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홀, 매일 아침 빛을 물감으로 적어둔 사람
돌 상자에 담긴 일곱 개의 빛 병에서 서울 강북의 구리 세 채까지, 스티븐 홀이 붙잡으려 한 것.
스티븐 홀(Steven Holl, 1947–)는 미국을(를) 대표하는 현상학적 건축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스티븐 홀의 생애와 대표작, 건축 철학을 찬양·비판·의견·진실의 네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 스티븐 홀은 1979년 무렵부터 매일 아침 5×7인치 수채화 한 장으로 설계를 시작한다.
- 성 이그나티우스 채플에서는 배플에 칠한 색과 보색 렌즈를 겹쳐 빛 자체를 재료처럼 배합했다.
- MIT 시몬스 홀은 창 5,538개로 유명하지만 벽 두께 때문에 방 안은 어둡다. 개념이 끝까지 밀리면 거주성이 값을 치른다.
Photo by Joe Mabel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조건축 여정_건축가와 함께한 곳

조도계는 빛의 색을 읽지 못한다
실내건축과 2학년, 조명 설계 과제로 조도계를 처음 들었다. 강의실 한가운데 서서 숫자를 읽고 도면에 옮겨 적었다. 창가 자리와 복도 쪽 자리의 값이 네 배 가까이 벌어졌다. 보고서에는 그 숫자만 남았다.
그날 몸에 남은 건 숫자가 아니었다. 서향 창으로 들어온 빛이 회색 파티션 위에 얹히면서 조금씩 누렇게 바뀌던 것. 럭스는 양을 재지만 색과 방향은 재지 못한다. 도면에서 조명은 원 하나와 숫자 하나로 끝난다.
스티븐 홀(Steven Holl, 1947~ )의 도면을 처음 제대로 들여다봤을 때 든 생각이 그것이었다. 이 사람은 빛을 조명 계획서가 아니라 재료 목록에 올려둔다. 벽 두께를 정하듯 빛의 색을 정하고, 마감재를 고르듯 빛이 들어오는 각도를 고른다.
Photo by M00ster / CC BY 3.0 / Wikimedia Commons합판 선반에서 자던 사람이 헬싱키를 이긴 방법
스티븐 홀은 1947년 12월 9일 미국 워싱턴주 브레머턴에서 태어났다. 워싱턴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해 1971년 졸업했고, 그 사이 로마 프로그램을 다녀왔다. 1976년 런던 건축협회건축학교(AA)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았고, 이듬해 뉴욕에 사무소를 열었다. 같은 해 소책자 시리즈 '팸플릿 아키텍처'를 함께 시작했다. 뉴욕으로 옮긴 뒤 10년 가까이 사무소 입구 위 합판 선반에서 자고 근처 YMCA에서 씻었다는 이야기가 여러 매체에 반복 인용된다(1차 자료로는 확인하지 못했다).
1979년 무렵부터는 매일 아침 5×7인치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연필 드로잉 한 장에 여덟 시간이 걸리던 것을, 비행기 접이식 테이블 위에 펼칠 수 있는 크기로 줄인 것이다. 그는 이 습관을 훈련보다 명상에 가깝다고 말한 적 있다. 그의 건축을 묶는 말은 현상학이고, 뿌리에는 메를로퐁티가 있다. 1994년 유하니 팔라스마, 알베르토 페레스고메스와 함께 낸 『Questions of Perception: Phenomenology of Architecture』가 그 선언에 가깝다.
종이 위에 머물던 이름이 세계로 나온 건 헬싱키에서였다. 1992년 가을 시작된 핀란드 현대미술관 공모에 516개 안이 들어왔고, 1993년 홀의 '키아스마(Chiasma)'가 당선됐다. 1996년 착공, 1998년 5월 개관. 만네르헤임 기마상 바로 옆이라는 위치 때문에 논란이 컸다. 외피 알루미늄은 손으로 갈아 빛을 흩뜨렸고, 남북면 일부는 산으로 붉게 낸 황동을 썼다. 만네르헤임 대로를 향한 곡면 벽은 산업 건물에 주로 쓰던 레글릿 유리판이다. 로비의 곡면 콘크리트 벽은 현장타설로 쳐서 1997년 핀란드 올해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뽑혔다.
창이 아홉 개여도 벽이 45센티미터면 방은 어두워진다.
Photo by Unknown / CC BY 2.0 / Wikimedia Commons돌 상자에 담긴 일곱 개의 병
시애틀대학교 성 이그나티우스 채플은 1994년 설계에 들어가 1997년 4월 봉헌됐다. 연면적 약 567제곱미터, 공사비 520만 달러. 큰 건물이 아니다. 홀이 붙인 개념은 '돌 상자에 담긴 일곱 개의 빛 병'이었다.
