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모네오는 메리다에서 벽돌, 산세바스티안에서 유리, 로스앤젤레스에서 설화석고를 썼다. 성당에 스테인드글라스를 넣지 않은 이유, 미술관 바닥 밑에 로마 도로를 그대로 남긴 선택, 1892년 아토차역 철골 역사를 헐지 않은 판단을 차례로 따라 읽는다.
- 라파엘 모네오의 건물들은 서로 닮지 않았다. 그런데 이유가 있다.
- 로스앤젤레스의 새 대성당에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없다. 대신 다른 걸 썼다.
- 쿠르살의 유리 덩어리 두 개에는 모네오 자신이 붙인 이름이 있다.
이 글의 순서


바닥 밑에 로마가 있다
메리다 국립로마미술관은 로마 시대 유적 위에 지어졌다. 사진으로 보면 벽돌 아치가 겹겹이 이어지는데, 정작 이 건물에서 가장 특이한 자리는 발밑이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로마 시대 도로와 주거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미술관을 설계한 라파엘 모네오는 새 건물이 옛것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았다. 벽돌 아치를 반복해 로마 수도교의 리듬을 불러왔고, 벽돌 치수도 로마인이 쓰던 것에 가깝게 맞췄다고 알려져 있다. 1986년에 문을 열었다.

한 가지 얼굴을 갖지 않은 건축가
라파엘 모네오는 평생 한 가지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았다. 쿠르살은 유리 상자, 로스앤젤레스 대성당은 사암빛 콘크리트, 메리다는 벽돌이다.
1937년 스페인 나바라주 투델라에서 태어난 그는 마드리드 건축학교에서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사엔스 데 오이사에게 배웠다. 1960년대 초에는 덴마크에서 요른 웃손의 사무소에 몸담았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가 한창 진행되던 시기였다. 이후 하버드 대학원 건축학과장을 1985년부터 1990년까지 지냈다.
성당인데 스테인드글라스가 없다.

역사를 헐지 않고 그 안에 정원을 들였다
마드리드 아토차역 증축은 1992년에 끝났다. 보통 이런 일은 낡은 것을 치우는 데서 시작한다. 모네오는 1892년에 세운 철골 유리 역사를 그대로 두었다.
대신 그 안에서 기차를 뺐다. 승강장을 새 건물로 옮기고, 비워진 옛 역사에 열대 식물을 들였다. 철골 지붕 아래가 통째로 온실이 된 셈이다.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이 야자수 아래 앉는 역이 그렇게 생겼다.
쓰임을 바꿔 구조를 살린 것이다. 헐고 다시 짓는 편이 싸고 빠른 경우가 대부분인데도 그러지 않았다.
좌초한 바위 두 덩어리
산세바스티안 쿠르살 회의장은 강이 바다로 나가는 자리에 놓인 유리 덩어리 두 개다. 모네오는 이것을 해변에 좌초한 바위에 빗댔다고 알려져 있다. 바다를 향해 조금씩 기울어 서 있다.
덩어리는 안팎 두 겹의 곡면 유리로 감쌌다. 그 유리가 빛을 흩뜨려서, 매끈한 반사 대신 뿌연 확산광이 걸린다. 밤이 되면 안쪽 빛이 배어 나와 반투명한 돌처럼 보인다고 한다.
넓은 면에 이만한 확산도를 고르게 내는 일은 쉽지 않다. 한 장만 색이 달라도 낮에는 몰라도 밤에 바로 드러난다.
성당인데 스테인드글라스가 없다
로스앤젤레스의 천사들의 모후 대성당은 완공 전부터 시끄러웠다. 공사비가 1억 9천만 달러에 이르렀다고 보도됐고, 전통적인 성당의 이미지와도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당인데 스테인드글라스가 없다.
대신 얇게 깎은 설화석고 창을 썼다. 빛은 들어오지만 형상은 흐려진다. 사진으로 보면 신자석에서는 창밖 풍경 대신 빛의 밀도만 느껴질 것 같다.
설화석고는 석고질이라 무르고 물에 약하다. 창 한 장이 깨지거나 얼룩지면 유리처럼 규격품을 끼워 넣을 수가 없다. 이 성당이 20년 뒤에도 같은 빛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건 설계만의 공이 아니라 매년 그 창을 돌본 사람들의 몫이다.
재료는 화려한데 걷는 길은 단순하다
실내건축을 배운 눈으로 다시 보면, 모네오의 건물들은 재료가 화려한 것에 비해 사람이 걷는 길은 단순하다.
- 메리다는 나란한 벽을 여러 겹 세우고 벽마다 아치를 뚫었다. 관람객은 그 아치를 차례로 통과하며 한 축을 따라 걷는다. 길을 잃을 구조가 아니다.
- 로스앤젤레스 대성당은 정면으로 곧장 들이지 않는다. 옆으로 난 긴 통로를 돌아 들어가게 해서, 걸어 들어가는 동안 바깥소리가 줄어든다.
- 아토차역은 옛 역사를 통과해야 승강장에 닿는다. 정원을 지나는 일이 동선에 박혀 있다.
노출 벽돌과 설화석고는 시간이 지나면 얼룩이 남는다. 빗물이 흐른 자리, 손이 닿은 자리가 먼저 색을 바꾼다. 오래된 석조 건물에서 흔히 보는 그 흔적이 모네오의 벽돌에도 언젠가 앉을 것이다.
재료는 매번 달랐지만 순서는 같았다
라파엘 모네오는 1996년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심사위원단은 그의 건축이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발전 설비 현장에서는 같은 터빈이라도 부지마다 배치도가 다르다. 지반과 냉각수 경로, 기존 배관이 위치를 먼저 정하고 설계는 그 안에서 답을 찾는다. 모네오의 순서가 그랬다. 메리다의 벽돌도, 쿠르살의 유리도, 로스앤젤레스의 설화석고도 그 땅이 이미 가진 것을 들은 다음에 골라진 재료다.
메리다에서 그는 새 미술관을 지으면서 로마 시대 도로를 걷어내지 않았다. 관람객은 지금도 그 길 위를 지나 전시실로 올라간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로스앤젤레스 대성당에는 왜 스테인드글라스가 없나?
모네오가 대신 얇게 깎은 설화석고 창을 썼다. 빛은 들어오되 형상은 흐려지는 방식이다. 설화석고는 석고질이라 무르고 물에 약해 관리가 까다롭다.
마드리드 아토차역에 있는 정원은 무엇인가?
1892년에 세운 옛 철골 유리 역사를 헐지 않고, 승강장을 새 건물로 옮긴 뒤 비워진 그 공간에 열대 식물을 들인 것이다. 모네오의 1992년 증축에서 나왔다.
쿠르살 회의장은 어디에 있나?
스페인 산세바스티안의 우루메아강이 바다로 나가는 자리에 있다. 바다를 향해 조금씩 기울어 선 유리 덩어리 두 개로, 모네오는 이것을 해변에 좌초한 바위에 빗댔다고 알려져 있다.
참고문헌
-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Rafael Moneo 1996 Laureate, The Hyatt Foundation, 1996
- Rafael Moneo, Remarks on 21 Works, The Monacelli Press, 2010
- Rafael Moneo, Theoretical Anxiety and Design Strategies in the Work of Eight Contemporary Architects, MIT Press, 2004
- Museo Nacional de Arte Romano(Mérida) 공식 누리집, 건물과 유적층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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