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구르드 레베렌츠 — 벽돌 한 장을 자르지 않으면 벽은 어떻게 서는가
30년의 침묵 끝에 돌아와 가장 두꺼운 줄눈으로 교회를 지은 스웨덴 건축가에 대한 기록.
시구르드 레베렌츠(Sigurd Lewerentz, 1885–1975)는 스웨덴을(를) 대표하는 북유럽 근대주의 건축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시구르드 레베렌츠의 생애와 대표작, 건축 철학을 찬양·비판·의견·진실의 네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 시구르드 레베렌츠는 아스플룬드와 삼림 묘지를 만든 후 오랜 공백을 거쳐 말년에 벽돌 자르기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돌아왔다.
- 클리판 성 페테르 교회는 두꺼운 줄눈, 루즈 벽돌 바닥, 비대칭 창문으로 관행을 최소 단위에서 바꿨다.
- 작은 원칙 하나가 건물 전체를 다르게 만든다는 것을 이 건물은 조용히 보여 준다.
Photo by Unknown / CC BY-SA 2.5 / Wikimedia Commons건축 여정_건축가와 함께한 곳

줄눈이 벽돌만큼 두꺼우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벽돌 쌓기의 기준은 줄눈 두께에서 시작한다. 보통 10밀리미터 전후. 벽돌 한 장이 210밀리미터 길이라면 줄눈은 그 20분의 1쯤이다. 줄눈이 두꺼워지면 벽의 단위 리듬이 무너지고, 배합이 달라지고, 하중 전달 경로도 달라진다.
시구르드 레베렌츠가 1966년 스웨덴 클리판에 완공한 성 페테르 교회의 사진을 처음 봤을 때, 나는 그 줄눈의 두께를 먼저 봤다. 벽돌 두께와 거의 같다. 표면이 균일하지 않다. 모르타르가 밀려 나온 자리도 있다. 그것이 실수가 아니라 의도였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이 건물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레베렌츠는 1885년 스웨덴 산드비켄에서 태어났고 1975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경력은 두 토막으로 나뉜다, 공동묘지와 교회를 설계한 초기와, 오랜 침묵 끝에 돌아온 말년.
Photo by Architecture by Sigurd Lewerentz. Photo by visulogik / Hans Kylberg / CC BY 2.0 / Wikimedia Commons아스플룬드와 함께 묘지를 설계했다
초기 경력의 핵심은 스코그스키르코고르덴, 스톡홀름 교외의 삼림 묘지다. 1915년 에릭 군나르 아스플룬드와 함께 공모전에서 당선해 수십 년에 걸쳐 조성된 이 묘지는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그 안의 부활 예배당은 1925년 레베렌츠 단독 작업이다. 고전적 형식과 북유럽의 빛을 함께 다루는 방식이 이 초기 작업에서 이미 보인다. 아스플룬드와의 공동 작업이 어디서 끝나고 단독이 시작되는지, 귀속의 경계는 때로 모호하다.
그는 이후 묘지 설계, 납골당, 예배 공간을 이어 가다가 어느 시점에서 작업을 멈춘다.
모르타르 줄눈 두께 하나를 바꾸는 결정이 건물 전체를 다르게 만든다는 것을 나는 이 사람을 통해 생각하게 됐다.
건축가가 창문 공장 사장이 된 이유
레베렌츠는 1950년대에 이데스타라는 창문 제조 회사를 운영했다. 건축 실무에서 멀어진 이 시기를 두고 해석이 다양하다. 스스로 선택한 후퇴라는 시각도 있고, 이전 작업들이 뜻대로 실현되지 않은 데서 온 단절이라는 시각도 있다.
창문이라는 재료와 가장 가까운 시간을 오래 보낸 사람이, 이후 창문을 극히 비관습적으로 배치한 건물들을 지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재료를 제조한 경험이 재료를 다루는 방식을 바꿨을 수 있다. 확인은 불가능하다.
그가 건축으로 돌아온 것은 예순이 넘은 이후다. 비외르크하겐의 성 마르크 교회는 1960년 완공, 클리판의 성 페테르 교회는 1966년 완공이다.
클리판 교회의 바닥은 왜 모래 위에 깔렸는가
성 페테르 교회는 몇 가지 점에서 건축 관행을 벗어났다. 그 특징들은 이렇게 나뉜다.
