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로저스: 건물의 내장을 밖으로 꺼낸 건축가
구조와 설비를 외부로 드러내 건축을 읽히게 만든 하이테크 거장의 삶과 작업을 돌아본다.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gers, 1933–2021)는 영국을(를) 대표하는 하이테크 건축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리처드 로저스의 생애와 대표작, 건축 철학을 찬양·비판·의견·진실의 네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피렌체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건축을 배운 사람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gers, 1933–2021)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부모 모두 영국계 혈통이었지만 이탈리아에 정착해 있었고, 파시즘의 그늘이 드리우던 1938년 가족은 영국으로 귀환했다. 난독증 탓에 학창 시절 내내 학업에서 뒤처졌던 그는 뒤늦게 런던 건축협회학교(Architectural Association, AA)에 입학해 1954년부터 1959년까지 건축을 공부했고, 이어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예일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마쳤다.
예일 시절 만난 동기 노먼 포스터와 함께 1963년 팀 4(Team 4)를 결성한 것이 커리어의 첫 전환점이었다. 팀 4는 몇 년 만에 해체됐지만, 두 사람이 공유했던 '기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건축'이라는 감각은 각자의 경력 속에서 오래 지속됐다. 로저스는 이후 이탈리아 건축가 렌조 피아노와 손을 잡았고, 그 결합이 건축사를 바꿀 설계 경쟁으로 이어졌다.
Photo by Colin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퐁피두 센터, 건물을 뒤집다
1971년 파리 보부르 지구에서 열린 국제 설계 경쟁에 Piano·Rogers 팀이 응모한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이변이었다. 681개 팀 가운데 두 사람의 안이 채택됐을 때, 프랑스 언론 일부는 이 건물을 '정유 공장'에 비유하며 조롱했다. 1977년 개관한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는 구조 골조, 에스컬레이터, 공조 덕트, 수도 배관, 전기 도관을 모두 외벽에 배치하고 내부를 완전히 비워 두었다. 색상으로도 구별되는데, 공조는 파랑, 수도는 초록, 전기는 노랑, 순환(엘리베이터·에스컬레이터)은 빨강으로 처리했다.
이 설계의 결과는 단순히 충격적인 외관에 그치지 않았다. 내부에 기둥 하나 없이 층별로 7,500제곱미터에 달하는 개방 공간이 확보됐고, 전시 구성을 언제든 유연하게 바꿀 수 있었다. 퐁피두는 유럽 최대 규모의 근현대 미술 소장고를 품으면서도 초기 몇 년 동안 에펠탑보다 많은 방문객을 끌어들였다. 2007년 프리츠커 상 심사위원단은 이 건물이 '박물관을 엘리트의 기념비에서 도시 생활 속 사교의 장으로 탈바꿈시켰다'고 평가했다. 개관 이후 반세기 가까이 지난 2025년 9월 대규모 리노베이션에 들어가 2030년 재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Photo by CherryX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로이즈 빌딩, 설비를 유지보수의 논리로 바깥에 세우다
퐁피두가 파리에서 대화를 일으키는 사이, 런던 금융가 라임 스트리트에서는 또 다른 논쟁이 벌어졌다. 1978년 리처드 로저스 파트너십이 로이즈 보험 본사 설계를 수주한 것이다. 1986년 완공된 로이즈 빌딩(Lloyd's Building)은 퐁피두의 논리를 도심 업무용 건물에 적용한 작업이었다. 계단실, 엘리베이터, 화장실, 서비스 덕트 등 모든 설비 요소를 6개의 외부 타워에 집어넣고, 내부는 60미터 높이의 중앙 아트리움 하나로 열어 두었다.
