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치엔, 만져지는 것만 남긴다
그림을 그리던 사람이 건축으로 건너와, 도면에 그릴 수 없는 것들을 오래 붙들었다
빌리 치엔(Billie Tsien, 1949–)는 미국을(를) 대표하는 현대주의 건축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빌리 치엔의 생애와 대표작, 건축 철학을 찬양·비판·의견·진실의 네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Photo by Wpcpey / CC BY 4.0 / Wikimedia Commons건축 여정_건축가와 함께한 곳

재료실 샘플 보드에서 배운 것
실내건축과 첫 학기에 가장 오래 머문 곳은 강의실이 아니라 재료실이었다. 샘플 보드에 마감재가 손바닥만 한 크기로 붙어 있었다. 화강암, 테라조, 자기질 타일, 자작나무 합판, 스테인리스 헤어라인. 이름을 외우는 건 며칠이면 됐다. 어려운 건 그다음이었다. 손을 대보면 전부 온도가 달랐다. 석재는 실온인데도 차갑고, 목재는 미지근하고, 금속은 손을 떼고 나서도 자국이 남는다. 도면에서 이것들은 전부 해치 무늬 하나로 끝난다. 손에서는 그렇지 않다.
빌리 치엔의 작업을 오래 들여다보게 된 이유가 거기 있다. 그의 건물에서 반복해서 확인되는 건 형태가 아니라 표면이다. 벽에 손을 대고 싶어지는 건물이라는 평가가 그를 따라다닌다. 칭찬처럼 들리지만, 실무 쪽에서 보면 그건 부담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만져지는 걸 목표로 삼으면 도면에 적을 수 없는 항목이 늘어난다.
Photo by JZX422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그림을 그리던 사람이 도면으로 건너오다
빌리 치엔은 1949년 미국 뉴욕주 이서카에서 태어났다. 예일 대학에서 순수미술 학사를 마쳤고, 이후 캘리포니아 대학 로스앤젤레스 캠퍼스에서 건축 석사를 받았다. 건축이 첫 전공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 꽤 중요하다. 회화에서 출발한 사람은 표면과 안료의 관계를 먼저 배운다. 무엇으로 만들었는지가 무엇처럼 보이는지를 결정한다는 감각이다.
1977년부터 토드 윌리엄스와 함께 일했고, 1986년 두 사람의 이름을 붙인 사무소를 뉴욕에 열었다. 여기서 짚어둘 것이 있다. 이 사무소의 작업은 전부 두 사람의 공동 설계다. 아래에서 한 사람의 이름으로 문장을 이어가는 건 축약일 뿐 귀속이 아니다.
수상 이력도 정확히 적어두는 편이 낫다. 2013년 미국건축가협회 건축사무소상을 받았고, 같은 시기 미국 국가예술훈장을 받았다. 치엔은 뉴욕 건축연맹 회장을 지냈고 예일대에서 오래 가르쳤다. 설계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관 안에서 일해온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이력이 뒤에 나올 이야기와 이어진다.
Photo by TonyTheTiger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펜실베이니아의 초록 벽돌
2006년 펜실베이니아 대학에 스커카니치 홀이 완공됐다. 생명공학과 건물이자 공대의 정문 역할을 하는 건물이다. 폴 크레와 코프 앤드 스튜어드슨이 설계한 오래된 건물 사이에 끼어 있는 자리였다. 두 사람은 그 사이에서 물러서지도 튀지도 않는 방법으로 벽돌을 골랐다. 다만 기성 벽돌을 고른 게 아니라, 이 건물을 위해 손으로 유약을 입힌 세라믹 벽돌을 따로 개발했다.
색은 초록이다. 캠퍼스 곳곳의 담쟁이 덮인 벽돌에서 가져왔다고 알려져 있다. 중요한 건 그 초록이 한 가지 색이 아니라는 점이다. 노란 기가 도는 것부터 검은 것에 가까운 것까지 폭이 넓고, 이끼색 부근에 가장 많이 몰려 있다. 균질하게 구워진 벽돌 벽은 사진처럼 보이고, 색이 어긋난 벽돌 벽은 물건처럼 보인다. 저층부에는 화염 처리한 캐나다산 흑화강암을 썼다. 열을 가해 표면을 벗겨내면 운모가 반짝이고 장석이 불투명하게 드러난다.