색을 만드는 방식이 흥미롭다. 홀 사무소가 설명하는 순서는 이렇다. - 채광통 안쪽 배플에 색을 칠하고, 그 반사광을 흰 벽에 던진다 - 같은 채광통에 그 색의 보색이 든 유리 렌즈를 끼운다 - 반사된 색과 통과한 색이 한 공간에서 겹친다 빛을 조명기구로 다루지 않고 배합으로 다룬 셈이다. 사진으로 보면 흰 벽 한 면에 두 계열의 색이 동시에 얹혀 있다.
구조는 틸트업 콘크리트다. 착색한 패널을 채플 바닥 슬래브와 연못 슬래브 위에 눕혀 타설한 뒤 유압 크레인으로 일으켜 세웠다. 홀 사무소 기록으로는 스물한 장, 가장 무거운 것이 약 3만 6천 킬로그램이다. 세운 뒤 인양철물 자리는 청동 캡으로 덮었다. 36톤짜리 판을 세울 때 어려운 건 크레인 용량이 아니다. 인양점 위치와 무게중심, 로프 각도, 그리고 판이 수직에 가까워지는 마지막 몇 도다. 상상으로 덧붙이면, 첫 패널이 지면에서 떨어지던 순간 그 자리 사람들은 콘크리트가 아니라 붐 끝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창은 따로 뚫지 않았다. 패널끼리 맞물리며 남은 약 1.6센티미터(5/8인치) 틈이 그대로 빛의 선이 됐다. 창은 설계된 것이 아니라 벽과 벽이 맞물리며 남긴 자리다. 이 건물은 2022년 AIA 25년 상을 받았다. 다만 패널 수를 열두 장으로, 설치 시간을 열두 시간으로 적은 매체도 있다. 숫자가 엇갈린다. 확인 필요.
창이 아홉 개인데 방은 왜 어두운가
MIT 시몬스 홀은 1999년 착공해 2002년 가을 문을 열었다. 350실 규모 학부 기숙사다. 홀이 내건 개념은 '다공성'이었고, 구조 엔지니어 가이 노든슨과 함께 퍼프콘(PerfCon)이라는 방식을 만들었다. 벽이 곧 구조이고 창이 곧 구멍인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패널이다.
숫자는 화려하다. 방 하나에 창 아홉 개, 건물 전체에 5,538개. 창틀 안쪽 면에 칠한 색은 패널 안에 들어간 철근 굵기를 표시한다. 구조 계산이 그대로 색으로 나온 셈이다. 응력이 과한 구간에서는 창 몇 개를 메워 해결했다. 정직한 처리다.
실내 쪽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창은 한 변 약 60센티미터 정사각형이고, 그 창이 앉은 벽은 45센티미터 안팎으로 두껍다. 리빌 깊이가 창 폭의 4분의 3이다. 창이 아홉 개여도 벽이 45센티미터면 방은 어두워진다. 깊은 리빌은 여름 햇빛을 막아주지만 시야도 함께 잘라낸다. 예산은 크게 초과했고, MIT 기획 책임자를 오래 지낸 로버트 심하는 이 건물이 기숙사로서 기능을 충분히 못 했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2025년에는 한 단체가 이 건물에 '미학적 만행상'을 붙였다.
그렇다고 실패라고만 쓰고 싶지는 않다. 밤이 되면 5,538개 창이 각자 커튼을 치거나 열어둔 채로 켜진다. 어떤 방은 밝고 어떤 방은 어둡고, 그 무늬는 매일 다르다. 건물이 만든 게 아니라 350명이 만든 무늬다. 다만 그건 밖에 선 사람의 즐거움이다. 안에서 사는 사람의 몫과 같지 않다.
준공도면에 적힌 구리 색은 가장 짧게 입은 옷이다
스티븐 홀의 한국 작업은 서울 강북에 있다. 대양갤러리앤하우스, 2008년 설계에 들어가 2012년 6월 준공했다. 국내에서는 이래건축과 협업했다. 진입·주거·이벤트 세 채가 물 위로 솟아 있고, 그 아래로 갤러리가 하나로 이어진다.
지붕에는 55개의 선형 천창이 나 있다. 사무소 설명에 따르면 이 기하는 작곡가 이슈트반 언할트가 1967년에 그린 악보 스케치에서 왔고, 비례는 3·5·8·13·21·34·55로 이어지는 수열을 따른다. 연못 바닥에도 천창이 있어 빛이 물을 통과한 뒤 지하 갤러리로 떨어진다. 진입 마당 담장은 대나무 거푸집으로 쳤고, 문은 코르텐이다. 외피는 구리 레인스크린이다.
구리는 준공한 날부터 색이 바뀐다. 준공도면에 적힌 색은 그 건물이 가장 짧게 입고 있던 옷이다. 이건 낭만이 아니라 유지관리 항목이다. 어디까지가 자연스러운 변색이고 어디부터가 하자인지 기준을 정해두지 않으면, 10년 뒤 회의실에서 다투게 된다.