발전소와 플랜트 현장에서 일하며 배관 계통과 구조 시스템을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시각에서 보면, 로이즈 빌딩이 가진 논리는 꽤 명쾌하다. 배관과 덕트를 외부에 노출하면 분해·점검·교체가 훨씬 쉬워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외기에 노출된 스테인리스 외장이 부식과 온도 차에 시달렸고, 유지보수 비용이 예상을 크게 웃돌았다. 2014년 로이즈의 최고경영자가 건물 이전을 검토할 만큼 골칫거리가 됐던 것도 사실이다. 이 역설—설비를 밖으로 꺼낸 건물이 되레 설비 관리에 어려움을 낳았다는 것—은 하이테크 건축이 품고 있는 이념과 현실 사이의 틈을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로이즈 빌딩은 2011년 완공 25년 만에 그레이드 I 법정 보존 건물로 등재됐다. 당시 기준으로 영국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에 해당 지위를 얻은 건물이었다.
이 건물을 처음 봤을 때 유럽의 역사적 석조 건물들 사이에서 튀어나온 스테인리스 기계 덩어리 같다는 인상을 받는 것은 흔한 반응이다. 그러나 내부 '더 룸(The Room)'에 들어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트리움 꼭대기에서 쏟아지는 자연광이 보험 시장의 거래 공간을 채우는 방식은, 로저스가 구조의 솔직한 표현 너머로 공간의 질을 동시에 설계했음을 증명한다.
Photo by Diego Delso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도시를 말한 건축가: 스트라스부르와 마드리드
로이즈 빌딩 이후 로저스의 작업은 유럽 각지로 뻗어 나갔다. 1989년 설계를 시작해 1994년 완공(1995년 개관)된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인권재판소(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는 그의 시민적 감각이 집약된 건물이다. 설계 원칙은 명확했다. '요새처럼 느껴지지 않게, 그러나 적절한 위엄은 갖추게.' 두 개의 원형 '드럼' 형태가 강변에 자리 잡은 이 건물은 동베를린 붕괴 이후 회원국이 급증하면서 설계 과정에서 사무 공간을 50퍼센트 이상 확장해야 했고, 그 변화를 기존 다이어그램 안에서 수용해 냈다.
2006년 개관한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 제4터미널(Barajas Airport Terminal 4)은 스페인 건축사 에스투디오 라멜라(Estudio Lamela)와 공동 설계한 작업으로, 2006년 스털링 상을 수상했다. 파도 형태의 강철 지붕이 '나무' 형태의 중앙 기둥 위에 얹혀 있고, 채광창 열이 내부 깊숙이 자연광을 끌어들인다. 대나무 마감재가 강철 구조와 대비를 이루는 실내는 공항이라는 공간이 주는 불안과 긴장을 상당 부분 걷어낸다. 이 건물에서 로저스가 보여 준 것은 하이테크 어휘가 스펙터클이 아니라 이용자 경험을 위해 쓰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도시 이론가로서의 리처드 로저스
건물 설계 외에도 리처드 로저스는 도시 담론에 깊이 관여했다. 1995년 그는 영국 BBC 리스 강연(Reith Lectures)을 건축가 최초로 맡아 '소도시를 위한 도시(Sustainable City)'를 주제로 다섯 편의 강연을 진행했고, 이것이 1997년 저서 《작은 지구를 위한 도시(Cities for a Small Planet)》로 출판됐다. 1998년에는 영국 정부의 요청으로 도시태스크포스를 이끌었고, 이 작업의 결과물인 백서 《도시 르네상스를 향해(Towards an Urban Renaissance)》는 영국 도시 재생 정책에 실질적 영향을 미쳤다.
그는 고밀도 복합 용도 도시 개발, 보행 우선 가로, 공공 공간의 활성화를 일관되게 옹호했다. 건물을 '기념비'가 아닌 '도시 생활의 촉매'로 보는 시각은 퐁피두 센터의 설계 개념에서 이미 명시됐고, 스트라스부르 법원과 마드리드 공항에서도 반복됐다. 런던 시장 건축·도시계획 자문위원을 역임하고(2001~2008), 그레이터 런던청 건축·도시주의 패널 의장을 맡는 등 공공 정책 영역에서도 현역으로 활동했다.
결론: 리처드 로저스가 남긴 것
리처드 로저스는 2007년 프리츠커 상을 수상했고, 1991년 기사 작위, 1996년 종신 귀족(리버사이드의 로저스 남작)에 봉해졌다. 1985년 RIBA 금메달, 2000년 프라에미움 임페리알레 등 주요 상을 두루 받았다. 2021년 12월 18일 런던에서 타계했다.
