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스톤, 기둥 곁에 그늘을 세운 건축가
국제주의의 유리 상자에서 돌아선 에드워드 스톤은 기둥과 격자, 얇은 지붕으로 공공건축에 머무를 틈을 만들려 했다.
에드워드 스톤(Edward Durell Stone, 1902–1978)는 미국을(를) 대표하는 뉴 포멀리즘 건축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에드워드 스톤의 생애와 대표작, 건축 철학을 찬양·비판·의견·진실의 네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Photo by Soumya S Das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건축 여정_건축가와 함께한 곳

기둥 하나에 등을 기대는 상상
사진 속 뉴델리 미국대사관을 오래 보고 있으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벽이 아니라 그 앞의 빈자리다. 얇게 떠 있는 지붕 아래, 일정한 간격으로 선 기둥과 스크린이 햇빛을 잘게 나눈다. 에드워드 스톤의 건축은 그 틈에서 시작된다. 건물은 분명 단단한데, 사람에게는 잠시 속도를 늦추라고 말하는 듯하다.
나는 발전소 현장에서 기둥을 대개 하중과 간섭의 언어로 읽는다. 배관이 지나갈 자리, 점검 동선의 폭, 설비 반입 때 남겨야 할 여유가 먼저 보인다. 그런데 스톤의 기둥 앞에서는 다른 상상을 하게 된다. 만약 그 기둥에 등을 기대고 잠시 사색에 잠긴다면, 건축은 구조체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마음을 받치는 등받이가 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조금 부럽다.
Photo by OhanaSurf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유리 상자에서 의식의 공간으로
에드워드 듀렐 스톤은 1902년 미국 아칸소주 페이엇빌에서 태어났다. 아칸소대학교, 하버드대학교,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1927년 로치 장학금으로 유럽을 여행하며 근대건축을 가까이 보았다. 1930년대에는 철근콘크리트·강재·수평창을 쓴 주택을 설계했고, 필립 L. 굿윈과 함께 1939년 뉴욕 현대미술관의 초기 건물을 설계하는 등 국제주의의 흐름 안에 있었다.
그러나 전후의 스톤은 매끈한 유리 상자만으로 공공건축의 품격을 말하기 어렵다고 보았던 듯하다. 그는 고전 건축의 축, 열주, 대칭과 현대 재료·공법을 결합했다. 이 경향은 훗날 뉴 포멀리즘으로 분류된다. 과거 양식을 그대로 되살린 것은 아니었다. 다만 사람 앞에 놓이는 국가와 문화의 건물이 너무 무표정해지지 않도록, 형식의 리듬을 다시 불러들인 선택이었다.
Photo by AgnosticPreachersKid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에드워드 스톤이 뉴델리에 남긴 빛의 필터
1959년 문을 연 인도 뉴델리의 미국대사관 청사는 스톤의 이름을 국제적으로 알린 작품이다. 그는 인도의 기후와 건축적 전통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미국의 외교 공간을 현대적으로 보이게 해야 했다. 높이 들어 올린 본체, 규칙적인 기둥, 빛을 거르는 격자성 외피와 넓은 처마가 하나의 정돈된 장면을 만든다. 사진으로 보면 건물은 덩어리보다 그림자의 밀도로 기억된다.
여기서 격자는 장식만은 아니다. 강한 일사를 바로 실내로 들이지 않고, 외부와 내부 사이에 한 겹의 완충을 만든다. 설비를 다루는 일에서도 직사광선과 열, 우수와 먼지를 한 번에 맞지 않게 하는 중간층은 중요하다. 스톤의 화면은 그 원리를 건축적으로 번역한다. 다만 그 아름다움이 곧 성능의 완전한 보증은 아니다. 공공건축의 외피는 시간이 지나며 오염, 보수, 보안과 함께 다시 평가받아야 한다.
Photo by Doc352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국가의 얼굴을 너무 크게 만들지 않는 법
워싱턴 D.C.의 존 F. 케네디 공연예술센터는 1958년부터 설계가 진행되어 1971년 개관했다. 포토맥강변에 길게 놓인 흰 대리석 외피와 반복된 수직 요소는 기념비성을 숨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첨탑이나 거대한 돔으로 사람을 밀어붙이지도 않는다. 긴 수평선과 열주가 천천히 건물을 읽게 만든다. 국가적 기념시설이 품을 수 있는 절제의 한 방식이다.