이 집은 서울에 있지만 사적인 공간이라 들어갈 수 없다. 사진으로 보면 물 위에 놓인 세 덩어리가 서로를 비춰 경계가 흐려진다. 만약 그 앞에 선다면 가장 먼저 확인하고 싶은 건 형태가 아니라 천창 아래 바닥의 밝기 차이일 것 같다. 『Architectural Record』는 홀의 자기 설명이 때로 과하게 들린다고 적었다. 나도 그렇게 느낀다. 다만 설명이 과해도 천창 55개는 실재한다.
결론: 스티븐 홀이 아침마다 붙잡으려 한 것
정리하면 이렇다. 스티븐 홀은 1947년생 미국 건축가이고, 1977년 뉴욕에서 사무소를 열었으며, 지어지지 않는 시간을 글과 수채화로 견뎠다. 성 이그나티우스 채플에서 빛을 색으로 배합했고, 키아스마에서 헬싱키의 계절광을 형태로 받아냈고, 시몬스 홀에서는 개념을 끝까지 밀어붙이다 거주성에서 값을 치렀다. 서울 강북에서는 악보 한 장을 지붕 위 천창 55개로 옮겼다.
그의 건물이 전부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시몬스 홀의 방 안 밝기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편치 않다. 다만 한 가지는 인정하게 된다. 그는 빛을 도면에서 원 하나로 처리하지 않았다. 벽 두께를 정하듯, 배합비를 정하듯 다뤘다.
물감은 종이 위에서 번지는 속도를 손이 정하지 않는다. 매일 아침 5×7인치 종이에서 그가 붙잡으려 한 것도 통제가 아니라 그 번짐이었을 것이다. 조도계를 들고 서 있던 스무 살의 나에게 그가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그 숫자 말고, 그날 그 빛이 무슨 색이었는지 적어 본적이 있는가.
스티븐 홀이 서울 강북에 설계한 대양갤러리앤하우스의 지붕에 난 선형 천창은 몇 개인가?
- 가. 21개
- 나. 55개
- 다. 108개
정답 확인
정답: 나. 지붕에 난 선형 천창은 55개이고, 사무소 설명에 따르면 3·5·8·13·21·34·55 수열의 마지막 숫자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스티븐 홀은 어느 나라 건축가이고 대표작은 무엇인가?
1947년 미국 워싱턴주 브레머턴에서 태어난 미국 건축가다. 1977년 뉴욕에 사무소를 열었고, 헬싱키 키아스마 현대미술관, 시애틀 성 이그나티우스 채플, MIT 시몬스 홀, 캔자스시티 넬슨앳킨스 미술관 블로크관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스티븐 홀의 현상학적 건축은 무슨 뜻인가?
형태나 양식보다 사람이 몸으로 겪는 지각을 설계의 출발점으로 삼는 태도다. 메를로퐁티의 지각 현상학에서 영향을 받았고, 1994년 유하니 팔라스마, 알베르토 페레스고메스와 함께 낸 『Questions of Perception』이 그 입장을 정리한 문헌이다.
성 이그나티우스 채플의 일곱 개 빛 병은 무슨 뜻인가?
홀이 붙인 개념 문구로, 돌 상자 같은 콘크리트 덩어리 위에 일곱 개의 채광통이 솟은 구성을 가리킨다. 각 채광통은 예배의 국면에 대응하고, 배플에 칠한 색의 반사광과 보색 유리 렌즈를 통과한 빛이 겹치면서 실내 색이 만들어진다.
스티븐 홀이 한국에 설계한 건물이 있는가?
서울 강북에 있는 대양갤러리앤하우스가 그의 한국 첫 작업이다. 2012년 6월 준공했고 세 채의 파빌리온과 반사연못, 지하로 이어지는 갤러리로 구성된다. 사적 공간이라 일반 관람은 어렵다(개방 여부는 최신 확인 필요).
MIT 시몬스 홀은 왜 논란이 되었는가?
공사비가 크게 초과했고, 기숙사로서 공용공간과 채광이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창은 5,538개지만 한 변 약 60센티미터 창이 45센티미터 안팎 두께의 벽에 앉아 있어 실내가 어둡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참고문헌
- Steven Holl, Anchoring, Princeton Architectural Press, 1989
- Steven Holl·Juhani Pallasmaa·Alberto Pérez-Gómez, Questions of Perception: Phenomenology of Architecture, A+U 특집호 1994(단행본 재간 2006)
- Steven Holl, Parallax, Princeton Architectural Press, 2000
- Steven Holl, Written in Water, Lars Müller Publishers, 2002
- Steven Holl Architects 공식 프로젝트 아카이브(stevenholl.com)
- Museum of Contemporary Art Kiasma, 'Architecture' 공식 소개(kiasma.fi)
- Architectural Record, 'Daeyang Gallery and House', 2012년 5월
- Metropolis, 'MIT v. Holl'
- Maurice Merleau-Ponty, Phénoménologie de la perception, Gallimard,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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