그의 건축을 '안팎이 뒤집힌 건물'이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것은 편리하지만 불충분하다. 로저스가 집요하게 탐구한 것은 투명성이었다. 건물이 어떻게 서 있는지, 공기와 물이 어떻게 흐르는지, 사람이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그것이 그의 미학이었고, 동시에 그의 윤리였다. 공간 안에서 실재하는 구조와 설비를 읽어내는 눈을 가진 이라면, 로이즈 빌딩 앞에서 혹은 바라하스 터미널의 '나무 기둥' 아래에서 그 감각이 얼마나 구체적인 것인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로저스를 단순한 하이테크 기술주의자로 읽는 것도 절반의 이해에 그친다. 그는 도시를 사랑했고, 공공 공간이 민주주의를 공간적으로 실현한다고 믿었다. 퐁피두 광장에 모이는 사람들, 스트라스부르 법원 건물이 요새가 아닌 열린 장소로 기능하는 방식—이것들이 리처드 로저스가 건축으로 말하려 했던 것의 핵심이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리처드 로저스는 어떤 건축 사조에 속하는 건축가다?
리처드 로저스는 하이테크 건축(High-Tech Architecture), 혹은 구조 표현주의(Structural Expressionism)의 대표 주자다. 철골·유리·덕트 등 산업적 재료와 시스템을 외부에 노출해 건물의 구조와 기능을 시각적으로 읽히게 만드는 방식이 핵심 특징이다. 노먼 포스터, 렌조 피아노와 함께 이 사조를 정립한 세대로 꼽힌다.
퐁피두 센터는 로저스 혼자 설계한 건물이다?
아니다. 퐁피두 센터는 이탈리아 건축가 렌조 피아노와 리처드 로저스가 공동으로 설계했다. 두 사람은 1971년 국제 설계 경쟁에 함께 참여해 681팀 중 당선됐고, 건물은 1977년 개관했다. 지안프랑코 프란키니도 설계팀의 일원이었다.
로이즈 빌딩이 영국 법정 보존 건물로 지정된 시점과 의미는 무엇이다?
로이즈 빌딩은 1986년 완공 후 정확히 25년이 지난 2011년에 그레이드 I 법정 보존 건물로 등재됐다. 당시 기준으로 영국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이 지위를 얻은 건물이었다. 영국 문화유산 기관 히스토릭 잉글랜드는 이 건물을 '현대 시대의 핵심 건물 중 하나'로 공식 평가했다.
리처드 로저스가 프리츠커 상을 받은 해와 수상 이유는 무엇이다?
리처드 로저스는 2007년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단은 퐁피두 센터가 박물관의 개념을 엘리트적 기념비에서 도시 생활의 교환 장소로 전환시켰다고 평가했고, 에너지 효율과 지속 가능성을 향한 그의 지속적인 헌신, 도시 정책에의 기여도 수상 이유에 포함됐다.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 제4터미널의 설계 특징과 수상 내역은 무엇이다?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 제4터미널(T4)은 리처드 로저스 파트너십과 스페인 에스투디오 라멜라가 공동 설계해 2006년 개관했다. 파도 형태의 강철 지붕, 나무를 형상화한 중앙 기둥, 채광 협곡('캐니언') 구조가 특징이다. 2006년 영국 스털링 상을 수상했으며, 유럽에서 규모 면에서 손꼽히는 공항 터미널 중 하나다.
참고문헌
- Richard Rogers, Renzo Piano, The Centre Pompidou, Editions du Centre Pompidou, 1987
- Richard Rogers, Cities for a Small Planet, Faber and Faber, 1997
- Kenneth Powell, Lloyd's Building (Richard Rogers Partnership), Phaidon Press, 1994
- Pritzker Architecture Prize Jury Citation, Richard Rogers, The Hyatt Foundation, 2007
- Richard Rogers, Architecture: A Modern View, Thames and Hudson,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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