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 겐고, 재료로 다시 쓴 건축의 문법
반오브젝트에서 도쿄 국립경기장까지, 나무와 돌로 지어진 일본 건축가의 성취와 한계를 균형 있게 읽는다.
구마 겐고(Kengo Kuma, 1954–)는 일본을(를) 대표하는 재료적 지역주의 건축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구마 겐고의 생애와 대표작, 건축 철학을 찬양·비판·의견·진실의 네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Photo by Arne Müseler / CC BY-SA 3.0 de / Wikimedia Commons
재료의 물성으로 사유하는 건축가
구마 겐고는 1954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태어나 도쿄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학교 방문 연구원을 거쳐 1990년 자신의 사무소를 설립한 건축가다. 그의 이름 앞에는 재료적 지역주의, 혹은 약한 건축이라는 수식이 자주 붙는다. 콘크리트와 강철, 유리로 대표되는 20세기의 물성에 맞서 나무·돌·종이·대나무·기와 같은 오래된 재료를 현대 건축의 언어로 다시 불러들인 인물로 평가된다.
발전소나 플랜트 설계 도면을 보다가 구마 겐고의 목재 격자 파사드를 처음 마주하면, 다소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산업 시설에서 재료는 하중과 내구성, 화재와 부식, 유지관리 주기의 문제로 먼저 계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건축을 오래 들여다보면, 재료는 구조와 표면의 문제를 넘어 시간과 장소, 그리고 촉감의 문제로 확장되어 있다. 건축을 물성이라는 한 축으로 다시 정렬하는 시도라 할 만하다.
한국 독자에게 구마 겐고는 흔히 따뜻한 나무 건축의 이미지로 소비된다. 그러나 그의 작업을 20세기 후반 일본 건축의 흐름 안에 놓고 보면, 그는 단순한 자연주의자가 아니라 뚜렷한 이론적 입장을 가진 건축가다. 그 입장은 스스로 반오브젝트라 이름 붙였고, 이후 지는 건축, 즉 약한 건축이라는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Photo by Disde (on behalf of Disk Depot Ltd.) - Note: Confirmation of permission sent on 10 Oct 2018.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M2 빌딩과 잃어버린 10년
구마 겐고의 이력에서 가장 자주 회고되는 사건은 1991년 도쿄에 세운 M2 빌딩이다. 마쓰다 자동차의 쇼룸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이오니아식 거대 기둥과 콘크리트 매스를 뒤섞은 포스트모던 매너리즘의 극단이었다. 완공 직후 일본 건축계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고, 마침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면서 그는 도쿄에서 사실상 일이 끊긴 시기를 맞는다. 본인은 이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른다.
지방에 머무는 동안 그는 지역 목수와 석공들의 작업 방식에 몰두하게 된다. 1995년 아타미의 워터/글래스, 2000년 나스의 돌 미술관(Stone Museum) 같은 초기 실험은 이 시기의 결과물이다. 재료의 두께와 이음, 물과 빛의 반사, 지역 장인의 손끝이 하나의 문법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이 전환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화려한 도쿄 프로젝트로 이름을 알린 젊은 건축가가, 실패를 계기로 재료와 공정의 문제로 되돌아간 사례다. 이후 그의 이론서인 반오브젝트(2000), 지는 건축(2004)은 그 10년의 사유가 정리된 결과물로 읽힌다. 실패가 없었다면 지금의 구마 겐고도 없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반오브젝트와 약한 건축의 논리
구마 겐고가 말하는 반오브젝트는, 건축을 도시의 배경에서 도드라지는 조형물로 소비하는 20세기의 관성을 거스르려는 태도다. 그는 콘크리트 매스로 대지 위에 우뚝 서는 모더니즘의 기념비성을 비판하고, 대신 대지와 주변, 기후, 재료 속으로 스며드는 건축을 제안한다. 이 태도는 이후 지는 건축, 즉 약한 건축이라는 표현으로 정리된다.
그의 성씨인 구마(隈)는 일본어로 그늘진 구석, 물러난 자리를 뜻한다. 본인이 자주 언급하는 이 어원은 그의 이론과 절묘하게 겹친다. 건축이 스스로를 소리 높여 주장하기보다 그림자와 반사, 재료의 촉각으로 배경 속에 물러나는 것. 이는 켄조 단게로 상징되는 일본 모더니즘의 견고한 오브젝트성과 뚜렷이 갈라지는 지점이다.
다만 이 이론에는 오래된 반문도 따라붙는다. 재료의 얇은 층을 파사드에 덧입힌 것을 두고 재료의 표피화라는 비판이 있으며, 진짜 구조는 여전히 콘크리트와 강철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는 실무의 시선으로 보면 특히 예민한 지점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목재 격자와 그 뒤에 숨은 하중 구조의 관계는, 건축의 정직성이라는 오랜 논쟁을 소환한다.
대표작으로 읽는 재료의 조합술
구마 겐고의 대표작은 재료별로 정리하면 그 성향이 뚜렷하다. 나무 계열에서는 2010년 고치현에 지어진 유스하라 목교 박물관, 2019년 완공된 도쿄의 국립경기장이 대표적이다. 유스하라 목교는 지역의 삼목을 층층이 쌓아 캔틸레버 구조를 만든 작업으로, 지역 재료와 결구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국립경기장은 일본 각지의 목재를 처마에 사용한, 재료 지역주의의 상징적 표현이다.
