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지운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가 유리로 묻는 것들
투명함과 경량감으로 현대 건축의 언어를 다시 쓴 세지마 가즈요의 사유와 실천 — 이토 도요의 도제에서 프리츠커 수상자까지.
세지마 가즈요(Kazuyo Sejima, 1956–)는 일본을(를) 대표하는 SANAA 건축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세지마 가즈요의 생애와 대표작, 건축 철학을 찬양·비판·의견·진실의 네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Photo by Saigawasakurabashi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유리 너머의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의 건물은 처음 보는 순간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두께가 없는 듯한 유리 벽, 기둥인지 벽인지 구분이 안 되는 얇은 철판, 내부와 외부가 뒤섞이는 공간. 그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어느 쪽에 서 있는지를 잠시 잊는다. 이 낯선 감각이 세지마 건축의 핵심이다.
1956년 일본 이바라키현에서 태어난 세지마 가즈요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니시자와 류에와 함께 설립한 SANAA는 2010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회는 두 사람이 공간과 재료에 대한 전혀 새로운 어휘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Photo by Jesper Rautell Balle / CC BY 3.0 / Wikimedia Commons이토 도요의 아틀리에에서 SANAA까지
세지마는 일본여자대학교 건축학과를 1979년 졸업한 뒤 곧바로 이토 도요 건축설계사무소에 입소했다. 이후 약 8년간 이토 도요의 아틀리에에서 훈련을 받으며 가벼움과 유동성이라는 개념적 토대를 다졌다. 이 시기 이토 도요는 건축을 도시의 흐름과 연결 짓는 작업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었고, 세지마는 그 지적 분위기 안에서 자신만의 시선을 형성했다.
1987년 독립해 세지마 가즈요 & 어소시에이츠를 설립했고, 1995년에는 당시 직원이었던 니시자와 류에와 함께 SANAA(Sejima and Nishizawa and Associates)를 공동 창립했다. 두 사무소는 지금도 병행 운영 중이다. 소규모 주거나 실험적 작업은 개인 사무소에서, 미술관·공공시설·국제 프로젝트는 주로 SANAA 이름으로 진행된다.
Photo by Mikado1201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투명함의 철학 — 경계가 사라지는 공간
세지마의 건축에서 투명함은 단순히 재료의 물성이 아니다. 내부와 외부,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 전시실과 복도처럼 통상 구분되는 영역 사이의 경계를 흐리는 태도 전체를 가리킨다. 그의 평면은 방들이 명확히 분리된 상자 구조 대신, 서로 슬며시 침투하며 이어지는 유기적 집합체에 가깝다. 프로그램은 공간을 지배하는 대신 공간 안에서 부유하도록 허용된다.
발전소 현장에서 수십 밀리미터 두께의 강판이 수십 톤의 하중을 어떻게 견디는지를 일상적으로 다루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세지마의 건물이 서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작은 경이다. 기둥이라고 부르기에 지나치게 얇은 철판이 구조를 분담하고, 유리 커튼월이 수직 하중의 일부를 받는 방식은 재료 역학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결과다. 형태의 미학 뒤에 정밀한 구조 계산이 있다는 사실이, 세지마 건축의 순수해 보이는 표면을 더욱 팽팽하게 만든다.
이 철학의 뿌리에는 일본 건축의 간결함과 서양 미니멀리즘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세지마는 서양 미니멀리즘이 종종 빠지는 금욕적 엄숙함을 피한다. 그의 공간은 조용하되 냉랭하지 않고, 단순하되 단조롭지 않다. 복수의 활동이 동시에 일어나면서도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 느슨하고 관대한 공간이 목표다.
Photo by Unknown authorUnknown author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순환하는 도시들 — 대표 건축물 탐방
2004년 완공된 가나자와 21세기 현대미술관은 세지마와 SANAA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결정적 작품이다. 지름 112미터의 완전한 원형 평면에는 정면도 후면도 없다. 어느 방향에서든 동등하게 진입할 수 있고, 다양한 규모의 전시실이 원 안에 분산 배치되어 관람 동선이 사전에 결정되지 않는다. 가나자와를 직접 찾은 사람이라면, 이 유리 원반이 도심 광장 위에 어떤 스케일로 내려앉아 있는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할 말이 생긴다.
2007년 뉴욕에서 문을 연 뉴 뮤지엄 오브 컨템포러리 아트는 전혀 다른 도시 맥락에서 같은 철학을 시험한다. 크기가 조금씩 다른 직육면체 상자를 엇갈려 쌓은 형태로, 맨해튼 로어이스트사이드의 촘촘한 도시 조직 사이에서 이질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랜드마크가 됐다. 금속 메시 외피가 입힌 외벽은 빛의 각도에 따라 질감이 달라진다.
