 지어내지 않으려 한다. 다만 만약 그 집 앞에 선다면, 먼저 외관의 비례보다 유리 가장자리의 실링 상태와 처마가 만드는 그림자, 거실에서 침실로 걸어갈 때 몸이 얼마나 노출되는지를 보고 싶다. 건축은 바라보는 물체이기 전에 매일 통과해야 하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Photo by DavidHartwell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빈에서 캘리포니아로, 장식보다 몸의 반응을 따라가다
노이트라는 189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빈 공과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오토 바그너와 아돌프 로스의 영향 아래에서 장식의 권위를 의심했고, 제1차 세계대전 뒤 유럽을 거쳐 1923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탈리에신에서 잠시 일하고,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루돌프 신들러와 가까이 지내며 자신의 실무를 열었다. 그러나 그의 궤적을 단순히 유럽식 근대주의가 캘리포니아에 도착한 이야기로만 읽으면 중요한 부분을 놓친다.
노이트라는 의뢰인이 어떻게 자고, 일하고, 사람을 만나며, 무엇에 불안을 느끼는지 알려고 긴 면담과 질문지를 사용했다. 그가 말년에 정리한 생각에서도 설계의 목표는 사람의 건강과 안녕, 사회생활, 기후에 대한 반응이었다. 현대 기술은 목적이 아니라 그 상태를 만들기 위한 수단이었다. 발전 설비에서도 계통도는 선이 아름다워서 존재하지 않는다. 밸브 하나의 위치가 운전자의 동작과 비상 시 접근 시간을 바꾸기 때문이다. 노이트라의 가느다란 창틀과 미끄러지는 벽도 비슷하게 읽힌다. 선은 미학이지만, 동시에 몸의 행동을 유도하는 지시선이다.
Photo by Pmeulbroek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리하르트 노이트라의 러벨 헬스 하우스, 건강을 골조에 걸다
1927년부터 1929년까지 로스앤젤레스의 가파른 대지에 지어진 러벨 헬스 하우스는 강철과 유리, 콘크리트를 주택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매우 이른 사례이다. 건강·운동·일광욕을 중시하던 필립과 리아 러벨의 생활관은 방의 배치와 외부 공간, 채광 방식에 스며들었다. 복잡한 강철 골조가 비탈 위의 집을 받치고, 얇은 철제 창호는 기둥과 보 사이에 끼워졌다. 노이트라는 직접 시공을 총괄했으며, 높은 곳에서 콘크리트를 보내기 위해 약 200피트 길이의 목재 슈트까지 사용했다. 흰 입면 뒤에는 꽤 거친 현장이 있었다.
나는 이 집의 구조 그리드를 보면 발전소 설비 배치도에 찍힌 기준 좌표가 떠오른다. 기준선은 감상을 위해 그은 선이 아니라 철골, 배관, 케이블 트레이가 서로 충돌하지 않게 만드는 약속이다. 러벨 하우스에서도 골조의 반복은 창과 벽, 발코니의 위치를 조율하며 생활을 담는 틀이 되었다. 다만 집이 사람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은 매혹적인 만큼 경계할 필요가 있다. 건축은 햇빛과 바람, 움직임의 조건을 나아지게 할 수 있지만 의학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이 집의 의미는 건강을 보장했다는 데 있지 않고, 건강이라는 추상어를 구조와 동선으로 번역하려 했다는 데 있다.
사막의 투명함은 열과 시선 사이의 거리이다
1946년부터 1947년까지 팜스프링스에 지어진 카우프만 데저트 하우스는 사진 속에서 유난히 가볍다. 그러나 평면은 단순한 유리 상자가 아니라 여러 날개가 중심에서 뻗어 나가는 풍차형 구성에 가깝고, 목재와 강철의 구조, 수직 알루미늄 루버, 밝은 유타산 석재가 서로 다른 역할을 맡는다. 거실 지붕은 수영장 쪽으로 길게 나가고, 벽은 미끄러져 열리며, 돌의 거친 표면은 사막의 강한 빛을 잘게 부순다. 투명함만으로는 이 집을 설명할 수 없다. 투명하게 보이기 위해 오히려 수많은 차단 장치가 필요했다.
노이트라의 유리벽은 풍경을 액자에 끼우는 판이라기보다 사람의 신경과 기후 사이에 놓인 얇은 계기판처럼 보인다. 빛이 지나치면 루버가 필요하고, 시선이 깊이 들어오면 돌벽과 식재가 필요하다. 유명한 사진은 그 균형이 완성된 한순간을 붙잡지만, 실제 집에는 금속 접합부의 팽창과 유리 실링의 열화, 냉방과 청소가 따라붙는다. 후대 복원에서 석공들이 비정형 돌을 다시 하나씩 맞춰 가공했다는 사실은 이 집의 아름다움이 가벼운 이미지가 아니라 손이 오래 머문 물질 위에 서 있음을 보여 준다. 노이트라 자신도 이 큰 저택의 규모를 낭비에 가까운 말로 표현했다. 찬탄과 불편함이 함께 남는 이유이다.
