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임스, 의자보다 먼저 집을 그렸던 디자이너
표준 부품으로 세운 집과 사람의 몸을 받치는 의자 사이에서, 찰스 임스는 설계를 형태가 아니라 관계를 조정하는 일로 바라보았다.
찰스 임스(Charles Eames, 1907–1978)는 미국을(를) 대표하는 미드센추리 건축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찰스 임스의 생애와 대표작, 건축 철학을 찬양·비판·의견·진실의 네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Photo by Gunnar Klack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건축 여정_건축가와 함께한 곳

사진 속 집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
사진 속 임스 하우스의 거실에는 물건이 많다. 책과 화분, 조각품과 직물, 작은 테이블이 높은 천장 아래 느슨하게 모여 있다. 강재 기둥과 유리로 이루어진 외피만 떼어 보면 냉정한 공업 제품에 가까운데, 그 안에는 누군가 방금 내려놓은 듯한 생활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 있다. 찰스 임스를 생각할 때 내가 먼저 떠올리는 것은 유명한 의자의 실루엣보다 이 이상한 대비이다. 얇은 구조와 빽빽한 삶.
나는 아직 로스앤젤레스 퍼시픽 팰리세이즈의 그 집에 가보지 못했다. 경제적인 사정을 헤아리면 가까운 시일 안에 갈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다만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면, 건축이 앞에 나서지 않고 사람과 사물이 머물 자리를 내어주는 방식을 조금은 짐작하게 된다. 발전소 현장에서는 구조물이 대개 설비를 지지하고 통로를 확보하며 위험을 분리한다. 임스 하우스에서도 구조는 명확하다. 그런데 그 틀 안에 들어찬 것은 운전 절차가 아니라 일상의 변덕이다.
성당의 벽돌에서 시작된 찰스 임스의 건축
찰스 임스는 1907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났다. 워싱턴대학교에서 약 2년간 건축을 공부한 뒤 실무에 들어갔고, 1930년대에는 로버트 월시와 함께 미주리와 아칸소에서 주택과 교회를 설계했다. 1934년 계획이 승인되고 1936년 봉헌된 헬레나의 세인트 메리 가톨릭교회는 후기 고딕 복고 양식을 단순화한 건물이다. 벽돌 외벽과 뾰족아치, 버트레스라는 전통의 어휘를 사용하면서도 불필요한 장식을 줄였다.
이 교회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외관보다 일의 범위이다. 임스와 월시는 건물만 그리고 물러나지 않았다. 장의자와 설교단, 수납가구, 조명기구 같은 내부 요소에도 관여했고, 스테인드글라스와 벽화 작업에는 별도의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1935년에 설계된 파라굴드의 세인트 메리 가톨릭교회도 제한된 예산 안에서 로마네스크 복고 양식을 절제해 사용했다. 훗날 의자를 대량생산할 디자이너의 감각은 이미 이때부터 벽, 빛, 가구와 제작비를 하나의 문제로 묶고 있었다.
헬레나 성당을 본 엘리엘 사리넨은 찰스의 작업에 관심을 보였고, 이는 그가 미시간의 크랜브룩 미술아카데미로 향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곳에서 찰스는 에로 사리넨과 협업했고 레이 카이저를 만났다. 1941년 찰스와 레이는 결혼해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찰스가 197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진 작업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한 사람의 이름으로 덮을 수 없는 공동 작업
찰스 임스를 이야기하면서 레이 임스를 조력자처럼 뒤에 세우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레이는 뉴욕에서 한스 호프만에게 회화를 배웠고 색채와 구성, 전시와 시각적 편집에 깊이 관여한 공동 설계자였다. 두 사람은 아파트에서 성형합판 실험을 시작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그 기술을 미 해군용 다리 부목과 항공기 부품 제작에 적용했다. 재료의 한계를 손으로 확인하고 금형을 다시 만드는 반복이 이후 가구와 건축의 공통 문법이 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결과물을 막연히 ‘찰스와 레이의 공동작’이라고 부르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1940년 뉴욕현대미술관의 가구 공모전 당선안은 찰스 임스와 에로 사리넨의 협업이었고, 케이스 스터디 하우스 9번인 엔텐자 하우스 역시 찰스와 에로 사리넨의 설계로 기록된다. 반면 1949년 실현된 임스 하우스의 재구성에는 찰스와 레이가 함께 참여했다. 임스 오피스의 여러 직원과 기술자까지 생각하면 설계의 저자는 한 명의 천재라기보다 문제마다 다시 편성되는 팀에 가까웠다.
