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게리, 구겨진 금속판이 건물이 되기까지
프랭크 게리의 건축은 자유로운 선의 승리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구조와 시공, 도시의 욕망이 꽤 현실적으로 엉켜 있다.
Photo by Basotxerri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처음엔 멋있고, 두 번째엔 조금 불안하다
프랭크 게리는 1929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나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활동한 캐나다계 미국 건축가다. 본명은 에프라임 오언 골드버그였고, 1989년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2025년 12월 5일 산타모니카에서 세상을 떠난 것으로 확인되므로, 지금은 ‘1929–2025’로 적는 편이 맞다.
게리의 건축은 설명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다. 구겐하임 미술관 빌바오의 티타늄 곡면이나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의 금속 외피를 보면, 건물이라기보다 바람에 접힌 물체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정면, 측면, 지붕 같은 말이 잠시 힘을 잃는다. 건축이 도시 안에서 배경이 아니라 사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강하게 보여주었다.
다만 현장에서 설비와 구조를 보는 일에 익숙한 사람의 눈에는 그 자유가 마냥 가볍게 보이지 않는다. 발전소나 플랜트에서는 배관 하나, 점검 통로 하나도 이유 없이 꺾이지 않는다. 게리의 건물은 겉으로는 마음껏 구겨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구김을 버티게 하는 구조 계산과 시공 관리가 뒤에서 버티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의 건축을 볼 때 감탄과 동시에 약간의 긴장을 느낀다.
Photo by Carol M. Highsmith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해체주의라는 이름으로 다 담기지 않는 사람
게리는 흔히 해체주의 건축가로 분류된다. 1988년 뉴욕 현대미술관의 ‘Deconstructivist Architecture’ 전시는 그를 자하 하디드, 피터 아이젠먼, 렘 콜하스, 다니엘 리베스킨트 등과 함께 소개했다. 비틀림, 파편화, 불안정한 기하학이라는 말은 게리의 건축을 설명할 때 어느 정도 유효하다.
하지만 게리를 이론의 사람으로만 묶어두면 중요한 부분이 빠진다. 그의 초기 작업에는 철학적 문장보다 재료를 직접 만져본 사람의 감각이 더 짙다. 산타모니카의 게리 하우스에서 보이는 합판, 골판 금속, 체인 링크 펜스 같은 재료는 고급스러운 마감재가 아니다. 오히려 공사장이나 창고 주변에서 볼 법한 것들이다. 그는 그런 흔한 재료로 ‘건축다움’의 표정을 일부러 흐렸다.
이 점이 흥미롭다. 실내건축을 배울 때 재료는 늘 표면이면서 동시에 성능이었다. 손에 닿는 질감, 빛을 받는 방식, 유지관리의 난이도까지 같이 보아야 했다. 게리는 재료를 예쁘게 감추기보다 앞으로 끌어냈고, 때로는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 노골성이 누군가에게는 해방으로 보였고, 누군가에게는 과시로 보였다.
Photo by Gerda Arendt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빌바오 효과, 성공이 남긴 복잡한 숙제
1997년 스페인 빌바오에 완공된 구겐하임 미술관 빌바오는 게리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굳힌 작품이다. 쇠퇴한 산업도시였던 빌바오는 이 미술관을 통해 문화도시의 이미지를 얻었고, 이후 ‘빌바오 효과’라는 말까지 생겼다. 건축 하나가 도시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은 이 건물 이후 훨씬 강해졌다.
물론 이 이야기는 조심해서 보아야 한다. 도시의 변화가 오직 건물 하나 때문에 일어난 것은 아니다. 교통, 행정, 문화정책, 투자, 지역의 장기 전략이 함께 작동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가장 눈에 잘 보이는 건축물에 공을 돌리기 쉽다. 게리의 건축은 바로 그 점에서 축복이자 부담이었다.
그 이후 많은 도시가 ‘우리도 하나쯤은’이라는 마음으로 강한 랜드마크를 원했다. 그러나 모든 장소가 곡면 금속 외피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설비 현장에서 기능보다 외형이 먼저 앞서면 결국 운전과 유지보수에서 문제가 생긴다. 도시도 비슷하다. 상징이 필요할 때가 있지만, 상징이 생활을 밀어내면 건축은 금세 피곤해진다.
Photo by Hans Peter Schaefer, http://www.reserv-a-rt.de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찬란한 표면 아래에서 결국 구조를 본다
게리의 대표작은 분명 강하다. 구겐하임 미술관 빌바오, 로스앤젤레스의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파리의 Fondation Louis Vuitton, 프라하의 Dancing House는 각기 다른 도시에서 다른 방식으로 논쟁과 관심을 만들었다. 특히 Dancing House는 블라도 밀루니치와의 협업으로 완성된 건물이라는 점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나는 게리의 건축을 무조건 찬양하고 싶지는 않다. 때로는 건축이 너무 자기 목소리만 크게 내는 것처럼 보인다. 예산과 유지관리, 주변 맥락을 생각하면 질문할 지점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가 건축의 가능성을 넓혔다는 사실까지 지우기는 어렵다. 그는 건축이 네모난 상자 안에서만 품위를 얻는다는 믿음을 흔들었다.
결국 게리의 건축은 ‘멋진 외형’만으로 읽으면 반쯤만 본 것이다. 그 안에는 디지털 설계 기술, 구조 엔지니어링, 발주자의 욕망, 도시의 마케팅, 시공자의 고생이 모두 들어 있다. 나는 그의 건물을 볼 때 반짝이는 금속판보다 그 뒤의 프레임을 먼저 상상하게 된다. 그 프레임까지 떠올리고 나면, 게리의 건축은 허세라기보다 위험을 감수한 실험에 가깝게 보인다.
참고문헌
- Paul Goldberger, Building Art: The Life and Work of Frank Gehry, Alfred A. Knopf, 2015
- Philip Johnson and Mark Wigley, Deconstructivist Architecture, The Museum of Modern Art, 1988
- Mildred Friedman, ed., Gehry Talks: Architecture + Process, Universe Publishing, 1999
- Coosje van Bruggen, Frank O. Gehry: Guggenheim Museum Bilbao, Guggenheim Museum Publications, 1997
-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Frank Gehry Biography, The Hyatt Foundation, official web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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