2010년 완공된 스위스 로잔의 롤렉스 러닝센터는 EPFL 캠퍼스를 위한 학습·생활 복합 공간이다. 지면이 완만하게 굴곡진 단일 바닥판 위에 모든 프로그램이 놓인 이 건물은, 경사와 곡률을 이용해 공간의 구획 없이 다양한 영역을 만들어낸다. 2012년 문을 연 프랑스 랑스의 루브르-랑스 미술관은 저탄소 산업 도시의 재생이라는 맥락 위에 세워진 수평적인 유리와 알루미늄의 풍경으로, SANAA의 섬세함이 문화 인프라와 만나는 방식을 보여준다.
찬사와 논점: 아름다움은 모든 것인가
세지마 가즈요의 건축은 건축 교육계에서 필수 참조점이 되었다. 공간과 프로그램, 구조와 외피를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일관된 논리로 통합하는 방식은 젊은 건축가들에게 새로운 설계 방법론으로 받아들여졌다. 베네치아 건축 비엔날레 총감독을 2010년에 맡으며 건축 담론의 흐름에도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비판도 분명히 존재한다. 광범위한 유리 사용은 냉난방 부하를 끌어올리고, 에너지 성능 면에서 현대적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반복된다. 공간이 지나치게 개방적이어서 사용자 입장에서 집중하거나 프라이버시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실무적 불만도 나온다. 일부 비평가들은 세지마의 형식 언어가 워낙 일관되어, 맥락이 달라도 유사한 답이 도출된다는 점을 한계로 지목한다. 아름다운 건물이 반드시 좋은 건물인가라는 질문은 세지마의 작업 앞에서 특히 날카롭게 제기된다.
결론: 세지마 가즈요가 남긴 질문
세지마 가즈요는 건물의 존재감을 극대화하는 대신, 건물이 최소한으로 존재하면서 사람과 빛과 도시가 서로 스며들게 하는 방식을 탐구해왔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재료는 정직해야 하고, 구조는 정확해야 하며, 프로그램은 유연해야 한다. 이 세 조건을 하나의 이미지로 통합하는 것이 그의 건축적 과제였다.
세지마가 묻는 것은 결국 건축이 공간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이다. 벽은 분리를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연결을 위해 존재하는가. 건물은 도시에 무엇을 보태야 하는가, 아니면 얼마나 양보해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세지마의 답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그렇기에 그의 작업은 완성된 유산이 아니라 살아있는 논쟁으로 남아 있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세지마 가즈요가 2010년 프리츠커상을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니시자와 류에와 함께 투명하고 경량한 건축 언어를 일관되게 발전시켜온 점을 인정받았다. 심사위원회는 두 사람이 공간의 경계와 재료의 물성을 재해석하며 현대 건축에 새로운 어휘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했으며, 가나자와 21세기 현대미술관과 뉴 뮤지엄 같은 완성도 높은 작품이 결정적 근거로 거론됐다.
SANAA와 세지마 가즈요 & 어소시에이츠는 어떻게 다른가?
세지마 가즈요 & 어소시에이츠는 세지마가 1987년 단독으로 설립한 사무소이고, SANAA는 1995년 니시자와 류에와 함께 만든 공동 사무소다. 두 사무소는 현재도 병행 운영 중이며, 규모가 크거나 국제적인 공공 프로젝트는 대부분 SANAA 이름으로 진행된다.
세지마 가즈요 건축에서 유리와 얇은 철판을 주로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부와 외부,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경계를 시각적으로 허물기 위해서다. 유리는 빛을 투과시켜 공간의 겹침을 드러내고, 얇은 철판은 구조 요소를 최소화해 개방감을 극대화한다. 재료의 선택 자체가 세지마의 공간 철학을 물질화한 결과다.
가나자와 21세기 현대미술관이 혁신적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면도 후면도 없는 완전한 원형 평면이 가장 큰 특징이다. 관람객이 어느 방향에서든 동등하게 진입할 수 있고, 전시실들이 원 안에 유기적으로 배치되어 동선이 사전에 고정되지 않는다. 유리 외벽 덕분에 도시 광장과 미술관 내부가 서로 시각적으로 침투하는 느낌을 준다는 점도 독특하다.
세지마 가즈요의 건축이 받는 주된 비판은 무엇인가?
미적 순수함을 추구하다 보니 에너지 성능과 유지·관리 면에서 한계를 드러낸다는 지적이 있다. 광범위한 유리 사용은 냉난방 부하를 키우고, 지나치게 개방적인 공간이 프라이버시 확보를 어렵게 한다는 사용자 불만도 나온다. 형식 언어의 일관성이 지나쳐 다양한 맥락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참고문헌
- El Croquis Editorial, SANAA: Kazuyo Sejima + Ryue Nishizawa 1983–2000, El Croquis 77+99, 2000
- Pritzker Architecture Prize Jury, Citation for Kazuyo Sejima and Ryue Nishizawa, Hyatt Foundation, 2010
- Frampton, Kenneth, Modern Architecture: A Critical History, 4th ed., Thames & Hudson, 2007
- Sejima, Kazuyo; Nishizawa, Ryue, SANAA Works 1995–2003, TOTO Shuppan, 2003
- Venice Architecture Biennale, People Meet in Architecture (12th International Exhibition), La Biennale di Venezia,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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