- 벽돌을 자르지 않는 방식: 크기가 맞지 않는 자리는 두꺼운 줄눈으로 처리했다(이것이 공식 선언이었는지 결과적 방식이었는지는 자료마다 다르다) - 모르타르 줄눈이 벽돌과 맞먹는 두께: 벽 표면의 리듬이 균일하지 않다 - 바닥은 모래 위에 루즈 벽돌로 깔았다: 고정되지 않아 들어낼 수 있다 - 창문은 비대칭으로 배치됐다: 빛이 특정 시간과 방향에서만 들어온다 - 내부는 낮고 어둡다: 수직으로 솟지 않고 땅에 붙어 있는 느낌
만약 그 바닥 위에 선다면, 나는 먼저 발 아래의 움직임을 느낄 것이다. 고정되지 않은 벽돌은 걷는 방향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진다.
말년에 가장 과격해진 건축가
레베렌츠의 말년 작업은 초기보다 더 과격하다. 젊을 때 고전적 형식과 협상하던 사람이, 나이 들어 관습의 최소 단위인 벽돌 절단조차 거부했다.
이 변화를 어떻게 읽을지는 각자 다르다. 내부의 논리가 오랜 침묵을 통해 더 단단해졌다는 해석도 있고, 노년의 완고함이라는 시각도 있다. 둘 다 맞을 수 있다.
그가 클리판 교회에서 선택한 것들은 공사비를 낮추는 방향이 아니었다. 두꺼운 줄눈은 벽돌 사용량을 줄이지만 모르타르 배합과 타설 노력을 늘린다. 루즈 벽돌 바닥은 교체는 쉬우나 유지 관리 기준을 다시 써야 한다.
결론: 시구르드 레베렌츠가 잘라내지 않은 것들
시구르드 레베렌츠는 1885년 산드비켄에서 태어나 아스플룬드와 삼림 묘지를 만들었고, 오랜 공백 끝에 돌아와 클리판 교회에서 벽돌 자르기를 거부했다. 1975년 세상을 떠났다.
그가 자르지 않은 것은 벽돌만이 아니다. 관행도 자르지 않았고, 자신의 방향도 자르지 않았다. 그 고집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그의 글이 별로 없어서 알기 어렵다.
모르타르 줄눈 두께 하나를 바꾸는 결정이 건물 전체를 다르게 만든다는 것을 나는 이 사람을 통해 생각하게 됐다. 작은 원칙이 쌓이면 입면이 된다.
클리판 성 페테르 교회가 완공된 해는
- 가. 1960년
- 나. 1966년
- 다. 1975년
정답 확인
정답: 나. 스웨덴 클리판의 성 페테르 교회는 1966년 완공됐다. 1960년은 비외르크하겐 성 마르크 교회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시구르드 레베렌츠는 어떤 건축가인가
1885년 스웨덴 산드비켄에서 태어나 1975년 세상을 떠난 스웨덴 건축가다. 아스플룬드와 함께 삼림 묘지를 설계했고, 오랜 공백 후 말년에 과격한 벽돌 작업으로 돌아왔다.
스코그스키르코고르덴은 누가 설계했는가?
에릭 군나르 아스플룬드와 시구르드 레베렌츠가 1915년 공모전에서 함께 당선해 수십 년에 걸쳐 조성했다.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클리판 성 페테르 교회의 특징은 무엇인가?
벽돌을 자르지 않고 두꺼운 줄눈으로 처리하며, 바닥은 모래 위에 루즈 벽돌로 깔았다. 창문은 비대칭으로 배치되어 빛이 특정 시간에만 들어온다.
레베렌츠가 건축 공백기에 무엇을 했는가?
1950년대에 이데스타라는 창문 제조 회사를 운영했다. 이 시기는 건축 실무에서 멀어진 시간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의 재료 실험과 연관이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레베렌츠의 건물을 실제로 방문할 수 있는가?
스톡홀름 삼림 묘지는 일반에 공개돼 있다. 클리판 성 페테르 교회도 방문 가능하며, 스웨덴 건축 순례의 목적지로 알려져 있다.
참고문헌
- Janne Ahlin, Sigurd Lewerentz, Architect, MIT Press, 1987
- Flora Samuel and Peter Blundell Jones (eds.), Architecture and Movement, Routledge, 2016
- Claes Caldenby and Olof Hultin (eds.), Asplund, Rizzoli, 1986
- 레베렌츠 이데스타 창문 회사 운영 기록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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