외피 전체는 레인스크린 방식이다. 마감재 뒤에 통기층을 두고 침투한 물을 아래로 흘려보내는 구성이다. 시공 정밀도는 올라가지만 유지관리는 유리해진다. 다만 십 년 뒤를 생각하면 짚을 것이 남는다. 유약면은 오염과 색바램에 강해도 줄눈은 다르다. 백화가 올라오고, 세척제를 잘못 고르면 유약면이 먼저 상한다. 손으로 개발한 벽돌일수록 나중에 몇 장을 갈아 끼울 때 같은 색을 구하기 어렵다.
박쥐를 피해 꺾인 다리
홍콩 애드미럴티의 가파른 비탈에 아시아 소사이어티 홍콩 센터가 있다. 영국군이 쓰던 폭약 창고 부지였다. 1863년에서 1868년 사이에 지어진 매거진 A는 화강암 벽에 벽돌 볼트 천장을 가진 건물로, 지금은 전시장으로 쓰인다. 1905년에서 1907년 사이에 지어진 매거진 B는 100석 규모 극장이 됐다. 2011년 완공됐고 정식 개관 시점은 이듬해 초로 기록이 갈린다.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건 다리다. 아래쪽 신축 파빌리온과 위쪽 옛 건물군을 잇는 2층 콘크리트 보행교인데, 직선이 아니라 지그재그로 꺾인다. 공사 중 야자수에서 과일박쥐 무리가 확인됐고, 나무를 베는 대신 다리를 돌렸기 때문이다. 치엔은 이 꺾임을 소주 정원의 꺾인 다리와 연결해 설명한 적이 있다. 명분이 나중에 붙었는지 처음부터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결과만 보면 생태 조건이 형태를 바꿨다.
이 대목은 발전소 부지 검토와 겹친다. 부지 조사에서 법정보호종 서식이 확인되면 배치도가 바뀐다. 냉각수 취수 위치가 옮겨지고 접근 도로가 우회한다. 설계자가 원해서 바뀌는 게 아니라 바뀌지 않으면 인허가가 나지 않는다. 다만 발전소에서 그 우회는 대개 도면 위의 조정으로 끝난다. 홍콩의 다리는 우회한 흔적 자체가 건물의 얼굴이 됐다. 사진으로 보면 그 꺾인 각도에서 시야가 한 번 끊겼다가 다시 열린다. 만약 그 위를 걷게 된다면, 왜 꺾였는지 모르는 채로도 걸음이 한 번 느려질 것 같다.
손으로 만든 것에는 값이 붙는다
이 방식에는 대가가 있다. 재료를 새로 개발하면 시제품 제작과 시험, 색차 관리, 납기 확보가 전부 프로젝트 안에 들어온다. 사무소 규모는 30명 안팎이고 한 해에 진행하는 주요 프로젝트도 많지 않다. 하나를 오래 붙드는 방식이다. 그래서 이 건축을 감당할 수 있는 발주처가 정해져 있다는 지적이 오래 있었다. 대학, 미술관, 재단. 시간과 돈을 함께 낼 수 있는 기관들이다. 나는 이 비판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설계한 뉴욕 아메리칸 포크아트 미술관의 결말이 그 논점을 가장 아프게 보여준다. 2001년 개관한 이 건물은 채권을 발행해 지어졌고, 이후 미술관이 상환에 실패하면서 2011년 뉴욕 현대미술관에 팔렸다. 2014년 철거됐다. 손으로 부은 청동 패널이 열세 해를 버티지 못한 건 재료 때문이 아니었다. 그 재료를 감당할 재정이 먼저 무너졌다.
그래서 이 건축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간단하지 않다. 만져지는 건물을 만드는 일은 분명히 값어치가 있다. 동시에 그 값어치는 값으로 청구된다. 치엔이 기관 이사회와 교육 현장에 오래 몸담아온 이력이 여기서 다르게 읽힌다. 건물을 만드는 일과 그 건물을 지탱할 조직을 만드는 일을 따로 두지 않았다는 뜻일 수 있다. 추측이다.