돌과 유리 계열에서는 2009년 완공된 도쿄의 네즈 미술관, 2018년 개관한 스코틀랜드의 V&A 던디를 꼽을 만하다. 네즈 미술관은 도심의 소음에서 서서히 정원으로 이행하는 진입 시퀀스가 인상적이다. 미술관 자체는 관람의 무대라기보다, 안뜰의 정원을 감상하기 위한 배경으로 물러난다. V&A 던디는 스코틀랜드 절벽을 참조한 콘크리트 매스가 강한 조형성을 지녔지만, 층진 벽면과 광 반사로 스케일을 잘게 흩어 놓았다.
여행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의 건축은 사진보다 실제 방문의 인상이 훨씬 크다. 목재 격자를 통과하는 오후의 빛, 처마 아래 그늘의 온도, 발밑의 자갈이 내는 소리 같은 감각은 도면과 사진만으로는 잘 옮겨지지 않는다. 이는 그가 오브젝트가 아니라 경험의 장을 설계하려 했음을 방증한다.
브랜드화된 재료와 국립경기장의 그늘
한편 최근 10년의 구마 겐고를 두고, 세계 각지에서 유사한 목재 루버 파사드가 반복되면서 구마 스타일이 상표처럼 소비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지역의 재료와 장인을 존중한다는 슬로건이, 정작 프로젝트가 국제화되면서 표준화된 시각 언어로 굳어져 간다는 지적이다. 재료의 물성은 살아 있지만, 그 배치의 문법은 예측 가능해졌다는 말이다.
가장 첨예한 논란은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불거졌다. 자하 하디드의 초기 안이 예산 문제로 백지화된 뒤 구마 겐고와 다이세이건설 컨소시엄의 안이 채택되었는데, 공사 도중 한 하청 노동자의 과로사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재료의 상징성과 노동 조건 사이의 간극이 문제로 떠올랐다. 재료가 아무리 지역적이고 자연친화적이라도, 그것을 조립하는 노동의 조건이 열악하면 건축의 윤리는 흔들린다. 산업 시설의 안전 관리를 다뤄본 사람이라면 특히 낯설지 않은 문제다.
이러한 비판이 그의 전체 작업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그가 도달한 규모와 영향력이 이런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들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재료 담론이 표피에 그치지 않으려면 재료의 조달과 가공, 설치라는 공정 전반이 함께 이야기되어야 한다는 과제가 남는다.
결론 - 재료의 시대에 구마 겐고가 남긴 자리
구마 겐고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기는 어렵다. 그는 20세기 후반의 국제 양식에 맞서 재료의 지역성과 촉각성을 밀어붙였고, 스스로 반오브젝트와 약한 건축이라는 이론을 세운 인물이다. 동시에 자신이 세운 그 이론이 하나의 브랜드로 소비되는 상황을 함께 감당해야 하는 자리에 서 있다.
그럼에도 그의 작업이 남긴 성과는 분명하다. 콘크리트와 유리 이외의 재료로도 대규모 공공 건축을 세울 수 있음을, 지역의 목수와 석공과의 협업이 국제적 프로젝트에서도 유효함을 실증했다. 이는 재료와 공정에 대한 실무적 상상력을 넓혔다는 점에서 후배 건축가들에게 뚜렷한 유산으로 남는다.
구마 겐고의 건축을 다시 읽는 일은, 재료를 어디까지 사유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다시 꺼내는 일과 같다. 그의 목재 격자 너머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결국, 재료가 지어지는 방식 전체다. 그것이 이 건축가가 남긴 가장 오래 남을 질문이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구마 겐고는 어느 나라 건축가인가?
구마 겐고는 1954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태어난 일본 건축가다. 도쿄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했고 컬럼비아대학교 방문 연구원을 거쳐 1990년 자신의 사무소인 구마 겐고 앤드 어소시에이츠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구마 겐고의 대표작은 무엇인가?
대표작으로는 2009년의 네즈 미술관, 2010년의 유스하라 목교 박물관, 2018년의 V&A 던디, 2019년의 도쿄 국립경기장이 자주 꼽힌다. 재료별로는 나무를 중심으로 돌, 종이, 유리 등 여러 물성을 두루 다룬다.
구마 겐고의 건축 철학은 무엇인가?
스스로 반오브젝트, 그리고 지는 건축(약한 건축)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건축을 도시의 도드라지는 오브젝트로 세우기보다 대지와 재료, 주변 환경 속에 스며들게 하는 태도로 요약된다.
구마 겐고가 자주 사용하는 재료는 무엇인가?
나무를 가장 많이 사용하지만 돌, 종이, 대나무, 기와, 유리 등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두루 다룬다. 특히 얇은 목재를 반복적으로 쌓거나 겹치는 루버 파사드는 그의 시각적 서명처럼 자리 잡았다.
도쿄 국립경기장은 언제 완공되었나?
도쿄 국립경기장은 2019년 11월에 완공되었다. 2020년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으로 사용될 예정이었으며, 자하 하디드의 초기 안이 백지화된 뒤 구마 겐고와 다이세이건설 컨소시엄의 안이 채택되었다.
참고문헌
- 隈研吾, 反オブジェクト―建築を溶かし、砕く, 筑摩書房, 2000
- 隈研吾, 負ける建築, 岩波書店, 2004
- Botond Bognar, Kengo Kuma: Selected Works, Princeton Architectural Press, 2005
- Kenneth Frampton (ed.), Kengo Kuma: Complete Works, Thames & Hudson, 2013
- Kengo Kuma, Anti-Object: The Dissolution and Disintegration of Architecture, AA Publications,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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