이 점은 찬양과 불편함을 동시에 남긴다. 찰스의 이름은 협업을 끌어당기는 중심이었지만, 오랫동안 레이와 동료들의 구체적인 기여를 가리는 그늘이 되기도 했다. 오늘 우리가 ‘찰스 임스 스타일’이라고 쉽게 부르는 색과 분위기 중 상당 부분은 단독 저작이라는 틀로 설명되지 않는다. 좋은 디자인을 말하면서 저자의 이름을 부정확하게 배분한다면, 이미 그 디자인의 윤리를 놓친 셈이다.
임스 하우스, 들판을 차지하지 않는 방법
케이스 스터디 하우스 8번의 첫 계획은 1945년 찰스 임스와 에로 사리넨이 설계한 ‘브리지 하우스’였다. 주거 공간을 들판 위에 걸치는 안이었지만 전후의 자재 부족으로 강재 공급이 늦어졌다. 기다리는 동안 찰스와 레이는 부지를 자주 이용했고, 유칼립투스 나무 앞의 초지를 훼손하지 않는 방향으로 생각을 바꾸었다. 이미 주문한 규격 부품에 강재 보 하나를 더해, 주거동과 스튜디오를 경사지 가장자리로 붙여 세우는 안으로 재구성했다.
1949년 완성된 집은 두 개의 직사각형 강재 골조와 그 사이의 열린 마당으로 이루어진다. 유리와 색 패널이 구조의 격자를 숨기지 않고 채우며, 복층 높이의 거실은 작업과 식사, 상영과 모임을 함께 받아들였다. 바깥에서 보면 규격과 반복이 먼저 보이지만 실내 사진에는 민속공예품, 장난감, 식물과 책이 가득하다. 미니멀한 외피 안의 생활은 전혀 미니멀하지 않았다. 바로 그 점이 좋다.
카탈로그에서 구할 수 있는 부품으로 이 정도의 공간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나는 조금 부럽다. 발전소에서도 표준 규격과 호환성은 비용, 공기, 안전을 좌우한다. 하지만 표준화가 유지관리를 저절로 해결하지는 않는다. 임스 하우스 역시 강재의 부식 가능성, 유리와 패널 접합부의 수밀성, 목재와 마감의 노화처럼 서로 다른 재료의 수명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 단순해 보이는 상세일수록 점검의 책임은 더 선명해진다.
엔텐자 하우스와 대량생산이라는 미완의 약속
바로 옆 케이스 스터디 하우스 9번인 엔텐자 하우스는 찰스 임스와 에로 사리넨이 설계해 1949년 완성했다. 같은 강재 골조와 모듈 계획을 사용했지만 구조를 목재 패널 뒤로 감췄다. 집주인 존 엔텐자가 손님을 자주 맞았기 때문에 넓은 거실과 식사 공간, 낮게 내려앉은 붙박이 좌석을 중심에 두고 침실 같은 사적 영역은 상대적으로 작게 구성했다. 구조 방식이 비슷해도 생활 조건이 달라지면 집의 표정과 동선은 달라진다.
케이스 스터디 하우스 프로그램은 전후 주택 수요에 대응해 산업 재료와 새로운 공법으로 합리적인 주택을 제안하려 했다. 그 이상은 분명 의미가 있다. 다만 임스 하우스는 자녀가 독립한 디자이너 부부의 생활과 작업을 위해 세밀하게 맞춘 집이었다. 특정 부지와 특정 삶에 깊이 반응한 실험을 곧바로 보편적인 대량주택의 해답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규격 부품을 쓴다는 사실과 누구나 그 집을 가질 수 있다는 약속 사이에는 토지가격, 공급망, 시공 숙련도와 유지관리 비용이 놓여 있다. 임스 부부가 실제로 지은 건축물도 많지 않았고, 그들의 주택 실험은 대규모 보급보다 후대의 설계 사고에 더 크게 남았다. 오늘날 임스라는 이름이 고가의 수집품과 세련된 생활 이미지로 소비되는 장면까지 생각하면, ‘모두를 위한 좋은 디자인’이라는 출발점과 시장이 만든 결과 사이의 간격도 외면하기 어렵다.