결론: 빌리 치엔이 만지게 하려 한 것
빌리 치엔은 1949년 이서카에서 태어나 회화를 먼저 공부했고, 1986년부터 뉴욕에서 사무소를 이끌어왔다. 필라델피아에서는 이 건물만을 위한 초록 벽돌을 구웠고, 홍콩에서는 박쥐를 피해 다리를 꺾었고, 브루클린 프로스펙트 파크의 르프랙 센터에서는 스케이트장을 공원 지형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2026년 6월 시카고에서 오바마 대통령 센터가 문을 열었다. 한 달 전 일이다.
그의 건물 목록을 훑고 나면 형태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 표면이 남는다. 유약이 고르지 않은 벽돌, 불로 벗겨낸 화강암, 볼트 천장 아래의 두꺼운 화강암 벽. 사진으로만 봤는데도 그렇다. 그게 이 사람이 노린 지점이었을 것이다.
재료실 이야기로 돌아온다. 그때 나는 손바닥만 한 샘플로 재료를 배웠다. 실제 건물에서 그 재료는 수백 제곱미터가 되고, 그 크기에서는 손이 아니라 눈이 먼저 판단한다. 빌리 치엔은 반대 방향으로 갔다. 수백 제곱미터를 손바닥 크기의 감각으로 되돌려놓으려 했다. 다만 그 되돌림에는 값이 붙는다. 만져지는 건물을 누가 가질 수 있는가. 초록 벽돌 사진을 볼 때마다 이 물음이 조금 늦게 도착한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빌리 치엔은 어떤 교육을 받았나?
1949년 뉴욕주 이서카에서 태어나 예일 대학에서 순수미술 학사를 받았고, 이후 캘리포니아 대학 로스앤젤레스 캠퍼스에서 건축 석사를 마쳤다. 건축이 첫 전공이 아니라 회화에서 출발했다는 점이 재료와 표면을 다루는 방식에 영향을 준 것으로 자주 언급된다.
빌리 치엔과 토드 윌리엄스는 어떤 관계인가?
두 사람은 1977년부터 함께 일했고 1986년 뉴욕에 토드 윌리엄스 빌리 치엔 아키텍츠를 공동 설립했다. 부부이자 공동 설계자로, 1986년 이후 사무소의 모든 작업은 두 사람 공동 귀속이다. 2013년 미국건축가협회 건축사무소상과 미국 국가예술훈장을 함께 받았다.
스커카니치 홀의 초록 벽돌은 왜 특별한가?
기성 제품이 아니라 이 건물을 위해 손으로 유약을 입혀 개발한 세라믹 벽돌이다. 캠퍼스의 담쟁이 덮인 벽돌 색에서 가져온 초록이며, 한 가지 색이 아니라 노란 기부터 검은 기까지 폭이 넓게 분포한다. 외피는 레인스크린 방식으로 구성됐고 저층부에는 화염 처리한 흑화강암을 썼다.
아시아 소사이어티 홍콩 센터의 다리는 왜 꺾여 있나?
공사 과정에서 야자수에 과일박쥐 무리가 서식하는 것이 확인됐고, 나무를 베는 대신 보행교 경로를 지그재그로 우회시켰다. 이 다리는 아래쪽 신축 파빌리온과 위쪽 옛 폭약 창고 건물군을 잇는 2층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부지는 19세기 영국군 폭약 창고 자리였다.
아메리칸 포크아트 미술관은 왜 철거됐나?
2001년 개관한 이 건물은 채권 발행으로 지어졌고, 미술관이 상환에 실패하면서 2011년 뉴욕 현대미술관에 매각됐다. 이후 확장 계획에 따라 2014년 철거됐다. 재료나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 주체의 재정이 먼저 무너진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참고문헌
- Architectural Record, 아시아 소사이어티 홍콩 센터 프로젝트 리뷰, 2013
- University of Pennsylvania, 스커카니치 홀 준공 보도자료, 2006
- Cooper Hewitt, Smithsonian Design Museum, 아메리칸 포크아트 미술관 파사드 관련 소장품 해설, 2017
- Tsien, Billie; Williams, Tod, Wanderings, Yale University Press,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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