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반 베르켈, 흐름이 형태를 고른다
사람이 이동하는 궤적에서 건물을 꺼낸 건축가가 로테르담에서 아른헴까지 남긴 질문들
벤 반 베르켈(Ben van Berkel, 1957–)는 네덜란드을(를) 대표하는 UNStudio 건축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벤 반 베르켈의 생애와 대표작, 건축 철학을 찬양·비판·의견·진실의 네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Photo by Massimo Catarinella / CC BY 3.0 / Wikimedia Commons건축 여정_건축가와 함께한 곳

흐름이 먼저, 벽은 나중에
발전소 배관 설계를 처음 배울 때 들은 말이 있다. 유체가 어디서 어디로 가는지를 먼저 결정하면 배관 경로는 거의 저절로 나온다. 흐름이 결정되면 지름이 정해지고, 지름이 정해지면 재료와 두께가 따라오고, 그다음에야 지지대가 어디에 붙는지 계산한다. 처음부터 파이프 형태를 정하려고 하면 일이 반드시 꼬인다. 기능이 먼저고, 형태는 그 결과다.
벤 반 베르켈을 알게 됐을 때 그 말이 다시 들렸다. 1957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서 태어난 그는 암스테르담에서 건축을 공부한 뒤 런던 건축협회(AA School)에서 수학했다. 1988년 파트너 캐롤라인 보스와 함께 암스테르담에서 UNStudio를 설립했다. United Network Studio. 단일 건물이 아니라 연결망과 동선이 관심의 중심이라는 선언 같은 이름이다. 동선이 공간의 혈관이라면, 반 베르켈은 혈관 자리를 먼저 정하고 나서 살을 붙인다.
Photo by user:AngMoKio / CC BY-SA 2.5 / Wikimedia Commons기울어진 탑이 강을 건너는 법
1996년 로테르담 마스강을 가로질러 에라스무스 다리가 완공됐다. 총 연장 802미터의 사장교다. 파일론 높이는 약 138미터. 그런데 이 탑이 수직으로 서 있지 않다. 뒤쪽으로 약 8도 기울어 있다. 역학이 먼저 요구한 기울기였다. 사장교에서 주 경간 쪽과 반대편 케이블의 장력 차이가 클 때, 파일론이 그 차이를 역방향으로 기울어 맞받아치면 합력이 기초를 향하게 된다. 로테르담 시민들이 이 다리를 더 즈반(De Zwaan), 백조라고 부른 건 역학이 만들어낸 형태를 나중에 발견한 것이다.
사진으로 보면 파일론이 강 위에서 뒤로 당겨지면서 케이블이 부채꼴로 펼쳐진다. 만약 그 다리 위를 직접 걷게 된다면, 교면 너머 강바람 속에서 무심코 고개를 들었을 때 케이블들이 하늘을 잘라내는 방식이 눈에 먼저 들어올 것 같다. 138미터 탑에서 내려오는 긴장이 발바닥까지 전해질지는 알 수 없다. 추측이다.
세 방이 허리를 맞댄 건물
2006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메르세데스-벤츠 뮤지엄이 완공됐다. 반 베르켈의 설계에서 이 건물은 평면이 출발점이 아니었다. 동선이 출발점이었다. 방문객은 엘리베이터로 최상층에 올라간 뒤 두 개의 나선형 경로 중 하나를 따라 내려온다. 두 경로는 이중 나선처럼 서로 감기면서 특정 지점에서 교차한다. 두 경로가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그 지점에서, 어느 쪽에서 왔느냐에 따라 같은 공간이 다른 방향으로 열린다.
이 나선을 담는 평면은 세 개의 타원이 가운데에서 겹쳐진 트레포일 형태다. 세 방이 가운데서 허리를 맞대고, 그 가운데는 아래층까지 뚫려 있다. 위에서 보면 바닥과 천장이 기울어진 채로 이어지고, 어디가 이 층이고 어디가 다음 층인지 경계가 뭉개진다. 이 복잡한 형태를 실현한 건 흰색 자기충전 콘크리트(SCC)였다. 철근이 밀집한 거푸집 안에서 진동 다짐 없이 스스로 흘러 채워지는 배합이다. 형태가 복잡할수록 시공이 까다로워지는 문제를 재료 배합으로 감당했다.
다른 속도가 한 지붕 아래 모일 때
아른헴 중앙역 환승 터미널은 UNStudio가 1990년대부터 참여해 2015년 무렵 주요 부분이 완공된 복합 교통 환승 시설이다. 기차, 버스, 택시, 자전거 주차장이 하나의 지붕 아래 모인다. 그 지붕이 단순한 덮개가 아니다. 비틀리고 기울어진 콘크리트 셸 구조가 각 교통수단 사이의 이동 경로를 형태로 표현한다. 지붕 자체가 사람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몸에게 먼저 알려준다.