자기 집은 생각대로 지어지는가
1932년의 노이트라 VDL 스튜디오 앤드 레지던스는 그의 집이자 사무실이며 연구실이었다. 나무가 거의 없던 제한된 대지에서 그는 수직으로 공간을 쌓고, 일과 가족생활의 출입을 나누며, 옥상과 테라스와 정원을 이용해 좁은 면적의 압박을 낮추려 했다. 러벨 하우스의 실험적 강철 골조와 달리 비용을 줄이기 위해 목재 벌룬 프레임을 쓰고, 표준 산업용 철제 창호에 맞춰 4인치 각재의 모듈을 잡았다. 서쪽 2층 창에는 5피트 깊이의 돌출부와 알루미늄 면 차양을 두었다. 이상은 언제나 예산과 규격 안에서 치수를 얻는다.
그렇다면 건축가의 집은 자기가 생각한 대로 만들어졌을까. 절반은 그렇고, 절반은 아니다. VDL은 좁은 공간에서도 안녕이 제한될 필요가 없다는 그의 생각을 시험한 집이었다. 하지만 1963년 화재로 본채가 크게 파괴된 뒤, 재건은 아들 디온 노이트라가 주요 책임을 맡아 1966년에 마무리했다. 기존 기초와 외곽 안에서 다시 지어야 한다는 행정 조건도 따랐다. 집에는 한 사람의 사상뿐 아니라 돈을 빌려 준 후원자, 가족의 노동, 화재, 법규, 시간이 들어왔다. 나는 오히려 그 점이 부럽다. 자기 이론을 완성품처럼 봉인하지 않고, 무너진 자리에서 가족과 함께 다시 수정할 수 있었으니.
리하르트 노이트라를 지나, 건물 앞에서 묻게 되는 것
리하르트 노이트라는 유리와 흰 벽으로 근대주의의 이미지를 만든 건축가이지만, 그가 건물에 넣고 싶었던 것은 이미지보다 사람의 생물학적·심리적 안녕에 가까웠다. 러벨 하우스에서는 건강을 골조와 일광에 걸었고, 카우프만 하우스에서는 사막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루버와 돌로 조절했으며, VDL에서는 좁은 집이 삶의 폭까지 좁혀야 하는지를 시험했다. 그의 시도는 섬세했고 때로는 설득력 있었다. 동시에 유리의 유지관리, 냉방 에너지, 부유한 의뢰인의 큰 대지와 같은 조건을 빼고 찬양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이제 건축물 앞에서 무엇을 생각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하나의 답만 내리지 않으려 한다. 아름다운가를 묻기 전에 이 빛을 누가 피해야 하는지, 이 문을 누가 매일 열고 닫는지, 이 재료를 십 년 뒤 누가 손볼지를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잠시 뒤에야 고개를 들어 비례와 풍경을 본다. 노이트라가 내게 남긴 것은 투명한 집의 형상이 아니라, 눈보다 몸을 조금 먼저 건물 안으로 보내 보는 습관이다. 그 질문을 품고 서 있는 일이 지금의 내가 건축 앞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감상인지도 모른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리하르트 노이트라는 왜 유리벽을 많이 사용했나?
리하르트 노이트라는 실내를 자연광과 풍경에 연결하고, 제한된 공간을 더 열려 보이게 하며, 사람의 심리적·생리적 반응을 조절하려고 유리벽을 사용했다. 다만 유리만 쓴 것이 아니라 처마, 루버, 식재, 돌벽을 함께 두어 햇빛과 시선을 걸러 냈다.
러벨 헬스 하우스는 정말 미국 최초의 철골 주택인가?
뉴욕현대미술관은 러벨 헬스 하우스를 미국에서 기록으로 확인되는 최초의 강철 골조 주택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다만 최초라는 표현은 조사 범위와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미국 근대 주택사에서 매우 이른 강철 골조 실험이라고 부르는 편이 안전하다.
노이트라 VDL 하우스는 왜 두 번 지어졌나?
1932년 지어진 첫 본채가 1963년 화재로 크게 파괴됐기 때문이다. 리하르트 노이트라와 아들 디온 노이트라는 기존 기초와 외곽 조건을 따르면서 새 재료와 당시의 기술을 반영해 재건했고, 공사는 1966년에 마무리됐다.
카우프만 데저트 하우스는 사막 기후에 어떻게 대응했나?
풍차형 평면으로 실내외 공간을 여러 방향으로 펼치고, 길게 뻗은 지붕과 수직 알루미늄 루버로 강한 햇빛을 조절했다. 밝은 석재와 열리는 벽, 그늘진 파티오도 풍경을 받아들이면서 열과 노출을 줄이는 데 기여했다.
리하르트 노이트라의 대표 건축물은 어디에 있나?
대표 주택 대부분은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에 있다. 로스앤젤레스에는 러벨 헬스 하우스와 노이트라 VDL 스튜디오 앤드 레지던스가 있고, 팜스프링스에는 카우프만 데저트 하우스, 베벌리힐스에는 크로니시 하우스가 있다.
참고문헌
- Richard Neutra, Survival Through Design, Oxford University Press, 1954
- Thomas S. Hines, Richard Neutra and the Search for Modern Architecture, Oxford University Press, 1982
- Sylvia Lavin, Form Follows Libido: Architecture and Richard Neutra in a Psychoanalytic Culture, MIT Press, 2004
- Barbara Lamprecht, Richard Neutra: Complete Works, TASCHEN, 2000
- Arthur Drexler and Thomas S. Hines, The Architecture of Richard Neutra: From International Style to California Modern, The Museum of Modern Art, 1982
- Neutra VDL, History of Neutra VDL I House (1932) and History, Cal Poly Pomon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