결론: 찰스 임스가 남긴 것은 형태가 아니라 조건이다
찰스 임스의 건축은 하나의 양식으로 정리하기 어렵다. 초기 성당에서는 전통 형식과 제한된 예산을 조정했고, 레이와 함께한 재료 실험에서는 합판이 견딜 수 있는 곡률을 찾았으며, 임스 하우스에서는 규격 부품과 초지, 작업과 생활을 한 구조 안에 묶었다. 그의 핵심은 멋진 형태를 먼저 정하는 데 있지 않았다.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재료와 제작 방식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답을 반복해 고치는 태도에 있었다.
플랜트 현장에서 구조물은 설비를 안전하게 받치고 사람이 점검할 통로를 남겨야 한다. 그러나 집은 안전하게 작동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사람이 앉고, 물건을 모으고, 때로는 계획을 바꾸어도 견딜 여백이 필요하다. 찰스와 레이의 집은 그 여백이 구조의 반대말이 아니라 구조가 존재하는 이유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언젠가 임스 하우스 앞에 설 수 있다면 나는 먼저 건물보다 들판을 보고 싶다. 그리고 집이 무엇을 더 세웠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세우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싶다. 설계란 결국 공간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삶이 들어올 자리를 어디까지 비워둘 것인지 결정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찰스 임스는 건축가인가 가구 디자이너인가?
찰스 임스는 건축 교육과 실무로 경력을 시작한 뒤 가구, 영화, 전시, 그래픽과 교육 매체로 작업 범위를 넓힌 디자이너이다. 실제 건축 작품 수는 많지 않지만 임스 하우스와 전후 조립식 주택 연구는 현대 주거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찰스 임스의 대표 건축물은 무엇인가?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로스앤젤레스의 임스 하우스, 즉 케이스 스터디 하우스 8번이다. 엔텐자 하우스와 아칸소주 헬레나·파라굴드의 세인트 메리 가톨릭교회도 찰스 임스의 건축 활동과 협업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작품이다.
임스 하우스는 찰스 임스가 혼자 설계했나?
아니다. 1945년 최초의 브리지 하우스안은 찰스 임스와 에로 사리넨이 설계했고, 실제로 지어진 1949년 배치는 찰스와 레이 임스가 다시 구성했다. 따라서 최초안과 실현안을 구분하고 레이 임스의 공동 설계 역할을 함께 밝혀야 한다.
임스 하우스에는 어떤 재료와 공법이 사용됐나?
규격화된 강재 골조에 유리와 여러 종류의 패널을 끼우는 모듈 방식이 사용됐다. 상업용 카탈로그에서 구할 수 있는 부품을 활용했지만 서로 다른 재료의 접합부와 노화 상태를 장기간 관리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일반 건축물과 마찬가지이다.
찰스 임스의 디자인 철학을 건축에서 어떻게 볼 수 있나?
필요를 먼저 파악하고 재료, 제작법, 비용과 사용자의 행동을 함께 조정하는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임스 하우스가 초지를 보존하도록 재설계된 일과 엔텐자 하우스가 집주인의 손님맞이에 맞춰 공용공간을 확대한 일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참고문헌
- Pat Kirkham, Charles and Ray Eames: Designers of the Twentieth Century, MIT Press, 1995
- John Neuhart, Marilyn Neuhart, Ray Eames, Eames Design: The Work of the Office of Charles and Ray Eames, Harry N. Abrams, 1989
- Donald Albrecht ed., The Work of Charles and Ray Eames: A Legacy of Invention, Harry N. Abrams, 1997
- Eames Demetrios, An Eames Primer, Universe Publishing, 2001
- Getty Conservation Institute, Eames House Conservation Management Plan, 2019
- Daniel Ostroff ed., An Eames Anthology: Articles, Film Scripts, Interviews, Letters, Notes, and Speeches, Yale University Press,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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