1963~1964년에 완공된 내셔널지오그래픽 협회 본부 역시 이 감각을 이어간다. 철근콘크리트 구조 위에 흰 대리석을 입힌 이 건물은 워싱턴의 기존 공공건축과 대화하려 했다. 돌의 줄눈과 기둥 간격은 도면에서야 쉽게 정리되지만, 현장에서는 기준선 하나가 틀어질 때마다 외피 전체가 흔들린다. 나는 이 건물의 단정함에서 장식의 화려함보다, 반복을 끝까지 맞추려 한 시공의 긴장을 먼저 떠올린다.
질서는 걷는 사람에게 어떤 거리인가
스톤이 1961~1962년에 설계한 뉴욕주립대학교 올버니 업타운 캠퍼스는 그의 질서가 도시 규모로 확장된 사례다. 평지붕의 건물, 열주, 분수와 광장, 포디엄 위의 학사 공간이 큰 축을 따라 조직된다. 멀리서 보면 수평과 수직이 아주 맑게 맞물린다. 캠퍼스 전체가 하나의 긴 회랑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정연한 반복은 언제나 편안함만 주지는 않는다. 넓은 포디엄과 긴 외부 동선은 걷는 사람에게는 거리로, 관리하는 사람에게는 넓은 면적으로 남는다. 계절과 이용 방식이 달라지면 열린 광장은 비어 보일 수도 있다. 스톤의 건축을 무조건 찬양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럼에도 그는 건물 한 동의 조형보다 사람들이 공유할 바닥과 그늘, 시선의 방향을 먼저 구성하려 했다. 그 태도는 여전히 진지하다.
결론: 에드워드 스톤의 기둥은 무엇을 받치고 있었나
에드워드 스톤은 근대건축의 기술을 버린 사람이 아니라, 그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 사람이었다. 그의 기둥, 격자, 대리석 외피와 대칭은 때로 지나치게 의전적이고 무겁게 보인다. 시대의 취향이 바뀐 뒤에는 장식적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그 비판은 유효하다.
그래도 나는 그가 남긴 빈자리를 오래 생각하게 된다. 기능과 안전, 공정과 유지관리로 채워진 현장에서도 사람은 잠시 설 곳을 찾는다. 기둥이 하중만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옆에 선 사람의 시선까지 정리할 수 있다면, 건축은 조금 더 오래 살아남을지 모른다. 스톤이 내게 남긴 것은 화려한 형식이 아니라, 단단한 구조 곁에도 그늘 하나는 필요하다는 조용한 물음이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에드워드 스톤은 어떤 건축가인가?
에드워드 스톤은 20세기 미국 건축가로, 초기 국제주의 작업을 거쳐 기둥·격자·대칭을 현대적으로 결합한 뉴 포멀리즘의 대표 인물로 평가된다. 뉴델리 미국대사관과 케네디 센터가 특히 널리 알려져 있다.
에드워드 스톤의 뉴 포멀리즘은 어떤 특징이 있는가?
뉴 포멀리즘은 고전 건축의 열주와 축, 대칭적 구성에서 질서를 가져오되 현대 구조와 재료로 구현하려는 경향이다. 에드워드 스톤의 건축에서는 얇은 지붕, 반복 기둥, 격자성 외피, 밝은 석재 마감이 자주 함께 나타난다.
뉴델리 미국대사관은 왜 에드워드 스톤의 대표작인가?
1959년 완공된 뉴델리 미국대사관은 현대적 외교 건축에 인도의 기후와 전통적 빛 조절 장치를 연결하려 한 작품이다. 기둥과 스크린, 깊은 그늘을 통해 스톤의 건축 언어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케네디 센터는 에드워드 스톤이 설계했는가?
그렇다. 존 F. 케네디 공연예술센터의 건축 설계는 에드워드 듀렐 스톤에게 맡겨졌고, 건물은 1971년 개관했다. 긴 수평 매스와 흰 대리석, 반복된 수직 요소에서 그의 공공건축적 형식성이 잘 보인다.
에드워드 스톤 건축은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는가?
그의 형식은 오늘날 다소 의전적이거나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기후를 고려한 차양과 외피, 공공장소의 동선과 머무름, 반복 부재가 만드는 질서라는 문제는 여전히 유효하며, 대형 공공건축을 읽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참고문헌
- Mary Anne Hunting, Edward Durell Stone: Modernism's Populist Architect, W. W. Norton, 2013
- Edward Durell Stone, The Evolution of an Architect, Horizon Press, 1962
- University of Arkansas Libraries, The Edward Durell Stone Papers
- University at Albany, University Celebrates Edward Durell Stone, Architect of Signature Modern Campus, 2007
- District of Columbia Preservation League, National Geographic Society Headquar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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