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도 반 아이크 — 도시의 빈 공터에 모래밭을 놓으면 무엇이 시작되는가
전후 암스테르담의 폭격 자리에 수백 개의 놀이터를 앉힌 네덜란드 건축가에 대한 기록.
앨도 반 아이크(Aldo van Eyck, 1918–1999)는 네덜란드을(를) 대표하는 구조주의 건축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앨도 반 아이크의 생애와 대표작, 건축 철학을 찬양·비판·의견·진실의 네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 앨도 반 아이크는 전후 암스테르담의 빈 공터에 수백 곳의 놀이터를 앉혔다.
- 1960년 고아원에서 방과 복도의 구분을 지우고 문턱을 장소로 만들었다.
- 그의 질문은 면적표에 잡히지 않는 이름 없는 자리에 관한 것이다.
Photo by Gerard Dukker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건축 여정_건축가와 함께한 곳

철봉 하단 용접부를 먼저 본 이유
동네 놀이터에서 나는 아이보다 철물을 먼저 본다. 지주 하단의 부식, 도장이 벗겨진 곡면, 모래에 잠긴 앵커. 아이의 체중은 가볍지만 반복 하중은 가볍지 않다.
앨도 반 아이크가 1940년대 후반부터 암스테르담 곳곳에 만든 놀이터 사진을 보면 그 철물이 놀랍도록 단순하다. 원형 철봉 돔, 콘크리트 원반, 낮은 벽. 장식이 없다.
그는 1918년 네덜란드 드리베르헌에서 태어나 1999년 세상을 떠났다. 스위스에서 공부하고 전후 암스테르담 시청 도시계획 부서에서 일하며 이 놀이터들을 담당했다.
Photo by Huib van Hove Bz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왜 폭격 자리에 모래밭을 먼저 놓았을까
전쟁이 지나간 도시에는 이가 빠진 자리처럼 공터가 남았다. 그는 그 자리에 큰 계획을 세우는 대신 작은 것을 놓았다. 결과적으로 수백 곳의 놀이터가 만들어졌다.
이 작업의 논리는 소박하다. 도시의 여백은 계획을 기다리는 빈칸이 아니라 이미 사용 중인 장소라는 것.
나는 이 태도에 오래 마음이 갔다. 큰 계획은 승인을 기다리지만, 모래는 오늘 부을 수 있다.
큰 계획은 승인을 기다리지만, 모래는 오늘 부을 수 있다.
돔의 지름은 어떻게 아이의 키를 계산하는가
그의 놀이터 요소는 치수로 승부한다. 철봉 돔은 아이가 매달렸을 때 발이 땅에 닿는 높이 안쪽에서 끝난다. 원반은 앉는 높이, 낮은 벽은 넘을 수 있는 높이.
완충 재료의 개념이 지금과 달랐던 시대이므로 오늘 기준으로는 그대로 쓸 수 없다. 낙하 높이와 충격 흡수 기준이 이후 크게 강화되었다. 이 부분은 정직하게 인정할 대목이다.
그럼에도 발상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다. 놀이 기구가 놀이를 지정하지 않는다. 사용법을 비워 두면 사용자가 채운다.
Photo by Fons Heijnsbroek]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고아원의 복도는 왜 방처럼 생겼는가
1960년 완공된 암스테르담 시립 고아원은 그의 대표작이다. 정사각형 단위 위에 얕은 돔을 반복해 얹고, 그 단위들을 연결하며 마을처럼 펼쳤다.
핵심은 사이 공간이다. 방과 복도의 구분을 흐려서, 통로에도 앉을 자리와 창과 빛을 준다. 그는 문턱을 두 세계가 만나는 자리로 이해했다.
다만 이런 계획에는 대가가 있다. 정리하면 이렇다.
- 단위 반복으로 외피 면적이 늘어 열손실이 커진다 - 얕은 돔 이음부는 방수 취약점이 되기 쉽다 - 사이 공간이 많아 관리와 감시가 어렵다 - 그러나 아이가 숨을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 건물의 목적이었다
앨도 반 아이크는 근대건축과 싸운 것인가
그는 팀 텐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기존 근대건축 국제회의의 기능주의 도식을 비판했다. 잡지 편집을 통해 그 논지를 확산시켰다.
핵심 어휘는 쌍둥이 현상이었다. 크고 작음, 안과 밖, 하나와 여럿을 대립으로 두지 말고 동시에 성립시키라는 요구다. 말은 어렵고, 도면에서는 의외로 명확했다.
1978년 암스테르담의 휘베르튀스 하우스는 그 어휘가 도심 건물로 실현된 사례다. 밝은 색면과 유리로 안팎을 겹쳐 놓았다. 오테를로의 존스베이크 파빌리온은 1966년 원본 이후 재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확한 경위는 확인이 필요하다.
결론: 앨도 반 아이크가 문턱에 남겨 둔 자리
정리하면 이렇다. 앨도 반 아이크는 1918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전후 암스테르담의 공터에 수백 곳의 놀이터를 앉혔고, 1960년 고아원에서 문턱과 사이 공간의 건축을 실현했으며, 팀 텐의 논쟁을 이끌었다.
그의 고아원은 이후 용도가 바뀌고 개조와 보존 논쟁을 거쳤다. 아이들은 오래전에 떠났다. 건물은 남았다.
나는 도면을 볼 때 여전히 방의 면적을 먼저 계산한다. 그가 남긴 질문은 그 반대편에 있다. 방이 아닌 곳, 이름 없는 폭 1미터의 자리에 우리는 무엇을 허락하고 있는가.
암스테르담 시립 고아원의 완공 연도는
- 가. 1955년
- 나. 1960년
- 다. 1978년
정답 확인
정답: 나. 1960년 완공이며 1978년은 휘베르튀스 하우스의 시기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앨도 반 아이크는 누구인가?
1918년 네덜란드 드리베르헌에서 태어난 건축가이며 1999년 세상을 떠났다. 전후 암스테르담 놀이터 계획과 시립 고아원으로 널리 알려졌다.
암스테르담 놀이터는 몇 곳을 만들었는가?
수백 곳으로 전해진다. 자료마다 집계 기준이 달라 정확한 수치는 확인이 필요하며, 상당수는 이후 철거되거나 개조되었다.
암스테르담 시립 고아원은 언제 완공되었고 지금은 어떻게 쓰이는가?
1960년에 완공되었다. 이후 고아원 기능은 사라졌고 용도 변경과 보존 논쟁을 거쳐 다른 시설로 사용되어 왔다.
사이 공간이라는 개념은 무슨 뜻인가?
방과 복도, 안과 밖처럼 대립되는 두 영역이 만나는 자리를 독립된 장소로 다루는 개념이다. 반 아이크는 이를 문턱의 건축으로 설명했다.
반 아이크와 팀 텐은 어떤 관계인가?
그는 팀 텐의 핵심 구성원으로 기존 근대건축의 기능 분리 도식을 비판했다. 잡지 편집을 통해 이 논지를 네덜란드 안팎에 확산시켰다.
참고문헌
- Aldo van Eyck, Writings, SUN Publishers, 2008
- Francis Strauven, Aldo van Eyck: The Shape of Relativity, Architectura and Natura, 1998
- Liane Lefaivre and Ingeborg de Roode (eds.), Aldo van Eyck: The Playgrounds and the City, NAi Publishers, 2002
- Aldo van Eyck, 고아원 시공 상세 도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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