발전소에서 서로 다른 계통이 만나는 접점에는 반드시 변환 설비가 들어온다. 고압에서 저압으로, 교류에서 직류로. 그 접점의 설비 크기와 배치가 주변 공간을 결정한다. 아른헴 환승 터미널도 비슷한 논리 위에 있다. 기차 속도와 버스 속도, 보행 속도가 만나는 자리에 지붕이 필요했고, 그 지붕의 형태가 각각의 속도를 이어주는 방식을 드러낸다.
천안에서 마주친 유리 조각들
2010년 충청남도 천안에 갤러리아 센터시티가 완공됐다. UNStudio가 설계한 한국 작업이다. 건물 외관을 덮는 건 원형 유리 디스크다. 수천 개의 디스크가 각도를 조금씩 달리한 채 붙어 있어, 낮과 밤에, 보는 방향에 따라 건물 표면이 다른 패턴을 만든다. 고정된 외벽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거기 있다.
발전소 업무로 천안 쪽에 출장을 간 적이 있다. 갤러리아 앞을 차로 지나쳤다. 실내건축을 공부하면서 마감 방식에 관심이 많았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이동 중에 한참 올려다봤다. 디스크들이 빛을 각각 다르게 받는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차 안에서라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했다. 나중에 찾아보고서야 디스크마다 기울기가 다르게 부착됐다는 걸 알았다. 그 작은 차이 하나가 건물 표면 전체의 움직임을 만들고 있었다.
결론: 벤 반 베르켈이 먼저 물은 것
벤 반 베르켈의 건물들은 처음에 낯설게 보인다. 벽이 기울어져 있고, 층이 연속으로 흘러내리고, 어디가 안이고 어디가 밖인지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 낯섦 안에는 일관된 질문이 있다. 사람은 어떻게 이 공간을 통과하는가. 에라스무스 다리는 강을 건너는 행위에서, 메르세데스-벤츠 뮤지엄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행위에서, 아른헴 환승 터미널은 교통수단을 바꾸는 행위에서 출발했다. 형태는 그 대답이었다.
나는 그의 건물 중 천안 갤러리아 앞을 스쳐 지나간 것이 전부다. 에라스무스 다리를 걷거나 메르세데스-벤츠 뮤지엄의 나선을 따라 내려간 적이 없다. 그래서 오히려 물음이 남아 있다. 흐름을 따라 설계된 건물 안에서, 사람은 실제로 흐르는가. 아니면 멈춰서 사진을 찍는가.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벤 반 베르켈과 UNStudio는 어떤 관계인가?
UNStudio는 벤 반 베르켈이 1988년 파트너 캐롤라인 보스와 함께 암스테르담에서 설립한 건축 사무소다. United Network Studio의 약자로, 연결망과 동선을 설계의 중심에 두는 철학을 이름에 담았다. 벤 반 베르켈이 공동 창립자이자 디자인 책임자로 이끌어왔다.
에라스무스 다리 파일론이 기울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에라스무스 다리는 주 경간과 반대편 케이블의 장력 차이가 큰 비대칭 사장교 구조다. 파일론이 역방향으로 약 8도 기울어 합력이 기초를 향하도록 설계됐다. 역학이 먼저 요구한 기울기가 결과적으로 백조 형태를 만들었다.
메르세데스-벤츠 뮤지엄 관람 동선 구조는 어떻게 되는가?
방문객은 최상층에서 엘리베이터로 올라간 뒤 두 개의 나선형 경로 중 하나를 택해 내려온다. 두 경로는 이중 나선처럼 감기면서 특정 지점에서 교차하고, 같은 공간이 어느 방향에서 왔느냐에 따라 다르게 열린다. 어느 경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자동차 역사를 다른 맥락에서 읽게 된다.
아른헴 중앙역 환승 터미널의 특징은 무엇인가?
기차, 버스, 택시, 자전거 주차장을 하나의 복합 구조로 묶은 교통 환승 시설이다. UNStudio가 1990년대부터 참여해 2015년 무렵 주요 부분이 완공됐다. 비틀린 콘크리트 셸 구조 지붕이 각 교통수단 사이의 이동 경로를 형태로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다.
천안 갤러리아 센터시티 외관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
건물 외관을 수천 개의 원형 유리 디스크가 덮고 있으며, 각 디스크의 부착 각도가 조금씩 다르게 설계됐다. 빛의 방향과 보는 각도에 따라 건물 표면이 계속 다른 패턴을 만들어낸다. 고정된 외벽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부착 각도 차이만으로 구현했다.
참고문헌
- El Croquis 159, UNStudio 2008–2012, El Croquis Editorial, 2012
- van Berkel, Ben; Bos, Caroline, Move (3 vols.), Goose Press / UN Studio, 1999
- Lootsma, Bart, SuperDutch: New Architecture in the Netherlands, Princeton Architectural Press, 2000
- van Berkel, Ben; Bos, Caroline, UN Studio: Design Models, Thames & Hudson,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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